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_ 다나베 세이코

김선미2008.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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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다리다."
"우와! 바다다."
조제는 너무 좋아서 숨을 헐떡이며 외친다. 조제는 금방 호흡이 가빠진다. 너무 웃거나 센 맞바람을 받으면 호흡 곤란에 빠지기 십상이다. 호흡할 공기를 빼앗겨버리는 것 같다. 아마도 하반신 마비와 관계 있는 것 같지만, 정확한 원인은 모른다. 어릴 적 '뇌성마비' 진단을 받았지만, 뇌성마비 특유의 증상이 보이지 않는다고 그것을 부정하는 의사도 있어서, 결국 원인도 모른 채 조제는 '뇌성마비'환자가 되고 말았다. 벌써 스물다섯이나 되었다.
조제는 맞바람을 맞아 숨이 막히는 통에, 자신은 큰 소리를 냈다고 생각하지만, 소리가 바람에 묻혀 잘 들리지 않는다.
"조제, 창문 닫아! 또 숨이 막히잖아."
츠네오가 그렇게 말하자, 조제는 서둘러 버튼을 눌러 창문을 올린다. 이전에 빌린 차는 창문을 닫으려면 핸들을 돌려야 했다. 불편한 자세가 조제의 몸에는 부담을 줄 수도 있어서, 이번에는 버튼 하나로 창문을 열고 닫을 수 있는 차로 빌렸다. 조제는 버튼만 누르면 창문이 열렸다 닫혔다 하는 게 재미있다면서, 꼭 두세 번은 반복한다.
"그걸로 장난치면 안 돼, 바보!"
츠네오가 들썽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 이런 경험은 처음이야......"
조제가 만족스럽게 말하자, 츠네오는,
"더 편리한 차도 있대."
"아니, 이 여행을 두고 하는 말이야. 이렇게 멋진 경치, 정말 처음이야."
"나도 여기는 처음이야."
"자기가 처음인 거하고, 내가 처음인 거하고는 질이 달라. 내가 처음이라는 건 내용이 더 알차다구. 나, 바다, 이걸로 두번째야."
"까불지마. 신혼여행은 처음이잖아, 둘 다."
"흐응."
"조제, 누구랑 여행해본 적 있어?"
"상상에 맡길게. 난 인기가 있으니까. 자기 같은 관리인하고는 달라."
"쳇."
조제가 츠네오를 '관리인'이라 부르는 건 특별히 기분이 좋을 때뿐이다. 언젠가 외출하기 전에 츠네오가,
"잠깐 기다려" 하고 화장실에 간 적이 있었다. 조제는 기다리기가 지겨운지 문 바깥에서,
"하지 마. 오줌 누지 마! 건방져! 빨리 나와."
츠네오는 볼일을 보면서,
"무슨 말버릇이 그래. 남편에게 지금 뭐라는 거야."
"남편하고 달라!"
"그럼 뭔데?"
"관리인이잖아, 자기!"
조제는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관리인이라고 불렀다가 그게 마음에 들었는지, 그후로는 츠네오를 관리인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츠네오도 때에 따라서는,
"관리인의 견해로는" 하는 식으로 말하기도 한다. 츠네오는 무슨 일에든 금방 익숙해지는 순응적인 남자로, 아내의 이름도 어느새 그녀가 원하는 대로 조제라고 불러주었다.
언젠가, 갑자기 조제가,
"나 말이야, 지금부터 내 이름, 조제로 할래."
"왜 네가 조제야?"
츠네오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유는 없어. 그냥 조제가 내게 꼭 어울리니까. 구미코라는 내 이름, 이제부터 안 쓸래."
"그렇게 아무렇게나 이름을 바꾸면 안 돼. 시청에서 허락해주지 않을걸."
"시청 따위가 아무렴 어때. 내가 그냥 나를 그렇게 생각하면 되는 거야. 자기, 앞으로 조제라고 안 부르면, 대답하지 않을 거야."
츠네오는 슬그머니 그 이름을 지은 연유를 물어보았다. 소설을 좋아하는 조제는 시청에서 운영하는 순회부인문고에서 소설책을 자주 빌려 읽는데(장애인은 무료), 프랑수아즈 사강의 책을 읽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추리소설인줄 알고 빌렸는데, 읽어보니 너무 재미있어서 몇 권이니 빌려 보게 되었다.
그 프랑수아즈라는 여류작가는 소설 속 여주인공의 이름을 조제라고 하는 경우가 많았다. 조제는 이 작가의 소설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야마무라 구미코라는 이름보다, 야마무라 조제가 훨씬 더 멋있어 보였다.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아서, 아니, 분명히 좋은 일이 있었는데, 조제라는 이름이 그런 행운을 가져다 준 거라고 생각했다. 좋은 일이란, 그녀 앞에 츠네오가 나타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츠네오는, 조제라니 참 이상한 이름이야, 라고 말했지만, (소설도 별로 읽지 않고, 그 이름을 혀를 굴려 발음해봐도 별다른 감흥이 일어나지 않는다) 어느새 그 이름에 감화되어 "어이, 조제" 하고 부르게 되었다.
조제는 텔레비전에서 본 가수의 몸짓이나 표정에 영향을 받는 버릇이 있다. 그러나 이름까지 다른 데서 영향을 받기는 처음이다. 조제는 '나'라고 할 때, 아이처럼 콧소리를 낸다. 아버지가 재혼한 여자가 데리고 온 애가 세 살 적에 그런 식으로 발음을 했다. 조제는 그 코맹맹이 같은 발음 때문에 아버지와 여자가 그 아이를 귀여워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열네 살이던 조제도 그때부터 '나'라고 말할 때 콧소리를 섞어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휠체어를 타는 몸으로 생리가 시작되어 몸을 제대로 주체하기 힘들어진 조제를, 여자는 귀찮다고 시설에 넣고 말았다. 처음에는 아버지가 찾아오기도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얼굴도 내보이지 않게 되었다. 결국 조제에게 남은 것은, 콧소리가 섞인 이상한 '나'라는 발음뿐이었다.
어머니는 조제가 아기 적에 집을 나가버렸기 때문에 얼굴도 기억하지 못한다. 조제는 열일곱 살 때 친할머니에게 보내져 교외에 있는 집에서 할머니와 둘이 살았다. 할머니는 조제를 귀여워해주었지만, 휠체어 탄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걸 싫어해서 밤에만 외출을 허락했다.
뒷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가긴 하지만, 힘이 달리는 할머니는 휠체어를 잘 밀 수 없었다.
그래도 조제는 봄이나 여름날 밤에는 바깥으로 나가고 싶어 견딜 수 없었다.
어느 날 밤, 할머니와 같이 나갔다가 아직 문이 열린 담뱃가게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잠깐 기다려" 하고 할머니는 휠체어를 멈추고 그 가게에 뭔가를 사러 갔다. 거리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조금 경사가 진 위치였다. 한쪽 편으로 길게 담이 둘러쳐진 집 옆이었는데, 나무들 때문에 어두웠다.
문득, 조제는 인기척을 느꼈고, 다음 순간, 휠체어는 빠르게 굴러갔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인기척'은 악의에 찬 인간에 대한 느낌이었다. 나중에 츠네오는, 술 취한 사람이 친 장난일 거라고 말했지만, 조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집이나 시설에서나, 조제는 악의에 찬 인간에 대해 민감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지나가던 사람이 갑자기 조제가 탄 휠체어를 힘껏 비탈길 쪽으로 밀어버리고는 도망쳤다. 휠체어는 거침없이 미끄러져 내려갔다. 할머니가 비명을 지르며 휠체어 뒤를 쫓았고, 조제는 너무 놀라서 거의 정신을 잃었다. 다만, 누군지 모를 남자가 흉포한 충동에 사로잡혀 휠체어를 밀었고, 자신에 대한 살의를 느낀 조제는 그저 비명을 질렀던 것을 기억할 따름이다. 비탈길 아래서 올라오던 사람 그림자 하나가 할머니의 비명을 듣고 깜짝 놀라 쏜살처럼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오는 휠체어를 발견하고 붙들었다. 마침 그 부근에서 경사가 완만해졌다. 그 사람은 휠체어를 온몸으로 받으면서 충격으로 넘어졌고, 덕분에 휠체어는 넘어지지 않고 멈춰 섰다.
"괜찮아요?"
남자가 벌떡 일어서며 물었다. 조제는 입을 멍하니 벌린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조제는 흥분하면 호흡이 가빠져서 숨을 고르기에도 정신이 없어진다. 죽은 사람처럼 새파랗게 질려 축 늘어져 있는 걸 본 남자는 당황하여 뭐라고 큰 소리로 말을 걸었는데, 조제에게는 시끄러운 잡음처럼 들렸을 뿐이다. 할머니가 달려오고, 할머니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조제는 겨우 숨을 고르고 제정신을 차렸다.
"정말 나쁜 놈이네."
남자는 격분하다가, 이 부근에 있으면 또 위험할지 모르니 집까지 바래다주겠다고 하면서 휠체어를 밀기 시작했다. 그 사람이 바로 츠네오다. 근처 연립주택의 단칸방에서 자취생활을 하는 대학생이었다.
그후로 그는 가끔씩 시간이 날 때 찾아와서 휠체어를 밀어주었다. 조제는 육체가 제대로 발육되지 않은 탓에 몸집이 작은데, 츠네오는 그녀를 어린 소녀인 줄 알았다고 한다.
"구미짱은 어떤 건 아주 잘 알면서, 또 어떤 건 하나도 몰라. 그게 참 이상해."
아이를 다루듯이 그런 말을 하다가, 츠네오는 조제가 자신보다 두 살이나 위한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어떤 건 하나도 모른다는 말은 맞다. 조제는 집과 시설 사이를 왕복하는 것 말고는 세상을 모른다. 장애인 운동 단체나 집회에도 나가지 않아 사람들과의 교류도 별로 없다. 시설에 찾아오는 자원봉사 청년이나 아가씨나 중년 부인들에 대해서도 조제는 낯을 가렸고, 또한 그녀 자신이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로 존재감이 엷어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 거의 머물지 못한다.
아주 잘 아는 분야는, 활자나 텔레비전을 통해 얻은 지식이다.
"난 말이야, 비단잉어가 몇 십 마리나 노니는 연못이 있고, 잔디밭에 그네가 있는 정원에서 놀았어. 옛날에 우리집은 엄청 컸어."
조제는 츠네오가에게 그런 자랑을 하지만, 대개 책이나 텔레비전에서 본 세계였다. 몸 때문에 학교에 다닌 적은 없지만 아버지에게서 기초적인 글과 한자를 배우고, 나중에 책을 통해 어려운 한자를, 영어 동화책으로 간단한 영어를 익혔다.
아버지에게 장기를 배운 조제는 아버지와 자주 장기를 뒀다. 아버지가 회사에 가 있을 동안, 라디오로 야구 중계를 듣곤 하다가, 진짜 야구 시합을 보고 싶다고 떼를 써서 아버지 등에 업혀 야구장을 찾기도 했다. 갑자원 구장에서 나중에 유명한 프로 선수가 된 무라야마 투수를 보았다. 좋아하는 요시다 유격수를 본 것도 그때였다. 조제는 나중에 텔레비전으로 본 시합이나 라디오에서 들은 시합들을, 아버지와 한 번 보았던 경기와 마구 뒤섞어서 기억의 선반에 진열시켜두었다.
"후반에 비가 내렸어. 그래서 아버지가 나를 업은 채, 재킷을 벗어서 나를 덮어주었어."
조제는 츠네오에게 그런 추억을 이야기하는데, 실제로는 시설의 로비에서 텔레비전으로 시합을 보았고, 화면에 비친 관중들이 소나기가 오자 머리 위에 신문지를 올려놓거나, 상의를 벗어서 뒤집어쓰기도 하는 광경을 보았을 따름이다. 그 인상이 너무 강렬해서, 몇 년이 지난 후, 기억 속에서 아버지와 보았던 시합과 마구 섞어버린 것이다.
"우리 아빠는 말이야. 정말 자상해. 내가 하는 말은 뭐든 다 들어줬으니까" 하고 조제는 거만을 떨지만,
"그렇게 좋은 아버지가 왜 구미짱을 시설에 넣었어?" 하고 농담으로 츠네오가 물으면,
"시끄러. 이 멍청이! 빨리 죽어버려!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조제는 그런 말을 들으면, 호흡 곤란이 일어날 정도로 화를 내기 때문에 츠네오는 입을 다물어버린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츠네오는 뭔가를 깨달았다. 조제가 하는 말은 거짓이 아니라 하나의 바람이며 꿈이라는 것을. 그것은 현실과는 다른 차원으로 엄연히 조제의 가슴속에 존재하는 것임을. 할머니와 조제는 생활보호 대상자로 살아가지만, 가난한 대학생인 츠네오에게 맛있는 저녁을 대접해주기도 한다.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츠네오는 늘 인스턴트 하면으로 끼니를 때웠는데, 그런 츠네오에게 할머니가 손수 지어주신 저녁을 너무 맛있었다. 곤약과 시금치 무침에다 된장국, 아니면 오징어 다리에 무 조림 같은 노인 반찬뿐이지만, 츠네오에게는 얼마나 고맙고 맛있는 식사였는지 모른다. 츠네오의 발길이 외롭게 살아가는 조제네 집으로 향하는 날이 많아졌다.
"이게 무슨 뜻이야?"
조제는 책을 읽다가 모르는 게 나오면 츠네오에게 묻는다. 걸을 수는 없지만, 상반신은 보통 사람처럼 움직일 수 있어서 조제는 누워서 지내야 하는 중증 장애인처럼 낭독자원봉사자가 만들어주는 테이프로 듣기보다는 직접 읽는 것을 좋아한다. 테이프를 듣는 쪽이 피로하지도 않고 편하긴 하지만......
처음에 츠네오는 조제의 고압적인 태도에 얼마나 당혹스러웠는지 모른다. 츠네오는 복지와는 아무런 관련 없는 전공이라서 장애인을 위한 활동에는 참여해본 적이 없지만, 양호 자원봉사를 하는 친구로보터 가끔씩 이야기를 듣곤했다. 장애인 가운데는 차별에 대한 투쟁의식이 유독 강한 이들이 있는데, 그들 대부분이, 살면서 저도 모르게 모난 성격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츠네오가 보기에 조제는 그런 유형에 속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조제는 여럿이서 함께 하는 일을 싫어해서 모여서 데모를 하거나 집회를 열어 행정기관에 쳐들어가는 집단에서는 멀리 떨어진 채,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할머니가 조제를 바깥에 내보내려 하지 않은 탓도 있었던 것 같다. 수금원이나 시청 직원과도 만나게 하지 않았다.
츠네오가 바깥바람을 몰고 오는 유일한 구멍이었다. 츠네오는 멀리 떨어진 대중목욕탕으로 조제를 데리고 가서(그곳만이 열한시경에 조제가 들어가는 것을 허락해준다) 마룻바닥을 기어오는 조제를 안아 휠체어에 태운다. 기왕 온 참에, 하고 츠네오가 남탕에서 목욕을 하면, 조제는 기다리고 있다가,
"뭘 하고 있어. 추운데 사람을 기다리게 하고 있어. 몸이 다 식어버렸잖아!" 하고 고압적으로 츠네오를 나무란다.
"내가 왜 이런 야단을 맞으면서 이 짓을 해야 해."
츠네오는 그렇게 투덜거리면서 휠체어를 밀고 돌아온다. 그러면서 츠네오는 생각해본다. 조제의 이런 거만한 태도가, 투정의 역설적 표현이 아닌가 하고. 그러나 그런 지적을 했다가는 마구 화를 내면서 눈을 까뒤집든지, 호흡 곤란을 일으킬 게 뻔할 테고, 또 츠네오는 그런 심리적인 미묘한 뉘앙스를 세밀하게 분석하여 상대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표현할 만한 능력도 없기에, 그냥 입을 꾹 다물어버리고 만다.
늘 고압적인 태도와 날카로운 말투에 어울리지 않게 조제의 아름다운 얼굴은 언제나 츠네오에게 불가사의한 것이었다. 대학 캠퍼스에서 보는 여자애들은 모두 건강한 암호랑이처럼 위풍당당하고 섹시해 보이지만, 성적인 냄새라고는 전혀 없는 조제에게서는 마치 오래된 집의 창고에서 훔친 헌 인형을 휠체어에 싣고 옮기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런 그녀에게는 고압적인 말투가 잘 어울린다.
그 즈음, 조제네 집 부근은 모두 구식 변소였는데, 시의 지원금으로 하수도 정비를 하면서 구식 변소를 수세식 화장실로 개조할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조제가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변기 주변에 보조대와 손잡이도 달게 되었다. 그 설계에 대해 일일이 자신의 의견을 내는 조제의 주문을 업자에게 전하는 것은 츠네오의 임무였다.
보조대가 너무 높다. 손잡이가 너무 낮다. 그런 불만을 조제는 거침없이 말하고, 그러면 츠네오는 공사 인부에게,
"미안하지만, 여긴 말이죠, 좀 바꿔주셔야겠는데요" 하고 부탁한다.
할머니가 여든이 넘으면서 부엌에 설 수 없게 되자, 조제가 직접 음식을 만들어야 했는데, 휠체어에 앉은 조제에게 싱크대는 너무 높았다. 물건 만들기를 좋아하는 츠네오는 직접 싱크대 높이를 조절하고, 선반을 달아주는 등 낡은 집 여기저기를 고쳐 휠체어를 타고도 불편없이 지낼 수 있도록 손봐주었다. 주제의 주문이 너무 까다로워서.
"그런 어려운 건 못해" 하고 불평을 늘어놓기도 하지만, 목수를 부를 돈이 없으니 아마추어 솜씨로라도 어떻게든 만들어내야 했다. 조제는 시간만 들이면 혼자서 음식을 만들 수 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채소를 다듬고, 가볍게 데친다. 빨래도 할 수 있고, 그것을 츠네오가 튼튼하게 만들어 놓은 빨랫줄에 널 수도 있다. 지팡이만 있으면 일어설 수도 있어서, 비록 바깥출입은 어렵지만, 집 안에서는 이리저리 움직이며 볼일을 볼 수 있다. 지팡이도 츠네오가 만들어준것이다. 아래쪽은 설피처럼 만들었기 때문에 절대로 넘어지지 않는다. 또 하나, 조제가 쓰레기장에서 주워 온 진공청소기 본체를 반으로 잘라 거기에 막대기를 단 것이다. 막대기에 몸을 의지하면 바닥에 달린 작은 바퀴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데, 자칫 힘을 많이 주었다가는 마루 끝에서 굴러 떨어질 수도 있다.
츠네오는 조제에게만 묶여 있진 않았다. 대학생활도 즐기고, 여행도 다니고, 고행인 히로시마의 시골에도 내려가고, 스키를 타기도 했다. 졸업이 다가왔는데도 취직이 되지 않아 초조하게 지낼 얼마 동안은 조제의 집에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그러다 겨우 자그만 위성도시의 시청에 취직이 결정되어 오랜만에 조제의 집을 찾았는데 못 보던 사람이 나와서는,
"할머니는 돌아가셨고, 다리가 불편한 손녀는 요 앞에 있는 연립주택에서 생활보호를 받으며 살고 있어"라고 말해주었다.
츠네오는 서둘러 주변의 연립주택을 찾아다니다가 골목길 구석에 비닐을 덮어쓴 채 놓여 있는 휠체어를 발견했다. 노크를 하자, 예전에 츠네오가 만들어준 지팡이와, 롤러스케이트 미는 데 쓰던 막대기를 양쪽 겨드랑이에 낀 조제가 나왔다. 이전보다 여위어서 턱이 뾰족해졌고, 단발머리에 커다란 눈이 얼굴의 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윤기를 잃은 피부만 보아도 영양실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신에게 조제 일가를 돌봐주어야 할 의무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츠네오는 왠지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미안해. 나, 바빴거든. 취직도 해야 했고, 그래서 못 온거야. 할머니, 돌아가셨다면서?"
"응."
조제는 츠네오가 생각한 만큼 슬퍼하는 것 같지 않았고, 츠네오를 원망하는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츠네오는 입이 날카로운 조제니까 비정한 사람이라고 욕을 흠씬 얻어먹을 각오를 하고 있었고, 또 할머니의 죽음에 대해서도 온갖 투정을 다 부릴 거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조제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시청 사람들이 장례식을 치러주었어. 그보다는 이 방 얻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몰라. 방세가 싸면서 계단이 없는 집은 그리 흔하지 않으니까."
"혼자 살아?"
"한 달에 한 번, 자원봉사 하는 여자가 와서 쇼핑을 해줘."
"이웃 사람들은 친절해?"
"상관없어. 혹시나 무슨 피해를 당할까봐서 내게 말도 안걸어. 이층에 이상한 아저씨가 사는데, 유방 만지게 해주면 뭐든 다 해주겠다고 느글느글하게 웃어. 나, 절대로 안 당하려고, 밤에는 꼼짝도 하지 않고 문을 잠가버려. 낮에는 괜찮아. 그 아저씨, 낮에는 경정이나 경륜을 하러 가거든."
츠네오는 오랜만에 조제의 코맹맹이 소리 나는 '나'를 들었다. 조제의 담담한 말투에서, 할머니를 잃은 후의 막막한 김정이 절절이 다가왔다. 조제가 너무 가여워서, 츠네오는 방 구경을 하는 척하며 아리는 가슴을 추슬렀다. 할머니가 가기고 있던 옷장과 경대, 선반 등은 새로 방을 구하면서 팔았다고 한다.
"지금은 모두 종이 상자로 바꿨어. 나 혼자서 움직여야 하니까. 시장에서 깨끗한 종이 상자를 보면 얻어 와."
치과에서 가져왔다는 여성 패션 잡지에서 멋진 일러스트페이지를 오려내 붙인 상자 몇 개를 겹쳐 놓고, 한쪽을 서랍처럼 열 수 있게 해두었다. 물건도 별로 없는데 두 평짜리 방이 왜 이렇게 어지러울까 했는데, 알고보니 종이 상자가 형형색색으로 장식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밥을 제대로 챙겨 먹어야지. 얼굴이 그게 뭐야. 시들어 버렸잖아."
"당신, 날 동정하는 거야? 밥 정도는 알아서 챙겨 먹어. 걱정하지 마!"
조제는 불쾌하다는 듯이 고개를 돌리고 말한다. 츠네오는 그냥 지나가는 말로 했는데, 자존심 센 조제의 신경을 거스른 것 같았다. 한참 후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조제는 분을 바른 듯한 매끈하고 하얀 피부와 아기자기하고 자그맣고 정돈된 인형 같은 자신의 얼굴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스스로를 미인이라 생각했다. 그런 사람에게 시들었다고 했으니 화를 내는 것도 당연하다.
츠네오는 조제의 면박에 머쓱해져서,
"또 올게"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안 와도 돼. 다시는 오지 마!" 하고 조제가 격한 어조로 외쳤다.
"......그럼, ......잘 있어."
츠네오는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문 앞에서 운동화를 신는데,
"왜 가는 거야! 나를 이렇게 화나게 만들어놓고!"
조제가 숨이 넘어갈 듯한 표정으로 악을 썼다.
"나더러 어떡하란 말이야."
"몰라!"
"......갈게, 나."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등 뒤로 지팡이가 날아왔다. 뒤돌아보니 조제의 커다란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구미짱" 하고 츠네오가 놀라서 이름을 부르자, 조제는 두 눈에 그렁그렁한 눈물을 매달고,
"빨리 가. 빨리 가버려...... 다시는 오지 맛!" 하고 소리쳤다.
너무 흥분해서 가뿐 숨을 몰아쉬는 조제를 보자, 츠네오는 차마 문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괜찮은가, 하고 조심스럽게 다가갔더니,
"가지 마!" 하며 가슴에 안겼다.
"가지 마. 삼십 분만 있어줘. 텔레비전도 팔아버렸고, 라디오도 망가졌고, 나 너무 외로워......."
"어, 그럼 내가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대신이란 말이야?"
"그래. 이 라디오는 대답을 해줘서 좋아."
조제는 울면서 웃었다. 츠네오는 그런 조제가 갑자기 너무도 사랑스러워 보였다. 믿기 힘들 정도로 작고 아름다운 입술을 눈앞에 두고 갑작스런 충동에 사로잡혀 입을 맞췄다. 한참이 지나서야 꼭 다문 그녀의 입술이 살짝 열렸다. 츠네오는 갈 곳 모르고 허둥대는 조제의 뜨겁고 작은 혀를 포획했다.
창 밖으로 오토바이 지나가는 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츠네오 씨. 좋을 대로 해. 나, 뭘 해도 좋아."
입술을 떼자, 조제는 숨을 헐떡이며 그렇게 말했다.
"뭘?"
"뭐긴 뭐겠어. 당신이 하고 싶은 거."
"그럴 생각 없어. 나, 이층에 사는 놈팡이라고는 달라."
"내가 싫어?"
"......아니."
"그럼 해. 당신, 남자잖아."
".......그럴 생각으로 온 건 아닌데."
"시끄러. 나도 그럴 생각은 아니었지만, 지금 그러고 싶어졌어. 나도 당신 좋아해. 당신이 아니면, 이런 말 아무란테도 안 해.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기분 처음이야."
"정말 괜찮아?"
"문 잠갔어?"
"안 잠갔어."
츠네오는 서둘러 문을 잠그러 가면서,
'......빼도 박도 못하게 됐어.'
그렇게 생각했다. 남녀의 만남이란 모두 그런 게 아닌가. 츠네오는 학교에서 만난 여학생과 몇 차례 경험을 가져보았지만, 이렇게 만지기만 해도 부서질 것 같은 몸은 처음이었다. 그날, 처음으로 조제의 가느다란 다리를 보고는, 이건 인형의 발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인형은 나름대로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어서, 겉보기와는 달리 여자로서의 기능이 꽤 건실하고 매끄럽게 작동하고 있었다. 조제도 텔레비전이나 책에서 보아서 어느 정도 지식은 있는 듯했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아예 알기를 포기한 것 같았다. 사랑을 나누는 동안 조제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모든 게 끝난 후 츠네오는,
"화난 거야......" 하고 몸을 반쯤 일으킨 채 조제를 옆으로 끌어안으며 속삭이듯 물었다.
"아니, 화 안 났어. 상상한 거랑 너무 달라서 그래."
"나쁜 쪽, 아니면 좋은 쪽?"
"좋은 쪽."
"......다행이네."
츠네오는 다른 여자들과 나눈 섹스를 떠올렸다. 섹스를 끝내고 나면 얼굴조차 보기 싫은 여자가 많았지만, 조제의(그 즈음에는 아직 구미짱이라 불렀다) 작은 얼굴은 언제까지고 가슴에 얹어두고 싶을 정도로 사랑스러웠다.
"나, 좋아. 당신도, 오늘 한 것도 다 좋아."
그렇게 말하는 조제가 너무 귀여웠다.
"오늘밤도 여기 있어."
"응."
'내일도, 앞으로 계속. 낮에도 밤에도."
"나, 취직했어. 일해야지. 이층 아저씨도 낮에는 경정이나 경마를 하잖아. 남자는 일을 해야 하는 거야."
내 말 안 듣기만 해봐. 큰 소리로 떠들 거야. 꼼짝도 못하는 사람을 강제로 범했다고, 신문사에도 전화 걸 거야. 시청 복지과에도 전화할 거고."
"바보."
둘은 그대로 꼭 끌어안고 있었다. 커튼도 걸려 있지 않은 창문 밖으로 잿빛에서 붉은빛으로 서서히 물들어가고 있다. 츠네오는 머리맡으로 손을 뻗치다가 종이 상자를 건드렸다.
"이건 뭐야?"
뚜껑을 열어보니 하얀 천으로 싼 물건이 있었다.
"할머니 뼈."
조제가 묘한 음성으로 말했다. 아버지가 가지러 온다고 했는데 아직 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 종이 상자에도 외국 도시 사진이 붙어 있다.
그날 저녁, 츠네오는 그냥 조제의 집에 머물렀다. 다음 날은 이른 봄의 쾌청한 날씨였다. 츠네오는 몇 달 만에 조제에게 바깥 구경을 시켜주고 싶었다.
친구들에게 하나하나 전화를 걸어 자동차를 빌려서는 조제와 휠체어를 실었다.
조제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부루퉁한 표정이다.
"왜 그래. 싫으면 안 나가도 돼. 그냥 집에 있어도 괜찮아."
"아냐. 너무 좋아서 기분이 좀 나빠졌어."
츠네오는 웃으면서 조제에게 키스했다. 그런 조제의 모습을 보니, 외출하는 것보다 한 번 더 안고 싶은 욕구가 미칠 듯이 끓어올랐다. 가느다란 인형 같은 다리가 왜 그토록 에로틱한지. 두 다리 사이에서 가늘게 떨고 있는 바닥 모를 깊은 함정, 악어의 입 같은 올가미. 츠네오는 거기에 사로잡혀 눈이 뒤집힐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조제는 동물원에 가고 싶어했다. 시설에 있을 때 자원봉사자의 도움으로 버스를 타고 간 적이 있지만, 시간 제한 때문에 새와 원숭이, 코끼리밖에 보지 못했다고 했다. 동물원은 장애인들이 빠른 시간에 다 둘러보기에는 너무 넓었다.
조제는 호랑이를 보고 싶아고 했다.
츠네오는 맹수 우리 쪽으로 휠체어를 밀고 갔다. 오랜만에 봄날다운 날씨라서 그런지 평일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조제는 호랑이를 보고, 상상했던 그대로라며 좋아했다. 맹수 특유의 몸짓으로 우리 속을 열심히 오가는 호랑이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억제된 흉포한 힘을 느끼게하는 호랑이의 광기 어린 노란 눈이 이쪽을 향하지, 조제는 무서운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런데도 무서운 것을 보려고 하는 호기심은 누구보다 강한 듯하다.
호랑이는 어슬렁거리며 우리 안을 오가다가 갑자기 조제앞에 우뚝 멈춰 섰다. 조제는 너무 무서워서 숨이 막힐 것 같은 불안에 사로잡힌다. 호랑이는 일격에 코끼리라도 쓰러뜨릴 것 같은 튼튼한 앞발로 콘크리트 바닥을 치고 몸을 비틀면서 포효한다.
노랑과 검정이 만들어낸 강렬한 얼룩무뉘가 움직일 때마다 햇빛을 받아 번득인다. 조제는 호랑이의 포효에 기절할만큼 놀라 츠네오의 옷자락을 잡는다.
"꿈에 나오면 어떡해......"
"그렇게 무서워하면서 보긴 왜 봐."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걸 보고 싶었어. 좋아하는 남자가 생겼을 때. 무서워도 안길 수 있으니까. ......그런 사람이 나타나면 호랑이를 보겠다고...... 만일 그런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평생 진짜 호랑이는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니, 바다 위의 섬이 짙은 녹색으로 봉긋하게 솟아올라 있었다. 남국답게 자르르 윤기 흐르는 진녹색의 나무들이었다. 그래서 섬은 하나의 동그란 녹조류 같아 보인다.
조제는 그 섬에 해저 수족관이 있다는 것을 안 뒤로, 오래전부터 츠네오에게 데리고 가달라고 졸랐다. 규슈 끝자락에 위치한 다도해라서 하루 일정으로는 다녀올 수 없다. 그래서 츠네오는 휴가를 냈다. 조제는 동물원이나 수족관을 좋아한다.
섬과 본토의 곶이 기다란 다리로 연결돼 있다. 다리는 실뜨기의 실 같아 보이고, 그 끝의 섬은, 조제의 표현을 빌리자면, '빨간 실에 매달린 요요' 같았다. 산 중턱을 깁듯이 구불구불 이어진 차도를 따라가다보면, 섬과 빨간 다리는 숨바꼭질하듯 사라졌다 나타났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점점 눈앞에서 커진다. 마침내 다리가 눈앞에 우뚝 일어서면, 다 건넌 것이다.
다리는 눈이 아득할 정도로 높고, 위엄 있었다. 해수면이 한참 아래로 보이는 걸로 봐서 교각도 무지 길 것 같았다. 그런 다리를 겨우 건넜다 했더니 이번에는 주차장이 펼쳐진다. 즐비하게 늘어선 관광버스들 사이로 주차장을 빠져나와 표시판을 보고 해안도로로 접어들었다. 섬의 사분의 일을 돌아 해안가에 있는 리조트호텔에 차를 세웠다.
"전화로 확인했어. 계단을 오르지 않아도 되는 방이 있냐고. 휠체어를 타고 있다고."
츠네오는 트렁크에서 접이식 휠체어를 꺼내면서 그렇게 말했다. 손님을 맞이하는 검은 제복 차림의 젊은 남자는 이쪽이 도리어 미안할 정도로 조제의 다리 쪽으로는 시선을 주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기색이었다. 조제는 엷은 핑크색 롱스커트를 입고 있다. 상의는 소매가 짧은 핑크색이다. 턱을 꼿꼿하게 치켜들고 벨보이에게는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그러니 처음 보는 사람에게 미소로 대하는 건 아예 기대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벨보이는 상자 안에 든 인형 같은 조제에게 흘끗흘끗 눈길을 던지며,
"이층 방을 준비해두었습니다. 엘리베이터가 있어서요. 일층은 식당과 연회장입니다."
그러나 엘리베이터가 너무 좁아 휠체어가 들어가지 않았다. 결국, 츠네오는 조제를 업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휠체어는 접어서 벨보이가 들었다. 단체로 온 듯한 중년여자들이 서슴없이 조제를 쳐다보았다. 조제는 마음이 불편한지 표정이 부루퉁해졌다.
방 안에는 신혼여행을 축하하는 꽃이 장식되어 있었다. 하지만 조제는 벨보이가 나가자마자,
"관리인이 나빠! 관리인이 미리 조사해두었더라면, 엘리베이터에 휠체어가 들어가는지 안 들어가는지 알 수 있었을 거잖아! 그 할망구들이 나를 구경했단 말이야!"
"조제, 그만하고, 저길 봐. 바다야."
츠네오는 커튼을 걷으면서 감탄사를 내뱉는다. 창문 가득 바다가 들어 있다. 조제는 조금 기분이 누그러진 것 같다. 테이블과 의자를 잡고 창으로 다가가, 묵묵히 바다를 바라본다.
"이 아래 수족관이 있겠지."
"그럼."
"빨리 가보자."
"좀 기다려. 오래 운전을 해서 피곤해. 잠깐만 쉬었다가."
"가기 싫음 관둬! 필요없어! 아까 그 보이한테 부탁할래."
츠네오는 한숨을 내쉬고는, 조제를 데리고 나갔다. 어차피 벨보이의 도움이 필요하다. 수족관은 지상에서 약 8미터 아래 있어서 긴 콘크리트 계단을 따라 내려가야 한다. 벨보이가 휠체어를 들고 뒤따라왔다.
갑자기 주위에 밝은 불빛이 들어왔다. 휠체어에 조제를 태워주고 벨보이가 돌아가자, 해저에는 츠네오와 조제, 둘만 남았다. 바닥을 제외하면 온통 유리 세계에 파란 바닷물이 들어 있다. 해조가 물결에 흔들리고, 그 물 속에서 코발트색 물고기들이 줄무늬를 그리며 헤엄치고, 빨간 물고기가 그 사이를 요리조리 지나간다.
바닥의 모래에는 곰치와 게, 새우, 거북이 등이 있었다. 츠네오의 발 소리와 휠체어 구르는 소리가 메아리쳤다. 다른 손님은 한 명도 없는 것 같았다. 은색과 청색의 커다란 물고기가 눈앞을 헤엄치며 지나간다. 방어였다.
산호초에 배를 스치며 지나가는 것은 잿방어와 감성돔, 능성어, 상어 들이다.
물고기의 눈은 말간 게 사람의 얼굴과 많이 닮았다.
"야, 멀리서 보러 온 보람이 있네. 정말 멋져."
츠네오는 그냥 즐거웠지만, 조제는 너무 감격한 나머지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렇게 해저에 있으면 밤인지 낮인지도 모르고 마냥 시간이 흐를 것 같았다. 조제는 공포와는 다른 어떤 도취에 빠져, 끝도 없이 그 안을 뱅뱅 돌았다. 그냥 내버려두었다가는 죽을 때까지 그 안을 돌아다닐 것 같았다. 결국, 참다못한 츠네오에게 야단을 맞고, 수족관매표소의 여직원에게 부탁해 벨보이를 부르고, 그의 등에 업힌 채 다시 지상으로 올라왔다. 계단을 다 오를 무렵부터 츠네오는 숨을 헐떡거렸다. 지상에는 밝은 여름 햇살과 선물 가게가 있고, 바다 냄새가 가득했다. 두 사람은 파라솔 그늘 아래서 커피를 마시고 방으로 돌아갔다. 식사는 특별히 부탁해서 방으로 가져오게 했다.
깊은 밤에 조제는 눈을 뜨고, 커튼을 열어젖혔다. 달빛이 방 안 가득 쏟아져 들어왔거, 마치 해저 동굴의 수족관 같았다.
조제도 츠네오도 물고기가 되었다.
죽음의 세계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죽은 거야.'


츠네오는 그후로도 조제와 같이 살고 있다. 두 사람은 서로 부부라고 생각하지만, 호적 신고도 하지 않았고, 결혼식도 올리지 않았고, 피로연도 하지 않았고, 츠네오의 가족 친지들에게 알리지도 않았다. 종이 상자 속에 담긴 할머니의 유골도 여전히 그대로다.
조제는 이대로가 좋다고 생각한다. 오랜 시간을 들여 간을 잘 맞춘 음식을 츠네오에게 먹이고, 천천히 세탁을 해서 츠네오에게 늘 깨끗한 옷을 입힌다. 아껴 모은 돈으로 일년에 한 번 여행도 떠난다.
'우리는 죽은 거야. 죽은 존재가 된 거야.'
죽은 존재란, 사체다.
물고기 같은 츠네오와 조제의 모습에, 조제는 깊은 만족감을 느낀다. 츠네오가 언제 조제 곁을 떠날지 알 수 없지만, 곁에 있는 한 행복하고,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조제는 행복에 대해 생각할 때, 그것을 늘 죽음과 같은 말로 여긴다. 완전무결한 행복은 죽음 그 자체다.
'우리는 물고기야. 죽어버린 거야.'
그런 생각을 할 때, 조제는 행복하다. 조제는 츠네오의 손가락에 자신의 손가락을 깍지 끼고, 몸을 맡기고, 인형처럼 가늘고 아름답고 힘없는 두 다리를 나란히 한 채 편안히 잠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