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 지역의 문화예술 유적지(1)

민상기2008.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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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정부 지역의 문화예술 유적지를 자료로 조사하여

 

제출해야 하는 일이 있어서 의정부에 20여년을 살면서도

 

처음으로 이곳의 유적지를 탐방하게 되었습니다.

 

이곳에 많은 유적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으로 깊은 역사적 의미와

 

중심 인물들의 삶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자료는 의정부시청 홈페이지 자료에서 발췌하였습니다>

 

 

 

 

서계 박세당 고택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93호(2000.4.17)
장암동 197번지

이 가옥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인 서계(西溪) 박세당(朴世堂:1629∼1703) 선생이 관직에서 물러난 후 기거하며

후학을 양성하고 집필을 하였던 곳이다. 서계(西溪)선생은 1629년(인조 7년)에 이조 참판을 역임한

박정(朴炡)과 양주 윤씨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1668년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를 다녀온 후 당쟁에 혐오를 느껴 40세에 관료생활을 포기하고

지금의 의정부시 장암동(당시 양주 석천동)에 칩거하면서 본인이 직접 농사를 지으며 학문연구와 저술,

그리고 제자 양성에 매진하게 된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농사에 관하여 쓴 「색경(穡經)」이 있는데

이 책은 선생 본인이 직접 농사를 지으면서 체험한 것을 글로서 남긴 책으로서 귀중한 사료로 인정된다.

또한 고전연구에 관한 저술로서 「사변록(思辯錄)」등이 있다. .

 

 

하석 박정 영정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77호(2001.9.17)
장암동 197번지

조선 중기의 문신인 하석(霞石) 박정(朴 炡 : 1596(선조29)∼1632(인조10))의 초상화이다.

.

노강서원

 

경기도 기념물 제41호(1977.10.13)
장암동 산 146-1번지

경기도 기념물 제41호 이 서원은 조선 숙종 15년(1689) 인현왕후 폐출을 죽음으로써 간언하였던

정재 박태보(朴泰輔, 1654-1689)의 뜻을 기리고, 지방교육의 장으로 삼기 위하여

숙종 21년에 서울 노량진에 건립한 서원이다.
본래는 풍계사였으나 숙종 23년에 조윤벽 등의 간청으로 "노강"이라고 사액받았다.

 

 

 

영조 30년(1754)에 다시 지었으며, 대원군의 서원 철폐당시 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다.

박태보는 서계 박세당의 둘째아들로 숙중 3년(1677) 문과에 장원급제한 후 관직에 나아간 뒤

숙종 15년 인현왕후 민씨의 폐위를 반대하다가 진도로 유배 가던 중,

노량진에서 3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숙종 20년에 모든 죄를 사면받고 그의 충절을 기려 이조판서로 벼슬을 올려받게 되었다.

지금 건물은 1969년에 의정부시 장암동으로 옮기면서 매월당 김시습의 영정을 봉안한 청절사의 터에

다시 지은 것으로 맞배지붕의 사당과 동재, 서재가 있다.

 

 

 수락산 석림사

 

경기도 전통사찰 제202호(2001.11. 2)
장암동 산 147번지

 

석림사는 장암동 수락산내에 위치하며 장암역에서 등산로를 따라 1㎞쯤 오르다 보면 이 절에 이른다.

석림사는 서기 1676년 조선현종(朝鮮顯宗) 12년 신해년에 석현 화상(釋賢和尙)과

그의 제자 치흠(致欽)이 석천동(현재 장암동)에 석림암(石林庵)을 창립하였고,

당시 이 암명은 통진현감(通津縣監)을 지낸바 있는 서계 박세당 선생(西溪朴世堂先生)께서 지었으며

이는 현존하는 문집인「서계집(西溪集)」에 기록되어 있다.

 

신숙주 묘역

경기도 기념물 제88호(1985.9.20)
고산동 산 53-7번지

경기도 기념물 제88호(1985.9.20) 의정부시 고산동 구성말에는 신숙주의 묘가 있다.

무송군부인 윤씨의 묘와 나란히 쌍분을 이루고 있으며,

묘전에는 묘비석, 상석, 문인상, 신도비, 한글창제사적비등 각종 석물들이 있다.

 

 

한글 창제 사적비의 모습

 

묘역에서 내려다 본 모습.

 

기념비탑.

 

 석림사

 

경기도 전통사찰 제76호 ('88.10.25)
고산동 647번지

 

최초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조선 세조때 어느 농부가 밭을 갈다가 현존하는 미륵불상을 얻었다고 한다.

 

이 사실을 알게된 세조는 국상 신숙주에게 절을 짓게 하였고,

 

신숙주가 다시 혜암대사를 후원하여 이 절을 짓고 미륵암이라 하였다.

 

이로 유추하면 세조의 재위년간(1455~1468)중 1460년대를 이절의 초창연대로 보고 있다.

 

의정부 교도소 앞 정자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석림사 올라 가는 길.

 

정문부 장군 묘

묘역 동남쪽에 신도비(神道碑: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근처 길가에 세운 비)가 있는데

 현종 6년(1665)에 세웠던 것을 철종 12년(1861)에 추가로 기록하여 다시 세운 것이다.

 

묘역을 올라가는 계단길.

 

 

경기도 기념물 제37호

 

이 곳은 조선중기의 문신으로 임진왜란 때 함경도 지역에서 활약한 의병장 정문부(鄭文孚, 1565-1624)의 묘이다.

 

정문부는 해주 정씨로 자(字)는 자허(子虛), 호(號)는 농포(農圃), 시호는 충의(忠毅)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선조21년 과거에 급제하였고, 얼마 후 함경도 북평사(北評事)로 있을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장으로서 명천·길주 등에서 왜군과 싸워 승리하여 관북지방을 완전히 수복하였다.

 

이때의 공으로 길주목사가 되었고, 광해군 2년(1610)에 사은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인조 때 이괄의 난에 연루되어 고문을 받다가 세상을 떠났다.

 

부인 고령 신씨가 함께 묻혀 있는 합장묘이며, 봉분 앞에 묘비·상석·향로석이 있고

 

그 앞 좌우로 1쌍의 문인석이 서 있다.

 

 

송산사지

송산사지 들어가는 입구

 

 

송산사지

경기도 기념물 제42호(1977.10.13)
민락동 285,286번지

경기도 기념물 제42호 송산사는 조선의 개국에 참여하지 않고 고려의 신하로 절개를 지키며 은둔하였던

 

조견, 원선, 이중인, 김주, 김양남, 유천 등 여섯 사람의 위패를 모시고

 

그 뜻을 기리기 위하여 제사를 지내던 사당이다.

 

 

 

이 마을은 본래 조견, 정구, 원선 등 세 사람이 먼저 들어온 마을이라하여 삼귀(三歸)마을이라 했다.

정조 22년(1798) 삼귀서사를 짓고 조견·원선의 위패만 모셨다.

 

순조 4년(1804) 지금의 이름으로 고쳐 불렀고, 순조 11년 나머지 네 사람의 위패를 추가로 모셨다.

 

고종 때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건물이 전부 헐렸다가 그 이후 옛 터에 위패만을 모시고 삼귀단이라 불렀다.

 

1964년 후손들이 위패석, 제단석, 병풍석 등을 마련하여 여섯 충신들을 모시고 있다.

 

송산사지는 전형적인 조선후기의 소규모 사당 터이나 유례를 찾기 힘들만큼 특이한 북향으로 배치를 한 유적이다.

 

의정부의 송산동은 이곳에서 유래되었다.

 

 

의정부2동 성당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99호(2001.1.22)
의정부동 429-6번지

 

이 성당은 1953년 이계광(요한) 신부가 당시 의정부에 주둔하고 있던 미1군단의 군종 신부인

로제스키 신부의 협조를 받아 건립한 건물이다.

당시 미1군단 카톨릭 신자의 헌금으로 회천면 덕정리 돌산에서 채석한 돌로

의정부지역에서 활동하던 석공들에 의하여 1953년 8월 29일 완공하였다.

의정부2동 성당은 6.25전쟁을 전후한 시기의 성당건축 변화와 시대적 상황을 잘 나타내고 있으며,

평면 및 구조, 의장등에서 건축사적 가치가 높고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