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곳곳에 설치된 위성 안테나. 당국의 검열을 거치지 않고 해외 소식을 접할 수 있다. 최근 중국 정부는 해외 위성 방송 업체의 방송을 수신하는 것을 막기 위해, 위성업체에 압력을 가하고 있다.
[대기원] 지금 중국에서 천안문 광장에 누워 있는 마오쩌둥도 중국 언론을 총괄하는 중앙선전부도 생각지 못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중국 상공을 지나는 인공위성은 24시간 중국 정부의 실정과 인권탄압을 폭로하고 있고, 해저 광케이블을 통해 끊임없이 중국에서 접할 수 없는 인터넷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중국의 우체국, 세관, 전화, 휴대폰 등으로도 '반 중국 공산당‘ 정보가 흘러든다.
이런 ‘반공 매체’의 주인은 ‘미국 제국주의’도 아니고 ‘국민당 반동세력’도 아니다. 중국 및 해외의 일반 시민이 주도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은 국민당을 제치고 정권을 차지한 이후 줄곧 언론과 여론을 장악해 왔다. 하지만 다양한 형태의 매체가 생겨나면서 모든 정보를 통제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졌고, 여론 조작과 통제 사실이 알려지면서 심각한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다.
언론 통제는 공산당의 생존 조건
중국 공산당 정부는 수십 년의 짧은 통치 역사에서 ‘총칼’ 외에도 ‘붓’을 효과적으로 사용했다. 이 문무를 겸비한 통치는 중국 공산당을 오늘까지 지지한 주요한 버팀목이다. 중국 헌법에 “중국 공민은 언론, 출판, 집회, 결사, 행진, 시위의 자유, 과학 연구, 문학예술의 창작과 기타 문화 활동을 할 자유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의 모든 법률과 행정 법규와 규칙, 지방 정부의 조례까지 모두 헌법을 어기고 언론을 통제하고 있고, 자유를 무시하고 있다.
헌법과 하위법인 법률 사이에 심각한 모순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한 공산당 고위 관계자는 “여론 공작은 공산당의 생명선으로, 견고하게 선전도구를 장악하는 것은 혁명사업 성패의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9월 국영은행의 부정대출을 폭로하다 정간 처분을 받은 재경시보가 인터넷사이트에 게재한 정간처분 공고.
지금까지 드러난 바로는 공산주의의 특징은 공유가 아니라 관리에 가깝다. 구소련, 동유럽 공산국가, 쿠바, 북한의 정부가 언론을 통제하고 관리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들 국가는 항상 언론자유 평가에서 최하위를 다투고 있다.
흔히 언론을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에 이어 4번째 권력이라고 부른다. 원래 의미는 이 네가지 힘이 서로를 견제하면서 민주를 보장한다는 것이지만, 중국과 같이 이 네가지 권력이 하나로 귀속되는 나라에서는 애초부터 민주와 자유는 기대할 수 없는 법이다. 중국인들은 어릴 때부터 “공산당이 없으면 신중국도 없다”는 말을 귀가 따갑게 듣고 자란다. 2002년 통계에 따르면 중국에는 2137종의 신문, 기타 정기간행물 9029종, 라디오방송국 1300개, TV방송국 360개가 있다. 하지만 이 매체들이 내는 목소리는 사실상 크게 다르지 않다.
“10억인의 대뇌를 하나로”
문화대혁명의 광기가 중국 전역을 휩쓸던 70년대, “10억인의 대뇌를 하나같이”, “마오(마오쩌둥) 주석의 말을 듣고, 마오 주석의 지시에 따라 일을 한다”는 선전 문구가 가득한 속에서도 ‘미국의 소리’와 ‘BBC’를 몰래 듣는 중국인들이 있었다. 이들은 서서히 민주와 자유에 눈을 떴고 중국 민주의 아버지라 불리는 웨이징성 등이 탄생했다. 또 일부는 아무도 없는 새벽 담장에 ‘공산당을 타도하자’는 표어를 붙이는 등 분노와 희망을 표출하기도 했다.
당시는 공산당을 반대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시대였다. 단지 공산당을 의심하는 것만으로 극형에 처해졌다. 장즈신은 처형 전 공산당 타도 문구를 외칠 것을 우려한 당국에 의해 기도가 잘렸다. 리지우랜은 살아 있는 상태에서 신장을 적출당한 뒤 총살당했다. 단지 공산당의 의심하고 공산당의 의견과 다른 말을 했다는 이유다. 극심한 공포 속에서 중국인들은 공산당이 지정한 8개의 모범극과 소설을 보고, 마오쩌둥의 어록을 외우면서 자랐다.
‘천안문 민주화 운동’ 기념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는 ‘중국 민주의 아버지’ 웨이징성(魏京生). 그는 1978년 베이징 시내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자보 릴레인 ‘베이징의 봄’을 주도했다. 이후 체포돼 14년간 복역한 후 미국으로 건너갔다.
베이징의 봄에서 지하 간행물까지
문화 대혁명의 악몽이 끝난 직후인 1978년 11월 믿기지 않는 일이 베이징에서 발생했다. 베이징 시단(西單) 체육관을 비롯한 일대 담장 100여 미터에 중국 공산당을 성토하는 대자보가 나붙기 시작했다. 점점 대자보에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내용까지 등장하는 등 수위가 높아졌다. 하지만 1979년 12월 당국에 의해 페쇄됐다. 일년 남짓한 이 기간을 흔히 ‘베이징의 봄’이라고 하며, 당시 시단 담장에서 활약한 웨이징성, 쉬원리, 왕쥔타오, 후핑, 려우칭, 런완딩은 대부분 체포되거나 해외로 망명했다.
문화대혁명의 실패로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던 정부는 개혁개방의 길을 택한다. 이와 함께 잠시 언론 통제를 완화했고, 89년 천안문 사태 이전까지의 80년대는 중국 언론의 최초이자 마지막 ‘황금기’였다. 하지만 당시에도 공산당의 치명적인 치부를 드러낸 보도에 대해서는 엄격한 통제가 뒤따랐고, 이는 ‘지하 간행물’의 탄생을 야기했다.
뉴욕의 한 도서관에서 당시 중국의 지하간행물 리스트가 발견됐다. 리스트에는 《원명원의 술고래 시집》, 《팡페이 시선》의, 《타향 사람》, 《북문 잡지》, 《경향》, 《발견》 등이 기재되어 있었다.
천안문 사태 이후 찾아온 ‘겨울’
환각제를 먹은 인민해방군의 탱크와 총격에 수천 명이 사망한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잠시 제한된 자유를 누렸던 언론들은 한순간에 원래 위치로 복귀해야 했다. 한 학자는 당시의 언론 통제를 6가지로 분류해 설명했다.
1. 언론 매체에 대한 통제 관리를 법률, 법규 및 법제성 정부 문서의 형식으로 ‘제도화’ 했다.
2. 정부 신문출판서(국)와 중공 당위원회 선전부문이 통제를 공동으로 실시하고, 중앙선전부를 신문출판서보다 상위에 둔다.
3. 정치 문제를 비정치화하는 원칙을 확립했다. 모든 정치 사상 범죄자는 되도록 부패 등 경제 문제를 찾아내 처벌한다. 경제 범죄 증거를 찾아낼 수 없다면 ‘국가 안전을 해친 죄’, ‘국가기밀 누설 죄’, ‘정부 전복 음모 죄‘를 적용해서 처벌한다.
4. 뉴스 보도는 더 이상 과거와 같이 어느 한 사건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지 않고, ‘물 타기’를 통해 일부 사실이 섞인 거짓말로 대중을 속인다.
5. 국가안전국의 첩보 시스템을 통해 공개적으로 인터넷을 감독 관리하고, 수시로 국가안전에 해를 입히는 언론 행위를 한 사람을 체포한다.
6. 철저한 통제와 함께 ‘정치와 무관한 분야’를 개방한다. 예를 들어 성(性), 먹고 마시고 놀고 즐기기, 오락 등에 대해서는 서방 국가보다 더욱 개방한다. 중국인을 향락에 빠지게 해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게 한다.
베이징의 한 PC방. 인터넷 실명제 도입 이후 개인정보와 사용 내역 노출을 우려한 사용자들의 외면으로 PC방은 한산한 상태다.ⓒ AFP/Getty Images
인터넷 통제 시스템 ‘금둔공정’
신화넷에 따르면 2008년 6월 현재 중국 네티즌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2억 5300만 명으로 집계됐다. 이외에도 192만 개의 웹사이트가 있고, 84억의 웹페이지가 있다.
인터넷은 원래 각종 정보를 자유롭게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천국이지만 중국에서는 봉쇄의 지옥이 되어 버렸다. 중국 공산당 공안부는 ‘공안공작 정보통신화공정(公安工作資訊化工程)’ 이른바 ‘금둔공정(金盾工程)’을 실시하고 있다. 이 공정의 목표는 전 중국인의 인터넷 사용을 통제하고 감시하는 것이다. 공안부는 2003년 9월 64억 위안(약 1조 3천억 원)을 투입해 1기 공정을 시작했다. 13억 중국인 중 12억 5천만 명의 정보를 미국 시스코사가 만든 시스템에 입력했다. 현재 약 3만 명의 인터넷 경찰이 활동하고 있으며, 서방 기업들의 최신 기술을 속속 도입해 통제 수위를 높이고 있다.
최근 베이징의 모든 PC방에는 사용자의 얼굴을 촬영하고 신분증을 스캔하는 장비가 설치됐다. 사용자의 신상정보와 인터넷 사용내역을 실시간으로 감시하기 위해서다.
이외에 일반 네티즌 사이에 당국의 ‘프락치’를 심었다. 이른바 우마오당(五毛黨)으로 불리는 네티즌들은 중국 정부에 유리한 글을 올릴 때 마다 중국 돈 5마오(약 100원)를 받는다. 희망지성 보도에 따르면 홍콩대 ‘중국언론 연구프로젝트’ 반즈위안(班志遠) 연구원은 ‘원동경제평론(遠東經濟評論)’ 7월호에 기고한 글에서 “중국 정부가 지지하는 우마오당이 최소 28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며 “이들의 월수입은 2천(약 40만 원)에서 5천 위안(약 100만 원)”이라고 밝혔다. 28만 명이 한 달에 최소 2천 위안을 받는다면 그 금액은 매월 5억 6천만 위안(약 1140억 원)에 달한다.
중국 정부의 인터넷 통제 시스템을 돌파하는 대표적인 무료 프로그램인 동태망(動態網)의 실행화면.
‘금둔’을 깬 파룬궁 수련생
파룬궁 수련생이 주축이 된 해외 컴퓨터 전문가들은 금둔공정을 돌파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동태망, 자유문, 무계망, 화원망, 파이어피닉스 등 통제 돌파 프로그램이 속속 쏟아져 나왔다. 가장 인기있는 프로그램인 동태망의 사용방법을 살펴보면, 중국의 네티즌이 d_ip@earthlink.net로 아무런 제목과 내용을 입력하지 않은 빈 메일을 보내면 답장으로 동태망을 이용할 수 있는 보안 사이트 주소를 받는 방식이다. 상당수 중국 네티즌들은 이 프로그램을 이용해 해외 사이트의 정보를 자유롭게 접할 수 있다.
중공이 택한 교묘한 기만술
지난 9월 중국 당국은 국영은행의 부정대출을 폭로한 베이징의 재경시보(財經時報)를 정간 처분했다. 하지만 최근 이와 같은 정간이나 폐간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대신 정부에 불리한 기사를 작성한 기자나 편집장을 해임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이렇게 한명 한명씩 ‘반동분자’를 색출한 결과 공정한 보도를 했던 언론사는 이름만 그대로일 뿐 ‘영혼’이 사라지게 됐다.
지난 6월 20일,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인민일보’를 시찰한 자리에서 “가장 먼저 권위 있는 정보를 선포하고, 견고하게 뉴스 선전 작업의 주도권을 장악하라”고 강조했다. 이는 바꿔 말해 우선 여론을 장악하고 이후 여론 통제권을 장악하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강령에 따라 ‘우선 흐르게 하고, 이후에 차단’이라는 방식이 탄생했다. 쓰촨 대지진과 멜라민 분유 사태가 발생했을 때, 우선 일주일 간 모든 언론과 네티즌들이 자유롭게 보도와 의견을 내도록 한 뒤, 서서히 언론사를 통제하고 우마오당(五毛黨)을 조종해 당국이 원하는 정보를 유포시킨다. 그리고 제기된 문제점이나 진실을 서서히 하나씩 반론해 영향력을 제거한다.
또 다른 방식은 ‘작은 불로 큰 불 잡기’ 방식이다. 중국 정부에 불리한 중대한 사건이 터질 경우, 통제가 가능한 범위 안으로 보도하도록 해 국민들이 불만을 일부 분출하게 한다. 이와 함께 사태의 내막과 진실을 서서히 덮어 어느새 국민들이 잊게 만든다.
지난 9월 발사된 선저우7호의 우주유영 생중계 녹화. 중계 영상 곳곳에 물방울이 발견되는 등 수중촬영된 조작 영상임이 드러났다. (관련 기사-대기원시보 ‘선저우’ 검색)
대표적인 것이 멜라민 분유 사태다. 600만 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피해자 규모를 5만 명이라고 발표하고, 사망자수는 4명이라고 축소 보도했다. 국민들은 멜라민 분유에 대해 일제히 분노했지만, 분노의 강도는 체제를 위협할 정도는 아니었고, 분노의 화살도 어느새 당국과 대기업에서 낙농업자와 멜라민 공급책으로 돌리게 했다.
하지만 최근 중국 네티즌들은 정부의 기만 정책을 쉽게 눈치채고 있다. 멜라민 분유 사태를 축소하기 위해 다급하게 추진했던 유인 우주선 선저우 7호 발사가 조작으로 드러난 것이 일례다. 후진타오 주석까지 등장한 ‘선저우 7호 우주유영’ 생중계는 미항공우주국 전문가 등 각계 전문가와 네티즌들의 분석 결과 수중에서 촬영된 조작영상으로 밝혀졌고, 이후 네티즌들은 언론 보도의 진실을 가릴 수 있는 새로운 눈을 얻게 됐다.
(다음 편에 ‘중국 공산당 당국은 미국에 본사를 둔 중국어 위성방송 NTD TV를 왜 두려워 할까’를 연재합니다.)
중국 언론 통제 60년 보고서
중국 언론 통제 60년 보고서
문화대혁명 이후부터 2008년까지
[대기원] 지금 중국에서 천안문 광장에 누워 있는 마오쩌둥도 중국 언론을 총괄하는 중앙선전부도 생각지 못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중국 상공을 지나는 인공위성은 24시간 중국 정부의 실정과 인권탄압을 폭로하고 있고, 해저 광케이블을 통해 끊임없이 중국에서 접할 수 없는 인터넷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중국의 우체국, 세관, 전화, 휴대폰 등으로도 '반 중국 공산당‘ 정보가 흘러든다.
이런 ‘반공 매체’의 주인은 ‘미국 제국주의’도 아니고 ‘국민당 반동세력’도 아니다. 중국 및 해외의 일반 시민이 주도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은 국민당을 제치고 정권을 차지한 이후 줄곧 언론과 여론을 장악해 왔다. 하지만 다양한 형태의 매체가 생겨나면서 모든 정보를 통제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졌고, 여론 조작과 통제 사실이 알려지면서 심각한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다.
언론 통제는 공산당의 생존 조건
중국 공산당 정부는 수십 년의 짧은 통치 역사에서 ‘총칼’ 외에도 ‘붓’을 효과적으로 사용했다. 이 문무를 겸비한 통치는 중국 공산당을 오늘까지 지지한 주요한 버팀목이다. 중국 헌법에 “중국 공민은 언론, 출판, 집회, 결사, 행진, 시위의 자유, 과학 연구, 문학예술의 창작과 기타 문화 활동을 할 자유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의 모든 법률과 행정 법규와 규칙, 지방 정부의 조례까지 모두 헌법을 어기고 언론을 통제하고 있고, 자유를 무시하고 있다.
헌법과 하위법인 법률 사이에 심각한 모순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한 공산당 고위 관계자는 “여론 공작은 공산당의 생명선으로, 견고하게 선전도구를 장악하는 것은 혁명사업 성패의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지금까지 드러난 바로는 공산주의의 특징은 공유가 아니라 관리에 가깝다. 구소련, 동유럽 공산국가, 쿠바, 북한의 정부가 언론을 통제하고 관리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들 국가는 항상 언론자유 평가에서 최하위를 다투고 있다.
흔히 언론을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에 이어 4번째 권력이라고 부른다. 원래 의미는 이 네가지 힘이 서로를 견제하면서 민주를 보장한다는 것이지만, 중국과 같이 이 네가지 권력이 하나로 귀속되는 나라에서는 애초부터 민주와 자유는 기대할 수 없는 법이다. 중국인들은 어릴 때부터 “공산당이 없으면 신중국도 없다”는 말을 귀가 따갑게 듣고 자란다. 2002년 통계에 따르면 중국에는 2137종의 신문, 기타 정기간행물 9029종, 라디오방송국 1300개, TV방송국 360개가 있다. 하지만 이 매체들이 내는 목소리는 사실상 크게 다르지 않다.
“10억인의 대뇌를 하나로”
문화대혁명의 광기가 중국 전역을 휩쓸던 70년대, “10억인의 대뇌를 하나같이”, “마오(마오쩌둥) 주석의 말을 듣고, 마오 주석의 지시에 따라 일을 한다”는 선전 문구가 가득한 속에서도 ‘미국의 소리’와 ‘BBC’를 몰래 듣는 중국인들이 있었다. 이들은 서서히 민주와 자유에 눈을 떴고 중국 민주의 아버지라 불리는 웨이징성 등이 탄생했다. 또 일부는 아무도 없는 새벽 담장에 ‘공산당을 타도하자’는 표어를 붙이는 등 분노와 희망을 표출하기도 했다.
당시는 공산당을 반대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시대였다. 단지 공산당을 의심하는 것만으로 극형에 처해졌다. 장즈신은 처형 전 공산당 타도 문구를 외칠 것을 우려한 당국에 의해 기도가 잘렸다. 리지우랜은 살아 있는 상태에서 신장을 적출당한 뒤 총살당했다. 단지 공산당의 의심하고 공산당의 의견과 다른 말을 했다는 이유다. 극심한 공포 속에서 중국인들은 공산당이 지정한 8개의 모범극과 소설을 보고, 마오쩌둥의 어록을 외우면서 자랐다.
베이징의 봄에서 지하 간행물까지
문화 대혁명의 악몽이 끝난 직후인 1978년 11월 믿기지 않는 일이 베이징에서 발생했다. 베이징 시단(西單) 체육관을 비롯한 일대 담장 100여 미터에 중국 공산당을 성토하는 대자보가 나붙기 시작했다. 점점 대자보에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내용까지 등장하는 등 수위가 높아졌다. 하지만 1979년 12월 당국에 의해 페쇄됐다. 일년 남짓한 이 기간을 흔히 ‘베이징의 봄’이라고 하며, 당시 시단 담장에서 활약한 웨이징성, 쉬원리, 왕쥔타오, 후핑, 려우칭, 런완딩은 대부분 체포되거나 해외로 망명했다.
문화대혁명의 실패로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던 정부는 개혁개방의 길을 택한다. 이와 함께 잠시 언론 통제를 완화했고, 89년 천안문 사태 이전까지의 80년대는 중국 언론의 최초이자 마지막 ‘황금기’였다. 하지만 당시에도 공산당의 치명적인 치부를 드러낸 보도에 대해서는 엄격한 통제가 뒤따랐고, 이는 ‘지하 간행물’의 탄생을 야기했다.
뉴욕의 한 도서관에서 당시 중국의 지하간행물 리스트가 발견됐다. 리스트에는 《원명원의 술고래 시집》, 《팡페이 시선》의, 《타향 사람》, 《북문 잡지》, 《경향》, 《발견》 등이 기재되어 있었다.
천안문 사태 이후 찾아온 ‘겨울’
환각제를 먹은 인민해방군의 탱크와 총격에 수천 명이 사망한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잠시 제한된 자유를 누렸던 언론들은 한순간에 원래 위치로 복귀해야 했다. 한 학자는 당시의 언론 통제를 6가지로 분류해 설명했다.
1. 언론 매체에 대한 통제 관리를 법률, 법규 및 법제성 정부 문서의 형식으로 ‘제도화’ 했다.
2. 정부 신문출판서(국)와 중공 당위원회 선전부문이 통제를 공동으로 실시하고, 중앙선전부를 신문출판서보다 상위에 둔다.
3. 정치 문제를 비정치화하는 원칙을 확립했다. 모든 정치 사상 범죄자는 되도록 부패 등 경제 문제를 찾아내 처벌한다. 경제 범죄 증거를 찾아낼 수 없다면 ‘국가 안전을 해친 죄’, ‘국가기밀 누설 죄’, ‘정부 전복 음모 죄‘를 적용해서 처벌한다.
4. 뉴스 보도는 더 이상 과거와 같이 어느 한 사건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지 않고, ‘물 타기’를 통해 일부 사실이 섞인 거짓말로 대중을 속인다.
5. 국가안전국의 첩보 시스템을 통해 공개적으로 인터넷을 감독 관리하고, 수시로 국가안전에 해를 입히는 언론 행위를 한 사람을 체포한다.
6. 철저한 통제와 함께 ‘정치와 무관한 분야’를 개방한다. 예를 들어 성(性), 먹고 마시고 놀고 즐기기, 오락 등에 대해서는 서방 국가보다 더욱 개방한다. 중국인을 향락에 빠지게 해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게 한다.
인터넷 통제 시스템 ‘금둔공정’
신화넷에 따르면 2008년 6월 현재 중국 네티즌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2억 5300만 명으로 집계됐다. 이외에도 192만 개의 웹사이트가 있고, 84억의 웹페이지가 있다.
인터넷은 원래 각종 정보를 자유롭게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천국이지만 중국에서는 봉쇄의 지옥이 되어 버렸다. 중국 공산당 공안부는 ‘공안공작 정보통신화공정(公安工作資訊化工程)’ 이른바 ‘금둔공정(金盾工程)’을 실시하고 있다. 이 공정의 목표는 전 중국인의 인터넷 사용을 통제하고 감시하는 것이다. 공안부는 2003년 9월 64억 위안(약 1조 3천억 원)을 투입해 1기 공정을 시작했다. 13억 중국인 중 12억 5천만 명의 정보를 미국 시스코사가 만든 시스템에 입력했다. 현재 약 3만 명의 인터넷 경찰이 활동하고 있으며, 서방 기업들의 최신 기술을 속속 도입해 통제 수위를 높이고 있다.
최근 베이징의 모든 PC방에는 사용자의 얼굴을 촬영하고 신분증을 스캔하는 장비가 설치됐다. 사용자의 신상정보와 인터넷 사용내역을 실시간으로 감시하기 위해서다.
이외에 일반 네티즌 사이에 당국의 ‘프락치’를 심었다. 이른바 우마오당(五毛黨)으로 불리는 네티즌들은 중국 정부에 유리한 글을 올릴 때 마다 중국 돈 5마오(약 100원)를 받는다. 희망지성 보도에 따르면 홍콩대 ‘중국언론 연구프로젝트’ 반즈위안(班志遠) 연구원은 ‘원동경제평론(遠東經濟評論)’ 7월호에 기고한 글에서 “중국 정부가 지지하는 우마오당이 최소 28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며 “이들의 월수입은 2천(약 40만 원)에서 5천 위안(약 100만 원)”이라고 밝혔다. 28만 명이 한 달에 최소 2천 위안을 받는다면 그 금액은 매월 5억 6천만 위안(약 1140억 원)에 달한다.
‘금둔’을 깬 파룬궁 수련생
파룬궁 수련생이 주축이 된 해외 컴퓨터 전문가들은 금둔공정을 돌파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동태망, 자유문, 무계망, 화원망, 파이어피닉스 등 통제 돌파 프로그램이 속속 쏟아져 나왔다. 가장 인기있는 프로그램인 동태망의 사용방법을 살펴보면, 중국의 네티즌이 d_ip@earthlink.net로 아무런 제목과 내용을 입력하지 않은 빈 메일을 보내면 답장으로 동태망을 이용할 수 있는 보안 사이트 주소를 받는 방식이다. 상당수 중국 네티즌들은 이 프로그램을 이용해 해외 사이트의 정보를 자유롭게 접할 수 있다.
중공이 택한 교묘한 기만술
지난 9월 중국 당국은 국영은행의 부정대출을 폭로한 베이징의 재경시보(財經時報)를 정간 처분했다. 하지만 최근 이와 같은 정간이나 폐간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대신 정부에 불리한 기사를 작성한 기자나 편집장을 해임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이렇게 한명 한명씩 ‘반동분자’를 색출한 결과 공정한 보도를 했던 언론사는 이름만 그대로일 뿐 ‘영혼’이 사라지게 됐다.
지난 6월 20일,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인민일보’를 시찰한 자리에서 “가장 먼저 권위 있는 정보를 선포하고, 견고하게 뉴스 선전 작업의 주도권을 장악하라”고 강조했다. 이는 바꿔 말해 우선 여론을 장악하고 이후 여론 통제권을 장악하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강령에 따라 ‘우선 흐르게 하고, 이후에 차단’이라는 방식이 탄생했다. 쓰촨 대지진과 멜라민 분유 사태가 발생했을 때, 우선 일주일 간 모든 언론과 네티즌들이 자유롭게 보도와 의견을 내도록 한 뒤, 서서히 언론사를 통제하고 우마오당(五毛黨)을 조종해 당국이 원하는 정보를 유포시킨다. 그리고 제기된 문제점이나 진실을 서서히 하나씩 반론해 영향력을 제거한다.
또 다른 방식은 ‘작은 불로 큰 불 잡기’ 방식이다. 중국 정부에 불리한 중대한 사건이 터질 경우, 통제가 가능한 범위 안으로 보도하도록 해 국민들이 불만을 일부 분출하게 한다. 이와 함께 사태의 내막과 진실을 서서히 덮어 어느새 국민들이 잊게 만든다.
대표적인 것이 멜라민 분유 사태다. 600만 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피해자 규모를 5만 명이라고 발표하고, 사망자수는 4명이라고 축소 보도했다. 국민들은 멜라민 분유에 대해 일제히 분노했지만, 분노의 강도는 체제를 위협할 정도는 아니었고, 분노의 화살도 어느새 당국과 대기업에서 낙농업자와 멜라민 공급책으로 돌리게 했다.
http://www.epochtimes.co.kr/news/article.html?no=12140하지만 최근 중국 네티즌들은 정부의 기만 정책을 쉽게 눈치채고 있다. 멜라민 분유 사태를 축소하기 위해 다급하게 추진했던 유인 우주선 선저우 7호 발사가 조작으로 드러난 것이 일례다.
후진타오 주석까지 등장한 ‘선저우 7호 우주유영’ 생중계는 미항공우주국 전문가 등 각계 전문가와 네티즌들의 분석 결과 수중에서 촬영된 조작영상으로 밝혀졌고, 이후 네티즌들은 언론 보도의 진실을 가릴 수 있는 새로운 눈을 얻게 됐다.
(다음 편에 ‘중국 공산당 당국은 미국에 본사를 둔 중국어 위성방송 NTD TV를 왜 두려워 할까’를 연재합니다.)
대기원 자매주간지 ‘신기원’ 기사
정리 김태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