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분 동안 엘리스는 그 집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제부터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노라니까, 숲 속에서 느닷없이 제복을 입은 하인이 달려왔습니다. 하인이라고 짐작한 것은 하인의 제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얼굴만 보면 물고기였습니다.
문 앞에 서자, 주먹을 불끈 쥐고 쿵쿵쿵 두들겼습니다. 그러자 얼른 문을 열어 준 것은 다른 하인이었습니다. 똑같은 제복을 입고 있습니다. 개구리 같은 커다란 눈을 하고 있는 둥근 얼굴이었습니다. 문을 두들긴 하인도, 문을 연 하인도 모두 머리는 온통 곱슬머리였고, 하얀 가루가 그 위에 뿌려져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다."
엘리스는 숲 속에서 조금 나와 귀를 기울였습니다.
"공작 부인에게 여왕님으로부터, 크로우케이 놀이(나무 공을 나무 방망이로 쳐서 철문을 통과시키는 운동)의 초대장이올시다."
하고, 처음 말한 것은 물고기 같이 생긴 하인입니다. 겨드랑이에 끼고 있던 자기만큼이나 큰 봉투를 공손하게 내밀었습니다. 그러자 개구리를 닮은 하인도,
"여왕님께서 공작 부인에게 크로우케이 놀이의 초대장이올시다.."
하고, 말의 순서는 조금 바꿨을 뿐 역시 정중하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서로 공손하게 인사를 주고받았습니다. 그러자 곱슬머리가 서로 얽혔습니다.
엘리스는 하도 우스워서 배꼽을 쥐고 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하인들이 들으면 그야말로 큰일나겠다고 생각하여 허둥지둥 숲 속으로 달아나고 말았습니다. 잠시 후 되돌아보니까, 벌써 물고기를 닮은 하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개구리를 닮은 하인만이 땅바닥에 주저앉아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엘리스는 숨을 죽이고 현관에 가까이 다가가서 톡톡톡 문을 두들겼습니다. 그러자,
"두들겨도 헛일이다." 하고 하인이 말했다.
그런데 집 안에는 굉장한 소동이 일어난 모양입니다. 울부짖는 소리와 쟁반들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안에 들어갈 수 있니?"
"당신과 나 사이에 만일 문이 달려 있다면, 그야 문을 두들기는 것도 뜻이 있겠지. 가령 당신이 집 안에 있으며 문을 두들기면 내가 문을 열어 주어 당신을 바깥으로 내보내 주겠다."
개구리를 닮은 하인은 말을 하면서도 여전히 하늘만 보고 있기에 엘리스는,
'실례가 아니냐." 하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마 하는 수 없는 모양이지."
엘리스는 중얼거렸습니다.
"이 사람의 눈은 머리 꼭대기 가까이에 붙어 있단 말이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내가 묻는 말에 대답쯤은 해줘도 좋잖아."
엘리스는 우정 큰 소리를 질렀습니다.
"어떻게 하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지?"
"내일까지 난 여기에 앉아 있을 테야."
하인이 이렇게 말했을 때입니다. 얼른 문이 열리더니 커다란 쟁반이 소리를 내며 날아왔습니다. 그것은 하인의 코끝을 스쳐 뒤에 있는 나무에 부딪쳐 부서졌습니다. 그래도 하인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여전한 태도로,
"경우에 따라서는 모레까지." 하고 말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지?"
엘리스는 아까보다도 훨씬 더 큰 소리로 같은 것을 물었습니다.
"넌, 도대체 들어가야 하겠다는 생각이 있는 거냐? 그것이 우선 중요한 문제란 말이다."
확실히 하인의 말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엘리스는 그따위 말버릇이 몹시 싫었습니다.
"싫어, 싫단 말이야. 어째서 동물들은 이렇게 말이 많을까? 기분이 이상해지잖아."
하인은 조금 전의 그 말을 되풀이해야 할 때는 바로 이때구나 하고 벼른 듯이,
"나는, 여기에 하루고 이틀이고 앉아 있을 따름이야."
하고, 일부러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럼, 난 어떡하면 좋아."
"좋을 대로……"
하인은 이렇게 말하자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습니다. 엘리스는 어이가 없었습니다.
"이런 사람하곤 아무리 얘기해도 소용없어. 정말 어딘가 잘못됐나 봐!"
엘리스는 제 마음대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바로 큰 부엌으로 통해 있고, 방에는 여기가 자욱하게 끼어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자니까, 방 한가운데에 세 다리 의자가 놓여 있고, 거기에 공작 부인이 앉아서 어린애를 달래고 있었습니다.
난롯불 옆에서 허리를 꾸부리고, 수프가 가득 들어 있는 커다란 냄비를 휘젓고 있는 이는 식모인 모양입니다.
"저 수프에는 후춧가루가 너무 많이 들어 있어."
에취, 에취, 재채기를 하면서 엘리스는 간신히 이 말만을 했습니다. 확실히 주위의 공기가 매웠습니다. 공작 부인 역시 연거푸 재채기를 하고 있습니다. 어린애까지도 재채기를 하면서 자꾸만 보채고 있습니다. 재채기를 하지 않는 것은, 부엌에서 요리하는 여자와 난로 위에서 귀까지 찢어지도록 큰 입을 벌리고 혼자서 웃고 있는 커다란 고양이뿐이었습니다.
"저 …… 죄송하지만."
하고, 엘리슨 조심조심 물었습니다. 공작 부인에게 자기 쪽에서 먼저 말을 거는 것이 예의에 벗어나는 건지 아닌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저 고양이는 어찌 저렇게 능글맞게 웃고만 있습니까."
"체셔 고양이니까."
체셔(잉글랜드의 서부에 있는 주)의 고양이는 능글맞게 잘 웃는다는 소문이 나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도 능청맞게 잘 웃는 사람을 보고 체셔 고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공작 부인은 또 말을 계속했습니다.
"모른단 말이냐? 체셔 고양이에겐 능글맞게 웃는 버릇이 따라다닌다는 것을, 이 돼지야."
공작 부인의 마지막 말투가 느닷없이 난폭했기 때문에 엘리스는 깜짝 놀라 펄쩍 뛰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자기에게 하는 말이 아니고, 어린애에게 한 것인 줄 금새 알아차릴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다시 말을 계속했습니다.
"전 정말 체셔 고양이에 대해선 모르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또 고양이가 웃는다는 건 모르고 있었으니까요."
"고양이는 웃을 수 있는 거야, 대부분의 고양이는."
"전 그런 말씀을 처음 듣는 걸요."
"넌 그리 많이 알고 있지 못하는군."
공작 부인의 그 말투가 엘리스에겐 아무래도 못마땅했습니다. 그래서 무언가 다른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을 때입니다. 수프 냄비를 난로에서 들어 내린 식모가 갑자기 그 근처에 있는 물건들을 닥치는 대로 집어서 공작 부인과 어린애에게 마구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부삽, 냄비, 쟁반 등이 비오듯이 날았습니다. 공작 부인은 맞아도 예사입니다. 어린애는 그전부터 울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들에 맞아 아파서 우는지 어쩐지 도무지 알 수 없었습니다
"무슨 짓이야, 조심해!"
엘리스는 너무나 무서워서 몇 번이고 깡충깡충 뛰어오르면서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모든 사람들이 남의 일에 참견을 않는다면 지구는 지금보다 훨씬 더 빨리 돌 거야."
하고, 공작 부인이 신음하듯 목쉰 소리로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좋다고는 생각할 수 없어요."
엘리스는 제 지식을 뽐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왔다고 몹시 기뻐했습니다.
"만일, 그렇게 되면 밤과 낮이 어떻게 될지 생각해 보셔요. 지구는 남북의 축(축을 영어로 액시스라 함)을 중심으로 자전하는데 24시간 걸리며, 밤과 낮이 꼭 반반씩이고……"
"잠깐! 도끼(도끼를 영어로 액스라 함)라고? 그래, 이 애의 모가지를 댕강 잘라버려!"
엘리스는 깜짝 놀라 식모가 있는 쪽을 돌아보았습니다만, 그 여자는 열심히 수프 냄비를 휘젓고 있을 뿐입니다. 겨우 안심이 된 엘리스는 말을 계속했습니다.
"틀림없이 24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12시간이라든가?"
"닥쳐! 난 숫자라면 진절머리가 난단 말이다!"
하고 외친 후에, 공작 부인은 다시 어린애를 달래기 시작했습니다. 자장가 비슷한 노래를 부르면서, 한 절이 끝날 때마다 어린애를 거칠게 뒤흔드는 것입니다.
어린애가 재채기를 했을 땐 야단을 치고 두들겨 줘라.
애를 먹이려고 하는 짓이 재미가 나서 하는 짓이야.
(합창) 와아 와아 와아 (식모와 어린애가 함께 불렀습니다.)
공작 부인은 노래의 2절을 부르면서 어린애를 난폭스럽게 위로 던졌다가 도로 받아 안았습니다. 가엾은 어린아기! 귀가 따갑게 울어댑니다. 엘리스가 노래의 가사를 알아들을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어린애가 재채기를 했을 땐 야단을 치고 두들겨 줘라.
제 멋대로 장난을 하고 어린 애는 후춧가루를 좋아한다.
(합창) 와아 와아 와아
"자, 웬만하면 어린애를 좀봐주지."
공작 부인은 어린애를 엘리스 쪽으로 난폭하게 던졌습니다. 엘리스는 가까스로 어린애를 받아 안았습니다.
"난, 여왕님의 크로우케이 놀이 모임에 갈 채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
공작 부인은 부리나케 방을 나갔습니다.
그 뒷등을 향하여 식모가 프라이팬을 냅다 던졌으나 약간 빗나가 다행이 맞지는 않았습니다. 엘리스는 어린애를 보았습니다.
"어머나, 마치 불가사리 같아!"
팔다리가 사방으로 불쑥불쑥 튀어나와 아주 기묘한 꼴을 하고 있었습니다. 받아 안았을 때, 어린애를 마치 증기기관차 모양 코를 실룩거리고 있었습니다. 거기다가 자꾸만 몸을 꾸부리고 배를 불쑥 내밀고 하기 때문에, 처음 한동안은 놓치지나 않나 하고 혼이 났습니다.
그러나 엘리스는 이내 어린애를 어떻게 안으면 좋은가를 알았습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내가 이 아이를 데리고 가지 않으면 아마 틀림없이 하루 이틀 후에는 맞아 죽을 거야. 그러니까 이 아이를 그냥 두고 간다는 것은 살인범과 다름없지 않을까?"
엘리스가 이렇게 중얼대자 어린애는 마치 돼지같이 꿀꿀댔습니다. 재채기는 어느 새 그 쳤습니다.
"꿀꿀하다니 참 이상해. 이 따위 말투가 어디 있단 말야."
엘리스는 깜짝 놀라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습니다.
"아, 돼지구나!"
틀림없이 돼지였습니다. 엘리스는 이 이상 안고 있는 것이 창피해졌습니다. 그래서 내려놓자, 돼지새치는 얌전하게 숲 속으로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만일 저 어린애가 저대로 자란다면 꽤 보기 흉한 애가 될거야. 하지만, 돼지치고는 잘 생긴 편인지도 모르지."
엘리스가 한숨을 내쉬며 이린?말했을 때, 3미터쯤 앞 나뭇가지에 조금 전의 그 체셔 고양이가 있는 것을 깨닫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데 고양이는 엘리스를 보자, 능청스레 웃을 뿐입니다. 엘리스는 성질이 괜찮아 고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발톱이 길고 이빨이 많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다루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체셔 고양이야."
엘리스는 두려워하면서 말을 걸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고양이는 입을 크게 벌리고, 그저 능청맞게 웃어대기만 했습니다.
"기분이 좋은가봐, 됐어!"
방긋 웃으며 엘리스는 말을 계속했습니다.
"저, 잠깐 말 좀 묻겠다는 데요, 여기서 어느 쪽으로 가야 좋을까요?"
"그건 네 마음에 달렸지."
"아무데고 괜찮겠습니다만."
"그럼 아무데나 가려무나."
"하지만, 어디엔가 가서 닿았으면……"
"자꾸만 걸어가면 틀림없이 어디엔가 가서 닿겠지."
'옳은 말씀."
하고, 엘리스는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다른 것을 물었습니다.
"이 근방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나요?"
"저 쪽에는……"
하면서 고양이는 오른팔을 흔들며,
"모자장수가 살고 있지."
이번에는 왼팔을 돌리며,
"저 쪽에는 3월토끼가 살고 있어. 어느 쪽이고 좋을 대로 가보렴. 두 쪽 다 미치광이지만."
잉글랜드에서는 무슨 이유인지 3월토끼와 모자 장수는 모두 미치광이의 표본으로 되어 있습니다.
"난, 미치광이가 있는 곳 따위엔 가고 싶지 않아요."
"가고 싶지 않았지만 별수 없을 걸. 여기 살고 있는 것은 모두가 미치광일까 말야. 너도 미치광이, 나도 미치광이야."
"어째서 내가 미치광인 줄 아셔요?"
"미치광이임에 틀림없이 그렇지 않다면 우선 여길 오지 않았을 테니까."
"그럼, 당신이 미치광이란 어떻게 아셔요."
"개는 미치광이가 아니야. 그건 인정하지?"
"예."
"그럼 말하겠다. 개는 성을 내면 으르렁댄다. 기쁠 땐 소리를 친다. 그런데 나는 성이 나면 꼬리를 치고, 기쁘면 으르렁댄다. 그러니까 나는 미치광이지."
"그건 으르렁댄다고 하지 않고 목을 울린다고 하는 거여요."
"마음대로 말하란 말이다. 그런 소리를 하는 너는 오늘 여왕님과 크로우케이 놀이를 할 참인가?"
"가고 싶지만, 아직 초대를 받지 못했어요."
"그런가. 그렇다면 나중에 회장에서 다시 만나지."
그러고선 고양이는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엘리스는 이제 신기한 일이 생기게 되는데 대해선 많이 익숙해 있기 때문에, 조금도 놀라지 않았습니다. 고양이가 모습을 나타내었습니다.
"깜빡 잊어버리고 물어 보지 못했는데, 어린애는 어떻게 된 거야?"
"돼지가 돼버렸어요."
"그럴 줄 알았지."
그 말이 끝나자 다시 고양이는 사리 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엘리스는 3월토끼가 있는 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습니다.
"모자장수라면 본 적이 있었지만, 3월토끼 쪽이 더 재미있을 것 같아. 지금은 5월, 토끼가 날뛴다는 3월보다는 덜 날뛰겠지."
하고, 혼잣말을 하면서 엘리스가 힐끈 위를 바라보고 나뭇가지 고양이가 앉아 있었습니다.
"돼지였던가, 아니면 후추였던가?"
고양이의 얼굴은 진실해 보였습니다.
"돼지입니다. 그건 그렇고, 제발 그렇게 갑자기 나타나고 갑자기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눈이 빙빙 돌 지경 아니어요."
"알았어, 알았어."
고양이는 이렇게 말하고는 궁둥이 쪽부터 사라지기 시작하여 마지막에는 그 능글맞은 웃음만이 남았습니다.
"아이 참, 이상도 해라. 웃지 않는 고양이는 얼마든지 봤지만, 고양이는 사라져 없어지고 능글맞은 웃음만 남다니, 난생 처음 보겠어."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는 동안 3월토끼가 사는 집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굴뚝이 토끼의 귀모양으로 생겼고, 지붕이 털가죽으로 덮여 있었으므로,
"3월토끼의 집에 틀림없다." 하고 엘리스는 생각했습니다.
너무나 큰집이었기 때문에 엘리스는 왼손에 쥐고 있던 버섯조각을 조금씩 씹었습니다.
60센티미터 정도의 키가 되기 전에는 그 집 가까이에 가고 싶은 생각이 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키가 커진 후에도,
"만약 3월토끼가 난폭하게 굴면 어떻게 하나. 차라리 모자장수 쪽으로 가는 게 좋았을지도 몰라."
하고, 겁을 내면서 집 가까이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집 앞 나무 밑에는 테이블이 놓여 있습니다. 거기서 3월토끼와 모자 장수가 정답게 차를 마시고 있습니다. 그 둘 사이에 앉아서 곤히 잠들어 있는 것은 산 쥐입니다. 둘은 그것을 쿠션 삼아 번갈아 팔꿈치를 짚고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습니다.
"산 쥐는 꽤 거북할 거야. 그러나 잠이 들어 모르는 모양이지."
엘리스의 이 말을 듣자.
"자리가 없어, 자리가 없어!"
하고, 갑자기 모두들 떠들어댔습니다.
큰 테이블인데도 셋은 모두 구석 쪽에 몰려 앉아 있습니다.
"자리가 많이 비어 있는데요."
새침해진 엘리스는 반대쪽 안락의자에 가서 앉았습니다.
"포도주를 드릴까요?"
엘리스를 달래듯 3월토끼가 상냥하게 말했습니다. 엘리스는 테이블 위를 살펴보았지만 차만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왜 똑똑히 말하지 않는 거야. 말을 할 때는 제가 생각한 대로 분명하게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단 말이다."
3월토끼는 힘을 주어 말했습니다.
"물론 언제나 그렇게 하고 있어요. 적어도 전 제가 말하는 그대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마찬가지 아녀요?"
"절대로 마찬가지가 아냐."
모자 장수가 엘리스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 말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내가 먹는 것이 보인다.'와 '나는 내게 보이는 것을 먹는다.'는 말이 마찬가지란 셈이 된다."
모자 장수의 말이 끝나자, 3월토끼가 거기에 덧붙이기라도 하는 듯,
"'나는 얻는 것을 좋아한다.'와 '나는 좋아하는 것을 얻는다.'라는 거나 마찬가지야."
하고 참견을 했습니다. 그러자 자고 있던 산 쥐까지도,
"'나는 자고 있을 때 숨을 쉰다.'와 '나는 숨쉬고 있을 때 자고 있다.'가 마찬가지야."
하고 잠꼬대 모양 말했습니다.
여기서 잠깐 말이 중단되었습니다. 모두들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 침묵을 깨뜨린 것은 모자 장수입니다.
"오늘이 며칠이지?"
하고, 엘리스를 보면서 말했습니다. 모자 장수는 아까부터 호주머니에서 시계를 끄집어내어 가끔 흔들기도 하고, 귀에 대보기도 하면서 조심스럽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틀림없이 4일이야."
"이틀이 틀렸어, 이 시계는."
모자 장수는 길게 한숨을 내 쉬었습니다.
"그러므로 버터는 이 기계에 좋지 않다고 그랬잖아."
3월토끼를 보고 모자 장수는 화를 내듯 말했습니다.
"그건 제일 좋은 버터였었는데 말야."
"틀림없이 그 빵찌꺼기가 들어간 모양이야. 빵 자르는 칼로 바른 것이 좋지 않았던 거야."
3월토끼는 시계를 받아 들고 난처한 듯 보고 있었습니다. 엘리스는 신기하다는 듯이 토끼 뒤에서 넘겨다보고 있었습니다.
"이상한 시계. 날짜는 알지만 시간을 알 수 없는 시계라니."
"그것으로 충분하지 뭐야. 네 시계는 몇 핸지 알 수 있어?"
"몰라요. 그런 것은."
하고, 엘리스는 부랴부랴 말을 덧붙였습니다.
"그것은, 한 해가 너무 길기 때문이어요."
"내 시계도 역시 마찬가지야."
"저, 말씀하시는 뜻을 잘 모르겠어요."
엘리스는 무어가 무언지 전혀 모르게 되었습니다. 모자 장수가 말한 것은 아무 뜻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이 잠꾸러기 쥐놈, 또 잠이 들었군!"
산 쥐를 향해 이렇게 내뱉은 모자 장수는 산 쥐의 콧등 위에 뜨거운 물을 조금 쏟았습니다. 산 쥐는 성가시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고는,
"그래, 그래, 맞았어. 나도 이제 막 그렇게 말하려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야."
하고, 눈을 감은 채 졸리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수수께끼는 풀렸나?"
모자 장수가 엘리스를 향해 갑자기 말했습니다.
"아녀요. 난 손을 들겠어요. 답은 뭐여요?"
"나 역시 전혀 모르겠어."
모자 장수가 이렇게 말하자,
"나 역시."
하고 3월토끼가 한몫 끼었습니다.
엘리스는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풀 수 없는 수수께끼를 한다는 건 시간의 낭비야. 좀더 시간을 효과 있게 써야 할걸."
"옳은 말이야. 하지만 네가 나 만큼 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면, 그것을 낭비한다는 따위의 말은 하지 않을 거야. 아마 너는 와 말을 해 본적이 없는 모양이지?"
모자 장수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아주 얕잡아보는 말투였습니다.
"예, 그렇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피아노를 연습할 때, 를 치는 것(박차 맞추는 것)쯤은 알고 있어요."
"아, 이제야 알았어. 라지만 얻어맞는다는 건 아주 싫어하지. 그것과 사이 좋게 해두면, 네가 필요한 시간에 시계를 움직여 줄 거야. 가령, 아침 아홉 시, 공부를 시작할 시간이 됐다고 하자. 그때 를 향하여 조금만 귀띔만 해주면 시계 바늘은 눈 깜짝할 사이에 휙 돌아서 '예, 지금은 한시 반, 점심 시간입니다.'라고 하게 되는 거야."
"지금이 그 시간이라면 좋을 텐데."
나지막한 목소리로 혼잣말을 한 것은 3월토끼였습니다.
"확실히 그건 근사해요. 그렇게 된다면 언제나 배가 고파지지 않을 거야."
"처음엔 그렇겠지. 그러나 돈으로 세워 둘 수 있어."
"당신은 언제나 그렇게 하고 있나요?"
엘리스는 모자 장수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물었습니다.
그러나 모자 장수는 슬픈 표정을 하고 고개를 저으며,
"그렇지 못해. 우리는 지난 3월에 와 싸움을 했어."
찻숟갈로 3월토끼를 가리키며,
"저놈이 미치광이가 되는 바로 직전이었어. 하트 여왕님이 베푼 음악회의 회장이었었지. 그때 나는,
훨, 훨, 박쥐여
너는 뭘 노리고 있지.
이런 노래를 부르게 돼 있었어. 너도 이 노래를 알고 있을 거야. 다음 구절은 이렇단다.
온 세상 위를 돌아다니며
쟁반처럼 하늘을 날아
훨, 훨, 훨, 훨.
그런데 내가 이 노래를 다 부르자마자,
'이 사내의 박자는 엉망이다. 를 천대하고 있다. 빨리 목을 베도록 하라!'하고, 여왕님께서 소리를 지르셨지."
"아니, 그렇게 야만적일 수가……"
엘리스는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반대로,
"그러고 난 후부터는……"
하고 얘기를 계속하는 모자 장수의 말소리는 풀이 죽어 있었습니다.
"……는 나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게 대버렸어. 그래서 이제는 언제까지나 이렇게 여섯 시인 거야."
"아, 그래요? 그래서 차도구가 이렇게 많이 나와 있는 거여요?"
"그렇단다. 언제까지나 차를 마시는 시간이니까, 그릇을 씻을 참도 없단다."
"그래서 번갈아 자리를 바꾸시는군요."
"그래. 잔이 비거나 그릇이 더러워지면 자리를 바꾸는 거야."
"한 바퀴 돌고, 처음 그 자리에 오게 되면 어떻게 하시나요?"
엘리스가 흥미를 나타내 보이자, 3월토끼가 크게 하품을 하고는,
"화제를 바꾸자."
하고 말했습니다.
"그런 얘기는 그만하면 됐어. 이제 진저리가 나. 어때, 이번에는 아가씨에게 뭔가 얘기를 들어 보도록 하지."
엘리스는 깜짝 놀랐습니다.
"전 아무것도 몰라요."
"그럼, 산 쥐에게 시킬까. 이봐, 일어낫!"
둘이 동시에 소리를 지르고는 산 쥐의 옆구리를 꼬집었습니다. 그러자 산 쥐는 천천히 눈을 떴습니다.
"난 자고 있은 게 아녀. 너희들의 얘기를 죄다 듣고 있었어."
"그런 건 아무래도 좋으니, 얘기를 해보란 말야."
"그래, 그래. 빨리 얘기를 들려줘요."
엘리스는 3월토끼 못지 않게 졸라댔습니다.
"빨리빨리 하려무나."
하고, 모자 장수가 재촉을 했습니다.
"빨리 하지 않으면 너는 또 얘기도 끝내기 전에 자고 말 테니까 말야."
"응, 알았어. 옛날옛적에 나이 어린 세 자매가 있었습니다. 이름은 앨시, 레이시, 틸리, 이 세 자매는 우물 밑바닥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산 쥐는 빠르게 지껄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럼, 그 사람들은 뭘 먹고살고 있었지?"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해 유별나게 흥미를 가지고 있는 엘리스입니다. 그래서 대뜸 물었습니다.
"당밀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럴 리가 없어요. 금새 병에 걸리고 말 텐데."
"그래서 병에 걸렸답니다. 아주 중한 병에."
엘리스는 그 별난 생활에 대해 상상해 보려 했지만, 아무리 해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물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왜 우물 밑바닥에서 살고 있었나요?"
"그건, 당밀의 우물이었기 때문이야."
"그런 것이 있을 까닭이 없어요."
엘리스는 남을 바로 취급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모자 장수와 3월토끼가 애써 말리기에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것뿐이랴. 거기다 산 쥐까지도,
"점잖게 듣고 있지 못한다면, 그럼 이 얘기를 네가 계속하려무나."
할 정도였습니다.
"아녀요, 미안해요. 다음을 계속해 주셔요."
하며, 엘리스는 아주 점잖아졌습니다. 그러나,
"……그리고 그 세 자매는 퍼내는 방법을 배우고 있었습니다."
하고 산 쥐가 말하자,
"뭘 퍼내는 거여요?"
하고 또다시 참견을 했습니다. 그러나 산 쥐는 이번에는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당밀이지."
하고 가볍게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모자 장수가 이야기를 가로막아버렸습니다.
"아직 손을 대지 않은 깨끗한 컵이 탐나는구나. 모두들 한 자리씩 옆으로 옮겨 앉기로 하지."
이렇게 말하면서 모자 장수가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러자 산 쥐도 옮겨 앉고, 3월토끼는 산 쥐 자리에, 엘리스는 시무룩하니 3월토끼 자리로 옮겨 앉았습니다. 가장 덕을 본 것은 모자 장수였고, 가장 손해를 본 것은 엘리스입니다. 3월토끼가 쟁반 위에 우유통을 뒤집어엎고 옮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엘리스는 산 쥐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 봐 꾹 참았습니다. 산 쥐는 또 졸음이 온 모양입니다. 하품을 하다가, 눈을 문지르면서 이야기를 계속했습니다.
"세 자매는 퍼내는 방법을 배우고 있었습니다. 갖가지 것을 퍼냈습니다. 으로 시작되는 것……"
"왜, 으로 시작하는 거여요?"
"아무러면 어때."
옆에서 3월토끼가 고함을 질렀으므로 엘리스는 또 말문을 닫고 말았습니다.
산 쥐는 눈을 감고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지만, 모자 장수가 꼭 꼬집었기 때문에 당황해 하며 말을 계속했습니다.
"엠으로 시작되는 것, 이를테면 이라든가, 이라든가, 라든가. 그래그래, 너는 이라는 것을 퍼내는 것을 본 적이 있어?"
"아아니, 난 아직……"
이상한 질문에 엘리스는 얼떨떨했습니다.
"그렇다면 잠자코 있으면 어때!"
모자 장수의 거친 말투에 엘리스는 화가 치밀었습니다.
"어머, 이런 실례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엘리스는 테이블을 떠나 걷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가 뒤에서 말려 주리라 생각하고 두세 번 뒤돌아보았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모른 체하고 있습니다.
산 쥐는 그동안에 잠들고 있습니다. 3월토끼와 모자 장수는 그 산 쥐를 번쩍 쳐들어 큼직한 병 속에 집어넣으려고 했습니다.
"난, 두 번 다시 그따위 곳에 안 갈 테야. 그런 미치광이놀음 같은 다과회에 간 것은 난생 처음이야."
숲 속을 향해 걸으며 엘리스가 이렇게 말하고 있을 때, 한 나무둥치에 문이 달려 있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아, 이상한 나무다. 모두가 다 이상한 일투성이니까, 이 안에 들어가 봐도 괜찮겠지."
엘리스는 곧장 나무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자세히 주위를 살펴보니 처음에 들어왔던 바로 그 좁고 긴 방이었습니다.
"이번에야말로 잘해 봐야지."
신이 난 엘리스는 우선 조그만 황금열쇠를 집어들고, 아름다운 뜰로 나가는 문을 열었습니다. 그리하여 호주머니에 넣어둔 버섯조각을 씹어 30센티미터쯤의 키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좁다란 길을 당당히 걸어갔습니다.
마침내 그 아름다운 뜰로 나왔습니다.
눈이 부신 듯한 꽃밭, 시원한 분수……
엘리스의 눈은 그 뜰 입구에 멎었습니다.
뜰 입구에 심어 놓은 커다란 장미나무에는 아름다운 흰 꽃이 잔뜩 피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일까요. 세 사람의 정원사가 그 흰 꽃을 빨간 페인트로 열심히 칠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어머나…… 별짓을 다 하는 사람들이야."
이상하게 생각한 엘리스는 좀더 자세히 보려고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그러자 정원사 중의 한 사람이,
"이봐, 5, 조심해. 페인트가 튀잖아!"
하고 화가 난 듯 소리를 질렀습니다.
"7이란 놈이 내 팔꿈치를 쳤어. 하는 수 없지 않아."
5가 뾰로통해 말하자, 7이 약이 올라 얼굴을 쳐들었습니다.
"이 녀석은 언제나 남에게 죄를 뒤집어 씌워!"
"넌 잠자코 있어! 여왕님께서 너의 목을 날려 버리겠다고 어제 말씀하셨어."
진짜냐, 5. 왜 그러시지?"
"네가 알 바 아냐. 2, 잠자코 있어!" 7이 고함을 질렀습니다.
"아니, 2가 알아서 뭐가 나쁘단 말이냐. 좋아 그렇다면 내가 얘기하지. 이놈이 요리사에게 양파를 가져가야 하는 것을 튤립의 뿌리를 가져간 거야."
이렇게 말하고 5가 웃자, 7이 손에 쥐고 있던 솔을 발 앞에 팽개치면서,
"뭐가 우스워? 도대체……"
하고 말을 시작하다가 갑자기 입을 다물고 말았습니다. 엘리스가 노려보고 있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입니다.
그러는 순간에 5도 2도 눈길을 옆으로 돌렸습니다. 그러고는 당황해 하며 공손히 인사를 했습니다. 엘리스는 가볍게 머리를 숙여 보이고는 세 사람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저, 여러분들은 왜 그 장미를 붉게 칠을 하고 있는 거여요? 그 이유를 들려주세요."
5와 7은 한동안 서로 마주쳐다보더니, 2에게로 눈길을 돌렸습니다.2는 나지막이 말문을 열었습니다.
"예, 실은 여기에 빨간 장미 나무를 심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그만 잘못되어 흰 것을 심고 말았지요. 만일 여왕님의 눈에 띄기만 하면 그야말로 목이 달아나게 됩니다. 그래서 여왕님께서 납시기 전에…"
"앗…… 여왕님이시다!"
걱정스레 망을 보고 있던 5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습니다.
"여왕님이시다. 여왕님이시다."
세 사람은 겁에 질린 소리를 지르며 땅바닥에 푹 엎드리고 말았습니다.
차츰 많은 사람들의 말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엘리스는 여왕이 보고 싶어 눈을 반짝이며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귀를 기울였습니다.
선두에는 몽둥이를 든 열 사람의 병정 모두가, 세 사람의 정원사와 똑같이 몸집이 네모꼴에다 납작하고, 손발은 각각 네 귀퉁이에 달려 있습니다.
그 뒤에 열 사람의 부하는 온몸을 다이아몬드로 치장하고, 병정들과 마찬가지로 두 줄을 지어 걸어가고 있습니다.
다음에는 둘씩 손에 손을 잡고 깡충깡충 뛰며 따라가는 귀여운 어린이 열 명. 그것은 모두 왕자와 왕녀들입니다. 모두가 하트 꼴의 장식물을 가슴에 달고 있습니다.
그 뒤를 이어 따라가는 것이 손님입니다. 거의 왕과 여왕들이었지만 그 중엔 흰토끼가 끼어 있습니다. 잽싸게 무언가를 지껄이고 있습니다. 상대 쪽에서 무언가를 이야기하면 곧 미소 진 얼굴로 기분을 맞추곤 합니다.
물론 엘리스가 있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지나쳐가고 말았습니다.
뒤이어 하트의 잭이 빨간 빌로오도 위에 왕관을 얹고 조용히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맨 마지막은 하트의 왕과 여왕입니다.
엘리스는 세 사람의 정원사처럼 땅에 엎드리지 않으면 안 되는지, 하고 한동안 망설였습니다. 그러나 왕의 행차를 만나면 반드시 땅에 엎드려야 한다는 규칙은 이제껏 들은 적이 없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아무 구경도 못하게 되는 걸. 모처럼의 행차도 아무 소용이 없잖아.'
행렬은 엘리스 앞에 이르자 갑자기 멈췄습니다.
"이 사람은 누구냐!"
여왕의 칼칼한 목소리가 주위에 짱하고 울려 퍼졌습니다. 그 말은 들은 하트의 잭은 허리를 굽실하고는 빙그레 웃을 따름입니다. "바보 같으니!" 하고 여왕은 호통을 치며 엘리스 쪽을 향해, "너의 이름은 뭐라고 하지?" 하고 물었습니다.
여왕의 시선을 장미나무 밑에 엎드려 있는 세 사람에게 가서 멈췄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세 사람의 등 모습이 다른 트럼프와 똑같습니다. 부하인지, 병정인지, 혹은 자기의 아이들인지 도무지 분간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런 걸 제가 알게 뭐여요. 모르겠어요!"
엘리스는 자기가 너무나 대담한 데에 놀랐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여왕의 얼굴이 새빨개졌습니다. 사나운 짐승처럼 엘리스를 노려보았습니다.
"이놈의 목을 쳐라! 목을!"
무서우리만큼 날카로운 목소리입니다. 그러나, 엘리스도 지지 않습니다.
"무슨 말씀이어요!"
여왕은 깜짝 놀라 멈칫했습니다.
주먹을 꼭 쥔 손이 너무나 분해 부들부들 떨고 있습니다. 그 팔 위에 조용히 손을 얹은 것은 왕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라. 이 아이는 아직 어린애가 아니냐."
왕으로부터 이 말을 들은 여왕은 얼굴을 휙 정원사 쪽으로 돌리고 말았습니다.
"잭, 이것들을 모두 뒤집어랏!"
"예."
하면서, 엎드리고 있는 하나하나를 뒤집어 나갔습니다.
"일어섯!"
여왕의 위엄있는 고함 소리에 세 사람의 정원사는 벌떡 일어나 섰습니다.
그러고는 왕, 여왕, 왕자, 아니 누구건 닥치는 대로 굽실굽실 머리를 숙였습니다.
"눈이 빙빙 돈다. 그만둬, 그만둬!"
빠른 입으로 외치면서 여왕은 힐끗 장미나무 쪽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너희들은 여기서 뭘하고 있는 거야."
"예, 저희들은 사실은 저…"
2는 한쪽 팔꿈치를 짚고 겁에 질려 있습니다.
"알았어, 이것들의 목을 베랏!"
장미나무를 빤히 들여다보고 있던 여왕이 크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큰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습니다.
행렬은 세 사람의 정원사와 세 사람의 병정만을 남기고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정원사들은 도움을 청하러 엘리스에게로 달려왔습니다. "절대로 목을 베게 내버려두지는 않을 테다!"
엘리스는 옆에 있는 큼직한 화분 안에 세 사람을 감췄습니다. 세 병정은 한동안 이들을 찾아 헤매다간 이윽고 단념하고 행렬 뒤를 쫓아갔습니다. 엘리스도 그 뒤를 따랐습니다.
"목은 댕강 다 벴겠지?"
여왕은 걸음을 멈추고 세 병정이 얼굴을 쳐다보았습니다.
"옛! 분분하신 대로."
병정들은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대답했습니다.
"잘했어…… 너는 크로우케이를 할 줄 아는가?"
여왕의 눈길이 엘리스 쪽으로 향했기 때문에 그 말은 엘리스에게 한 것인 줄 당장 눈치챘습니다.
"예. 할 줄 알아요."
"그럼, 따라오려무나."
엘리스는 행렬 속에 끼었습니다. 이번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엘리스는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왠지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습니다.
"저…… 오늘은 굉장히 날씨가 좋군요."
하면서 옆을 쳐다보니, 흰토끼가 근심스럽게 엘리스의 얼굴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렇구나, 참……공작 부인은 어디 계셔요?"
"쉿……"
흰토끼가 주의를 주었기 때문에 엘리스는 깜짝 놀랐습니다. 흰토끼는 기지개를 켜고 나서 힐끗 뒤를 한번보고는 엘리스의 귓전에 입을 갖다 댔습니다.
"공작 부인은 사형선고를 받았어요."
"뭐, 왜?"
"여왕님의 얼굴을 때렸어요."
"아니, 그게 정말이어요?"
엘리스는 너무 우스워 픽하고 웃었습니다.
"쉿, 조용히!"
하는, 흰토끼의 주의를 받고 애써 웃음을 참았습니다. 그러나 킥킥킥 자꾸만 웃음이 삐어져 나왔습니다.
"조용히, 조용히! 여왕님께 들으시면 그야말로 큰일이다. 공작 부인은 그때 상당히 늦게 왔지 뭐야. 그랬더니 여왕님께서……"
하고 흰토끼가 말을 시작하자마자,
"제자리에 돌아갓!"
하고 여왕이 벼락같은 소리로 명령을 내렸습니다.
모두가 당황하여 흩어져 뛰기 시작했습니다. 부딪치고 넘어지며 온통 난장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1, 2분이 지나자 가까스로 조용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경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아이 참, 이상스런 경기장이로군. 이런 건 난생 처음 보는걸."
엘리스의 눈이 휘둥그래진 것도 당연합니다. 경기장은 온통 울퉁불퉁하여 마치 이랑과 고랑이 물결치는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공을 치는 망치는 산 홍학이고, 공도 산 고슴도치입니다. 그리고 공이 굴러나가는 아치(문)는 병정들이 몸을 꾸부려 양손을 땅바닥에 짚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경기가 시작되자, 엘리스가 가장 어렵다고 생각한 것은 그 홍학의 취급입니다. 홍학을 옆구리에 끼고 머리로 고슴도치를 치려들자, 홍학이 휙 목을 치켜들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고는 멍청히 엘리스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그 괴상스런 얼굴,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올 지경입니다.
그래도 가까스로 홍학의 머리를 아래로 굽히고 공을 치려들자 이제까지 몸을 동그랗게 하고있던 고슴도치가 갑자기 허리를 펴고는 꿈틀꿈틀 기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고슴도치를 굴리려고 하면 이랑과 고랑이 방해를 합니다. 또 아치에 처넣으려고 하면 꾸부리고 있던 병정들이 자꾸만 일어서서 제멋대로 걸어가고 마는 것입니다. 엘리스는 정말 어려운 놀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뿐이 아닙니다. 경기를 하는 사람들은 차례도 기다리지 않고 제멋대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슴도치를 서로 차지하려고 야단법석입니다. 여기저기서 싸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본 여왕은 크게 화를 내어,
"당장 저놈의 목을 베랏!" "이 여자의 목을 날려버렷!" 하고, 마구 호통을 쳤습니다.
엘리스는 은근히 겁이 났습니다. 아직까지는 여왕과 한번도 부닥친 일이 없었지만, 언제 어디서 야단을 맞을지 모릅니다.
'그렇게 될 경우 나는 어떻게 될까? 그건 그렇고, 어째서 여기서는 걸핏하면 사람의 목을 자르는 것을 좋아할까? 아직까지 살아 남아 있는 사람이 있는 것이 신기하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엘리스는 어디로 도망칠 길은 없을까, 하고 주위를 살펴보았습니다. 문득 위를 쳐다보니 공중에 이상한 것이 떠 있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처음에는 뭐가 뭔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가만히 눈여겨보고 있으니 그것이 능청스레 웃고 있는 모양입니다.
"앗, 체셔 고양이다!"
엘리스는 그 순간 매우 기뻤습니다.
'가까스로 말벗이 생겼어.'
그러나 아직은 말을 걸어 봐도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입이 툭 튀어나왔습니다.
"오, 안녕!"
하고 그 입이 말했습니다.
엘리스는 눈이 보이게 되는 것을 기다려 인사를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목까지 완전히 나타나게 되어 홍학을 내려놓고 크로우케이 놀이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들어 주는 상대가 생겨서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이 경기는 엉망진창이었어. 경기 규칙도 없고, 있다고 하더라도 싸움질만 하는 판이니 그게 제대로 지켜질 리 없어요. 제멋대로이지, 도무지 남의 말 따윈 거들떠보지도 않으니까 말야. 게다가 아치라는 것까지도 마구 걸어다니고, 여왕님의 공에 내 공을 맞히려들자, 여왕님의 고슴도치라는 게 갑자기 달아나 버리잖아. 막 맞을 순간에 말야."
"그러나, 그런데 너는 그 여왕님이 좋은가?"
나지막한 소리로 고양이가 물었습니다.
머리만 내놓고 있으면 되는 줄 알았는지, 고양이는 그 이상 몸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아아니, 난……"
하고 엘리스가 말을 하기 시작했을 때, 바로 뒤에 여왕님이 서 있는 것을 눈치챘습니다. 그래서 엘리스는 말을 돌리고 말았습니다.
"끝까지 승부를 다툴 필요는 없었어. 그야 여왕님이 이길게 틀림없으니까 말야. 그렇잖아?"
여왕은 빙그레 웃고는 지나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왕은 엘리스에게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넌 누구와 말을 하고 있는 거야?"
이렇게 말하면서 왕은 신기하다는 듯, 목만 내놓고 있는 고양이를 지켜보았습니다.
"이건 저의 동무로서, 체셔 고양이라고 합니다."
"뭣, 체셔 고양이? 마음에 들지 않는 얼굴이야. 그렇지만 소원이라면 내 손에 키스를 해도 좋아."
"아니어요, 괜찮습니다."
"으흠, 고약한 놈이 로고, 그렇게 말똥말똥 내 얼굴을 노려보는 게 아냐."
왕은 엘리스 뒤에 숨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임금님, 고양이에게도 임금님을 볼 권리가 있습니다. 무슨 책인가에도 씌어 있었어요."
"안 돼, 안 돼. 냉큼 없어져랏!"
마침 그때, 여왕이 돌아왔습니다.
"오, 자넨가. 이 고양이를 냉큼 없애주려무나!"
"목을 베랏!"
어떤 문제고 여왕이 해결하는 방법은 꼭 한 가지뿐입니다.
"좋아, 그렇다면 내가 가서 목베는 관리를 데리고 오지."
왕의 모습이 안 보이자, 엘리스는 크로우케이 승부 구경을 하고 올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경기장으로 되돌아와 보니까 굉장한 혼잡이었습니다. 누가 누구인지 전혀 분간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엘리스는 거기에 서 있는 것이 싫어졌습니다.
그래서 다시 체셔 고양이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왔습니다. 그러자 어찌된 일입니까. 고양이의 주위는 구름처럼 사람들이 모여 있지 않겠습니까?
여왕과 왕, 그리고 목베는 관리가 웅성웅성 무슨 소리인가 주고받고 있습니다. 주위의 사람들은 모두들 숨을 죽이고 무언가 몹시 난처한 모습들을 하고 있습니다. 엘리스를 보자 세 사람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이 문제를 해결해 주구려." 하고 말했습니다. 세 사람의 말소리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기 때문에 무슨 말인지 잘 분간할 수가 없었습니다. 목베는 관리는, "몸뚱이가 없으면 목을 벨 수가 없어." 이런 말을 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왕은, "목이 있다면 베어질 것이다. 바보 같은 소릴 말아." 하고, 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여왕은 이제 당장 무슨 결판을 내지 않으면 죄다 사형에 처하고 말겠다는 듯이 주위를 노려보고 있는 것입니다.
엘리스는 별달리 뾰족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기 때문에,
"이 고양이는 공작 부인의 고양이여요. 그러니까, 공작 부인에게 물어 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요."
하고 대답했습니다. 과연 그 말이 옳다는 듯이 크게 고개를 끄덕이던 여왕은, "감옥에 갇혀 있는 공작 부인을 여기에 끌고 오라!" 하고, 목베는 관리에게 명령했습니다.
목베는 관리는 쏜살같이 달려갔습니다. 그러자 고양이의 목은 차츰 사라지기 시작하여 공작 부인을 데리고 왔을 때는 이미 완전히 사라져버리고 만 후였습니다.
왕과 목베는 관리는 눈이 휘둥그래져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찾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다시 크로우케이 놀이를 시작하였습니다.
"귀여운 아가야, 내가 너를 다시 보게 돼서 얼마나 기쁜지 모를 거야." 공작부인은 이렇게 말하며 열정적으로 앨리스의 팔짱을 꼈다. 그리고 그들은 함께 걸어다녔다.
앨리스는 공작부인이 그렇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것을 보고 기뻤다. 그리고 그들이 부엌에서 만났을 때 그렇게 야만적으로 행동한 건 모두 후추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공작부인이 되면," 앨리스는 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리 기대하는 투는 아니었다.)
"내 부엌에는 절대 후추를 갖다놓지 말아야지. 후추를 넣지 않아도 수프는 아주 맛있을 테니까- 사람들을 화나게하는 건 항상 후추가 아닐까?,"
[역자 주 ; 'hot-tempered'- 'hot'이 '매운 맛' 이라는 맛을 나타내는 뜻과 '성급한, 화난'이라는 사람의 기분을 나타내는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는 데서 착안한 pun 장난이다. 양념 이름들 뒤에 나오는 사람의 기분을 나타내는 단어들은 그 양념의 맛을 나타내는 뜻도 가지고 있는 pun들이다.]
앨리스는 새로운 규칙을 발견한 데 대해 아주 기뻐하며 계속 했다.
"그리고 식초는 사람들을 까다롭게 만들고, 카모밀라 차는 모질게 만들고, 그리고, 보리엿 같은 것 들은 아이들을 말 잘 듣게 만들지. 사람들이 이 사실을 좀 알았으면 좋겠어. 그러면 사탕을 주는데 그렇게 째째하게 굴진 않을 텐데..."
앨리스는 이때까지 공작부인에 대해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래서 공작부인의 목소리가 귓전에서 울렸을 때 조금 놀랐다. "아가야, 넌 지금 딴 생각하고 있구나, 대화하고 있다는 것도 잊어버리다니, 지금은 이 교훈이 뭔지 생각나지 않지만 조금 있으면 생각해 낼 수 있을 거야."
"그런 건 없을 것 같은데요." 앨리스가 용감하게 말했다.
"쯧쯧, 아가야." 공작부인이 말했다. "모든 것에는 교훈이 있단다. 네가 찾아낼 수 만 있다면 말이야." 그리고는 앨리 스에게 착 달라붙었다.
앨리스는 그녀가 이렇게 달라붙는 것이 달갑지 않았다.
첫째로, 공작부인은 너무 못생겼고 다음으로, 그녀의 키가 앨 리스의 어깨에 턱을 얹기에 딱 알맞았기 때문이다.
공작부인의 턱은 불편할 정도로 뾰족했다. 하지만, 앨리스는 무례 하게 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최대한 참기로 했다.
"이제 게임이 좀 제대로 되어 가는 것 같네요." 대화를 계속할 생각으로 앨리스가 말했다.
"그렇구나." 공작부인이 말했다. "그리고 그 교훈은, '아, 사랑, 사랑이여,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것이여!'"
"어떤 사람이 그러는데요." 앨리스가 속삭였다.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건 사람들이 각자 자기 일에나 신경쓰기 때문 이라던데요."
"아, 그래. 그건 둘 다 같은 뜻이야." 공작부인이 말했다. 그리고 날카로운 턱으로 앨리스의 어깨를 찍어눌렀다. "그리고 그 교훈은 '귀 기울여라. 그러면 들릴 것이다.'"
[역자 주 ; 원문은 "Take care of the sense, and the sounds will take care of themselves"로 "Take care of the pense, and the pounds will take care of themselves(한푼 두푼 아끼면 목돈은 저절로 모인다.)"라는 격언에서 단어 두 개만 비슷한 발음의 다른 단어로 바꾼 패러디 격언이다.]
"이 여자는 여기저기서 교훈을 찾아내는 걸 무척 좋아하나 봐." 앨리스는 속으로 생각했다.
"왜 내가 네 허리에 팔을 두르지 않는지 궁금하지 않니?" 잠시 후에 공작부인이 말했다. "그 홍학이 사납게 굴까봐 그래. 한 번 시험해 봐도 될까?"
"물지도 몰라요." 앨리스는 시험해 보는 것을 그리 달갑게 생각하지 않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래 맞아." 공작부인이 말했다. "홍학하고 겨자는 둘 다 물지.[역자 주 ; "bite(물다)"는 '(식초나 겨자 따위가) 톡 쏘다, 자극하다.'라는 뜻도 있다. 이 또한 pun.] 그리고 그 교훈은 '유유상종.'"
"하지만 겨자는 새가 아니에요." 앨리스가 말했다.
"맞아, 보통은 그렇지." 공작부인이 말했다. "넌 사물을 참 명확하게 정의내리는구나."
"그건 광물이 아닌가 하는데요." 앨리스가 말했다.
"물론 그렇지." 앨리스가 말하는 데는 무조건 동의하려고 작정한 사람처럼 공작부인이 말했다. "여기 근처에 커다란 겨자 광산이 있어. 그리고 그 교훈은 '내 것이 많아질수록 상대방의 것은 줄어든다.'"
[역자 주 ; 앞의 'mine(광산)'이 라는 단어가 갑자기 '내 것'이라는 뜻으로 바뀌었다. 이 또한 pun.]
"아, 맞아요." 그녀의 마지막 말을 듣고 있지 않던 앨리스는 소리쳤다. "그건 채소예요. 그렇게 보이지는 않지만 말예 요."
"그래 정말 그런 것 같구나," 공작부인이 말했다. "그리고 그 교훈은 '남들이 보아주길 바라는 대로 행동하라.' 아니 면, '너 자신이 그랬었던 바나 그렇지 않게 보일 수도 있었던 바가 아니라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네가 그렇거나 그럴 수도 있었던 바대로 다른 사람에게 보여질 수 있는 자신은 절대 상상하지 마라.'"
"그것이 글로 쓰여 있었다면 더 잘 이해됐을 텐데요." 앨리스가 아주 공손하게 말했다. "하지만 말로 하시니까 잘 따 라갈 수가 없어요."
"내가 말하고자 하면 할 수 없는 건 아무 것도 없어." 공작부인이 기쁜 듯이 대답했다.
"제발 그것보다 더 긴말을 하시는 수고는 하지 마세요." 앨리스가 말했다.
"아, 수고라니, 무슨." 공작부인이 말했다. "지금까지 한 말들을 전부 너에게 선물로 주겠다."
"참 싸구려 선물이구나." 앨리스는 생각했다. "그런 걸 생일선물로 주지 않아서 다행이야." 그러나 감히 큰소리로 말 하지는 못했다.
"또 무슨 생각하니?" 공작부인은 다시 그 뾰족한 턱을 어깨에 찍어누르며 물어왔다.
"전 생각할 권리가 있어요." 앨리스는 날카롭게 대답했다. 조금 성가시게 느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돼지가 날아다닐 수 있는 만큼 권리가 있지." 공작부인이 말했다. "그리고 그 교-"
공작부인이 그렇게 좋아하는 단어인 '교훈'을 말하는 도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사그라들자 앨리스는 조금 의아했다. 그리고 자신의 팔에 낀 공작부인의 팔이 떨리기 시작하는 것을 느끼고 위를 올려다보니, 그들 앞에 여왕이 서서 팔짱을 끼고 먹구름 낀 하늘처럼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_ 루이스 캐럴 (2)
1, 2분 동안 엘리스는 그 집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제부터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노라니까, 숲 속에서 느닷없이 제복을 입은 하인이 달려왔습니다. 하인이라고 짐작한 것은 하인의 제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얼굴만 보면 물고기였습니다.
문 앞에 서자, 주먹을 불끈 쥐고 쿵쿵쿵 두들겼습니다. 그러자 얼른 문을 열어 준 것은 다른 하인이었습니다. 똑같은 제복을 입고 있습니다. 개구리 같은 커다란 눈을 하고 있는 둥근 얼굴이었습니다. 문을 두들긴 하인도, 문을 연 하인도 모두 머리는 온통 곱슬머리였고, 하얀 가루가 그 위에 뿌려져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다."
엘리스는 숲 속에서 조금 나와 귀를 기울였습니다.
"공작 부인에게 여왕님으로부터, 크로우케이 놀이(나무 공을 나무 방망이로 쳐서 철문을 통과시키는 운동)의 초대장이올시다."
하고, 처음 말한 것은 물고기 같이 생긴 하인입니다. 겨드랑이에 끼고 있던 자기만큼이나 큰 봉투를 공손하게 내밀었습니다. 그러자 개구리를 닮은 하인도,
"여왕님께서 공작 부인에게 크로우케이 놀이의 초대장이올시다.."
하고, 말의 순서는 조금 바꿨을 뿐 역시 정중하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서로 공손하게 인사를 주고받았습니다. 그러자 곱슬머리가 서로 얽혔습니다.
엘리스는 하도 우스워서 배꼽을 쥐고 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하인들이 들으면 그야말로 큰일나겠다고 생각하여 허둥지둥 숲 속으로 달아나고 말았습니다. 잠시 후 되돌아보니까, 벌써 물고기를 닮은 하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개구리를 닮은 하인만이 땅바닥에 주저앉아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엘리스는 숨을 죽이고 현관에 가까이 다가가서 톡톡톡 문을 두들겼습니다. 그러자,
"두들겨도 헛일이다." 하고 하인이 말했다.
그런데 집 안에는 굉장한 소동이 일어난 모양입니다. 울부짖는 소리와 쟁반들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안에 들어갈 수 있니?"
"당신과 나 사이에 만일 문이 달려 있다면, 그야 문을 두들기는 것도 뜻이 있겠지. 가령 당신이 집 안에 있으며 문을 두들기면 내가 문을 열어 주어 당신을 바깥으로 내보내 주겠다."
개구리를 닮은 하인은 말을 하면서도 여전히 하늘만 보고 있기에 엘리스는,
'실례가 아니냐." 하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마 하는 수 없는 모양이지."
엘리스는 중얼거렸습니다.
"이 사람의 눈은 머리 꼭대기 가까이에 붙어 있단 말이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내가 묻는 말에 대답쯤은 해줘도 좋잖아."
엘리스는 우정 큰 소리를 질렀습니다.
"어떻게 하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지?"
"내일까지 난 여기에 앉아 있을 테야."
하인이 이렇게 말했을 때입니다. 얼른 문이 열리더니 커다란 쟁반이 소리를 내며 날아왔습니다. 그것은 하인의 코끝을 스쳐 뒤에 있는 나무에 부딪쳐 부서졌습니다. 그래도 하인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여전한 태도로,
"경우에 따라서는 모레까지." 하고 말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지?"
엘리스는 아까보다도 훨씬 더 큰 소리로 같은 것을 물었습니다.
"넌, 도대체 들어가야 하겠다는 생각이 있는 거냐? 그것이 우선 중요한 문제란 말이다."
확실히 하인의 말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엘리스는 그따위 말버릇이 몹시 싫었습니다.
"싫어, 싫단 말이야. 어째서 동물들은 이렇게 말이 많을까? 기분이 이상해지잖아."
하인은 조금 전의 그 말을 되풀이해야 할 때는 바로 이때구나 하고 벼른 듯이,
"나는, 여기에 하루고 이틀이고 앉아 있을 따름이야."
하고, 일부러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럼, 난 어떡하면 좋아."
"좋을 대로……"
하인은 이렇게 말하자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습니다. 엘리스는 어이가 없었습니다.
"이런 사람하곤 아무리 얘기해도 소용없어. 정말 어딘가 잘못됐나 봐!"
엘리스는 제 마음대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바로 큰 부엌으로 통해 있고, 방에는 여기가 자욱하게 끼어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자니까, 방 한가운데에 세 다리 의자가 놓여 있고, 거기에 공작 부인이 앉아서 어린애를 달래고 있었습니다.
난롯불 옆에서 허리를 꾸부리고, 수프가 가득 들어 있는 커다란 냄비를 휘젓고 있는 이는 식모인 모양입니다.
"저 수프에는 후춧가루가 너무 많이 들어 있어."
에취, 에취, 재채기를 하면서 엘리스는 간신히 이 말만을 했습니다. 확실히 주위의 공기가 매웠습니다. 공작 부인 역시 연거푸 재채기를 하고 있습니다. 어린애까지도 재채기를 하면서 자꾸만 보채고 있습니다. 재채기를 하지 않는 것은, 부엌에서 요리하는 여자와 난로 위에서 귀까지 찢어지도록 큰 입을 벌리고 혼자서 웃고 있는 커다란 고양이뿐이었습니다.
"저 …… 죄송하지만."
하고, 엘리슨 조심조심 물었습니다. 공작 부인에게 자기 쪽에서 먼저 말을 거는 것이 예의에 벗어나는 건지 아닌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저 고양이는 어찌 저렇게 능글맞게 웃고만 있습니까."
"체셔 고양이니까."
체셔(잉글랜드의 서부에 있는 주)의 고양이는 능글맞게 잘 웃는다는 소문이 나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도 능청맞게 잘 웃는 사람을 보고 체셔 고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공작 부인은 또 말을 계속했습니다.
"모른단 말이냐? 체셔 고양이에겐 능글맞게 웃는 버릇이 따라다닌다는 것을, 이 돼지야."
공작 부인의 마지막 말투가 느닷없이 난폭했기 때문에 엘리스는 깜짝 놀라 펄쩍 뛰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자기에게 하는 말이 아니고, 어린애에게 한 것인 줄 금새 알아차릴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다시 말을 계속했습니다.
"전 정말 체셔 고양이에 대해선 모르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또 고양이가 웃는다는 건 모르고 있었으니까요."
"고양이는 웃을 수 있는 거야, 대부분의 고양이는."
"전 그런 말씀을 처음 듣는 걸요."
"넌 그리 많이 알고 있지 못하는군."
공작 부인의 그 말투가 엘리스에겐 아무래도 못마땅했습니다. 그래서 무언가 다른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을 때입니다. 수프 냄비를 난로에서 들어 내린 식모가 갑자기 그 근처에 있는 물건들을 닥치는 대로 집어서 공작 부인과 어린애에게 마구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부삽, 냄비, 쟁반 등이 비오듯이 날았습니다. 공작 부인은 맞아도 예사입니다. 어린애는 그전부터 울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들에 맞아 아파서 우는지 어쩐지 도무지 알 수 없었습니다
"무슨 짓이야, 조심해!"
엘리스는 너무나 무서워서 몇 번이고 깡충깡충 뛰어오르면서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모든 사람들이 남의 일에 참견을 않는다면 지구는 지금보다 훨씬 더 빨리 돌 거야."
하고, 공작 부인이 신음하듯 목쉰 소리로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좋다고는 생각할 수 없어요."
엘리스는 제 지식을 뽐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왔다고 몹시 기뻐했습니다.
"만일, 그렇게 되면 밤과 낮이 어떻게 될지 생각해 보셔요. 지구는 남북의 축(축을 영어로 액시스라 함)을 중심으로 자전하는데 24시간 걸리며, 밤과 낮이 꼭 반반씩이고……"
"잠깐! 도끼(도끼를 영어로 액스라 함)라고? 그래, 이 애의 모가지를 댕강 잘라버려!"
엘리스는 깜짝 놀라 식모가 있는 쪽을 돌아보았습니다만, 그 여자는 열심히 수프 냄비를 휘젓고 있을 뿐입니다. 겨우 안심이 된 엘리스는 말을 계속했습니다.
"틀림없이 24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12시간이라든가?"
"닥쳐! 난 숫자라면 진절머리가 난단 말이다!"
하고 외친 후에, 공작 부인은 다시 어린애를 달래기 시작했습니다. 자장가 비슷한 노래를 부르면서, 한 절이 끝날 때마다 어린애를 거칠게 뒤흔드는 것입니다.
어린애가 재채기를 했을 땐 야단을 치고 두들겨 줘라.
애를 먹이려고 하는 짓이 재미가 나서 하는 짓이야.
(합창) 와아 와아 와아 (식모와 어린애가 함께 불렀습니다.)
공작 부인은 노래의 2절을 부르면서 어린애를 난폭스럽게 위로 던졌다가 도로 받아 안았습니다. 가엾은 어린아기! 귀가 따갑게 울어댑니다. 엘리스가 노래의 가사를 알아들을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어린애가 재채기를 했을 땐 야단을 치고 두들겨 줘라.
제 멋대로 장난을 하고 어린 애는 후춧가루를 좋아한다.
(합창) 와아 와아 와아
"자, 웬만하면 어린애를 좀봐주지."
공작 부인은 어린애를 엘리스 쪽으로 난폭하게 던졌습니다. 엘리스는 가까스로 어린애를 받아 안았습니다.
"난, 여왕님의 크로우케이 놀이 모임에 갈 채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
공작 부인은 부리나케 방을 나갔습니다.
그 뒷등을 향하여 식모가 프라이팬을 냅다 던졌으나 약간 빗나가 다행이 맞지는 않았습니다. 엘리스는 어린애를 보았습니다.
"어머나, 마치 불가사리 같아!"
팔다리가 사방으로 불쑥불쑥 튀어나와 아주 기묘한 꼴을 하고 있었습니다. 받아 안았을 때, 어린애를 마치 증기기관차 모양 코를 실룩거리고 있었습니다. 거기다가 자꾸만 몸을 꾸부리고 배를 불쑥 내밀고 하기 때문에, 처음 한동안은 놓치지나 않나 하고 혼이 났습니다.
그러나 엘리스는 이내 어린애를 어떻게 안으면 좋은가를 알았습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내가 이 아이를 데리고 가지 않으면 아마 틀림없이 하루 이틀 후에는 맞아 죽을 거야. 그러니까 이 아이를 그냥 두고 간다는 것은 살인범과 다름없지 않을까?"
엘리스가 이렇게 중얼대자 어린애는 마치 돼지같이 꿀꿀댔습니다. 재채기는 어느 새 그 쳤습니다.
"꿀꿀하다니 참 이상해. 이 따위 말투가 어디 있단 말야."
엘리스는 깜짝 놀라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습니다.
"아, 돼지구나!"
틀림없이 돼지였습니다. 엘리스는 이 이상 안고 있는 것이 창피해졌습니다. 그래서 내려놓자, 돼지새치는 얌전하게 숲 속으로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만일 저 어린애가 저대로 자란다면 꽤 보기 흉한 애가 될거야. 하지만, 돼지치고는 잘 생긴 편인지도 모르지."
엘리스가 한숨을 내쉬며 이린?말했을 때, 3미터쯤 앞 나뭇가지에 조금 전의 그 체셔 고양이가 있는 것을 깨닫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데 고양이는 엘리스를 보자, 능청스레 웃을 뿐입니다. 엘리스는 성질이 괜찮아 고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발톱이 길고 이빨이 많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다루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체셔 고양이야."
엘리스는 두려워하면서 말을 걸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고양이는 입을 크게 벌리고, 그저 능청맞게 웃어대기만 했습니다.
"기분이 좋은가봐, 됐어!"
방긋 웃으며 엘리스는 말을 계속했습니다.
"저, 잠깐 말 좀 묻겠다는 데요, 여기서 어느 쪽으로 가야 좋을까요?"
"그건 네 마음에 달렸지."
"아무데고 괜찮겠습니다만."
"그럼 아무데나 가려무나."
"하지만, 어디엔가 가서 닿았으면……"
"자꾸만 걸어가면 틀림없이 어디엔가 가서 닿겠지."
'옳은 말씀."
하고, 엘리스는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다른 것을 물었습니다.
"이 근방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나요?"
"저 쪽에는……"
하면서 고양이는 오른팔을 흔들며,
"모자장수가 살고 있지."
이번에는 왼팔을 돌리며,
"저 쪽에는 3월토끼가 살고 있어. 어느 쪽이고 좋을 대로 가보렴. 두 쪽 다 미치광이지만."
잉글랜드에서는 무슨 이유인지 3월토끼와 모자 장수는 모두 미치광이의 표본으로 되어 있습니다.
"난, 미치광이가 있는 곳 따위엔 가고 싶지 않아요."
"가고 싶지 않았지만 별수 없을 걸. 여기 살고 있는 것은 모두가 미치광일까 말야. 너도 미치광이, 나도 미치광이야."
"어째서 내가 미치광인 줄 아셔요?"
"미치광이임에 틀림없이 그렇지 않다면 우선 여길 오지 않았을 테니까."
"그럼, 당신이 미치광이란 어떻게 아셔요."
"개는 미치광이가 아니야. 그건 인정하지?"
"예."
"그럼 말하겠다. 개는 성을 내면 으르렁댄다. 기쁠 땐 소리를 친다. 그런데 나는 성이 나면 꼬리를 치고, 기쁘면 으르렁댄다. 그러니까 나는 미치광이지."
"그건 으르렁댄다고 하지 않고 목을 울린다고 하는 거여요."
"마음대로 말하란 말이다. 그런 소리를 하는 너는 오늘 여왕님과 크로우케이 놀이를 할 참인가?"
"가고 싶지만, 아직 초대를 받지 못했어요."
"그런가. 그렇다면 나중에 회장에서 다시 만나지."
그러고선 고양이는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엘리스는 이제 신기한 일이 생기게 되는데 대해선 많이 익숙해 있기 때문에, 조금도 놀라지 않았습니다. 고양이가 모습을 나타내었습니다.
"깜빡 잊어버리고 물어 보지 못했는데, 어린애는 어떻게 된 거야?"
"돼지가 돼버렸어요."
"그럴 줄 알았지."
그 말이 끝나자 다시 고양이는 사리 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엘리스는 3월토끼가 있는 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습니다.
"모자장수라면 본 적이 있었지만, 3월토끼 쪽이 더 재미있을 것 같아. 지금은 5월, 토끼가 날뛴다는 3월보다는 덜 날뛰겠지."
하고, 혼잣말을 하면서 엘리스가 힐끈 위를 바라보고 나뭇가지 고양이가 앉아 있었습니다.
"돼지였던가, 아니면 후추였던가?"
고양이의 얼굴은 진실해 보였습니다.
"돼지입니다. 그건 그렇고, 제발 그렇게 갑자기 나타나고 갑자기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눈이 빙빙 돌 지경 아니어요."
"알았어, 알았어."
고양이는 이렇게 말하고는 궁둥이 쪽부터 사라지기 시작하여 마지막에는 그 능글맞은 웃음만이 남았습니다.
"아이 참, 이상도 해라. 웃지 않는 고양이는 얼마든지 봤지만, 고양이는 사라져 없어지고 능글맞은 웃음만 남다니, 난생 처음 보겠어."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는 동안 3월토끼가 사는 집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굴뚝이 토끼의 귀모양으로 생겼고, 지붕이 털가죽으로 덮여 있었으므로,
"3월토끼의 집에 틀림없다." 하고 엘리스는 생각했습니다.
너무나 큰집이었기 때문에 엘리스는 왼손에 쥐고 있던 버섯조각을 조금씩 씹었습니다.
60센티미터 정도의 키가 되기 전에는 그 집 가까이에 가고 싶은 생각이 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키가 커진 후에도,
"만약 3월토끼가 난폭하게 굴면 어떻게 하나. 차라리 모자장수 쪽으로 가는 게 좋았을지도 몰라."
하고, 겁을 내면서 집 가까이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집 앞 나무 밑에는 테이블이 놓여 있습니다. 거기서 3월토끼와 모자 장수가 정답게 차를 마시고 있습니다. 그 둘 사이에 앉아서 곤히 잠들어 있는 것은 산 쥐입니다. 둘은 그것을 쿠션 삼아 번갈아 팔꿈치를 짚고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습니다.
"산 쥐는 꽤 거북할 거야. 그러나 잠이 들어 모르는 모양이지."
엘리스의 이 말을 듣자.
"자리가 없어, 자리가 없어!"
하고, 갑자기 모두들 떠들어댔습니다.
큰 테이블인데도 셋은 모두 구석 쪽에 몰려 앉아 있습니다.
"자리가 많이 비어 있는데요."
새침해진 엘리스는 반대쪽 안락의자에 가서 앉았습니다.
"포도주를 드릴까요?"
엘리스를 달래듯 3월토끼가 상냥하게 말했습니다. 엘리스는 테이블 위를 살펴보았지만 차만 있을 뿐입니다.
"포도주가 없잖아요."
"아 참, 그렇군."
하고, 말한 것은 3월토끼입니다.
"어머, 실례! 없는 것을 권한다는 건."
"초대도 안 했는데 와서 앉는 것은 실례가 아닌가?"
3월토끼도 지지 않고 대들었습니다.
"당신의 식탁인진 미처 몰랐어요. 하지만 세 사람 분보단 훨씬 많은 걸."
"당신 머리카락을 조금 자르면 어때?"
느닷없이 옆에서 참견한 것은 모자 장수입니다. 모자 장수는 아까부터 엘리스를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남의 일을 이러쿵저러쿵 참견하는 게 아녀요. 실례여요."
모자 장수는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래졌지만,
"큰 유리가 책상을 닮은 것은 왜 그렇지."
하고, 불쑥 한 마디 했을 뿐입니다.
"야, 차츰 재미가 나는군. 난 수수께끼를 정말 좋아해요. 맞혀 봐요?"
"그럼, 넌 그 답을 알고 있다는 거지."
하고, 참견한 것은 3월토끼입니다.
"그럼요."
"그렇다면 왜 똑똑히 말하지 않는 거야. 말을 할 때는 제가 생각한 대로 분명하게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단 말이다."
3월토끼는 힘을 주어 말했습니다.
"물론 언제나 그렇게 하고 있어요. 적어도 전 제가 말하는 그대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마찬가지 아녀요?"
"절대로 마찬가지가 아냐."
모자 장수가 엘리스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 말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내가 먹는 것이 보인다.'와 '나는 내게 보이는 것을 먹는다.'는 말이 마찬가지란 셈이 된다."
모자 장수의 말이 끝나자, 3월토끼가 거기에 덧붙이기라도 하는 듯,
"'나는 얻는 것을 좋아한다.'와 '나는 좋아하는 것을 얻는다.'라는 거나 마찬가지야."
하고 참견을 했습니다. 그러자 자고 있던 산 쥐까지도,
"'나는 자고 있을 때 숨을 쉰다.'와 '나는 숨쉬고 있을 때 자고 있다.'가 마찬가지야."
하고 잠꼬대 모양 말했습니다.
여기서 잠깐 말이 중단되었습니다. 모두들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 침묵을 깨뜨린 것은 모자 장수입니다.
"오늘이 며칠이지?"
하고, 엘리스를 보면서 말했습니다. 모자 장수는 아까부터 호주머니에서 시계를 끄집어내어 가끔 흔들기도 하고, 귀에 대보기도 하면서 조심스럽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틀림없이 4일이야."
"이틀이 틀렸어, 이 시계는."
모자 장수는 길게 한숨을 내 쉬었습니다.
"그러므로 버터는 이 기계에 좋지 않다고 그랬잖아."
3월토끼를 보고 모자 장수는 화를 내듯 말했습니다.
"그건 제일 좋은 버터였었는데 말야."
"틀림없이 그 빵찌꺼기가 들어간 모양이야. 빵 자르는 칼로 바른 것이 좋지 않았던 거야."
3월토끼는 시계를 받아 들고 난처한 듯 보고 있었습니다. 엘리스는 신기하다는 듯이 토끼 뒤에서 넘겨다보고 있었습니다.
"이상한 시계. 날짜는 알지만 시간을 알 수 없는 시계라니."
"그것으로 충분하지 뭐야. 네 시계는 몇 핸지 알 수 있어?"
"몰라요. 그런 것은."
하고, 엘리스는 부랴부랴 말을 덧붙였습니다.
"그것은, 한 해가 너무 길기 때문이어요."
"내 시계도 역시 마찬가지야."
"저, 말씀하시는 뜻을 잘 모르겠어요."
엘리스는 무어가 무언지 전혀 모르게 되었습니다. 모자 장수가 말한 것은 아무 뜻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이 잠꾸러기 쥐놈, 또 잠이 들었군!"
산 쥐를 향해 이렇게 내뱉은 모자 장수는 산 쥐의 콧등 위에 뜨거운 물을 조금 쏟았습니다. 산 쥐는 성가시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고는,
"그래, 그래, 맞았어. 나도 이제 막 그렇게 말하려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야."
하고, 눈을 감은 채 졸리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수수께끼는 풀렸나?"
모자 장수가 엘리스를 향해 갑자기 말했습니다.
"아녀요. 난 손을 들겠어요. 답은 뭐여요?"
"나 역시 전혀 모르겠어."
모자 장수가 이렇게 말하자,
"나 역시."
하고 3월토끼가 한몫 끼었습니다.
엘리스는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풀 수 없는 수수께끼를 한다는 건 시간의 낭비야. 좀더 시간을 효과 있게 써야 할걸."
"옳은 말이야. 하지만 네가 나 만큼 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면, 그것을 낭비한다는 따위의 말은 하지 않을 거야. 아마 너는 와 말을 해 본적이 없는 모양이지?"
모자 장수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아주 얕잡아보는 말투였습니다.
"예, 그렇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피아노를 연습할 때, 를 치는 것(박차 맞추는 것)쯤은 알고 있어요."
"아, 이제야 알았어. 라지만 얻어맞는다는 건 아주 싫어하지. 그것과 사이 좋게 해두면, 네가 필요한 시간에 시계를 움직여 줄 거야. 가령, 아침 아홉 시, 공부를 시작할 시간이 됐다고 하자. 그때 를 향하여 조금만 귀띔만 해주면 시계 바늘은 눈 깜짝할 사이에 휙 돌아서 '예, 지금은 한시 반, 점심 시간입니다.'라고 하게 되는 거야."
"지금이 그 시간이라면 좋을 텐데."
나지막한 목소리로 혼잣말을 한 것은 3월토끼였습니다.
"확실히 그건 근사해요. 그렇게 된다면 언제나 배가 고파지지 않을 거야."
"처음엔 그렇겠지. 그러나 돈으로 세워 둘 수 있어."
"당신은 언제나 그렇게 하고 있나요?"
엘리스는 모자 장수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물었습니다.
그러나 모자 장수는 슬픈 표정을 하고 고개를 저으며,
"그렇지 못해. 우리는 지난 3월에 와 싸움을 했어."
찻숟갈로 3월토끼를 가리키며,
"저놈이 미치광이가 되는 바로 직전이었어. 하트 여왕님이 베푼 음악회의 회장이었었지. 그때 나는,
훨, 훨, 박쥐여
너는 뭘 노리고 있지.
이런 노래를 부르게 돼 있었어. 너도 이 노래를 알고 있을 거야. 다음 구절은 이렇단다.
온 세상 위를 돌아다니며
쟁반처럼 하늘을 날아
훨, 훨, 훨, 훨.
그런데 내가 이 노래를 다 부르자마자,
'이 사내의 박자는 엉망이다. 를 천대하고 있다. 빨리 목을 베도록 하라!'하고, 여왕님께서 소리를 지르셨지."
"아니, 그렇게 야만적일 수가……"
엘리스는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반대로,
"그러고 난 후부터는……"
하고 얘기를 계속하는 모자 장수의 말소리는 풀이 죽어 있었습니다.
"……는 나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게 대버렸어. 그래서 이제는 언제까지나 이렇게 여섯 시인 거야."
"아, 그래요? 그래서 차도구가 이렇게 많이 나와 있는 거여요?"
"그렇단다. 언제까지나 차를 마시는 시간이니까, 그릇을 씻을 참도 없단다."
"그래서 번갈아 자리를 바꾸시는군요."
"그래. 잔이 비거나 그릇이 더러워지면 자리를 바꾸는 거야."
"한 바퀴 돌고, 처음 그 자리에 오게 되면 어떻게 하시나요?"
엘리스가 흥미를 나타내 보이자, 3월토끼가 크게 하품을 하고는,
"화제를 바꾸자."
하고 말했습니다.
"그런 얘기는 그만하면 됐어. 이제 진저리가 나. 어때, 이번에는 아가씨에게 뭔가 얘기를 들어 보도록 하지."
엘리스는 깜짝 놀랐습니다.
"전 아무것도 몰라요."
"그럼, 산 쥐에게 시킬까. 이봐, 일어낫!"
둘이 동시에 소리를 지르고는 산 쥐의 옆구리를 꼬집었습니다. 그러자 산 쥐는 천천히 눈을 떴습니다.
"난 자고 있은 게 아녀. 너희들의 얘기를 죄다 듣고 있었어."
"그런 건 아무래도 좋으니, 얘기를 해보란 말야."
"그래, 그래. 빨리 얘기를 들려줘요."
엘리스는 3월토끼 못지 않게 졸라댔습니다.
"빨리빨리 하려무나."
하고, 모자 장수가 재촉을 했습니다.
"빨리 하지 않으면 너는 또 얘기도 끝내기 전에 자고 말 테니까 말야."
"응, 알았어. 옛날옛적에 나이 어린 세 자매가 있었습니다. 이름은 앨시, 레이시, 틸리, 이 세 자매는 우물 밑바닥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산 쥐는 빠르게 지껄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럼, 그 사람들은 뭘 먹고살고 있었지?"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해 유별나게 흥미를 가지고 있는 엘리스입니다. 그래서 대뜸 물었습니다.
"당밀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럴 리가 없어요. 금새 병에 걸리고 말 텐데."
"그래서 병에 걸렸답니다. 아주 중한 병에."
엘리스는 그 별난 생활에 대해 상상해 보려 했지만, 아무리 해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물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왜 우물 밑바닥에서 살고 있었나요?"
"그건, 당밀의 우물이었기 때문이야."
"그런 것이 있을 까닭이 없어요."
엘리스는 남을 바로 취급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모자 장수와 3월토끼가 애써 말리기에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것뿐이랴. 거기다 산 쥐까지도,
"점잖게 듣고 있지 못한다면, 그럼 이 얘기를 네가 계속하려무나."
할 정도였습니다.
"아녀요, 미안해요. 다음을 계속해 주셔요."
하며, 엘리스는 아주 점잖아졌습니다. 그러나,
"……그리고 그 세 자매는 퍼내는 방법을 배우고 있었습니다."
하고 산 쥐가 말하자,
"뭘 퍼내는 거여요?"
하고 또다시 참견을 했습니다. 그러나 산 쥐는 이번에는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당밀이지."
하고 가볍게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모자 장수가 이야기를 가로막아버렸습니다.
"아직 손을 대지 않은 깨끗한 컵이 탐나는구나. 모두들 한 자리씩 옆으로 옮겨 앉기로 하지."
이렇게 말하면서 모자 장수가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러자 산 쥐도 옮겨 앉고, 3월토끼는 산 쥐 자리에, 엘리스는 시무룩하니 3월토끼 자리로 옮겨 앉았습니다. 가장 덕을 본 것은 모자 장수였고, 가장 손해를 본 것은 엘리스입니다. 3월토끼가 쟁반 위에 우유통을 뒤집어엎고 옮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엘리스는 산 쥐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 봐 꾹 참았습니다. 산 쥐는 또 졸음이 온 모양입니다. 하품을 하다가, 눈을 문지르면서 이야기를 계속했습니다.
"세 자매는 퍼내는 방법을 배우고 있었습니다. 갖가지 것을 퍼냈습니다. 으로 시작되는 것……"
"왜, 으로 시작하는 거여요?"
"아무러면 어때."
옆에서 3월토끼가 고함을 질렀으므로 엘리스는 또 말문을 닫고 말았습니다.
산 쥐는 눈을 감고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지만, 모자 장수가 꼭 꼬집었기 때문에 당황해 하며 말을 계속했습니다.
"엠으로 시작되는 것, 이를테면 이라든가, 이라든가, 라든가. 그래그래, 너는 이라는 것을 퍼내는 것을 본 적이 있어?"
"아아니, 난 아직……"
이상한 질문에 엘리스는 얼떨떨했습니다.
"그렇다면 잠자코 있으면 어때!"
모자 장수의 거친 말투에 엘리스는 화가 치밀었습니다.
"어머, 이런 실례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엘리스는 테이블을 떠나 걷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가 뒤에서 말려 주리라 생각하고 두세 번 뒤돌아보았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모른 체하고 있습니다.
산 쥐는 그동안에 잠들고 있습니다. 3월토끼와 모자 장수는 그 산 쥐를 번쩍 쳐들어 큼직한 병 속에 집어넣으려고 했습니다.
"난, 두 번 다시 그따위 곳에 안 갈 테야. 그런 미치광이놀음 같은 다과회에 간 것은 난생 처음이야."
숲 속을 향해 걸으며 엘리스가 이렇게 말하고 있을 때, 한 나무둥치에 문이 달려 있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아, 이상한 나무다. 모두가 다 이상한 일투성이니까, 이 안에 들어가 봐도 괜찮겠지."
엘리스는 곧장 나무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자세히 주위를 살펴보니 처음에 들어왔던 바로 그 좁고 긴 방이었습니다.
"이번에야말로 잘해 봐야지."
신이 난 엘리스는 우선 조그만 황금열쇠를 집어들고, 아름다운 뜰로 나가는 문을 열었습니다. 그리하여 호주머니에 넣어둔 버섯조각을 씹어 30센티미터쯤의 키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좁다란 길을 당당히 걸어갔습니다.
마침내 그 아름다운 뜰로 나왔습니다.
눈이 부신 듯한 꽃밭, 시원한 분수……
엘리스의 눈은 그 뜰 입구에 멎었습니다.
뜰 입구에 심어 놓은 커다란 장미나무에는 아름다운 흰 꽃이 잔뜩 피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일까요. 세 사람의 정원사가 그 흰 꽃을 빨간 페인트로 열심히 칠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어머나…… 별짓을 다 하는 사람들이야."
이상하게 생각한 엘리스는 좀더 자세히 보려고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그러자 정원사 중의 한 사람이,
"이봐, 5, 조심해. 페인트가 튀잖아!"
하고 화가 난 듯 소리를 질렀습니다.
"7이란 놈이 내 팔꿈치를 쳤어. 하는 수 없지 않아."
5가 뾰로통해 말하자, 7이 약이 올라 얼굴을 쳐들었습니다.
"이 녀석은 언제나 남에게 죄를 뒤집어 씌워!"
"넌 잠자코 있어! 여왕님께서 너의 목을 날려 버리겠다고 어제 말씀하셨어."
진짜냐, 5. 왜 그러시지?"
"네가 알 바 아냐. 2, 잠자코 있어!" 7이 고함을 질렀습니다.
"아니, 2가 알아서 뭐가 나쁘단 말이냐. 좋아 그렇다면 내가 얘기하지. 이놈이 요리사에게 양파를 가져가야 하는 것을 튤립의 뿌리를 가져간 거야."
이렇게 말하고 5가 웃자, 7이 손에 쥐고 있던 솔을 발 앞에 팽개치면서,
"뭐가 우스워? 도대체……"
하고 말을 시작하다가 갑자기 입을 다물고 말았습니다. 엘리스가 노려보고 있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입니다.
그러는 순간에 5도 2도 눈길을 옆으로 돌렸습니다. 그러고는 당황해 하며 공손히 인사를 했습니다. 엘리스는 가볍게 머리를 숙여 보이고는 세 사람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저, 여러분들은 왜 그 장미를 붉게 칠을 하고 있는 거여요? 그 이유를 들려주세요."
5와 7은 한동안 서로 마주쳐다보더니, 2에게로 눈길을 돌렸습니다.2는 나지막이 말문을 열었습니다.
"예, 실은 여기에 빨간 장미 나무를 심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그만 잘못되어 흰 것을 심고 말았지요. 만일 여왕님의 눈에 띄기만 하면 그야말로 목이 달아나게 됩니다. 그래서 여왕님께서 납시기 전에…"
"앗…… 여왕님이시다!"
걱정스레 망을 보고 있던 5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습니다.
"여왕님이시다. 여왕님이시다."
세 사람은 겁에 질린 소리를 지르며 땅바닥에 푹 엎드리고 말았습니다.
차츰 많은 사람들의 말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엘리스는 여왕이 보고 싶어 눈을 반짝이며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귀를 기울였습니다.
선두에는 몽둥이를 든 열 사람의 병정 모두가, 세 사람의 정원사와 똑같이 몸집이 네모꼴에다 납작하고, 손발은 각각 네 귀퉁이에 달려 있습니다.
그 뒤에 열 사람의 부하는 온몸을 다이아몬드로 치장하고, 병정들과 마찬가지로 두 줄을 지어 걸어가고 있습니다.
다음에는 둘씩 손에 손을 잡고 깡충깡충 뛰며 따라가는 귀여운 어린이 열 명. 그것은 모두 왕자와 왕녀들입니다. 모두가 하트 꼴의 장식물을 가슴에 달고 있습니다.
그 뒤를 이어 따라가는 것이 손님입니다. 거의 왕과 여왕들이었지만 그 중엔 흰토끼가 끼어 있습니다. 잽싸게 무언가를 지껄이고 있습니다. 상대 쪽에서 무언가를 이야기하면 곧 미소 진 얼굴로 기분을 맞추곤 합니다.
물론 엘리스가 있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지나쳐가고 말았습니다.
뒤이어 하트의 잭이 빨간 빌로오도 위에 왕관을 얹고 조용히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맨 마지막은 하트의 왕과 여왕입니다.
엘리스는 세 사람의 정원사처럼 땅에 엎드리지 않으면 안 되는지, 하고 한동안 망설였습니다. 그러나 왕의 행차를 만나면 반드시 땅에 엎드려야 한다는 규칙은 이제껏 들은 적이 없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아무 구경도 못하게 되는 걸. 모처럼의 행차도 아무 소용이 없잖아.'
행렬은 엘리스 앞에 이르자 갑자기 멈췄습니다.
"이 사람은 누구냐!"
여왕의 칼칼한 목소리가 주위에 짱하고 울려 퍼졌습니다. 그 말은 들은 하트의 잭은 허리를 굽실하고는 빙그레 웃을 따름입니다. "바보 같으니!" 하고 여왕은 호통을 치며 엘리스 쪽을 향해, "너의 이름은 뭐라고 하지?" 하고 물었습니다.
"예, 엘리스라고 합니다."
엘리스는 공손하게 대답하면서 마음 속으로는, '기껏해야 트럼프가 아니냐. 두려워할 것까지는 없어.'
하고, 자기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그럼, 거기 그 사람은 누구냐?"
여왕의 시선을 장미나무 밑에 엎드려 있는 세 사람에게 가서 멈췄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세 사람의 등 모습이 다른 트럼프와 똑같습니다. 부하인지, 병정인지, 혹은 자기의 아이들인지 도무지 분간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런 걸 제가 알게 뭐여요. 모르겠어요!"
엘리스는 자기가 너무나 대담한 데에 놀랐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여왕의 얼굴이 새빨개졌습니다. 사나운 짐승처럼 엘리스를 노려보았습니다.
"이놈의 목을 쳐라! 목을!"
무서우리만큼 날카로운 목소리입니다. 그러나, 엘리스도 지지 않습니다.
"무슨 말씀이어요!"
여왕은 깜짝 놀라 멈칫했습니다.
주먹을 꼭 쥔 손이 너무나 분해 부들부들 떨고 있습니다. 그 팔 위에 조용히 손을 얹은 것은 왕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라. 이 아이는 아직 어린애가 아니냐."
왕으로부터 이 말을 들은 여왕은 얼굴을 휙 정원사 쪽으로 돌리고 말았습니다.
"잭, 이것들을 모두 뒤집어랏!"
"예."
하면서, 엎드리고 있는 하나하나를 뒤집어 나갔습니다.
"일어섯!"
여왕의 위엄있는 고함 소리에 세 사람의 정원사는 벌떡 일어나 섰습니다.
그러고는 왕, 여왕, 왕자, 아니 누구건 닥치는 대로 굽실굽실 머리를 숙였습니다.
"눈이 빙빙 돈다. 그만둬, 그만둬!"
빠른 입으로 외치면서 여왕은 힐끗 장미나무 쪽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너희들은 여기서 뭘하고 있는 거야."
"예, 저희들은 사실은 저…"
2는 한쪽 팔꿈치를 짚고 겁에 질려 있습니다.
"알았어, 이것들의 목을 베랏!"
장미나무를 빤히 들여다보고 있던 여왕이 크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큰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습니다.
행렬은 세 사람의 정원사와 세 사람의 병정만을 남기고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정원사들은 도움을 청하러 엘리스에게로 달려왔습니다. "절대로 목을 베게 내버려두지는 않을 테다!"
엘리스는 옆에 있는 큼직한 화분 안에 세 사람을 감췄습니다. 세 병정은 한동안 이들을 찾아 헤매다간 이윽고 단념하고 행렬 뒤를 쫓아갔습니다. 엘리스도 그 뒤를 따랐습니다.
"목은 댕강 다 벴겠지?"
여왕은 걸음을 멈추고 세 병정이 얼굴을 쳐다보았습니다.
"옛! 분분하신 대로."
병정들은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대답했습니다.
"잘했어…… 너는 크로우케이를 할 줄 아는가?"
여왕의 눈길이 엘리스 쪽으로 향했기 때문에 그 말은 엘리스에게 한 것인 줄 당장 눈치챘습니다.
"예. 할 줄 알아요."
"그럼, 따라오려무나."
엘리스는 행렬 속에 끼었습니다. 이번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엘리스는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왠지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습니다.
"저…… 오늘은 굉장히 날씨가 좋군요."
하면서 옆을 쳐다보니, 흰토끼가 근심스럽게 엘리스의 얼굴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렇구나, 참……공작 부인은 어디 계셔요?"
"쉿……"
흰토끼가 주의를 주었기 때문에 엘리스는 깜짝 놀랐습니다. 흰토끼는 기지개를 켜고 나서 힐끗 뒤를 한번보고는 엘리스의 귓전에 입을 갖다 댔습니다.
"공작 부인은 사형선고를 받았어요."
"뭐, 왜?"
"여왕님의 얼굴을 때렸어요."
"아니, 그게 정말이어요?"
엘리스는 너무 우스워 픽하고 웃었습니다.
"쉿, 조용히!"
하는, 흰토끼의 주의를 받고 애써 웃음을 참았습니다. 그러나 킥킥킥 자꾸만 웃음이 삐어져 나왔습니다.
"조용히, 조용히! 여왕님께 들으시면 그야말로 큰일이다. 공작 부인은 그때 상당히 늦게 왔지 뭐야. 그랬더니 여왕님께서……"
하고 흰토끼가 말을 시작하자마자,
"제자리에 돌아갓!"
하고 여왕이 벼락같은 소리로 명령을 내렸습니다.
모두가 당황하여 흩어져 뛰기 시작했습니다. 부딪치고 넘어지며 온통 난장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1, 2분이 지나자 가까스로 조용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경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아이 참, 이상스런 경기장이로군. 이런 건 난생 처음 보는걸."
엘리스의 눈이 휘둥그래진 것도 당연합니다. 경기장은 온통 울퉁불퉁하여 마치 이랑과 고랑이 물결치는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공을 치는 망치는 산 홍학이고, 공도 산 고슴도치입니다. 그리고 공이 굴러나가는 아치(문)는 병정들이 몸을 꾸부려 양손을 땅바닥에 짚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경기가 시작되자, 엘리스가 가장 어렵다고 생각한 것은 그 홍학의 취급입니다. 홍학을 옆구리에 끼고 머리로 고슴도치를 치려들자, 홍학이 휙 목을 치켜들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고는 멍청히 엘리스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그 괴상스런 얼굴,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올 지경입니다.
그래도 가까스로 홍학의 머리를 아래로 굽히고 공을 치려들자 이제까지 몸을 동그랗게 하고있던 고슴도치가 갑자기 허리를 펴고는 꿈틀꿈틀 기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고슴도치를 굴리려고 하면 이랑과 고랑이 방해를 합니다. 또 아치에 처넣으려고 하면 꾸부리고 있던 병정들이 자꾸만 일어서서 제멋대로 걸어가고 마는 것입니다. 엘리스는 정말 어려운 놀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뿐이 아닙니다. 경기를 하는 사람들은 차례도 기다리지 않고 제멋대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슴도치를 서로 차지하려고 야단법석입니다. 여기저기서 싸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본 여왕은 크게 화를 내어,
"당장 저놈의 목을 베랏!" "이 여자의 목을 날려버렷!" 하고, 마구 호통을 쳤습니다.
엘리스는 은근히 겁이 났습니다. 아직까지는 여왕과 한번도 부닥친 일이 없었지만, 언제 어디서 야단을 맞을지 모릅니다.
'그렇게 될 경우 나는 어떻게 될까? 그건 그렇고, 어째서 여기서는 걸핏하면 사람의 목을 자르는 것을 좋아할까? 아직까지 살아 남아 있는 사람이 있는 것이 신기하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엘리스는 어디로 도망칠 길은 없을까, 하고 주위를 살펴보았습니다. 문득 위를 쳐다보니 공중에 이상한 것이 떠 있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처음에는 뭐가 뭔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가만히 눈여겨보고 있으니 그것이 능청스레 웃고 있는 모양입니다.
"앗, 체셔 고양이다!"
엘리스는 그 순간 매우 기뻤습니다.
'가까스로 말벗이 생겼어.'
그러나 아직은 말을 걸어 봐도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입이 툭 튀어나왔습니다.
"오, 안녕!"
하고 그 입이 말했습니다.
엘리스는 눈이 보이게 되는 것을 기다려 인사를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목까지 완전히 나타나게 되어 홍학을 내려놓고 크로우케이 놀이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들어 주는 상대가 생겨서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이 경기는 엉망진창이었어. 경기 규칙도 없고, 있다고 하더라도 싸움질만 하는 판이니 그게 제대로 지켜질 리 없어요. 제멋대로이지, 도무지 남의 말 따윈 거들떠보지도 않으니까 말야. 게다가 아치라는 것까지도 마구 걸어다니고, 여왕님의 공에 내 공을 맞히려들자, 여왕님의 고슴도치라는 게 갑자기 달아나 버리잖아. 막 맞을 순간에 말야."
"그러나, 그런데 너는 그 여왕님이 좋은가?"
나지막한 소리로 고양이가 물었습니다.
머리만 내놓고 있으면 되는 줄 알았는지, 고양이는 그 이상 몸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아아니, 난……"
하고 엘리스가 말을 하기 시작했을 때, 바로 뒤에 여왕님이 서 있는 것을 눈치챘습니다. 그래서 엘리스는 말을 돌리고 말았습니다.
"끝까지 승부를 다툴 필요는 없었어. 그야 여왕님이 이길게 틀림없으니까 말야. 그렇잖아?"
여왕은 빙그레 웃고는 지나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왕은 엘리스에게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넌 누구와 말을 하고 있는 거야?"
이렇게 말하면서 왕은 신기하다는 듯, 목만 내놓고 있는 고양이를 지켜보았습니다.
"이건 저의 동무로서, 체셔 고양이라고 합니다."
"뭣, 체셔 고양이? 마음에 들지 않는 얼굴이야. 그렇지만 소원이라면 내 손에 키스를 해도 좋아."
"아니어요, 괜찮습니다."
"으흠, 고약한 놈이 로고, 그렇게 말똥말똥 내 얼굴을 노려보는 게 아냐."
왕은 엘리스 뒤에 숨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임금님, 고양이에게도 임금님을 볼 권리가 있습니다. 무슨 책인가에도 씌어 있었어요."
"안 돼, 안 돼. 냉큼 없어져랏!"
마침 그때, 여왕이 돌아왔습니다.
"오, 자넨가. 이 고양이를 냉큼 없애주려무나!"
"목을 베랏!"
어떤 문제고 여왕이 해결하는 방법은 꼭 한 가지뿐입니다.
"좋아, 그렇다면 내가 가서 목베는 관리를 데리고 오지."
왕의 모습이 안 보이자, 엘리스는 크로우케이 승부 구경을 하고 올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경기장으로 되돌아와 보니까 굉장한 혼잡이었습니다. 누가 누구인지 전혀 분간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엘리스는 거기에 서 있는 것이 싫어졌습니다.
그래서 다시 체셔 고양이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왔습니다. 그러자 어찌된 일입니까. 고양이의 주위는 구름처럼 사람들이 모여 있지 않겠습니까?
여왕과 왕, 그리고 목베는 관리가 웅성웅성 무슨 소리인가 주고받고 있습니다. 주위의 사람들은 모두들 숨을 죽이고 무언가 몹시 난처한 모습들을 하고 있습니다. 엘리스를 보자 세 사람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이 문제를 해결해 주구려." 하고 말했습니다. 세 사람의 말소리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기 때문에 무슨 말인지 잘 분간할 수가 없었습니다. 목베는 관리는, "몸뚱이가 없으면 목을 벨 수가 없어." 이런 말을 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왕은, "목이 있다면 베어질 것이다. 바보 같은 소릴 말아." 하고, 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여왕은 이제 당장 무슨 결판을 내지 않으면 죄다 사형에 처하고 말겠다는 듯이 주위를 노려보고 있는 것입니다.
엘리스는 별달리 뾰족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기 때문에,
"이 고양이는 공작 부인의 고양이여요. 그러니까, 공작 부인에게 물어 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요."
하고 대답했습니다. 과연 그 말이 옳다는 듯이 크게 고개를 끄덕이던 여왕은, "감옥에 갇혀 있는 공작 부인을 여기에 끌고 오라!" 하고, 목베는 관리에게 명령했습니다.
목베는 관리는 쏜살같이 달려갔습니다. 그러자 고양이의 목은 차츰 사라지기 시작하여 공작 부인을 데리고 왔을 때는 이미 완전히 사라져버리고 만 후였습니다.
왕과 목베는 관리는 눈이 휘둥그래져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찾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다시 크로우케이 놀이를 시작하였습니다.
"귀여운 아가야, 내가 너를 다시 보게 돼서 얼마나 기쁜지 모를 거야." 공작부인은 이렇게 말하며 열정적으로 앨리스의 팔짱을 꼈다. 그리고 그들은 함께 걸어다녔다.
앨리스는 공작부인이 그렇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것을 보고 기뻤다. 그리고 그들이 부엌에서 만났을 때 그렇게 야만적으로 행동한 건 모두 후추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공작부인이 되면," 앨리스는 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리 기대하는 투는 아니었다.)
"내 부엌에는 절대 후추를 갖다놓지 말아야지. 후추를 넣지 않아도 수프는 아주 맛있을 테니까- 사람들을 화나게하는 건 항상 후추가 아닐까?,"
[역자 주 ; 'hot-tempered'- 'hot'이 '매운 맛' 이라는 맛을 나타내는 뜻과 '성급한, 화난'이라는 사람의 기분을 나타내는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는 데서 착안한 pun 장난이다. 양념 이름들 뒤에 나오는 사람의 기분을 나타내는 단어들은 그 양념의 맛을 나타내는 뜻도 가지고 있는 pun들이다.]
앨리스는 새로운 규칙을 발견한 데 대해 아주 기뻐하며 계속 했다.
"그리고 식초는 사람들을 까다롭게 만들고, 카모밀라 차는 모질게 만들고, 그리고, 보리엿 같은 것 들은 아이들을 말 잘 듣게 만들지. 사람들이 이 사실을 좀 알았으면 좋겠어. 그러면 사탕을 주는데 그렇게 째째하게 굴진 않을 텐데..."
앨리스는 이때까지 공작부인에 대해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래서 공작부인의 목소리가 귓전에서 울렸을 때 조금 놀랐다. "아가야, 넌 지금 딴 생각하고 있구나, 대화하고 있다는 것도 잊어버리다니, 지금은 이 교훈이 뭔지 생각나지 않지만 조금 있으면 생각해 낼 수 있을 거야."
"그런 건 없을 것 같은데요." 앨리스가 용감하게 말했다.
"쯧쯧, 아가야." 공작부인이 말했다. "모든 것에는 교훈이 있단다. 네가 찾아낼 수 만 있다면 말이야." 그리고는 앨리 스에게 착 달라붙었다.
앨리스는 그녀가 이렇게 달라붙는 것이 달갑지 않았다.
첫째로, 공작부인은 너무 못생겼고 다음으로, 그녀의 키가 앨 리스의 어깨에 턱을 얹기에 딱 알맞았기 때문이다.
공작부인의 턱은 불편할 정도로 뾰족했다. 하지만, 앨리스는 무례 하게 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최대한 참기로 했다.
"이제 게임이 좀 제대로 되어 가는 것 같네요." 대화를 계속할 생각으로 앨리스가 말했다.
"그렇구나." 공작부인이 말했다. "그리고 그 교훈은, '아, 사랑, 사랑이여,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것이여!'"
"어떤 사람이 그러는데요." 앨리스가 속삭였다.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건 사람들이 각자 자기 일에나 신경쓰기 때문 이라던데요."
"아, 그래. 그건 둘 다 같은 뜻이야." 공작부인이 말했다. 그리고 날카로운 턱으로 앨리스의 어깨를 찍어눌렀다. "그리고 그 교훈은 '귀 기울여라. 그러면 들릴 것이다.'"
[역자 주 ; 원문은 "Take care of the sense, and the sounds will take care of themselves"로 "Take care of the pense, and the pounds will take care of themselves(한푼 두푼 아끼면 목돈은 저절로 모인다.)"라는 격언에서 단어 두 개만 비슷한 발음의 다른 단어로 바꾼 패러디 격언이다.]
"이 여자는 여기저기서 교훈을 찾아내는 걸 무척 좋아하나 봐." 앨리스는 속으로 생각했다.
"왜 내가 네 허리에 팔을 두르지 않는지 궁금하지 않니?" 잠시 후에 공작부인이 말했다. "그 홍학이 사납게 굴까봐 그래. 한 번 시험해 봐도 될까?"
"물지도 몰라요." 앨리스는 시험해 보는 것을 그리 달갑게 생각하지 않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래 맞아." 공작부인이 말했다. "홍학하고 겨자는 둘 다 물지.[역자 주 ; "bite(물다)"는 '(식초나 겨자 따위가) 톡 쏘다, 자극하다.'라는 뜻도 있다. 이 또한 pun.] 그리고 그 교훈은 '유유상종.'"
"하지만 겨자는 새가 아니에요." 앨리스가 말했다.
"맞아, 보통은 그렇지." 공작부인이 말했다. "넌 사물을 참 명확하게 정의내리는구나."
"그건 광물이 아닌가 하는데요." 앨리스가 말했다.
"물론 그렇지." 앨리스가 말하는 데는 무조건 동의하려고 작정한 사람처럼 공작부인이 말했다. "여기 근처에 커다란 겨자 광산이 있어. 그리고 그 교훈은 '내 것이 많아질수록 상대방의 것은 줄어든다.'"
[역자 주 ; 앞의 'mine(광산)'이 라는 단어가 갑자기 '내 것'이라는 뜻으로 바뀌었다. 이 또한 pun.]
"아, 맞아요." 그녀의 마지막 말을 듣고 있지 않던 앨리스는 소리쳤다. "그건 채소예요. 그렇게 보이지는 않지만 말예 요."
"그래 정말 그런 것 같구나," 공작부인이 말했다. "그리고 그 교훈은 '남들이 보아주길 바라는 대로 행동하라.' 아니 면, '너 자신이 그랬었던 바나 그렇지 않게 보일 수도 있었던 바가 아니라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네가 그렇거나 그럴 수도 있었던 바대로 다른 사람에게 보여질 수 있는 자신은 절대 상상하지 마라.'"
"그것이 글로 쓰여 있었다면 더 잘 이해됐을 텐데요." 앨리스가 아주 공손하게 말했다. "하지만 말로 하시니까 잘 따 라갈 수가 없어요."
"내가 말하고자 하면 할 수 없는 건 아무 것도 없어." 공작부인이 기쁜 듯이 대답했다.
"제발 그것보다 더 긴말을 하시는 수고는 하지 마세요." 앨리스가 말했다.
"아, 수고라니, 무슨." 공작부인이 말했다. "지금까지 한 말들을 전부 너에게 선물로 주겠다."
"참 싸구려 선물이구나." 앨리스는 생각했다. "그런 걸 생일선물로 주지 않아서 다행이야." 그러나 감히 큰소리로 말 하지는 못했다.
"또 무슨 생각하니?" 공작부인은 다시 그 뾰족한 턱을 어깨에 찍어누르며 물어왔다.
"전 생각할 권리가 있어요." 앨리스는 날카롭게 대답했다. 조금 성가시게 느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돼지가 날아다닐 수 있는 만큼 권리가 있지." 공작부인이 말했다. "그리고 그 교-"
공작부인이 그렇게 좋아하는 단어인 '교훈'을 말하는 도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사그라들자 앨리스는 조금 의아했다. 그리고 자신의 팔에 낀 공작부인의 팔이 떨리기 시작하는 것을 느끼고 위를 올려다보니, 그들 앞에 여왕이 서서 팔짱을 끼고 먹구름 낀 하늘처럼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