"튀랑과 네스타 모두 대단한 수비수들이다. 그러나 일단 튀랑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그는 마치 외계에서 온 수비수처럼 놀라운 능력을 소유하고 있는 선수이기 때문이다." - 파비오 칸나바로 - 레 블뢰 "철의 포백" 최후의 수비수. 라이트백으로, 센터백으로 어디 하나 나무랄 곳 없는 무결점 수비수. 과델루페 출신으로, 프랑스로 건너와 AS모나코에서 데뷔하였고, 뛰어난 재능을 인정받아 조국에서 열렸던 98 월드컵 대표팀에 합류하였다. 당시 프랑스의 포백 - 빅상트 리자라쥐, 마르셀 드사이, 로랑 블랑, 그리고 릴리앙 튀랑 - 이들을 일컬어 "철의 포백"이라 부른다. 프랑스는 이 "철의 포백"에 힘입어 결승까지 단 2골만을 실점하면서 마침내 조국에 월드컵을 선사하게 된다. 튀랑은 이 대회 동안 브라질 선수를 방불케 하는 엄청난 오버래핑은 물론, 뛰어난 하드웨어와 지능적인 수비로 완벽한 측면수비까지 선보인다. 태클과 대인마크는 가히 세계최고. 무엇보다도, 릴리앙 튀랑이라는 이름을 알린 단 한 경기 - 바로 4강 크로아티아전이었다. 당시 후반 46분 크로아티아의 득점왕 다보르 수케르는 튀랑의 실수를 틈타 골을 성공시켰다. 튀랑은 실수를 만회하려는 듯 홀로 공을 몰고 드리블하여 실점 1분만에 동점골을 만드는 괴력을 선보인다. 1:1, 팽팽한 상황에서 프랑스를 결승으로 이끈 것은 22분 후 또 한번의 튀랑의 슛 - 이 두 개의 골은 놀랍게도 튀랑의 A매치 통산 두 골이 되었다. 이 공로로 튀랑은 브론즈볼까지 수상한다. 월드컵 우승 후, 튀랑의 명성은 최고였고, 그는 세리에A의 파르마로 건너가 파트너 파비오 칸나바로와 함께 엄청난 활약을 한다. 그리고 열린 유로2000 - 튀랑은 그 명성 그대로 "철의 포백"을 형성했고, 절정에 이른 지단의 활약까지 힘입어 프랑스에게 월드컵에 이어 앙리 들로네까지 선물한다. 이후 2001-2002 시즌을 앞두고 유벤투스로 이적하며 활약하나, 유벤투스의 "칼치오폴리" 사건에 의해 세리에B로 강등당하자,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로 이적, 마지막 황혼을 불태운다. 2002 한일 월드컵 때, 전대회 우승팀 프랑스의 충격적인 조별 예선 탈락, 유로 2004에서의 부진으로 인해 흔들리는 프랑스. 이로 인해 프랑스의 주축 멤버 - 지단, 튀랑 등은 은퇴를 결심한다. 2006 독일월드컵 전, 조국의 위기를 보자 튀랑은 다시 복귀하여 에릭 아비달, 윌리엄 갈라스, 윌리 사뇰과 함께 "新 철의 포백"을 구성하여 프랑스를 결승까지 진출시킨다.(이 때 프랑스가 실점한 골은 단 3골 - 박지성, 비야, 마테라치의 골 뿐이다.) 그 후 유로 2008를 끝으로 그는 마침내 길었던 국가대표 유니폼을 조국에 반납했고, 2008년 8월 마침내 심장이상으로 은퇴를 결정한다. 통산 142시합 출장, 월드컵 우승 및 준우승, 유로 우승, 세리에A 우승 등 선수로서 최고의 영광을 누렸던 몇 안되는 최고의 수비수. 뛰어난 두뇌로 흑인 문제와 같은 사회적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보인 지성파 축구인.1
[RB]Lilian Thuram
"튀랑과 네스타 모두 대단한 수비수들이다. 그러나 일단 튀랑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그는 마치 외계에서 온 수비수처럼 놀라운 능력을 소유하고 있는 선수이기 때문이다." - 파비오 칸나바로 -
레 블뢰 "철의 포백" 최후의 수비수.
라이트백으로, 센터백으로 어디 하나 나무랄 곳 없는 무결점 수비수.
과델루페 출신으로, 프랑스로 건너와 AS모나코에서 데뷔하였고, 뛰어난 재능을 인정받아 조국에서 열렸던 98 월드컵 대표팀에 합류하였다.
당시 프랑스의 포백 - 빅상트 리자라쥐, 마르셀 드사이, 로랑 블랑, 그리고 릴리앙 튀랑 - 이들을 일컬어 "철의 포백"이라 부른다.
프랑스는 이 "철의 포백"에 힘입어 결승까지 단 2골만을 실점하면서 마침내 조국에 월드컵을 선사하게 된다.
튀랑은 이 대회 동안 브라질 선수를 방불케 하는 엄청난 오버래핑은 물론, 뛰어난 하드웨어와 지능적인 수비로 완벽한 측면수비까지 선보인다. 태클과 대인마크는 가히 세계최고.
무엇보다도, 릴리앙 튀랑이라는 이름을 알린 단 한 경기 - 바로 4강 크로아티아전이었다.
당시 후반 46분 크로아티아의 득점왕 다보르 수케르는 튀랑의 실수를 틈타 골을 성공시켰다. 튀랑은 실수를 만회하려는 듯 홀로 공을 몰고 드리블하여 실점 1분만에 동점골을 만드는 괴력을 선보인다.
1:1, 팽팽한 상황에서 프랑스를 결승으로 이끈 것은 22분 후 또 한번의 튀랑의 슛 - 이 두 개의 골은 놀랍게도 튀랑의 A매치 통산 두 골이 되었다. 이 공로로 튀랑은 브론즈볼까지 수상한다.
월드컵 우승 후, 튀랑의 명성은 최고였고, 그는 세리에A의 파르마로 건너가 파트너 파비오 칸나바로와 함께 엄청난 활약을 한다.
그리고 열린 유로2000 - 튀랑은 그 명성 그대로 "철의 포백"을 형성했고, 절정에 이른 지단의 활약까지 힘입어 프랑스에게 월드컵에 이어 앙리 들로네까지 선물한다.
이후 2001-2002 시즌을 앞두고 유벤투스로 이적하며 활약하나, 유벤투스의 "칼치오폴리" 사건에 의해 세리에B로 강등당하자,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로 이적, 마지막 황혼을 불태운다.
2002 한일 월드컵 때, 전대회 우승팀 프랑스의 충격적인 조별 예선 탈락, 유로 2004에서의 부진으로 인해 흔들리는 프랑스. 이로 인해 프랑스의 주축 멤버 - 지단, 튀랑 등은 은퇴를 결심한다.
2006 독일월드컵 전, 조국의 위기를 보자 튀랑은 다시 복귀하여 에릭 아비달, 윌리엄 갈라스, 윌리 사뇰과 함께 "新 철의 포백"을 구성하여 프랑스를 결승까지 진출시킨다.(이 때 프랑스가 실점한 골은 단 3골 - 박지성, 비야, 마테라치의 골 뿐이다.)
그 후 유로 2008를 끝으로 그는 마침내 길었던 국가대표 유니폼을 조국에 반납했고, 2008년 8월 마침내 심장이상으로 은퇴를 결정한다.
통산 142시합 출장, 월드컵 우승 및 준우승, 유로 우승, 세리에A 우승 등 선수로서 최고의 영광을 누렸던 몇 안되는 최고의 수비수.
뛰어난 두뇌로 흑인 문제와 같은 사회적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보인 지성파 축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