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주제 사라마구는 현실주의적인 소설들로 유명하다. 우리에게도 유명한 "베르나르 베르베르"나 "파올로 코엘료" 같은 상상치못한 전개나 반전이 가득한 결말이 아니다. 정말이지 일어날 법한 이야기의 전개로 독자를 소설속에 빠져들게 한다.
특히, 주제 사라마구의 작품에는 따옴표(", ")가 사용되지 않은것이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에는 읽기 불편했지만, 나중에는 내가 소설속의 사람들처럼 눈이 하얗게 멀어버린 듯한 착각을 주기도 한다. 말그대로, 사실처럼 소설 내용에 심취된다고나 할까.
그리고 이 소설에서는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이름이라는 것은 직접 보면서 구분하는 것이기 때문에, 눈먼자들의 도시에서는 의미가 없었다고 생각해서 였을까. 등장인물들은 '의사', '검은 안대를 한 노인', '의사의 아내' 등으로 불린다. 눈이 보이지 않는 인물들은 시간도, 공간도 의식하지 못한다. 따라서 주제 사라마구 역시 배경에 대해 특정한 포인트를 주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소설의 줄거리는 위의 가정처럼 간단하다.
그러나 상황은 이런 가정처럼 단순하지 않다.
사람들의 눈이 멀기 시작한다. 하나씩, 하나씩. 그리고 이 전염병과 같은 시력상실로 인해 눈이 먼 사람들은 즉각 격리된다. 그리고 그 격리된 건물 안에서 사람들은 "인간의 원초적인 모습"만이 존재하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시력의 상실은 곧 인간들의 이성을 상실시켰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지 못하는 환경속에서 인간으로서의 도덕성과 어떻게든 살아남고자 하는 욕구가 충돌한다. 누가 정상이고 누가 비정상인지, 그들은, 그리고 우리는 구분할 수 없다. 그러한 혼돈같은 상황속에서 '눈이 보이는 단 한 명의 사람'이 독자의 눈이 되어, 그 상황을 말해주고 있다.
누구도 예외일 수 없이 퍼져나간 전염병에서 단 한 사람의 눈을 통해서, 우리들은 눈먼자들의 도시를 보게된다. 눈이 멀지 않은 사람은 분명 운이 좋은 사람이다. 하지만 읽어가면서 점차 그 생각은 바뀌게 된다. 그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이고 추악한 모습을 멀쩡한 눈으로 지켜봐야하는 사람인 것이다.
격리된 보람도 없이 이미 전염병인 곳곳에 퍼져있다. 격리된 곳이나 나온 곳이나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이 땅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으로서 그 사람은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를 확신하지 못한다. 살아있지만 살아간다는 것에 확신을 가지지 못한다는 말은 이럴때 쓰라고 있는 말 처럼.
나는 책을 읽을때 불편함을 느낀다. 피곤해져서 몇장 못가고 책을 덮고 만다. 그러다가 다시 책을 읽고 싶은 기분이 들었을 때, 다시 책을 펼친다.
눈먼자들의 도시를 읽으면서, 인간이 어떻게 가장 원초적인 모습으로 돌아가는지, 얼마나 끝을 향해서 떨어지는지, 얼마나 모든 것들을 다 버리는지를 보면서, 나는 참을 수 없는 피로를 느낀다. 그냥 책을 덮어버리고 싶은 불편함이지만 그래도 읽어야 한다. 그들에게 다시 볼 수 있다는 희망이 자라고 있는 것 처럼 말이다.
눈먼자들의 도시에서는 무엇을 볼 수 있을까. 하얗게 멀어버린 눈은 과연 희망의 상징일까. 이 책의 마지막이 희망으로 다가올지, 절망으로 다가올지는 읽어가는 사람의 몫이다.
- 기억에 남는 구절
다행히도, 인간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악에서도 선이 나오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그러나 선에서도 악이 나올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야기들을 잘 하지 않는다.
우리가 전에 지니고 살았던 감정, 과거에 우리가 사는 모습을 규정하던 감정은 우리가 눈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야. 눈이 없으면 감정도 다른 것이 되어버려. 어떻게 그렇게 될 지는 모르고, 다른 무엇이 될 지도 모르겠지만, 아가씨는 우리가 눈이 멀었기 때문에 죽은 것이라고 말했는데, 그게 바로 그 얘기야.
왜 우리가 눈이 멀게 된 거죠. 모르겠어,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어요. 응, 알고싶어.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눈은 멀었지만 본다는 건가. 볼 수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눈먼자들의 도시
『눈먼 자들의 도시 Ensaio sobre a Cegueira』
(주제 사마라구 Jose' Saramago)
신호가 바뀌기만을 기다리는 차들
파란불이 켜졌지만 앞 차는 움직이지 않는다
크락션 소리가 커지고
사람들은 웅성거린다
움직이지 않는 차로 모여드는 사람들
운전자가 말했다
눈이 안 보여
만약 이 세상 사람들이 모두 눈이 멀어버리고,
단 한 사람만 볼 수 있다면
이러한 가정 하나로 472페이지를 채우는 이야기이다.
포르투갈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주제 사라마구는 현실주의적인 소설들로 유명하다. 우리에게도 유명한 "베르나르 베르베르"나 "파올로 코엘료" 같은 상상치못한 전개나 반전이 가득한 결말이 아니다. 정말이지 일어날 법한 이야기의 전개로 독자를 소설속에 빠져들게 한다.
특히, 주제 사라마구의 작품에는 따옴표(", ")가 사용되지 않은것이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에는 읽기 불편했지만, 나중에는 내가 소설속의 사람들처럼 눈이 하얗게 멀어버린 듯한 착각을 주기도 한다. 말그대로, 사실처럼 소설 내용에 심취된다고나 할까.
그리고 이 소설에서는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이름이라는 것은 직접 보면서 구분하는 것이기 때문에, 눈먼자들의 도시에서는 의미가 없었다고 생각해서 였을까. 등장인물들은 '의사', '검은 안대를 한 노인', '의사의 아내' 등으로 불린다. 눈이 보이지 않는 인물들은 시간도, 공간도 의식하지 못한다. 따라서 주제 사라마구 역시 배경에 대해 특정한 포인트를 주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소설의 줄거리는 위의 가정처럼 간단하다.
그러나 상황은 이런 가정처럼 단순하지 않다.
사람들의 눈이 멀기 시작한다. 하나씩, 하나씩. 그리고 이 전염병과 같은 시력상실로 인해 눈이 먼 사람들은 즉각 격리된다. 그리고 그 격리된 건물 안에서 사람들은 "인간의 원초적인 모습"만이 존재하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시력의 상실은 곧 인간들의 이성을 상실시켰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지 못하는 환경속에서 인간으로서의 도덕성과 어떻게든 살아남고자 하는 욕구가 충돌한다. 누가 정상이고 누가 비정상인지, 그들은, 그리고 우리는 구분할 수 없다. 그러한 혼돈같은 상황속에서 '눈이 보이는 단 한 명의 사람'이 독자의 눈이 되어, 그 상황을 말해주고 있다.
누구도 예외일 수 없이 퍼져나간 전염병에서 단 한 사람의 눈을 통해서, 우리들은 눈먼자들의 도시를 보게된다. 눈이 멀지 않은 사람은 분명 운이 좋은 사람이다. 하지만 읽어가면서 점차 그 생각은 바뀌게 된다. 그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이고 추악한 모습을 멀쩡한 눈으로 지켜봐야하는 사람인 것이다.
격리된 보람도 없이 이미 전염병인 곳곳에 퍼져있다. 격리된 곳이나 나온 곳이나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이 땅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으로서 그 사람은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를 확신하지 못한다. 살아있지만 살아간다는 것에 확신을 가지지 못한다는 말은 이럴때 쓰라고 있는 말 처럼.
나는 책을 읽을때 불편함을 느낀다. 피곤해져서 몇장 못가고 책을 덮고 만다. 그러다가 다시 책을 읽고 싶은 기분이 들었을 때, 다시 책을 펼친다.
눈먼자들의 도시를 읽으면서, 인간이 어떻게 가장 원초적인 모습으로 돌아가는지, 얼마나 끝을 향해서 떨어지는지, 얼마나 모든 것들을 다 버리는지를 보면서, 나는 참을 수 없는 피로를 느낀다. 그냥 책을 덮어버리고 싶은 불편함이지만 그래도 읽어야 한다. 그들에게 다시 볼 수 있다는 희망이 자라고 있는 것 처럼 말이다.
눈먼자들의 도시에서는 무엇을 볼 수 있을까. 하얗게 멀어버린 눈은 과연 희망의 상징일까. 이 책의 마지막이 희망으로 다가올지, 절망으로 다가올지는 읽어가는 사람의 몫이다.
- 기억에 남는 구절
다행히도, 인간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악에서도 선이 나오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그러나 선에서도 악이 나올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야기들을 잘 하지 않는다.
우리가 전에 지니고 살았던 감정, 과거에 우리가 사는 모습을 규정하던 감정은 우리가 눈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야. 눈이 없으면 감정도 다른 것이 되어버려. 어떻게 그렇게 될 지는 모르고, 다른 무엇이 될 지도 모르겠지만, 아가씨는 우리가 눈이 멀었기 때문에 죽은 것이라고 말했는데, 그게 바로 그 얘기야.
왜 우리가 눈이 멀게 된 거죠. 모르겠어,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어요. 응, 알고싶어.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눈은 멀었지만 본다는 건가. 볼 수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