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상실

권혜미2008.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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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대중문화의이해 수업 때 발표한 조는 '기억 상실증'이 주제였다. 기억과 상실 모두 내겐 개인적으로 예민한 부분이기에 평소보다도 주의 깊게 발표를 들을 수 있었다. 발표자는 우리 과가 아니였으며 심지어 나는 그 발표 때 처음 본 사람들이었다(그 사람들도 날 처음 봤을 수도 있다). 발표는 재밌었다. 메멘토, 이터널선샤인, 내 머릿속의 지우개까지 세개의 영화로 각기 다른 방식의 '기억상실증'을 설명하면서 난 의문점이 들었다. 발표자는 분명 '기억상실증'에도 질병으로 구분 될 수 있는 것과 질병으로 볼 수 있는 증상이 있으나 특별히 그 원인을 찾기 힘든. 즉, 정신적인 문제로부터 오는 '기억상실증'이 있다고 했다. 또한 발표자들은 후자에 관련된 '기억상실증'에 관해 말하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 '기억상실증'과 '기억상실증'의 증후군을 가지는 것을 어찌 구분한단 말인가. 나는 발표가 끝날 때까지(혹은 질문할 시간이 올 때까지) 오직 이 생각만을 가지고 끙끙거리고 있었다.

 

 

 

 

기억상실증에 해당하는 증상이 있기에 질병으로 진단 받을 수 있을만한 분명한 의학적 원인이 있는가?

기억상실증에 해당하는 증상은 가지고 있으나 진단을 받기엔 의학적 원인이 부족한 부분이 있는가?

 

 

 

 

 

 

 

결국 나는 발표가 끝나고, 손을 들었다. 여김없이 다른 사람들은 나를 쳐다보았고, 발표자들은 난감해 했다. 내가 질문하는 동안 몇몇은 떠들었으며, 몇몇은 나를 계속 쳐다봤고, 몇몇은 이러쿵 저러쿵 수근거렸다. 교수님은 흥미롭다고 내 질문을 정의해버렸으나, 나는 왜 그것이 흥미로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당연하게 드는 질문이라 여겼는데, 희소성있기에 질문이 흥미롭다 한건지. 정말이지 나도 내가 질문하고 왜 질문했나 머리를 쥐어 박고 싶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질문했다. 궁금하니까.

 

 

 

"그렇다면 말이죠. '대중문화의이해'라는 관점을 가지고 발표하신 '기억상실증'을 얘기해보고 싶습니다. 일명 우리 주변에서 의학적으로는 그 분류가 어려우나 '증후군'이라 하여 어떤 특정한 증상을 가진 사람들이 최근들어 많아지는 추세입니다. 또한 이것이 '증후군 유행'을 불러일으켜 실제로 질병을 가진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런 것과 비슷한 증상으로 자신의 상태를 질병화 시키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는데요. 예를 들어 대구 지하철 참사를 보았을 때 방화범에게 정신질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남대문 방화범 또한 정신질환이 있는 것으로 보도가 되었습니다. 이런 사회적 이슈들 속에서 대중들이 '기억상실증'에 해당하는 증상을 마치 자신이 가진 것 마냥 '증후군'을 앞세워 스스로의 행동으로부터 도피한다거나, 행동을 정당화 시킨다면 과연 대중매체(말씀하신 세 편의 영화)에서 '기억상실'을 가지고 대중앞에 나오는 것이 사회적으로 안좋은 결과를 초래한다고는 생각해보지 않으셨나요?"

 

"제 질문에 세 편의 영화에서는 극적 요소를 위해 '기억상실증'이 장치로서 사용되었다고 하셨는데요. 제 생각에는 단순한 로맨스의 장치나, 소재로서의 장치로만 사용되었다면 그 위험 요소가 더 크지 않을까란 생각을 합니다. 영화를 만들 때 기획의도에 있어 '기억상실증'에 관한 연출자의 정확한 이해도나 관점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는데요. 영화의 마지막 자막이 올라갈 때 영화를 본 사람들이 스스로 '기억상실증'에 대해 생각의 여지를 남겨놓을 수 있는 것이 연출자의 몫이 아닐까 합니다. 여지를 남기는 것이 아니라면 여지를 두지 않게 무엇인가를 강하게 전달하는 것 또한 연출자의 몫이라고 생각하구요. 발표자께서는 영화에서 '기억상실증'은 단순한 장치로 사용되었다고 했는데요. 단순하다고 직접 말씀하셨으니 드리는 말씀입니다. 메맨토에서도 이터널선샤인에서도 내 머릿속의 지우개에서도 '기억상실증'은 단순하게 사용되지 않습니다. 일시적으로 나오는 복선의 효과를 가져온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분명 세 편의 영화 모두 '기억상실증'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 영화를 주물르고 있는 중심에 가장 큰 역할을 합니다. 다시 질문을 드립니다. 아직도 발표하신 세 영화에 '기억상실증'이 단순하게 장치로서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참 알쏭달쏭 어렵다. 실제로 발표자는 정확한 논문이나 책에 근거하여 발표를 준비한 것이 아니라고 말했고, 그 출처는 네이버임을 밝혔다. 나는 담론을 열고자 했지만 질문은 여기까지였다. 사실 집에와서 한참 서적을 뒤적거렸다. 볼 수 있는 자료는 인터넷에서 다 찾아보려 했다. 하지만 분명 내 의문점이 독특하다거나 특이하진 않아 보였다. 같은 과의 한 친구가 그랬다. "너는 너무 파고들어. 집요하게. 발표하는 사람 민망하잖아. 나중에 너 발표할 때 어떻게 당하려고" 참 이런 말을 들으니 당황스럽고 당혹스러웠다. 그리고 아차 싶었다. 그래서 다들 조용하게 있었군요. 알겠습니다. 입닥치고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