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는 언니와 함께 시냇가 언덕 위에 앉아 있었습니다. 아무 할 일도 없어서 지루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언니가 읽고 있는 책을 한두 번 슬쩍 넘겨다보았지만, 그 책에는 그림도 대화도 없었습니다.
'그림도 대화도 없는데, 시시한 책을 언니는 무슨 재미로 읽고 있는지 모르겠어.' 엘리스는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그 날은 몹시 더웠기 때문에 졸려서 머리가 멍했으므로 데이지 꽃으로 화환이라도 만들어 볼까 하고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일부러 꽃을 꺾으러 가는 것도 귀찮아.'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별안간 분홍색 눈빛을 한 한 마리의 흰토끼가 엘리스 바로 옆을 깡충깡충 뛰어 지나갔습니다. 그것 만이었다면 그다지 놀랄 것도 없었습니다.
"큰일났다, 큰일났어, 늦었으니." 하고, 토끼가 혼자 중얼대고 있는 것을 들었을 때도 엘리스는 그것을 별달리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토끼가 조끼 호주머니에서 회중시계를 끄집어내어 힐끔 시간을 보고는 또다시 당황하며 뛰어갔을 때는 엘리스도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토기가 조끼를 입는다거나, 호주머니에서 시계를 끄집어내는 따위를 아직 본 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 엘리스는 토끼 뒤를 쫓아갔습니다. 그리하여 들판을 가로질러 울타리 밑에 있는 커다란 토끼 굴로 뛰어들어가는 것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엘리스도 그 뒤를 쫓아 굴속으로 뛰어들어갔습니다.
나중에 어떻게 이 굴을 빠져나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미처 하지도 않고……
토끼 굴은 얼마 동안 터널 모양으로 똑바로 뚫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내리막이 되어 미끄러지듯 내려가다가 그만 아래로 뚫린 굴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앗!" 하고, 소리쳤을 때엔 이미 깊은 우물 같은 굴속으로 떨어져 갔습니다.
그러나, 엘리스는 떨어져 내려가면서도 가만히 주위를 살펴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 굴은 굉장히 깊었던 모양이죠.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까?' 하고, 생각할 시간까지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선 밑을 내려다보았습니다.
그러나 깜깜하여 아무것도 뵈지 않았습니다. 굴 주위를 살펴보니 찬장과 책꽂이 등이 눈에 띄었습니다. 지도와 그림 등이 못에 걸려 있는 것도 보였습니다. 엘리스는 떨어져 내려가면서 찬장에서 병 한 개를 집었습니다.
라고 씌어진 상표가 붙어 있었습니다. '이것봐, 빈 병이구나.' 실망한 엘리스는 병을 버리려고 했습니다. 만일 밑에 누군가가 있으면 그야말로 큰일. 그래서 눈앞에 와 닿은 찬장 위에다 살짝 얹어놓았습니다. 그러고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내가 한 번 이렇게 떨어져 본 일이 있다면 모두들 정말 대담한 아이라고 감탄할거야.'
아래로 아래로 자꾸만 떨어져 내려갔습니다. 언제까지 떨어지면 끝장이 날는지요.
"벌써 몇 킬로미터나 떨어져 내려왔을까 몰라? 틀림없이 지구 중심 가까이까지 왔을 거야. 그러니까 가만 있자, 어림잡아 6천 킬로미터는 떨어져 내려온 셈이로군." 왜 엘리스가 이런 말을 했는가 하면, 그러한 것을 여러 가지 배워 왔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옆에 아무도 없으니 아는 체하기엔 적당한 시기라고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셈을 해보고는 것도 좋은 복습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근방의 위도와 경도는 얼마쯤 될까?' 엘리스는 위도나 경도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지만, 그렇게 말을 해보니까 왠지 모르게 훌륭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대로 끝까지 떨어져 내려가면, 지구를 꿰뚫고 말지도 모를 일이야. 머리를 아래로 하고 걷고 있는 사람들 틈에 느닷없이 나가게 된다면 매우 우스울 거야, 틀림없이. 그런 사람들을 일컬어, 대…… 대조인이라 했던가?"
대조인이란 대척자(지구 저쪽에 사는 사람, 모두가 정반대인 사람)의 잘못으로서, 마침 아무도 듣고 있은 사람이 없어 다행이구나, 하고 나중에야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사람들에게 거기가 어느 나라냐고 물어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저, 아주머니, 여기가 뉴질랜드이어요,
오스트레일리아여요?" 엘리스는 이렇게 지껄이면서 인사를 하려 들었습니다.
자. 한번 생각해 보셔요. 공중에서 떨어져 내려가면서 인사를 하다니, 당신들인들 그런 짓을 할 것 같아요? 아래로 아래로 여전히 떨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아무 할 일도 없고 하여, 또다시 혼잣말을 지껄이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밤에 내가 없기 때문에 다이나가 몹시 쓸쓸해 할거야." 다이나란 고양이를 말하는 것입니다.
"짬짬이 누군가가 다이나에게 우유를 주는 것을 안 잊어 줬으면, 다이나, 네가 지금 여기에 있었으면 얼마나 좋겠니.
공중에는 쥐는 없지만 박쥐라면 잡을 수 있어. 박쥐는 쥐와 꼭 닮았지.
그렇지만 고양이가 박쥐를 먹을지 몰라?" 엘리스는 차츰 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꾸벅꾸벅 졸면서 그대로 지껄였습니다. "고양이는 박쥐를 먹을지 몰라…… 고양이는 박쥐를 먹을지 몰라……" 이렇게 말하는가 했더니,
"박쥐는 고양이를 먹을지 몰라……" 하기도 하더니, 어느 새 콜콜 코를 골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엘리스는 다이나와 손을 잡고 노는 꿈을 꾸었습니다. "다이나, 너는 박쥐를 먹어 본 적이 있니? 바른 대로 말해 주렴." 하고 말했을 때였습니다. 별안간 푹! 하고 마른 잎더미 위에 떨어졌습니다. 떨어져 내려가는 것은 이제 가까스로 끝난 것입니다. 상처는 한 군데도 나지 않았습니다.
앨리스는 이내 일어섰습니다. 위쪽을 쳐다보니 캄캄했습니다. 앞쪽엔 길게 뻗은 길이 있었습니다.
조금 전의 그 흰토끼가 재빨리 뛰어가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엘리스는 그 뒤를 쫓았습니다.
토끼가 어느 골목 모퉁이를 돌 때, "큰일났어, 정말 너무 늦어버렸어!" 하는 소리를 간신히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퉁이를 돌 때까지는 바로 뒤를 쫓고 있었는데, 그 모퉁이를 돌아가 보니까 이미 토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천장이 얕은 기다란 넓은 방안이었습니다. 천장에 매달려 있는 한 줄의 램프가 방안을 환히 비춰 주고 있었습니다. 넓은 방 안 벽에는 문이 몇 개나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창문이고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밖으로 나갈 수가 있을까?" 엘리스는 은근히 걱정이 되었습니다. 맥없이 방 한가운데에 와보니 거기엔 세 발 유리 테이블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 위에 단 한 개의 작은 황금열쇠가 얹혀 있었습니다.
'틀림없이 이 열쇠가 어느 자물쇠엔가에 맞을지도 몰라.'
그러나 어쩌랴! 그 황금열쇠는 어느 자물쇠에도 맞질 않았으니까요. 그래도 단념하지 않고 다시 한 번 돌리고 있을 때, 낮은 곳에 커튼이 늘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커튼을 걷자 거기엔 38센티미터쯤 될까말까한 조그마한 문이 있었습니다. 황금열쇠를 그 자물쇠 구멍에 넣어 보니 꼭 맞았습니다.
앨리스는 그 작은 문을 얼른 열었습니다. 쥐구멍 만한 구멍이 뚫어져 있었습니다.
무릎을 꿇고 들여다보니, 굉장히 아름다운 뜰이 보였습니다. 엘리스는 기어나가, 그 눈부신 화단과 분수가 치솟고 있는 뜰을 얼마나 거닐어 보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구멍은 머리도 들어가지 않을 만큼 좁았습니다.
'비록 머리가 들어간다 하더라도 몸이 들어가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지.
아, 내 몸이 망원경 모양으로 줄어들게 할 수는 없을까. 맨 먼저 하는 방법만 알면 반드시 될텐데.'
줄곧 신기한 일만 계속되었기 때문에, 엘리스는 이제 무엇이고 안 될 것이 없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우두커니 서 있어 봤댔자, 아무 소용도 없었습니다.
'참, 유리 테이블 위에 또 다른 열쇠나, 사람을 망원경 모양 줄어들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써 둔 책이 있을지도 몰라.'
이런 생각을 하면서 테이블이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그러자 테이블 위에는 조그마한 병 한 개가 있었습니다. '확실히 조금 전엔 없었던 거야.' 병목에 매어 둔 종이 꼬리표에는 라는 글귀가 큼직하게 씌어져 있었습니다.
영리한 엘리스는 성급하게 입을 대지는 않았습니다. '혹시 독이 있다면 적혀 있을지도 모르니, 우선 잘 살펴보아야지……"
앨리스는 간단한 교훈들을 명심하지 않아서 매우 혼이 난 어린이들의 이야기를 많이 읽어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빨갛게 단 부젓가락을 잡았다가 화상을 입었다던가, 무서운 짐승에 물렸다던가…… 그러나 병에는 그 어디에도 이라고는 씌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한 번 혀끝으로 맛을 보았습니다. 앵두를 섞은 파이와 커스터드, 태피와 파인애플과 구운 칠면조와 캐러멜과 구운 버터 토스트 등을 섞어 만든 굉장히 맛이 좋은 것이었습니다.
금새 빈 병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이, 기분이 이상해진다." 맥이 풀린 목소리로 엘리스는 말했습니다.
"틀림없이 망원경 모양 줄어드는가 보다." 정말 그대로였습니다. 이내 약 25센티미터 정도의 키로 줄어들고 말았습니다.
"야, 신기하다. 이만하면 그 아름다운 뜰에 나가 볼 수 있겠지." 기뻐서 엘리스의 얼굴은 꽃처럼 활짝 피었습니다.
그리고 좀더 줄어드나 안 줄어드나 하고, 2, 3분 동안 가만히 있었습니다.
'초와 같이 완전히 녹아 없어질지도 몰라. 그렇게 되면 나는 어쩌지.' 초가 녹아 없어진 다음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한참동안 더 있어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스는 곧 뜰로 나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작은 황금열쇠를 테이블 위에 놓아둔 채 잊어버리고 왔지 뭡니까.
테이블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와 보니 이것은 또 웬일입니까. 아무리 해도 손이 닿지를 않았습니다.
열쇠는 유리를 통해 아래서 빤히 보였지만, 하는 수 없이 급히 테이블의 다리를 타고 올라갔습니다. 자꾸만 줄줄 미끄러져 올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몇 번이고 되풀이하고 잇는 동안에 엘리스는 그만 온 몸의 힘이 빠지고 말았습니다.
가엾게도 너무나 지쳐서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울고만 있다고 무슨 수가 날줄 아니!" 엘리스는 언제나 자기 자신을 타이르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빨리 울음을 그쳐!" 이윽고 눈물이 마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테이블 밑에 조그마한 유리상자가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열어 보니 조그마한 과자가 한 개 들어있었습니다.
그 위엔 건포도로 하는, 예쁜 글이 씌어 있었습니다.
"좋아, 먹고말고. 키가 커지면 열쇠를 끄집어 낼 수 있을 것이고, 줄어든대도 뜰에 나갈 수 있을 게 아냐. 이래도 저래도 괜찮지 뭐." 엘리스는 과자를 조금 씹어 보았습니다.
두 손을 머리 위에 얹은 채, "줄어들까? 늘어날까?" 하고, 근심스럽게 혼잣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혀 아무런 변동도 일어날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신기한 일만 자꾸 일어나리라고 생각하고 있은 만큼, 아무변화가 없는 것은 따분하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엘리스는 그 과자를 전부 먹고 말았습니다.
"어머나, 이상하다?" 엘리스는 느닷없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번엔 세계에서 제일 큰 망원경 모양으로 자꾸만 늘어나는군! 나의 발이여, 안녕!" 발을 보니까,
발은 저 아래로 아주 멀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아, 가엾은 나의 발이여. 앞으로는 너에게 누가 신발이랑 양말이랑을 신겨 주겠니?
나로선 이제 하는 수 없어. 너를 돌봐 주고 싶지만,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잖니.
그러니까 이제부턴 네가 모든 일을 스스로 하도록 하지 않으면 안 돼." 엘리스는 잠깐 생각에 잠겼습니다. '하지만, 발에게 친절을 베풀지 않으면 안 돼. 그렇지 않으면 내가 어디 가고 싶어질 때 내 말을 잘 안 듣고, 엉뚱한 곳으로 갈지도 모르잖아.
그렇지, 돌아오는 크리스마스 때엔 예쁜 새 신을 사줘야지. 그 새 신을 어떻게 선사하면 좋을까.' 하고, 엘리스는 생각했습니다.
"신발 가게에 부탁해서 가져오게 하면 되겠지. 하지만 자기 발에게 선물을 보내다니 쑥스럽기 짝이 없지 뭐야. 그렇지만 좀 색다르게
앨리스 오른쪽 발 귀하
재받이 앞 깔개 위,
-친애하는 앨리스로부터
"아니, 내가 무슨 바보 같은 소릴 지껄이고 있을까?" 하고 말했을 때, 앨리스의 머리는 방 천장에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엘리스의 키는 자그마치 3미터도 더 되었습니다.
그제야 엘리스는 곧 작은 황금열쇠를 집어들고 뜰로 통하는 작은 문 앞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가엾게도 이번에 옆으로 엎드려 한쪽 눈으로 간신히 뜰을 내다보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그런 작은 문으로 빠져나간다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었습니다.
앨리스는 털썩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습니다. 너무너무 울었기 때문에 자그마치 10센티미터 깊이의 못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방안의 반쯤이 물에 잠기고 말았습니다.
얼마 후에 멀리서 작은 발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무엇일까 하고 엘리스는 얼른 눈물을 닦았습니다. 가만히 보니 좀 전의 그 흰 토끼였습니다. 고운 옷을 입고, 한 쪽 손에 흰 가죽장갑을 들고 있었습니다. 다른 한 손에는 커다란 부채를 들고 이쪽으로 되돌아오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아, 큰일났어. 그 공작 부인을 기다리게 하다니 얼마나 화를 내실까." 하고, 중얼대며 달음박질쳐 왔습니다.
앨리스는 그야말로 곤란한 지경에 빠져 있었으므로, 아무에게라도 도움을 바라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그래서 토끼가 옆에 왔을 때, "저……" 하고, 나직한 소리로 말을 걸었습니다.
깜짝 놀란 것은 토끼였습니다. 장갑이고 부채고 떨어뜨린 채 어둠 속으로 마구잡이로 달아나고 말았습니다. 앨리스는 흰 장갑과 부채를 주워 들었습니다. 방안이 몹시 더웠으므로 그 부채를 부치면서 혼잣말을 계속했습니다.
"아이 참, 오늘은 어째서 이렇게 신기한 일만 자꾸 일어날까? 어제는 평소와 조금도 별 다른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어쩌면 내가 밤 새 아주 변해버렸는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의 내가, 내가 아니라면 이 나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앨리스는 자기 또래의 동무들을 모조리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하여 자기가 그 중의 누군가로 변해 있지 않나,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는 레이더 양이 아닌 것만은 틀림없어. 아무튼 그 애의 머리카락은 굉장히 길게 땋아 내려뜨렸지 않았겠니.
그러나 내 머리는 땋아 내려뜨리지 않았단 말이다. 그렇지 참, 알고 있던 것을 기억하고 있는지 한 번 실험해 봐야지.
4·5는 12. 4·6은 13, 4·7은 …… 아니 이상하다. 하지만 구구법 따윈 아무래도 좋아. 지리를 한번 해보자. 런던은 파리의 서울. 파리는 로마의 서울. 로마는? 아, 아냐, 아냐. 모두가 다 틀렸어. 난 메이벌 양이 돼버렸는가 봐, 틀림없어. 그렇지, 라는 말을 할 수 있나 없나, 한 번 외어 보자."
앨리스는 언제나처럼 무릎 위에 손을 포개 얹고 외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목이 쉬어 마치 딴사람 목소리 같았습니다.
귀여운 꼬마 악어가
반짝이는 꼬리를 매만지고 있네,
나일강의 물을 끼얹으며
황금빛 비늘을 씻고 있네!
즐거운 듯 방글방글 웃으며
발톱을 살짝 펴고 있네,
방긋이 벌린 입으로
고기를 슬쩍 잘도 삼키네!
"이런 』怜?아니었는데." 앨리스의 두 눈에는 또 눈물이 담뿍 괴었습니다.
"나는 역시 메이벌 양으로 변하고 만 거야. 그 작고 더러운 집에 가서 살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장난감 하나 없고, 많이 있다는 것은 공부뿐. 난 싫어! 그렇지, 난 각오했어. 내가 메이벌 양으로 변했다면 차라리 여기에 이대로 있을 테야. 누군가가 위에서 들여다보면서, '자, 올라오렴!' 하고 해도 소용없어. 난 이렇게 말해 줄 테야. '그럼, 나는 누구여요? 그것을 먼저 말해줘요. 만일 그 사람이 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면 올라갈 테다.
싫다면 다른 사람으로 변할 때까지 여기에 있을래. 그렇지만……" 하고는 엘리스는 별안간 울기 시작했습니다.
"…… 하지만, 정말 누군가가 들여다봐 주었으면 좋겠어. 이젠 나 혼자 여기에 있는데 지쳐 버렸어."
앨리스는 그렇게 말하면서 문득 자기 손을 보았습니다. 어느 사이에 토끼가 떨어뜨리고 간 장갑을 끼고 있었으므로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었을까?' 엘리스는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틀림없이 내가 다시 작아지고 있는가보다.' 엘리스는 키를 재보려고 급히 테이블 옆으로 걸어갔습니다.
역시 그랬습니다. 약 70센티미터 정도로 줄어 있었습니다. 그뿐이 아니라 아직도 자꾸만 줄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원인은 손에 들고 있는 부채에 있었습니다. 그것을 깨닫게 된 엘리스는 얼른 그 부채를 팽개치고 말았습니다.
만일 그것을 깨닫지 못했었다면 아주 없어졌을지도 모릅니다. '큰일날 뻔했다.' 위험을 면하게 되어 앨리스는 매우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그 변화가 너무나 심하여 어이가 없었습니다.
"자, 빨리 뜰로 나가 볼까." 엘리스는 작은 문 있는 곳으로 달려갔습니다만, 문은 닫혀져 있고, 황금열쇠는 유리 테이블 위에 얹혀 있었습니다. "이간 처음과 조금도 달라진 게 없잖아." 하고 말했을 때였습니다.
앨리스의 발이 그만 미끄러졌습니다. "풍덩!" 소리를 내며 물 속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몹시 짠물이었습니다.
바다에 빠지지 않았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물이란 자기의 키가 3미터나 커버려서 마냥 울었을 때 눈물이 괴어 생긴 못이라는 것을 곧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울지 않았던들 괜찮았을걸." 엘리스는 헤엄을 치면서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그렇게 운 벌을 받은 거야. 자기의 눈물에 빠져 죽다니, 정말 우스워. 오늘은 왜 이렇게 이상한 일들만 생길까"
그때, 조금 떨어진 곳에서 풍덩풍덩 헤엄을 치고 있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뭘까?" 엘리스는 조용조용히 그 소리나는 쪽으로 헤엄쳐 갔습니다. 처음에는 물소가 아니면 하마인 줄 알았습니다. '그렇지, 나는 지금 아주 작아져 있는 거야.'
이렇게 고쳐 생각하며 자세히 살펴보니까 그것은 쥐였습니다.
앨리스와 마찬가지로 발이 미끄러져 빠진 모양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쥐에게 말을 건네면 알아들을까?"
엘리스는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여기선 뭐든지 신기한 일만 일어나고 있으니까, 이 쥐 역시 말을 할 줄 알지도 모르지 하여튼 말을 한 번 건네 보자. " 앨리스는 말을 걸었습니다.
"이봐 쥐야, 이 못의 출입구가 어딘지 아니? 난 이제 지쳤단 말야." 앨리스는 이러한 말투로 말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쥐는 이상하다는 듯이 엘리스는 가만히 보고 있었습니다.
'아마, 영어를 모르는 모양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프랑스 말로 했습니다.
"우 에 마 샤트(나의 고양이는 어디에 있지?)." 이것은 엘리스가 배운 프랑스어 책 처리에 있는 글귀였습니다.
그러자 쥐는 물 속에서 갑자기 솟아오르며 후들후들 온 몸을 떨었습니다.
"앗! 미안해요. 네가 고양이를 굉장히 싫어한다는 것을 내가 깜빡 잊어버리고 있었지뭐야."
"그렇고말고. 바꿔 생각해 보렴. 네가 나라면 고양이를 좋아하겠니?" "물론 그렇고 말고, 그렇지만, 우리 집에 있는 다이나를 보여 주고 싶다. 틀림없이 너도 금새 좋아질 거야. 얌전하고, 매우 귀엽단 말이야."
앨리스는 천천히 헤엄을 치면서 계속 말을 건넸습니다.
"난로 옆에 엎드려 아주 멋지게 목을 골골 울리는 거야. 그리고 손을 핥기도 하고, 얼굴을 씻기도 하고, 쓰다듬으면 보드라운 털이 포근해서 기분이 좋지. 그리고 참, 쥐를 잡는 데 있어선 아주 날쌔단 말이다. 앗, 또 미안해요."
쥐가 온 몸의 털을 곤두세우는 것을 보자 엘리스는 얼른 자기 잘못을 깨달았습니다.
"우리 집에서는 대대로 고양이를 싫어한단 말이다. 다시는 고양이란 말을 입 밖에 안 내주었으면 좋겠어."
"그래, 다시는 그런 말하지 않을게." 엘리스는 부랴부랴 말머리를 돌렸습니다.
"저, 저, 그럼 너는 개는 좋아하니?" 쥐는 잠자코 있었습니다. "우리 집 근처에 그야말로 예쁜 개가 있단다. 무언가 던져 주면 어김없이 물고 오는가 하면, 먹이를 달라고 보챌 때는 끙끙 콧소리를 내는 거야. 그 개는 농부가 기르고 있단다. '매우 쓸모 있는 개다. 100파운드의 값어치는 있다.'고 말들을 하고 있었지.
어떤 쥐라도 보기만 하면 닥치는 대로 모조리 잡아 죽인다나 봐. 앗 또 실수를 했네." 엘리스는 민망해서 어쩔 줄을 몰라 했습니다. "내가 또 쥐를 화나게 했구나!" 쥐는 못물을 헤치면서 도망쳐 갔습니다.
"쥐야, 쥐야…… 부탁이야, 한번만 더 가까이 와주렴. 앞으로는 절대로 고양이 얘기나 개 얘기는 안 할게."
이 말을 듣자 쥐는 홱 방향을 돌려 되돌아왔습니다. 쥐는 새파랗게 질려 있었습니다.
"기…기슭에, 오…올라가서, 나…나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마. 그것을 들으면 내가 왜 고양이나 개를
싫어하는가를 알게 될 테니까 말이다." 라고, 떨리는 소리로 나직이 말했습니다. 못은 어느 사이에
미끄러져 빠진 새와 짐승으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습니다. 오리, 앵무새, 밸로새끼, 도우도우 새 그밖에도 진귀한 여러 가지 동물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슬슬 못에서 나오는 것이 좋을 것 같았습니다. 엘리스는 앞장으로 모두가 기슭을 향해 천천히 헤엄쳐나갔습니다.
못기슭으로 올라와 보니까 모두가 정말 가엾은 꼴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새들은 물을 흠뻑 먹은 날개를 내려뜨리고 있었고, 짐승들의 털도 물에 푹 젖어 몸에 착 달라붙어 몹시 초라한 모습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먼저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떻게 하면 빨리 몸을 말릴 수가 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2, 3분이 지나자, 엘리스는 마치 동물들과 아주 옛날부터 잘 알고 있던 사이같이 느껴졌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조금도 서먹서먹하지 않게까지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앵무새와는 한동안 이야기를 주고받았지만, 마침내 앵무새를 화를 내게 하고 말았습니다.
"나는 너보다도 나이가 위란 말이다. 너보다는 무엇이고 더 많이 알고 있는 것은 당연하잖아."
화가 난 앵무새는 마지막에는 무슨 말을 해도 그저 이 말만으로 버티었습니다.
그때, 그들 중에서는 가장 으스대고 있던 쥐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모두들 앉아! 내 말을 들으란 말이다. 여러분들의 몸을 내가 곧 말려 주마." 모두가 곧 쥐를 둘러싸고 앉았습니다.
엘리스는 근심스럽게 그것을 조용히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에헴!" 하고, 쥐는 헛기침을 한번 하더니 조용히 말을 시작하였습니다. "모두들 잘 들어 주기 바란다. 이 얘기는 내가 알고 있는 얘기 중에서 가장 색다른 얘기란 말이다. 자, 조용히. 에에, 정복왕이라 일컬어지고 있는 노르망디 공 윌리엄은 로마법황의 힘을 빌어 단번에 잉글랜드 국민을 굴복시켰다. 그 당시 그들은 지도자가 필요했다.
또한 혁명과 정복이 되풀이되는 경험을 통해 퍽 익숙해져 있었다. 머셔 백작 에드윈과 노오덤브리아 백작 모오카는…"
노오덤브리아 백작 모오카는 윌리엄 1세를 받들겠다는 취지의 성명을 발표했고, 애국자 캔터베리 대승정 스타이겐드까지도 윌리엄에게 왕관을 바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무슨 생각에서인지 쥐는 여기에서 잠깐 말을 중단하고는, "그런데 아가씨, 좀 어떠셔요?" 하고, 엘리스 쪽을 향해 물었습니다.
"내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들의 몸을 말리려면 코오커스 경주를 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코오커스 경주란 어떻게 하는 거지?" 엘리스가 물었습니다.
"그걸 설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경주를 해보는 거야." 당신네들도 추운 겨울날이면 그 경주를 하고 싶어질지도 모르니까, 도우도우 새가 어떻게 했던가를 얘기하겠습니다. 도우도우 새는 우선 달릴 코스를 동그랗게 줄을 그었습니다. 그으면서, "모양이 약간 이상해도 상관없어요."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고는 전원을 그 코스 안쪽에 여기저기 서 있게 했습니다. 하나, 둘, 셋의 신호도 없이 제각기 생각이 내키는 대로 뛰기 시작합니다. 그리하여 다시 생각나는 대로 멈추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 경주가 끝났는가를 전혀 알 수 없습니다.
모두가 신이 나서 약 30분 동안 달리다가 몸이 완전히 말랐을 무렵에, "경주 끝!" 하고 도우도우 새가 호령했습니다. 모두가 숨을 몰아쉬면서 도우도우 새를 중심으로 모였습니다. "도대체 누가 이긴 거야?"
도우도우 새도 고개를 갸우뚱하고 한동안 생각했습니다. 이윽고 도우도우 새가 힘차게 말했습니다.
"모두가 이긴 거야. 다들 상을 받는 거야!" "누가 상품을 주는 거죠?" "물론, 그건 저 사람이지."
도우도우 새는 엘리스는 가리켰습니다. 일동은 부리나케 엘리스를 둘러쌌습니다.
"상품, 상품!" 하고 마구 떠들어댔습니다. 엘리스는 난처해졌습니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호주머니에 손을 넣으니까 엿 상자가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상자 속은 물이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즉시 상품으로서 그것을 나눠주었습니다. 간신히 한 새씩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에게도 상품이 있어야죠?" 하고 쥐가 말했습니다.
"물론!" 하고 엄숙한 목소리로 대답한 것은 도우도우 새였습니다. "호주머니에 뭔가 없을까?"
엘리스를 쳐다보며 도우도우 새가 물었습니다. "골무가 하나 있을 뿐이야."
"그것을 주십시오." 도우도우 새가 골무를 받아들자, 일동은 엘리스를 둘러쌌습니다.
그러자 도우도우 새는 아주 의젓하게 골무를 꺼내 밀면서, "바라건대, 이 근사한 골무를 받아 주시기를." 하고 말했습니다.
엘리스는 이게 무슨 어리석은 수작이냐는 생각이 들었지만, 모두가 너무나 진지한 태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웃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무어라고 말해야 좋을지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 일부러 의젓한 시늉을 하며 골무를 받았습니다.
그러고 난 후에 모두가 엿을 먹었습니다. 맛있는 엿에 모두들 야단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소동도
가까스로 가라앉고 일동은 또다시 옹기종기 둘러앉아 쥐에게 무슨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라댔습니다.
"맞았어, 너는 너에 대한 얘기를 해준다고 그랬잖았어." 하고 엘리스가 말했습니다. "그리고, 또 왜 고양이와 개를 싫어하는 가도 얘기해 준다고도 했지." 엘리스는 혹시나 주의 기분을 잡칠까 봐 조심스레 작은 소리로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그럼, 나에 대한 얘기를 하기로 하지. 그것은 그야말로 길고 긴 슬픈 얘기(영어로 테일이라고 발음함)입니다."
쥐는 엘리스를 쳐다보며 긴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정말, 길고 긴 꼬리(영어로 테일이라고 발음함)이군."
엘리스는 쥐의 긴 꼬리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꼬리가 슬프다니, 왜 슬프지?"
쥐가 얘기를 하고 있는 동안 엘리스는 자꾸만 꼬리 생각 만하고 있었습니다.
“퓨리가 집에서 만난 쥐에게 말했다. '우리 함께 재판소에 가자. 나는 너를 고소할 꺼야.- 자, 나는 증언할 꺼야. 우리는 재판을 해야 해 : 오늘 아침에 나는 할 일이 없기 때문이지.' 쥐가 개에게 말했다.그런 재판은 우리에게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라고. '내가 판사가 되고, 간수도 될 것 이야. 마음 고약한 늙은 퓨리가 말했다.
'나는 재판을 할 것이고 너를 사형으로 언도 내릴 것이다.
"너는 듣고 있지 않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쥐는 엘리스를 향해 다그쳐 소리를 질렀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마 틀림없이 다섯 번째 모퉁이까지 왔댔죠?"
"틀렸어!" 그 틀렸다는 말의 마지막 말꼬리에 붙은 를
엘리스는 실마리가 얽히는 로 착각하고 만 것이었습니다.
"예, 얽혔다고요? 내가 풀어드릴까?" "귀찮아!" 쥐는 부리나케 일어나 저쪽으로 걸어가면서,
"너는 일부러 그런 엉뚱한 소리를 하여, 나를 곯려 주려고 하는 거지." 하고 말했습니다.
"그런게 아냐. 그런데 당신은 왜 그렇게 화를 잘 내지?" 쥐는 아무 대꾸도 않고, 그저 신음 소리만 내고 있었습니다.
"내가 잘못했어. 부탁이야, 돌아와 그 얘길 끝가지 들려주렴!" 엘리스는 뒤에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다른 동물들도 일제히 입을 모아, "그래, 그래, 부탁이야!"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쥐는 머리를 가로 저을 뿐,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그 뒷모습이 안보이게 되자, "가버렸다, 유감스럽게도." 하고 앵무새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러자 바로 이때라는 듯이 어미 게가, "이봐, 저렇게 잘 토라지면 못쓰는 거야." "듣기 싫어요, 어머니. 그런 소릴 한다면 참을 성 있는 저 굴조개라도 화를 낼 거여요." 하고, 휙 옆으로 고래를 돌리고 말았습니다.
그때, 엘리스가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아, 이럴 때 우리 다이나가 여기 있었으면 좋으련만. 다이나라면 당장 쥐를 데리고 올 수 있을 텐데." "다이나라니, 누구 말이지?" 앵무새가 물었습니다. 엘리스는 다이나의 이야기가 하고 싶어 좀이 쑤셨기 때문에 이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이나란 우리 집 고양이야. 쥐를 잡는 데 있어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아. 더구나 새를 잡는 그 날쌘 모습은 정말 보여 주고 싶을 정도란 말이다. 새새끼 따윈 금새 잡아 삼키거든." 그 말을 듣자 동물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눈치 빠른 작은 새들은 재빨리 날아가 버렸고, 나이 많은 가치는, "이제 돌아가 봐야지. 밤 공기는 몸에 좋지 않단 말이야."
하면서, 조심조심 갈 준비를 서둘렀습니다. "얘들아…… 자, 그만 가자꾸나. 벌써 잘 시간이다." 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 것은 카나리아였습니다. 모두들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떠나가고 말았습니다.
나중까지 남은 것은 엘리스 혼자뿐입니다. "다이나 얘길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 엘리스는 쓸쓸하게 혼잣말을 지껄였습니다. 엘리스는 갑자기 슬퍼져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있노라니까, 저 멀리서 작은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쥐가 마음을 가라앉히고 조금 전에 하던 이야기를 계속하려고 오는 줄 알고, 엘리스는 가만히 그 걸음 소리가 들리는 곳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깡충깡충 뛰어온 것은 흰 토끼였습니다. 무슨 떨어뜨린 것이라도 찾는 것처럼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중얼대고 있었습니다.
"큰일났어, 큰일났어! 아, 내 발이여, 수염이여, 털가죽이여, 공작 부인이 틀림없이 나를 사형에 처하겠지. 도대체 어디에다 떨어뜨렸을까?"
엘리스는 곧, 부채와 가죽장갑을 찾고 있다는 것을 당장 알아차렸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데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것뿐이 아니고, 엘리스가 못에 빠져 헤엄을 치고 있는 동안에, 뭐고 다 변하여 그 커다란 방도, 유리 테이블도, 작은 문도, 모두가 사라져 없어지고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윽고 토끼는 엘리스를 보자,
"아니, 메어리 앤 아가씨가 아니냐? 이런 곳에서 뭘 우물쭈물하고 있는 거야. 빨리 집에 돌아가서 부채와 장갑을 갖다 줘. 자, 빨리빨리!" 하고, 못마땅하다는 듯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깜짝 놀란 엘리스는 토끼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허둥지둥 달려갔습니다. '나를 자기네 집 심부름꾼으로 잘못 알고 있나 봐.' 뛰어가면서 힐쭉 웃었습니다.
"자기가 잘못 안 것을 알면 얼마나 놀랄까. 하지만 부채와 장갑만은 가져다 주는 게 좋겠어. 만일 찾을 수 있다면 말야."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에 어느덧 깨끗하고 조그마한 집 앞에 닿았습니다.
출입구에 걸려 있는 문패에는 라고 새겨져 있었습니다. 엘리스는 노크도 않고 들어갔습니다.
장갑과 부채를 발견하기도 전에 진짜 메어리 앤이라는 그 심부름꾼과 마주치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급히 2층으로 올라갔습니다. "토끼의 심부름을 하다니, 정말 내가 주책없구나. 이러다간 요다음에는 다이나까지 나를 부려먹으려 들지도 모르지, 틀림없어." 그렇게 되면 꼴이 어떻게 되겠느냐고, 엘리스는 여러 가지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에 어느새 말끔히 정돈이 잘 돼 있는 조그마한 방에 와 있었습니다.
창문 곁에 놓여 있는 테이블 위에, 엘리스가 짐작한 대로 부채와 흰 가죽장갑이 두서너 켤레 얹혀 있었습니다.
엘리스는 부채와 장갑 한 켤레를 갖고 막 방을 나오려는데 경대 앞에 조그만 병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하는 상표가 이번엔 붙어 있지 않았지만, 엘리스는 뚜껑을 열고 입으로 가져갔습니다.
'무언가 먹든지 마시든지 하기만 하면, 반드시 재미있는 일이 일어난다. 이 물을 마시면 이번에는 어떻게 되는가 실험해 봐야지. 내가 아주 키다리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이젠 이런 조그마한 몸집에 싫증이 났어.' 바로 그대로였습니다.
그것도 그 효과가 뜻밖에 빨리 나타났습니다. 아직 반도 채 마시기 전에 엘리스의 머리는 천장에 닿고 말았습니다.
목이 부러지지 않게 몸을 구부리지 않으면 안 될 정도였습니다. 엘리스는 놀라 병을 놓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가엾게도 그 뒤의 처리가 낭패였습니다. 엘리스는 자꾸자꾸 커지기만 했습니다.
방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편하지 않아 이번에는 한쪽 팔은 머리를 감고 한쪽 팔꿈치는 문에 대고 드러누워 보았습니다. 그래도 괴로워서 이번에는 한족 팔을 창 밖으로 내밀고, 한쪽 다리를 굴뚝 속으로 집어넣었습니다.
'이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됐어. 난 도대체 어떻게되는 걸까?"
다행히 그때 그 야의 효과가 없어져 키가 커지는 것이 멎었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역시 거북해서 다시는 바깥에 나갈 수가 없을 것 같아서 엘리스는 슬퍼지고 말았습니다. '집에 있을 때가 훨씬 즐거웠었는데, 커졌다가 작아졌다가 하지도 않고, 그리고 쥐나 토끼 따위의 심부름을 한 적도 없었어.' 어떤지 자꾸만 서글퍼지고, 이상야릇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이젠 더 이상 커질 수는 없을 거야. 그렇다면 이제 더 이상 나이도먹지 않을지 모르겠어. 아이 좋아! 할머니가 되지 않을 테니. 그런데 그렇게 되면, 언제까지나 공부를 해야 할거야. 아이참, 그럼 싫어!'
"이 바보 같은 엘리스야!" 하고, 엘리스는 스스로 대답했습니다. "여기서 어떻게 공부를 하니? 너 혼자만으로도 방이 가득하지 않니. 어디다 교과서를 놓지?" 엘리스는 저 혼자서 말을 주고받았습니다.
"메어리 앤! 메어리 앤!" 엘리스는 귀를 기울였습니다. "메어리 앤! 장갑은 어떻게 했니?" 쿵쿵 층층대를 올라오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토끼가 자기를 찾아온다는 것을 엘리스는 곧 알았습니다. 겁이 나서 몸을 부들부들 떨었습니다 .
그러자 집이 삐걱삐걱 소리를 내며 흔들렸습니다. 엘리스의 몸집은 이제 토끼의 천 배나 커져 있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겁낼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스는 지금 그러한 것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토끼가 문 앞까지 왔습니다. 열심히 문을 열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은 안으로 열리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거기다가 엘리스의 팔꿈치가 꾹 누르고 있으니 문은 까딱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창을 넘어 들어가자." 토끼가 중얼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절대로 들어오지 못하게 할걸!"
토끼가 창문 가까이로 오는 것을 기다려, 엘리스는 느닷없이 창문으로 손을 내밀어 덥석 잡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허공을 잡았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때, 작은 비명이 들렸습니다. 그와 함께 무엇인가 떨어지는 소리와 유리가 깨어지는 소리가 났습니다. '아마 오이를 기르는 유리로 덮은 온실 위에 떨어진 게 틀림없다.'
엘리스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토끼가 화를 내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패트, 패트, 어디에 있느냐!" 그러자, 엘리스가 이제까지 들어 본 적이 없었던 이상한 소리가 났습니다. "예, 예, 여기에 있습니다. 능금을 파내고 있습니다." "능금을 파내고 있다고? 이 바보야! 빨리 와서 나를 잡아 당겨 올리란 말이다!"
또, 유리 깨지는 소리가 났습니다. "패트, 창문으로 나와 있는 게 뭐지?" "앗, 아무리 봐도 사람의 팔 같습니다."
"뭐, 팔이라고? 이 얼빠진 녀석아! 저렇게 큰 팔을 본 적이 있어. 보랏, 창문에 꽉 차있지 안냐." "과연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사람의 팔이옵니다." "듣기 싫어, 그건 어쨌든 좋아, 저것을 빨리 가지고 가란 말이다."
그러고는 갑자기 조용해졌습니다. 한동안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별안간 여러 사람들이 조잘대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또 한 개의 사다리는 어디 있지?" "난 하나밖에 가져오지 않았어. 빌이 또 한 개를 가지고 있어."
"빌, 그걸 이리 가져와 줘."
"이 구석에 세우면 돼."
"아니야, 두 개의 사다리를 줄로 매서 이어야 해. 그래도 반밖에 닿지 않는다."
"그러면 돼, 잔소리하지마."
"자, 빌. 꼭 밧줄을 쥐고 있어야 해. 거기 기왓장이 헐거워져 있다. 조심하란 말야. 아, 떨어졌어. 밑에 있는 자들은 머리를 조심해!"
탕! 하는 소리.
"누가 그랬지?"
"빌이야."
"누가 굴뚝을 타고 내려갈 테야?"
"난 싫어. 빌이 가기로 돼 있잖아. 이봐, 빌! 주인 나리의 명령이야."
"아니, 빌이 내려오는군. 나, 빌 같은 신세가 되고 싶지는 않아. 이 난로는 정말 좁지만, 그래도 조금쯤 발로 찰 수 있을 테지."
엘리스는 힘껏 굴뚝 밑으로 발을 움츠리고는, 그 조그마한 동물이 내려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 동물이 어떤 동물인지 전혀 상상을 할 수 없었으나 가까워 오는 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이게 바로 빌이구나!" 하고 혼잣말을 하면서, 소리가 가까워지자 힘껏 차고는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하고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맨 처음 들려온 것은, "앗, 빌이 날아간다." 하고, 외치는 여러 사람들의 소리였습니다.
그 소리에 이어 토끼가, "담장 가까이 있는 자들, 빌을 빨리 받아랏!"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러고는 한동안은 조용했습니다. 그러나 또다시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자, 머리를 들라, 기운 내는 브랜디야." "기운을 내라고, 빌." "어쨌든? 어째서 이렇게 된 거야? 어디 얘길 좀 해보려무나."
끝으로 가냘픈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잘 모르겠어. 고마워요. 어쨌든 굉장히 혼났단 말야.
어떻게 얘길 했으면 좋을지 모를 정도야. 기억이 나는 것은, 인형같이 생긴 것이 느닷없이 튀어나와 내게 부딪쳤는가 했더니, 내가 마치 불꽃처럼 공중으로 솟아올랐다는 것뿐이야." "정말 불꽃같았어." 하고, 모두가 입을 모아 이렇게 말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이렇게 되면 이 집을 불태워 버리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말한 것은 토끼였습니다.
"그런 짓을 하면 다이나를 시켜 혼을 내줄 테다!" 엘리스는 소리소리 질렀습니다. 그러자 곧 얘기 소리들이 뚝 끊겼습니다.
'이젠 뭘 하려는 걸까? 좀더 영리했다면 지붕을 벗길 텐데.' 하고 엘리스가 생각했을 때,
또 다시 모두가 움직이기 시작한 모양입니다. "처음엔 손수레에 가득 하나면 돼." 하고 외친 것은 토끼였습니다.
'뭐가 가득 하나면 되나?' 엘리스가 약간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창으로 돌멩이가 비 오듯이 날라 왔습니다. 엘리스의 얼굴에도 맞았습니다.
"이따위 짓은 당장 중지시켜야지. 두 번 다시 이런 짓을 해선 안돼!"
엘리스가 고함을 지르자, 또 조용해졌습니다. 마루에 떨어진 돌멩이를 보고 있노라니
그것은 하나 둘 과자로 변해지는 것이 나이겠습니까. 엘리스는 깜짝 놀랐지만, 이내 기가 막히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이 과자를 먹으면 틀림없이 내가 더 커지거나, 아니면 작아질 거야. 하지만 이 이상 더 커지는 것은 싫으니까 꼭 작아질 거야.'
엘리스는 과자를 한 개 집어 삼켰습니다. 그러자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짐작한 대로 문으로 나갈 수 있을 만큼 작아졌습니다. 엘리스는 곧 집을 뛰쳐나갔습니다.
밖에는 작은 동물과 새들이 많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 한복판에서 두 마리의 기니아픽에 안겨서 병에 든 것을 마시고 있는 것은 도마뱀인 빌이었습니다. 엘리스의 모습을 보자, 모두 엘리스 쪽으로 달려왔습니다.
엘리스는 냅다 도망쳤습니다. 그리하여 울창한 숲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우선 해야 할 일은 내 몸집을 본디의 크기만큼 하는 것. 다음에는 그 아름다운 뜰을 찾아내는 것.'
숲 속을 헤매면서 엘리스는 생각했습니다. 확실히 그것은 훌륭한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도무지 몰랐습니다. 근심스럽게 나무 사이를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노라니까, 머리 위에서 갑자기 무슨 짖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날카로운 소리에 놀라 얼른 쳐다보니 그것은 굉장히 큰 강아지가 아니겠습니까. 크고 둥그런 눈으로 엘리스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한쪽 발을 내밀어 엘리스를 건드리려 들었습니다. "오냐, 오냐." 하고, 어르면서 휘파람을 불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만일 몹시 배가 고파하고 있다면 그야말로 큰일이었습니다. 엘리스를 냉큼 잡아먹고 말지도 모릅니다.
엘리스는 조그마한 나뭇가지를 하나 주워 강아지에게 내밀었습니다. 강아지는 기쁜 듯이 짖으며 다리를 가지런히 하여 그 나뭇가지에 덤볐습니다. 밟히면 큰일이다 싶어 엘리스는 큰 엉겅퀴 그늘에 숨었습니다.
강아지는 그 뒤를 쫓아왔습니다. 밟혀 죽게 된다면 그야말로 야단이었습니다. 엘리스는 엉겅퀴 둘레를 빙빙 돌았습니다. 그래도 강아지는 가지 사이로 노려보며 덤벼들었습니다.
털벌레의 키는 꼭 7센티미터였습니다. "하지만, 난 이렇게 작은 것엔 아직 익숙지 않은걸요." 엘리스는 아주 가엾은 목소리로 말했지만 마음 속으로는, '동물들이 제발 성을 내지 말았으면.' 하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곧 익숙하게 돼!" 하고, 털벌레는 내뱉듯 말하고선 또 물빨대를 뻐끔뻐끔 빨기 시작했습니다. 엘리스는 다시 털벌레의 마음이 가라앉기를 가만히 기다렸습니다. 2, 3분이 지나자 털벌레는 하품을 하면서 온 몸을 한 번 부르르 떨었습니다. 그러고는 풀밭 속으로 들어가면서,
"한쪽에서는 커진다. 다른 한쪽에서는 작아진다." 하고 중얼댔습니다. "한쪽이라니, 무엇의 한쪽이란 말일까?"
"버섯이야." 이렇게 말하고는 털벌레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습니다. 엘리스는 한참 동안 버섯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어느 쪽이 어느 쪽인지 모르겠는걸?' 버섯은 동그랗기 때문에 이것은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엘리스는 양쪽 팔을 힘껏 벌려서 오른쪽과 왼쪽의 가장 자리를 조금씩 뜯어내었습니다.
"어느 쪽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어." 그러면서 오른쪽에 쥔 버섯 조각을 조금 씹어 보았습니다. 그 순간, 무언가에 턱밑을 탁! 하고 호되게 얻어맞았습니다. 힐끗 아래쪽을 보니까, 아니 그것은 바로 자기의 발이 아니겠습니까.
너무나 기가 막힌 변화에 놀랐지만, 우물쭈물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습니다. 이대로 있다간 녹아 없어질지 모릅니다.
그래서 급히 왼쪽 손에 쥐고 있던 버섯 조각을 먹으려고 했지만, 턱이 발에 딱 불어 있어서 입이
마음대로 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간신히 입에 넣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자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아아, 기분이 좋아! 머리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어." 하고 엘리스가 기뻐하며 말했다고 생각하자,
다음 순간에는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고 말았습니다. 자기의 어깨가 온데간데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아래를 내려다보자니까 검푸른 바다 비슷한 것이 바람결에 출렁이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기다랗게 늘어난 목이 마치 나무 줄기같이 보였습니다. "저 검푸른 것은 무엇인지 몰라?" 엘리스는 눈이 휘둥그래졌습니다.
"앗 참! 내 어깨는 어디로 갔을까? 내 팔은 어떻게 된 걸까. 아, 가엾은 나의 팔, 어째서 네가 보이지 않니."
그러면서 엘리스는 팔을 움직여 보았습니다. 저 아래쪽 가장자리가 조금씩 움직일 뿐 아무 반응도 없습니다.
손을 머리에까지 가져온다는 것이란 어림도 없었기 때문에 엘리스는 머리를 손 쪽으로 움직여 볼까 생각했습니다.
그랬더니 다행히도 머리만은 뱀 모양 아무 쪽이고 어디고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스는 목을 꾸부려 검푸른 파도 쪽으로 가까이 가져가 보았습니다. 그것은 바다가 아니고, 이제까지 쳐다보고 있던 나무끝 가지들이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곧 그 나무 숲 속으로 파묻히려 할 때, 파닥파닥 날카로운 소리가 났습니다. 깜짝 놀라 머리를 쳐들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얼굴을 향해 날아온 것이 있었습니다. 커다란 한 마리의 비둘기였습니다. 엘리스의 얼굴을 사정없이 두들기며,
"이 뱀놈아!" 하고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엘리스는 멍해졌습니다. "난, 뱀이 아냐!" "뱀이야, 뱀에 틀림없어."
그 소리는 먼저보다는 약간 침착한 소리였습니다. 이어서 이렇게 지껄였습니다.
"정말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어. 이래저래 해보았지만……" 이렇게 말하면서 비둘기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건 무슨 소리지?" 하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엘리스에게 막무가내로 지껄여댔습니다.
"나무뿌리도 시험해 보았다. 둑도 시험해 보았다. 울타리도 시험해 보았다. 그런데 뱀이란 놈! 저놈에게는 정말 당해내지 못하겠단 말이다." 엘리스로서는 점점 더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비둘기가 할말을 다하기 전에는 무슨 소리를 해도 소용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알을 품고 있는 것만 해도 이만저만이 아닌데, 낮이고 밤이고 뱀을 지키고 있지 않으면 안 되다니. 이 3주일 동안은 눈 한 번 붙이지 못했단 말이다." "정말 가엾게도." 엘리스는 그제야 간신히 까닭을 알 수 있었습니다. 비둘기는 또 지껄이고 있습니다. "숲 속에서 가장 높은 나무를 골라 '여기라면 괜찮겠지'하고 생각할라치면 이번에는 공중에서 구불구불 내려오질 않겠나. 이 고약한 뱀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_ 루이스 캐럴 (1)
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
_루이스 캐럴
앨리스는 언니와 함께 시냇가 언덕 위에 앉아 있었습니다. 아무 할 일도 없어서 지루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언니가 읽고 있는 책을 한두 번 슬쩍 넘겨다보았지만, 그 책에는 그림도 대화도 없었습니다.
'그림도 대화도 없는데, 시시한 책을 언니는 무슨 재미로 읽고 있는지 모르겠어.' 엘리스는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그 날은 몹시 더웠기 때문에 졸려서 머리가 멍했으므로 데이지 꽃으로 화환이라도 만들어 볼까 하고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일부러 꽃을 꺾으러 가는 것도 귀찮아.'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별안간 분홍색 눈빛을 한 한 마리의 흰토끼가 엘리스 바로 옆을 깡충깡충 뛰어 지나갔습니다. 그것 만이었다면 그다지 놀랄 것도 없었습니다.
"큰일났다, 큰일났어, 늦었으니." 하고, 토끼가 혼자 중얼대고 있는 것을 들었을 때도 엘리스는 그것을 별달리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토끼가 조끼 호주머니에서 회중시계를 끄집어내어 힐끔 시간을 보고는 또다시 당황하며 뛰어갔을 때는 엘리스도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토기가 조끼를 입는다거나, 호주머니에서 시계를 끄집어내는 따위를 아직 본 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 엘리스는 토끼 뒤를 쫓아갔습니다. 그리하여 들판을 가로질러 울타리 밑에 있는 커다란 토끼 굴로 뛰어들어가는 것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엘리스도 그 뒤를 쫓아 굴속으로 뛰어들어갔습니다.
나중에 어떻게 이 굴을 빠져나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미처 하지도 않고……
토끼 굴은 얼마 동안 터널 모양으로 똑바로 뚫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내리막이 되어 미끄러지듯 내려가다가 그만 아래로 뚫린 굴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앗!" 하고, 소리쳤을 때엔 이미 깊은 우물 같은 굴속으로 떨어져 갔습니다.
그러나, 엘리스는 떨어져 내려가면서도 가만히 주위를 살펴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 굴은 굉장히 깊었던 모양이죠.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까?' 하고, 생각할 시간까지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선 밑을 내려다보았습니다.
그러나 깜깜하여 아무것도 뵈지 않았습니다. 굴 주위를 살펴보니 찬장과 책꽂이 등이 눈에 띄었습니다. 지도와 그림 등이 못에 걸려 있는 것도 보였습니다. 엘리스는 떨어져 내려가면서 찬장에서 병 한 개를 집었습니다.
라고 씌어진 상표가 붙어 있었습니다. '이것봐, 빈 병이구나.' 실망한 엘리스는 병을 버리려고 했습니다. 만일 밑에 누군가가 있으면 그야말로 큰일. 그래서 눈앞에 와 닿은 찬장 위에다 살짝 얹어놓았습니다. 그러고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내가 한 번 이렇게 떨어져 본 일이 있다면 모두들 정말 대담한 아이라고 감탄할거야.'
아래로 아래로 자꾸만 떨어져 내려갔습니다. 언제까지 떨어지면 끝장이 날는지요.
"벌써 몇 킬로미터나 떨어져 내려왔을까 몰라? 틀림없이 지구 중심 가까이까지 왔을 거야. 그러니까 가만 있자, 어림잡아 6천 킬로미터는 떨어져 내려온 셈이로군." 왜 엘리스가 이런 말을 했는가 하면, 그러한 것을 여러 가지 배워 왔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옆에 아무도 없으니 아는 체하기엔 적당한 시기라고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셈을 해보고는 것도 좋은 복습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근방의 위도와 경도는 얼마쯤 될까?' 엘리스는 위도나 경도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지만, 그렇게 말을 해보니까 왠지 모르게 훌륭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대로 끝까지 떨어져 내려가면, 지구를 꿰뚫고 말지도 모를 일이야. 머리를 아래로 하고 걷고 있는 사람들 틈에 느닷없이 나가게 된다면 매우 우스울 거야, 틀림없이. 그런 사람들을 일컬어, 대…… 대조인이라 했던가?"
대조인이란 대척자(지구 저쪽에 사는 사람, 모두가 정반대인 사람)의 잘못으로서, 마침 아무도 듣고 있은 사람이 없어 다행이구나, 하고 나중에야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사람들에게 거기가 어느 나라냐고 물어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저, 아주머니, 여기가 뉴질랜드이어요,
오스트레일리아여요?" 엘리스는 이렇게 지껄이면서 인사를 하려 들었습니다.
자. 한번 생각해 보셔요. 공중에서 떨어져 내려가면서 인사를 하다니, 당신들인들 그런 짓을 할 것 같아요? 아래로 아래로 여전히 떨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아무 할 일도 없고 하여, 또다시 혼잣말을 지껄이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밤에 내가 없기 때문에 다이나가 몹시 쓸쓸해 할거야." 다이나란 고양이를 말하는 것입니다.
"짬짬이 누군가가 다이나에게 우유를 주는 것을 안 잊어 줬으면, 다이나, 네가 지금 여기에 있었으면 얼마나 좋겠니.
공중에는 쥐는 없지만 박쥐라면 잡을 수 있어. 박쥐는 쥐와 꼭 닮았지.
그렇지만 고양이가 박쥐를 먹을지 몰라?" 엘리스는 차츰 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꾸벅꾸벅 졸면서 그대로 지껄였습니다. "고양이는 박쥐를 먹을지 몰라…… 고양이는 박쥐를 먹을지 몰라……" 이렇게 말하는가 했더니,
"박쥐는 고양이를 먹을지 몰라……" 하기도 하더니, 어느 새 콜콜 코를 골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엘리스는 다이나와 손을 잡고 노는 꿈을 꾸었습니다. "다이나, 너는 박쥐를 먹어 본 적이 있니? 바른 대로 말해 주렴." 하고 말했을 때였습니다. 별안간 푹! 하고 마른 잎더미 위에 떨어졌습니다. 떨어져 내려가는 것은 이제 가까스로 끝난 것입니다. 상처는 한 군데도 나지 않았습니다.
앨리스는 이내 일어섰습니다. 위쪽을 쳐다보니 캄캄했습니다. 앞쪽엔 길게 뻗은 길이 있었습니다.
조금 전의 그 흰토끼가 재빨리 뛰어가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엘리스는 그 뒤를 쫓았습니다.
토끼가 어느 골목 모퉁이를 돌 때, "큰일났어, 정말 너무 늦어버렸어!" 하는 소리를 간신히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퉁이를 돌 때까지는 바로 뒤를 쫓고 있었는데, 그 모퉁이를 돌아가 보니까 이미 토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천장이 얕은 기다란 넓은 방안이었습니다. 천장에 매달려 있는 한 줄의 램프가 방안을 환히 비춰 주고 있었습니다. 넓은 방 안 벽에는 문이 몇 개나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창문이고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밖으로 나갈 수가 있을까?" 엘리스는 은근히 걱정이 되었습니다. 맥없이 방 한가운데에 와보니 거기엔 세 발 유리 테이블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 위에 단 한 개의 작은 황금열쇠가 얹혀 있었습니다.
'틀림없이 이 열쇠가 어느 자물쇠엔가에 맞을지도 몰라.'
그러나 어쩌랴! 그 황금열쇠는 어느 자물쇠에도 맞질 않았으니까요. 그래도 단념하지 않고 다시 한 번 돌리고 있을 때, 낮은 곳에 커튼이 늘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커튼을 걷자 거기엔 38센티미터쯤 될까말까한 조그마한 문이 있었습니다. 황금열쇠를 그 자물쇠 구멍에 넣어 보니 꼭 맞았습니다.
앨리스는 그 작은 문을 얼른 열었습니다. 쥐구멍 만한 구멍이 뚫어져 있었습니다.
무릎을 꿇고 들여다보니, 굉장히 아름다운 뜰이 보였습니다. 엘리스는 기어나가, 그 눈부신 화단과 분수가 치솟고 있는 뜰을 얼마나 거닐어 보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구멍은 머리도 들어가지 않을 만큼 좁았습니다.
'비록 머리가 들어간다 하더라도 몸이 들어가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지.
아, 내 몸이 망원경 모양으로 줄어들게 할 수는 없을까. 맨 먼저 하는 방법만 알면 반드시 될텐데.'
줄곧 신기한 일만 계속되었기 때문에, 엘리스는 이제 무엇이고 안 될 것이 없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우두커니 서 있어 봤댔자, 아무 소용도 없었습니다.
'참, 유리 테이블 위에 또 다른 열쇠나, 사람을 망원경 모양 줄어들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써 둔 책이 있을지도 몰라.'
이런 생각을 하면서 테이블이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그러자 테이블 위에는 조그마한 병 한 개가 있었습니다. '확실히 조금 전엔 없었던 거야.' 병목에 매어 둔 종이 꼬리표에는 라는 글귀가 큼직하게 씌어져 있었습니다.
영리한 엘리스는 성급하게 입을 대지는 않았습니다. '혹시 독이 있다면 적혀 있을지도 모르니, 우선 잘 살펴보아야지……"
앨리스는 간단한 교훈들을 명심하지 않아서 매우 혼이 난 어린이들의 이야기를 많이 읽어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빨갛게 단 부젓가락을 잡았다가 화상을 입었다던가, 무서운 짐승에 물렸다던가…… 그러나 병에는 그 어디에도 이라고는 씌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한 번 혀끝으로 맛을 보았습니다. 앵두를 섞은 파이와 커스터드, 태피와 파인애플과 구운 칠면조와 캐러멜과 구운 버터 토스트 등을 섞어 만든 굉장히 맛이 좋은 것이었습니다.
금새 빈 병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이, 기분이 이상해진다." 맥이 풀린 목소리로 엘리스는 말했습니다.
"틀림없이 망원경 모양 줄어드는가 보다." 정말 그대로였습니다. 이내 약 25센티미터 정도의 키로 줄어들고 말았습니다.
"야, 신기하다. 이만하면 그 아름다운 뜰에 나가 볼 수 있겠지." 기뻐서 엘리스의 얼굴은 꽃처럼 활짝 피었습니다.
그리고 좀더 줄어드나 안 줄어드나 하고, 2, 3분 동안 가만히 있었습니다.
'초와 같이 완전히 녹아 없어질지도 몰라. 그렇게 되면 나는 어쩌지.' 초가 녹아 없어진 다음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한참동안 더 있어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스는 곧 뜰로 나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작은 황금열쇠를 테이블 위에 놓아둔 채 잊어버리고 왔지 뭡니까.
테이블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와 보니 이것은 또 웬일입니까. 아무리 해도 손이 닿지를 않았습니다.
열쇠는 유리를 통해 아래서 빤히 보였지만, 하는 수 없이 급히 테이블의 다리를 타고 올라갔습니다. 자꾸만 줄줄 미끄러져 올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몇 번이고 되풀이하고 잇는 동안에 엘리스는 그만 온 몸의 힘이 빠지고 말았습니다.
가엾게도 너무나 지쳐서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울고만 있다고 무슨 수가 날줄 아니!" 엘리스는 언제나 자기 자신을 타이르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빨리 울음을 그쳐!" 이윽고 눈물이 마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테이블 밑에 조그마한 유리상자가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열어 보니 조그마한 과자가 한 개 들어있었습니다.
그 위엔 건포도로 하는, 예쁜 글이 씌어 있었습니다.
"좋아, 먹고말고. 키가 커지면 열쇠를 끄집어 낼 수 있을 것이고, 줄어든대도 뜰에 나갈 수 있을 게 아냐. 이래도 저래도 괜찮지 뭐." 엘리스는 과자를 조금 씹어 보았습니다.
두 손을 머리 위에 얹은 채, "줄어들까? 늘어날까?" 하고, 근심스럽게 혼잣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혀 아무런 변동도 일어날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신기한 일만 자꾸 일어나리라고 생각하고 있은 만큼, 아무변화가 없는 것은 따분하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엘리스는 그 과자를 전부 먹고 말았습니다.
"어머나, 이상하다?" 엘리스는 느닷없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번엔 세계에서 제일 큰 망원경 모양으로 자꾸만 늘어나는군! 나의 발이여, 안녕!" 발을 보니까,
발은 저 아래로 아주 멀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아, 가엾은 나의 발이여. 앞으로는 너에게 누가 신발이랑 양말이랑을 신겨 주겠니?
나로선 이제 하는 수 없어. 너를 돌봐 주고 싶지만,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잖니.
그러니까 이제부턴 네가 모든 일을 스스로 하도록 하지 않으면 안 돼." 엘리스는 잠깐 생각에 잠겼습니다. '하지만, 발에게 친절을 베풀지 않으면 안 돼. 그렇지 않으면 내가 어디 가고 싶어질 때 내 말을 잘 안 듣고, 엉뚱한 곳으로 갈지도 모르잖아.
그렇지, 돌아오는 크리스마스 때엔 예쁜 새 신을 사줘야지. 그 새 신을 어떻게 선사하면 좋을까.' 하고, 엘리스는 생각했습니다.
"신발 가게에 부탁해서 가져오게 하면 되겠지. 하지만 자기 발에게 선물을 보내다니 쑥스럽기 짝이 없지 뭐야. 그렇지만 좀 색다르게
앨리스 오른쪽 발 귀하
재받이 앞 깔개 위,
-친애하는 앨리스로부터
"아니, 내가 무슨 바보 같은 소릴 지껄이고 있을까?" 하고 말했을 때, 앨리스의 머리는 방 천장에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엘리스의 키는 자그마치 3미터도 더 되었습니다.
그제야 엘리스는 곧 작은 황금열쇠를 집어들고 뜰로 통하는 작은 문 앞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가엾게도 이번에 옆으로 엎드려 한쪽 눈으로 간신히 뜰을 내다보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그런 작은 문으로 빠져나간다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었습니다.
앨리스는 털썩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습니다. 너무너무 울었기 때문에 자그마치 10센티미터 깊이의 못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방안의 반쯤이 물에 잠기고 말았습니다.
얼마 후에 멀리서 작은 발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무엇일까 하고 엘리스는 얼른 눈물을 닦았습니다. 가만히 보니 좀 전의 그 흰 토끼였습니다. 고운 옷을 입고, 한 쪽 손에 흰 가죽장갑을 들고 있었습니다. 다른 한 손에는 커다란 부채를 들고 이쪽으로 되돌아오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아, 큰일났어. 그 공작 부인을 기다리게 하다니 얼마나 화를 내실까." 하고, 중얼대며 달음박질쳐 왔습니다.
앨리스는 그야말로 곤란한 지경에 빠져 있었으므로, 아무에게라도 도움을 바라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그래서 토끼가 옆에 왔을 때, "저……" 하고, 나직한 소리로 말을 걸었습니다.
깜짝 놀란 것은 토끼였습니다. 장갑이고 부채고 떨어뜨린 채 어둠 속으로 마구잡이로 달아나고 말았습니다. 앨리스는 흰 장갑과 부채를 주워 들었습니다. 방안이 몹시 더웠으므로 그 부채를 부치면서 혼잣말을 계속했습니다.
"아이 참, 오늘은 어째서 이렇게 신기한 일만 자꾸 일어날까? 어제는 평소와 조금도 별 다른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어쩌면 내가 밤 새 아주 변해버렸는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의 내가, 내가 아니라면 이 나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앨리스는 자기 또래의 동무들을 모조리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하여 자기가 그 중의 누군가로 변해 있지 않나,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는 레이더 양이 아닌 것만은 틀림없어. 아무튼 그 애의 머리카락은 굉장히 길게 땋아 내려뜨렸지 않았겠니.
그러나 내 머리는 땋아 내려뜨리지 않았단 말이다. 그렇지 참, 알고 있던 것을 기억하고 있는지 한 번 실험해 봐야지.
4·5는 12. 4·6은 13, 4·7은 …… 아니 이상하다. 하지만 구구법 따윈 아무래도 좋아. 지리를 한번 해보자. 런던은 파리의 서울. 파리는 로마의 서울. 로마는? 아, 아냐, 아냐. 모두가 다 틀렸어. 난 메이벌 양이 돼버렸는가 봐, 틀림없어. 그렇지, 라는 말을 할 수 있나 없나, 한 번 외어 보자."
앨리스는 언제나처럼 무릎 위에 손을 포개 얹고 외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목이 쉬어 마치 딴사람 목소리 같았습니다.
귀여운 꼬마 악어가
반짝이는 꼬리를 매만지고 있네,
나일강의 물을 끼얹으며
황금빛 비늘을 씻고 있네!
즐거운 듯 방글방글 웃으며
발톱을 살짝 펴고 있네,
방긋이 벌린 입으로
고기를 슬쩍 잘도 삼키네!
"이런 』怜?아니었는데." 앨리스의 두 눈에는 또 눈물이 담뿍 괴었습니다.
"나는 역시 메이벌 양으로 변하고 만 거야. 그 작고 더러운 집에 가서 살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장난감 하나 없고, 많이 있다는 것은 공부뿐. 난 싫어! 그렇지, 난 각오했어. 내가 메이벌 양으로 변했다면 차라리 여기에 이대로 있을 테야. 누군가가 위에서 들여다보면서, '자, 올라오렴!' 하고 해도 소용없어. 난 이렇게 말해 줄 테야. '그럼, 나는 누구여요? 그것을 먼저 말해줘요. 만일 그 사람이 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면 올라갈 테다.
싫다면 다른 사람으로 변할 때까지 여기에 있을래. 그렇지만……" 하고는 엘리스는 별안간 울기 시작했습니다.
"…… 하지만, 정말 누군가가 들여다봐 주었으면 좋겠어. 이젠 나 혼자 여기에 있는데 지쳐 버렸어."
앨리스는 그렇게 말하면서 문득 자기 손을 보았습니다. 어느 사이에 토끼가 떨어뜨리고 간 장갑을 끼고 있었으므로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었을까?' 엘리스는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틀림없이 내가 다시 작아지고 있는가보다.' 엘리스는 키를 재보려고 급히 테이블 옆으로 걸어갔습니다.
역시 그랬습니다. 약 70센티미터 정도로 줄어 있었습니다. 그뿐이 아니라 아직도 자꾸만 줄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원인은 손에 들고 있는 부채에 있었습니다. 그것을 깨닫게 된 엘리스는 얼른 그 부채를 팽개치고 말았습니다.
만일 그것을 깨닫지 못했었다면 아주 없어졌을지도 모릅니다. '큰일날 뻔했다.' 위험을 면하게 되어 앨리스는 매우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그 변화가 너무나 심하여 어이가 없었습니다.
"자, 빨리 뜰로 나가 볼까." 엘리스는 작은 문 있는 곳으로 달려갔습니다만, 문은 닫혀져 있고, 황금열쇠는 유리 테이블 위에 얹혀 있었습니다. "이간 처음과 조금도 달라진 게 없잖아." 하고 말했을 때였습니다.
앨리스의 발이 그만 미끄러졌습니다. "풍덩!" 소리를 내며 물 속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몹시 짠물이었습니다.
바다에 빠지지 않았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물이란 자기의 키가 3미터나 커버려서 마냥 울었을 때 눈물이 괴어 생긴 못이라는 것을 곧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울지 않았던들 괜찮았을걸." 엘리스는 헤엄을 치면서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그렇게 운 벌을 받은 거야. 자기의 눈물에 빠져 죽다니, 정말 우스워. 오늘은 왜 이렇게 이상한 일들만 생길까"
그때, 조금 떨어진 곳에서 풍덩풍덩 헤엄을 치고 있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뭘까?" 엘리스는 조용조용히 그 소리나는 쪽으로 헤엄쳐 갔습니다. 처음에는 물소가 아니면 하마인 줄 알았습니다. '그렇지, 나는 지금 아주 작아져 있는 거야.'
이렇게 고쳐 생각하며 자세히 살펴보니까 그것은 쥐였습니다.
앨리스와 마찬가지로 발이 미끄러져 빠진 모양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쥐에게 말을 건네면 알아들을까?"
엘리스는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여기선 뭐든지 신기한 일만 일어나고 있으니까, 이 쥐 역시 말을 할 줄 알지도 모르지 하여튼 말을 한 번 건네 보자. " 앨리스는 말을 걸었습니다.
"이봐 쥐야, 이 못의 출입구가 어딘지 아니? 난 이제 지쳤단 말야." 앨리스는 이러한 말투로 말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쥐는 이상하다는 듯이 엘리스는 가만히 보고 있었습니다.
'아마, 영어를 모르는 모양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프랑스 말로 했습니다.
"우 에 마 샤트(나의 고양이는 어디에 있지?)." 이것은 엘리스가 배운 프랑스어 책 처리에 있는 글귀였습니다.
그러자 쥐는 물 속에서 갑자기 솟아오르며 후들후들 온 몸을 떨었습니다.
"앗! 미안해요. 네가 고양이를 굉장히 싫어한다는 것을 내가 깜빡 잊어버리고 있었지뭐야."
"그렇고말고. 바꿔 생각해 보렴. 네가 나라면 고양이를 좋아하겠니?" "물론 그렇고 말고, 그렇지만, 우리 집에 있는 다이나를 보여 주고 싶다. 틀림없이 너도 금새 좋아질 거야. 얌전하고, 매우 귀엽단 말이야."
앨리스는 천천히 헤엄을 치면서 계속 말을 건넸습니다.
"난로 옆에 엎드려 아주 멋지게 목을 골골 울리는 거야. 그리고 손을 핥기도 하고, 얼굴을 씻기도 하고, 쓰다듬으면 보드라운 털이 포근해서 기분이 좋지. 그리고 참, 쥐를 잡는 데 있어선 아주 날쌔단 말이다. 앗, 또 미안해요."
쥐가 온 몸의 털을 곤두세우는 것을 보자 엘리스는 얼른 자기 잘못을 깨달았습니다.
"우리 집에서는 대대로 고양이를 싫어한단 말이다. 다시는 고양이란 말을 입 밖에 안 내주었으면 좋겠어."
"그래, 다시는 그런 말하지 않을게." 엘리스는 부랴부랴 말머리를 돌렸습니다.
"저, 저, 그럼 너는 개는 좋아하니?" 쥐는 잠자코 있었습니다. "우리 집 근처에 그야말로 예쁜 개가 있단다. 무언가 던져 주면 어김없이 물고 오는가 하면, 먹이를 달라고 보챌 때는 끙끙 콧소리를 내는 거야. 그 개는 농부가 기르고 있단다. '매우 쓸모 있는 개다. 100파운드의 값어치는 있다.'고 말들을 하고 있었지.
어떤 쥐라도 보기만 하면 닥치는 대로 모조리 잡아 죽인다나 봐. 앗 또 실수를 했네." 엘리스는 민망해서 어쩔 줄을 몰라 했습니다. "내가 또 쥐를 화나게 했구나!" 쥐는 못물을 헤치면서 도망쳐 갔습니다.
"쥐야, 쥐야…… 부탁이야, 한번만 더 가까이 와주렴. 앞으로는 절대로 고양이 얘기나 개 얘기는 안 할게."
이 말을 듣자 쥐는 홱 방향을 돌려 되돌아왔습니다. 쥐는 새파랗게 질려 있었습니다.
"기…기슭에, 오…올라가서, 나…나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마. 그것을 들으면 내가 왜 고양이나 개를
싫어하는가를 알게 될 테니까 말이다." 라고, 떨리는 소리로 나직이 말했습니다. 못은 어느 사이에
미끄러져 빠진 새와 짐승으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습니다. 오리, 앵무새, 밸로새끼, 도우도우 새 그밖에도 진귀한 여러 가지 동물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슬슬 못에서 나오는 것이 좋을 것 같았습니다. 엘리스는 앞장으로 모두가 기슭을 향해 천천히 헤엄쳐나갔습니다.
못기슭으로 올라와 보니까 모두가 정말 가엾은 꼴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새들은 물을 흠뻑 먹은 날개를 내려뜨리고 있었고, 짐승들의 털도 물에 푹 젖어 몸에 착 달라붙어 몹시 초라한 모습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먼저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떻게 하면 빨리 몸을 말릴 수가 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2, 3분이 지나자, 엘리스는 마치 동물들과 아주 옛날부터 잘 알고 있던 사이같이 느껴졌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조금도 서먹서먹하지 않게까지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앵무새와는 한동안 이야기를 주고받았지만, 마침내 앵무새를 화를 내게 하고 말았습니다.
"나는 너보다도 나이가 위란 말이다. 너보다는 무엇이고 더 많이 알고 있는 것은 당연하잖아."
화가 난 앵무새는 마지막에는 무슨 말을 해도 그저 이 말만으로 버티었습니다.
그때, 그들 중에서는 가장 으스대고 있던 쥐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모두들 앉아! 내 말을 들으란 말이다. 여러분들의 몸을 내가 곧 말려 주마." 모두가 곧 쥐를 둘러싸고 앉았습니다.
엘리스는 근심스럽게 그것을 조용히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에헴!" 하고, 쥐는 헛기침을 한번 하더니 조용히 말을 시작하였습니다. "모두들 잘 들어 주기 바란다. 이 얘기는 내가 알고 있는 얘기 중에서 가장 색다른 얘기란 말이다. 자, 조용히. 에에, 정복왕이라 일컬어지고 있는 노르망디 공 윌리엄은 로마법황의 힘을 빌어 단번에 잉글랜드 국민을 굴복시켰다. 그 당시 그들은 지도자가 필요했다.
또한 혁명과 정복이 되풀이되는 경험을 통해 퍽 익숙해져 있었다. 머셔 백작 에드윈과 노오덤브리아 백작 모오카는…"
"우, 우, 우, " 앵무새가 부들부들 떨고 있었습니다. "왜 그러니?" 쥐는 이맛살을 찌푸렸지만, 그래도 친절하게 물었습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어요." 앵무새가 대답했습니다. "그럼 얘기를 계속하겠습니다.
노오덤브리아 백작 모오카는 윌리엄 1세를 받들겠다는 취지의 성명을 발표했고, 애국자 캔터베리 대승정 스타이겐드까지도 윌리엄에게 왕관을 바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무슨 생각에서인지 쥐는 여기에서 잠깐 말을 중단하고는, "그런데 아가씨, 좀 어떠셔요?" 하고, 엘리스 쪽을 향해 물었습니다.
"아직도 흠뻑 젖은 그대로야. 당신의 얘길 들어도 조금도 마르지 않았어." 엘리스는 맥이 빠진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때, "그렇다면!" 하고, 얼른 일어선 것은 도우도우 새였습니다.
"내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들의 몸을 말리려면 코오커스 경주를 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코오커스 경주란 어떻게 하는 거지?" 엘리스가 물었습니다.
"그걸 설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경주를 해보는 거야." 당신네들도 추운 겨울날이면 그 경주를 하고 싶어질지도 모르니까, 도우도우 새가 어떻게 했던가를 얘기하겠습니다. 도우도우 새는 우선 달릴 코스를 동그랗게 줄을 그었습니다. 그으면서, "모양이 약간 이상해도 상관없어요."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고는 전원을 그 코스 안쪽에 여기저기 서 있게 했습니다. 하나, 둘, 셋의 신호도 없이 제각기 생각이 내키는 대로 뛰기 시작합니다. 그리하여 다시 생각나는 대로 멈추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 경주가 끝났는가를 전혀 알 수 없습니다.
모두가 신이 나서 약 30분 동안 달리다가 몸이 완전히 말랐을 무렵에, "경주 끝!" 하고 도우도우 새가 호령했습니다. 모두가 숨을 몰아쉬면서 도우도우 새를 중심으로 모였습니다. "도대체 누가 이긴 거야?"
도우도우 새도 고개를 갸우뚱하고 한동안 생각했습니다. 이윽고 도우도우 새가 힘차게 말했습니다.
"모두가 이긴 거야. 다들 상을 받는 거야!" "누가 상품을 주는 거죠?" "물론, 그건 저 사람이지."
도우도우 새는 엘리스는 가리켰습니다. 일동은 부리나케 엘리스를 둘러쌌습니다.
"상품, 상품!" 하고 마구 떠들어댔습니다. 엘리스는 난처해졌습니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호주머니에 손을 넣으니까 엿 상자가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상자 속은 물이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즉시 상품으로서 그것을 나눠주었습니다. 간신히 한 새씩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에게도 상품이 있어야죠?" 하고 쥐가 말했습니다.
"물론!" 하고 엄숙한 목소리로 대답한 것은 도우도우 새였습니다. "호주머니에 뭔가 없을까?"
엘리스를 쳐다보며 도우도우 새가 물었습니다. "골무가 하나 있을 뿐이야."
"그것을 주십시오." 도우도우 새가 골무를 받아들자, 일동은 엘리스를 둘러쌌습니다.
그러자 도우도우 새는 아주 의젓하게 골무를 꺼내 밀면서, "바라건대, 이 근사한 골무를 받아 주시기를." 하고 말했습니다.
엘리스는 이게 무슨 어리석은 수작이냐는 생각이 들었지만, 모두가 너무나 진지한 태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웃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무어라고 말해야 좋을지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 일부러 의젓한 시늉을 하며 골무를 받았습니다.
그러고 난 후에 모두가 엿을 먹었습니다. 맛있는 엿에 모두들 야단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소동도
가까스로 가라앉고 일동은 또다시 옹기종기 둘러앉아 쥐에게 무슨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라댔습니다.
"맞았어, 너는 너에 대한 얘기를 해준다고 그랬잖았어." 하고 엘리스가 말했습니다. "그리고, 또 왜 고양이와 개를 싫어하는 가도 얘기해 준다고도 했지." 엘리스는 혹시나 주의 기분을 잡칠까 봐 조심스레 작은 소리로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그럼, 나에 대한 얘기를 하기로 하지. 그것은 그야말로 길고 긴 슬픈 얘기(영어로 테일이라고 발음함)입니다."
쥐는 엘리스를 쳐다보며 긴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정말, 길고 긴 꼬리(영어로 테일이라고 발음함)이군."
엘리스는 쥐의 긴 꼬리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꼬리가 슬프다니, 왜 슬프지?"
쥐가 얘기를 하고 있는 동안 엘리스는 자꾸만 꼬리 생각 만하고 있었습니다.
“퓨리가 집에서 만난 쥐에게 말했다. '우리 함께 재판소에 가자. 나는 너를 고소할 꺼야.- 자, 나는 증언할 꺼야. 우리는 재판을 해야 해 : 오늘 아침에 나는 할 일이 없기 때문이지.' 쥐가 개에게 말했다.그런 재판은 우리에게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라고. '내가 판사가 되고, 간수도 될 것 이야. 마음 고약한 늙은 퓨리가 말했다.
'나는 재판을 할 것이고 너를 사형으로 언도 내릴 것이다.
"너는 듣고 있지 않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쥐는 엘리스를 향해 다그쳐 소리를 질렀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마 틀림없이 다섯 번째 모퉁이까지 왔댔죠?"
"틀렸어!" 그 틀렸다는 말의 마지막 말꼬리에 붙은 를
엘리스는 실마리가 얽히는 로 착각하고 만 것이었습니다.
"예, 얽혔다고요? 내가 풀어드릴까?" "귀찮아!" 쥐는 부리나케 일어나 저쪽으로 걸어가면서,
"너는 일부러 그런 엉뚱한 소리를 하여, 나를 곯려 주려고 하는 거지." 하고 말했습니다.
"그런게 아냐. 그런데 당신은 왜 그렇게 화를 잘 내지?" 쥐는 아무 대꾸도 않고, 그저 신음 소리만 내고 있었습니다.
"내가 잘못했어. 부탁이야, 돌아와 그 얘길 끝가지 들려주렴!" 엘리스는 뒤에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다른 동물들도 일제히 입을 모아, "그래, 그래, 부탁이야!"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쥐는 머리를 가로 저을 뿐,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그 뒷모습이 안보이게 되자, "가버렸다, 유감스럽게도." 하고 앵무새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러자 바로 이때라는 듯이 어미 게가, "이봐, 저렇게 잘 토라지면 못쓰는 거야." "듣기 싫어요, 어머니. 그런 소릴 한다면 참을 성 있는 저 굴조개라도 화를 낼 거여요." 하고, 휙 옆으로 고래를 돌리고 말았습니다.
그때, 엘리스가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아, 이럴 때 우리 다이나가 여기 있었으면 좋으련만. 다이나라면 당장 쥐를 데리고 올 수 있을 텐데." "다이나라니, 누구 말이지?" 앵무새가 물었습니다. 엘리스는 다이나의 이야기가 하고 싶어 좀이 쑤셨기 때문에 이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이나란 우리 집 고양이야. 쥐를 잡는 데 있어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아. 더구나 새를 잡는 그 날쌘 모습은 정말 보여 주고 싶을 정도란 말이다. 새새끼 따윈 금새 잡아 삼키거든." 그 말을 듣자 동물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눈치 빠른 작은 새들은 재빨리 날아가 버렸고, 나이 많은 가치는, "이제 돌아가 봐야지. 밤 공기는 몸에 좋지 않단 말이야."
하면서, 조심조심 갈 준비를 서둘렀습니다. "얘들아…… 자, 그만 가자꾸나. 벌써 잘 시간이다." 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 것은 카나리아였습니다. 모두들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떠나가고 말았습니다.
나중까지 남은 것은 엘리스 혼자뿐입니다. "다이나 얘길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 엘리스는 쓸쓸하게 혼잣말을 지껄였습니다. 엘리스는 갑자기 슬퍼져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있노라니까, 저 멀리서 작은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쥐가 마음을 가라앉히고 조금 전에 하던 이야기를 계속하려고 오는 줄 알고, 엘리스는 가만히 그 걸음 소리가 들리는 곳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깡충깡충 뛰어온 것은 흰 토끼였습니다. 무슨 떨어뜨린 것이라도 찾는 것처럼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중얼대고 있었습니다.
"큰일났어, 큰일났어! 아, 내 발이여, 수염이여, 털가죽이여, 공작 부인이 틀림없이 나를 사형에 처하겠지. 도대체 어디에다 떨어뜨렸을까?"
엘리스는 곧, 부채와 가죽장갑을 찾고 있다는 것을 당장 알아차렸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데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것뿐이 아니고, 엘리스가 못에 빠져 헤엄을 치고 있는 동안에, 뭐고 다 변하여 그 커다란 방도, 유리 테이블도, 작은 문도, 모두가 사라져 없어지고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윽고 토끼는 엘리스를 보자,
"아니, 메어리 앤 아가씨가 아니냐? 이런 곳에서 뭘 우물쭈물하고 있는 거야. 빨리 집에 돌아가서 부채와 장갑을 갖다 줘. 자, 빨리빨리!" 하고, 못마땅하다는 듯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깜짝 놀란 엘리스는 토끼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허둥지둥 달려갔습니다. '나를 자기네 집 심부름꾼으로 잘못 알고 있나 봐.' 뛰어가면서 힐쭉 웃었습니다.
"자기가 잘못 안 것을 알면 얼마나 놀랄까. 하지만 부채와 장갑만은 가져다 주는 게 좋겠어. 만일 찾을 수 있다면 말야."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에 어느덧 깨끗하고 조그마한 집 앞에 닿았습니다.
출입구에 걸려 있는 문패에는 라고 새겨져 있었습니다. 엘리스는 노크도 않고 들어갔습니다.
장갑과 부채를 발견하기도 전에 진짜 메어리 앤이라는 그 심부름꾼과 마주치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급히 2층으로 올라갔습니다. "토끼의 심부름을 하다니, 정말 내가 주책없구나. 이러다간 요다음에는 다이나까지 나를 부려먹으려 들지도 모르지, 틀림없어." 그렇게 되면 꼴이 어떻게 되겠느냐고, 엘리스는 여러 가지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에 어느새 말끔히 정돈이 잘 돼 있는 조그마한 방에 와 있었습니다.
창문 곁에 놓여 있는 테이블 위에, 엘리스가 짐작한 대로 부채와 흰 가죽장갑이 두서너 켤레 얹혀 있었습니다.
엘리스는 부채와 장갑 한 켤레를 갖고 막 방을 나오려는데 경대 앞에 조그만 병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하는 상표가 이번엔 붙어 있지 않았지만, 엘리스는 뚜껑을 열고 입으로 가져갔습니다.
'무언가 먹든지 마시든지 하기만 하면, 반드시 재미있는 일이 일어난다. 이 물을 마시면 이번에는 어떻게 되는가 실험해 봐야지. 내가 아주 키다리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이젠 이런 조그마한 몸집에 싫증이 났어.' 바로 그대로였습니다.
그것도 그 효과가 뜻밖에 빨리 나타났습니다. 아직 반도 채 마시기 전에 엘리스의 머리는 천장에 닿고 말았습니다.
목이 부러지지 않게 몸을 구부리지 않으면 안 될 정도였습니다. 엘리스는 놀라 병을 놓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가엾게도 그 뒤의 처리가 낭패였습니다. 엘리스는 자꾸자꾸 커지기만 했습니다.
방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편하지 않아 이번에는 한쪽 팔은 머리를 감고 한쪽 팔꿈치는 문에 대고 드러누워 보았습니다. 그래도 괴로워서 이번에는 한족 팔을 창 밖으로 내밀고, 한쪽 다리를 굴뚝 속으로 집어넣었습니다.
'이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됐어. 난 도대체 어떻게되는 걸까?"
다행히 그때 그 야의 효과가 없어져 키가 커지는 것이 멎었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역시 거북해서 다시는 바깥에 나갈 수가 없을 것 같아서 엘리스는 슬퍼지고 말았습니다. '집에 있을 때가 훨씬 즐거웠었는데, 커졌다가 작아졌다가 하지도 않고, 그리고 쥐나 토끼 따위의 심부름을 한 적도 없었어.' 어떤지 자꾸만 서글퍼지고, 이상야릇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이젠 더 이상 커질 수는 없을 거야. 그렇다면 이제 더 이상 나이도먹지 않을지 모르겠어. 아이 좋아! 할머니가 되지 않을 테니. 그런데 그렇게 되면, 언제까지나 공부를 해야 할거야. 아이참, 그럼 싫어!'
"이 바보 같은 엘리스야!" 하고, 엘리스는 스스로 대답했습니다. "여기서 어떻게 공부를 하니? 너 혼자만으로도 방이 가득하지 않니. 어디다 교과서를 놓지?" 엘리스는 저 혼자서 말을 주고받았습니다.
"메어리 앤! 메어리 앤!" 엘리스는 귀를 기울였습니다. "메어리 앤! 장갑은 어떻게 했니?" 쿵쿵 층층대를 올라오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토끼가 자기를 찾아온다는 것을 엘리스는 곧 알았습니다. 겁이 나서 몸을 부들부들 떨었습니다 .
그러자 집이 삐걱삐걱 소리를 내며 흔들렸습니다. 엘리스의 몸집은 이제 토끼의 천 배나 커져 있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겁낼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스는 지금 그러한 것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토끼가 문 앞까지 왔습니다. 열심히 문을 열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은 안으로 열리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거기다가 엘리스의 팔꿈치가 꾹 누르고 있으니 문은 까딱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창을 넘어 들어가자." 토끼가 중얼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절대로 들어오지 못하게 할걸!"
토끼가 창문 가까이로 오는 것을 기다려, 엘리스는 느닷없이 창문으로 손을 내밀어 덥석 잡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허공을 잡았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때, 작은 비명이 들렸습니다. 그와 함께 무엇인가 떨어지는 소리와 유리가 깨어지는 소리가 났습니다. '아마 오이를 기르는 유리로 덮은 온실 위에 떨어진 게 틀림없다.'
엘리스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토끼가 화를 내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패트, 패트, 어디에 있느냐!" 그러자, 엘리스가 이제까지 들어 본 적이 없었던 이상한 소리가 났습니다. "예, 예, 여기에 있습니다. 능금을 파내고 있습니다." "능금을 파내고 있다고? 이 바보야! 빨리 와서 나를 잡아 당겨 올리란 말이다!"
또, 유리 깨지는 소리가 났습니다. "패트, 창문으로 나와 있는 게 뭐지?" "앗, 아무리 봐도 사람의 팔 같습니다."
"뭐, 팔이라고? 이 얼빠진 녀석아! 저렇게 큰 팔을 본 적이 있어. 보랏, 창문에 꽉 차있지 안냐." "과연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사람의 팔이옵니다." "듣기 싫어, 그건 어쨌든 좋아, 저것을 빨리 가지고 가란 말이다."
그러고는 갑자기 조용해졌습니다. 한동안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별안간 여러 사람들이 조잘대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또 한 개의 사다리는 어디 있지?" "난 하나밖에 가져오지 않았어. 빌이 또 한 개를 가지고 있어."
"빌, 그걸 이리 가져와 줘."
"이 구석에 세우면 돼."
"아니야, 두 개의 사다리를 줄로 매서 이어야 해. 그래도 반밖에 닿지 않는다."
"그러면 돼, 잔소리하지마."
"자, 빌. 꼭 밧줄을 쥐고 있어야 해. 거기 기왓장이 헐거워져 있다. 조심하란 말야. 아, 떨어졌어. 밑에 있는 자들은 머리를 조심해!"
탕! 하는 소리.
"누가 그랬지?"
"빌이야."
"누가 굴뚝을 타고 내려갈 테야?"
"난 싫어. 빌이 가기로 돼 있잖아. 이봐, 빌! 주인 나리의 명령이야."
"아니, 빌이 내려오는군. 나, 빌 같은 신세가 되고 싶지는 않아. 이 난로는 정말 좁지만, 그래도 조금쯤 발로 찰 수 있을 테지."
엘리스는 힘껏 굴뚝 밑으로 발을 움츠리고는, 그 조그마한 동물이 내려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 동물이 어떤 동물인지 전혀 상상을 할 수 없었으나 가까워 오는 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이게 바로 빌이구나!" 하고 혼잣말을 하면서, 소리가 가까워지자 힘껏 차고는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하고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맨 처음 들려온 것은, "앗, 빌이 날아간다." 하고, 외치는 여러 사람들의 소리였습니다.
그 소리에 이어 토끼가, "담장 가까이 있는 자들, 빌을 빨리 받아랏!"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러고는 한동안은 조용했습니다. 그러나 또다시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자, 머리를 들라, 기운 내는 브랜디야." "기운을 내라고, 빌." "어쨌든? 어째서 이렇게 된 거야? 어디 얘길 좀 해보려무나."
끝으로 가냘픈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잘 모르겠어. 고마워요. 어쨌든 굉장히 혼났단 말야.
어떻게 얘길 했으면 좋을지 모를 정도야. 기억이 나는 것은, 인형같이 생긴 것이 느닷없이 튀어나와 내게 부딪쳤는가 했더니, 내가 마치 불꽃처럼 공중으로 솟아올랐다는 것뿐이야." "정말 불꽃같았어." 하고, 모두가 입을 모아 이렇게 말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이렇게 되면 이 집을 불태워 버리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말한 것은 토끼였습니다.
"그런 짓을 하면 다이나를 시켜 혼을 내줄 테다!" 엘리스는 소리소리 질렀습니다. 그러자 곧 얘기 소리들이 뚝 끊겼습니다.
'이젠 뭘 하려는 걸까? 좀더 영리했다면 지붕을 벗길 텐데.' 하고 엘리스가 생각했을 때,
또 다시 모두가 움직이기 시작한 모양입니다. "처음엔 손수레에 가득 하나면 돼." 하고 외친 것은 토끼였습니다.
'뭐가 가득 하나면 되나?' 엘리스가 약간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창으로 돌멩이가 비 오듯이 날라 왔습니다. 엘리스의 얼굴에도 맞았습니다.
"이따위 짓은 당장 중지시켜야지. 두 번 다시 이런 짓을 해선 안돼!"
엘리스가 고함을 지르자, 또 조용해졌습니다. 마루에 떨어진 돌멩이를 보고 있노라니
그것은 하나 둘 과자로 변해지는 것이 나이겠습니까. 엘리스는 깜짝 놀랐지만, 이내 기가 막히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이 과자를 먹으면 틀림없이 내가 더 커지거나, 아니면 작아질 거야. 하지만 이 이상 더 커지는 것은 싫으니까 꼭 작아질 거야.'
엘리스는 과자를 한 개 집어 삼켰습니다. 그러자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짐작한 대로 문으로 나갈 수 있을 만큼 작아졌습니다. 엘리스는 곧 집을 뛰쳐나갔습니다.
밖에는 작은 동물과 새들이 많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 한복판에서 두 마리의 기니아픽에 안겨서 병에 든 것을 마시고 있는 것은 도마뱀인 빌이었습니다. 엘리스의 모습을 보자, 모두 엘리스 쪽으로 달려왔습니다.
엘리스는 냅다 도망쳤습니다. 그리하여 울창한 숲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우선 해야 할 일은 내 몸집을 본디의 크기만큼 하는 것. 다음에는 그 아름다운 뜰을 찾아내는 것.'
숲 속을 헤매면서 엘리스는 생각했습니다. 확실히 그것은 훌륭한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도무지 몰랐습니다. 근심스럽게 나무 사이를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노라니까, 머리 위에서 갑자기 무슨 짖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날카로운 소리에 놀라 얼른 쳐다보니 그것은 굉장히 큰 강아지가 아니겠습니까. 크고 둥그런 눈으로 엘리스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한쪽 발을 내밀어 엘리스를 건드리려 들었습니다. "오냐, 오냐." 하고, 어르면서 휘파람을 불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만일 몹시 배가 고파하고 있다면 그야말로 큰일이었습니다. 엘리스를 냉큼 잡아먹고 말지도 모릅니다.
엘리스는 조그마한 나뭇가지를 하나 주워 강아지에게 내밀었습니다. 강아지는 기쁜 듯이 짖으며 다리를 가지런히 하여 그 나뭇가지에 덤볐습니다. 밟히면 큰일이다 싶어 엘리스는 큰 엉겅퀴 그늘에 숨었습니다.
강아지는 그 뒤를 쫓아왔습니다. 밟혀 죽게 된다면 그야말로 야단이었습니다. 엘리스는 엉겅퀴 둘레를 빙빙 돌았습니다. 그래도 강아지는 가지 사이로 노려보며 덤벼들었습니다.
짖다간 뛰고, 뛰다간 짖고, 그러는 동안에 강아지는 혓바닥을 쭉 빼물고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커다란 눈을 반쯤 감은 채 헐레벌떡 숨을 몰아쉬고 있었습니다. '도망치려면, 바로 이때다!' 엘리스는 숨이 찰 때까지 달렸습니다.
강아지의 짖는 소리가 멀리 사라졌을 때, 엘리스는 미나리아재비의 줄기를 휘어잡았습니다.
잎을 하나 따서 부치면서 혼잣말을 했습니다. "저 강아지에게 여러 가지 재주를 가르쳐 주고 싶었어.
만약 내가 어른들만큼 컸더라면…… 앗, 깜박 잊어버리고 있었어. 한 번 더 커져야 한다는 걸. 하지만 이젠 어떻게 하면 커질지 몰라. 뭘 먹든지 마시든지 하면 되겠는데, 문제는 그 을 어떻게 찾아내느냐에 있어."
엘리스는 주위를 살폈습니다. 꽃과 풀들은 많았지만, 먹거나 마실 수 있는 것은 도무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바로 옆에 엘리스와 키가 비슷하게 큰 버섯이 하나 돋아 있었습니다.
밑에서 뒤쪽을 보니까, 이번에는 삿갓 위에 무엇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발돋움을 하고 버섯의 삿갓 위를 살짝 보았습니다.
그 순간, 엘리스의 눈은 커다란 푸른 털벌레의 눈과 똑바로 마주쳤습니다.
그러나 털벌레는 삿갓 위에 앉아서 팔짱을 끼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엘리스가 보고 있는 것도 모른 체하고, 기다란 물빨대로 담배를 뻑뻑 피우고 있었습니다.
털벌레와 엘리스는 한동안 말없이 서로 눈을 마주보고 있다가 털벌레가 천천히 입에서 물빨대를 떼고 나른한 목소리로 엘리스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넌 누구냐?"
"저…… 아직 누군지 잘 모르겠어요."
"그게 무슨 소리냐?" 털벌레의 목소리는 나무라는 투였습니다. "잘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을 해요!"
"하지만, 설명할 수 없는 걸. 왜냐하면 나는 내가 아닌걸요."
"모르겠다. 무슨 소린지." "정말 죄송합니다만, 이 이상 더 알기 쉽게 설명할 수가 없어요. 왜 그러냐구요? 나 자신도 그것을 잘 몰라요. 거기다가 하루에도 몇 번이고 몸의 크기가 변해지니까 까다로워서 무어가 무언지 모르겠어요."
엘리스는 아주 상냥하게 대답했습니다. "그럴 수가 있어?"
"글세, 털벌레께서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지 몰라. 당신이 번데기로 변해서…… 언젠가는 그렇게 되겠지만 말야. 그리고 또 나비로 변하면 아마 틀림없이 이상한 생각이 들 거여요."
"그런 생각이 들 리가 없어." "털벌레 당신의 생각이 잘못일 거여요. 나 같으면 굉장히 이상한 느낌이 들 거라고 생각해요."
"너 같으면 말이지……" 털벌레는 아주 얕보는 말투로 말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너는 도대체 누구지?" 이야기는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엘리스는 털벌레가 퉁명스럽게 말했기 때문에 뿌루퉁해졌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한번 상냥하게 말을 걸었습니다. "당신이야말로, 당신의 이름을 먼저 말해야 옳지 않아요?"
"왜?" 하고, 털벌레는 되물었습니다. 이것도 역시 난처한 문제였습니다.
엘리스는 그 물음에 알맞은 말이 얼른 머리에 떠오르지 않아, 털벌레가 매우 토라진 것 같아 자리를 뜨려고 했습니다.
"이리 와요. 너에게 꼭 얘기해 두지 않으면 안 될 중요한 얘기가 있어." 하고, 털벌레가 뒤에서 불렀습니다.
뭔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아, 엘리스는 휙 돌아서서 다시 되돌아왔습니다. "화를 내면 안 돼!" 하고, 털벌레가 힘주어 말했습니다. "그것뿐?" 엘리스는 화가 왈칵 치솟았지만, 애써 그 감정을 누르고 이렇게 물었습니다.
"아니냐." 털벌레는 간단히 중얼거렸습니다. 그리고 털벌레는 잠자코 물빨대를 빨고 있더니,
천천히 팔짱을 풀고는 물빨대를 입에서 떼었습니다.
"그럼, 너는 네가 변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지?" "아마 그런가 봐요. 그전처럼 여러 가지 기억이 되살아나질 않으니까 말여요. 그리고 또 단 10분간을 같은 크기로 있을 수 없으니 말여요."
"어떤 기억이 되살아나지 않는단 말인가?" "을 외고 싶어도 아무래도 그 말이 뒤죽박죽이 되고 영 안되지 않겠어요." 엘리스의 말소리는 몹시 쓸쓸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는 노래를 외어보렴." 털벌레의 말을 듣고 엘리스는 언제나처럼 두 손을 맞잡고 외기 시작했습다.
"아버지는 늙었어요." 젊은이가 말했지,
"아버지는 호호백발인데도 :
언제나 물구나무 서기를 하시네요-
그러실 나이는 지났잖아요?"
"내가 젊었을 때," 아버지 윌리암이 아들에게 말했지,
"그것이 머리에 나쁜 줄 알았단다.
하지만, 지금은 어차피 나빠졌으니
하고싶은 대로 계속하는 거란다."
"아버지는 늙었어요." 젊은이가 말했지,
"게다가 너무 살이 찌셨구요 :
그런데도 집에 돌아오실 때면 언제나 공중제비니 왠일이지요?"
"내가 젊었을 때," 아버지는 흰 머리를 날리며 대답했지.
"내 팔다리는 정말 튼튼했단다.
이 약 덕분이지-한 상자에 1실링 너도 두 상자쯤 사렴?"
"아버지는 늙었어요." 젊은이가 말했지,
'턱에 힘도 빠지고, 물렁물얼한 비게나 드셔야 해요.
아니 거위를 통째로 잡수셨군요-
그 재주를 가르쳐 주시겠어요?
"내가 젊었을 때," 아버지가 말했지.
"나는 재판소에 가서,
네 엄마하고 늘 말씨름을 했단다.
그래서 턱에 힘센 근육이 생겼고
지금까지도 이렇게 튼튼하단다.
"아버지는 늙었어요." 젊은이가 말했지,
"눈도 어두워 잘 못 보실텐데:
아니 콧등에 뱀장어를 세우시다니
그런 재주는 어떻게 배우셨어요?
"나는 벌써 세 가지나 대답했단다."
아버지가 말했지. "건방지구나!
더 이상 쓸데없는 말을 하지 마라!
비켜라, 안 비키면 층계아래로 떨어뜨려 버릴테다!"
"틀렸어!" 털벌레가 날카로운 소리를 질렀습니다. "약간 틀렸는가 봐요."
"처음부터 끝까지 다 틀렸어." 한동안 둘이는 말없이 가만히 있었습니다. 털벌레가 너무나 똑똑히 말했기 때문입니다.
이윽고 털벌레 쪽에서 먼저 말을 걸어왔습니다.
"얼마만큼 커지고 싶지?" "얼마만큼 이라니, 아무래도 좋아요. 다만 몇 번이고 크기가 변하는 것만은 싫어요. 아시겠죠?"
"모르겠는데." 엘리스는 잠자코 있었습니다. 이제까지 이렇게 하나하나 반대를 당한 일이 없었기 때문에 속이 상했습니다.
"지금 그대로 좋은가?"
"글쎄, 될 수만 있다면 조금만 더 컸으면 좋겠어요. 7센티미터로선 정말 너무나 보잘것없지 않겠어요."
"뭐가 보잘것없니, 꼭 알맞은걸!" 화난 목소리로 말하고는 털벌레는 똑바로 허리를 펴 보였습니다.
털벌레의 키는 꼭 7센티미터였습니다. "하지만, 난 이렇게 작은 것엔 아직 익숙지 않은걸요." 엘리스는 아주 가엾은 목소리로 말했지만 마음 속으로는, '동물들이 제발 성을 내지 말았으면.' 하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곧 익숙하게 돼!" 하고, 털벌레는 내뱉듯 말하고선 또 물빨대를 뻐끔뻐끔 빨기 시작했습니다. 엘리스는 다시 털벌레의 마음이 가라앉기를 가만히 기다렸습니다. 2, 3분이 지나자 털벌레는 하품을 하면서 온 몸을 한 번 부르르 떨었습니다. 그러고는 풀밭 속으로 들어가면서,
"한쪽에서는 커진다. 다른 한쪽에서는 작아진다." 하고 중얼댔습니다. "한쪽이라니, 무엇의 한쪽이란 말일까?"
"버섯이야." 이렇게 말하고는 털벌레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습니다. 엘리스는 한참 동안 버섯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어느 쪽이 어느 쪽인지 모르겠는걸?' 버섯은 동그랗기 때문에 이것은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엘리스는 양쪽 팔을 힘껏 벌려서 오른쪽과 왼쪽의 가장 자리를 조금씩 뜯어내었습니다.
"어느 쪽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어." 그러면서 오른쪽에 쥔 버섯 조각을 조금 씹어 보았습니다. 그 순간, 무언가에 턱밑을 탁! 하고 호되게 얻어맞았습니다. 힐끗 아래쪽을 보니까, 아니 그것은 바로 자기의 발이 아니겠습니까.
너무나 기가 막힌 변화에 놀랐지만, 우물쭈물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습니다. 이대로 있다간 녹아 없어질지 모릅니다.
그래서 급히 왼쪽 손에 쥐고 있던 버섯 조각을 먹으려고 했지만, 턱이 발에 딱 불어 있어서 입이
마음대로 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간신히 입에 넣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자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아아, 기분이 좋아! 머리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어." 하고 엘리스가 기뻐하며 말했다고 생각하자,
다음 순간에는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고 말았습니다. 자기의 어깨가 온데간데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아래를 내려다보자니까 검푸른 바다 비슷한 것이 바람결에 출렁이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기다랗게 늘어난 목이 마치 나무 줄기같이 보였습니다. "저 검푸른 것은 무엇인지 몰라?" 엘리스는 눈이 휘둥그래졌습니다.
"앗 참! 내 어깨는 어디로 갔을까? 내 팔은 어떻게 된 걸까. 아, 가엾은 나의 팔, 어째서 네가 보이지 않니."
그러면서 엘리스는 팔을 움직여 보았습니다. 저 아래쪽 가장자리가 조금씩 움직일 뿐 아무 반응도 없습니다.
손을 머리에까지 가져온다는 것이란 어림도 없었기 때문에 엘리스는 머리를 손 쪽으로 움직여 볼까 생각했습니다.
그랬더니 다행히도 머리만은 뱀 모양 아무 쪽이고 어디고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스는 목을 꾸부려 검푸른 파도 쪽으로 가까이 가져가 보았습니다. 그것은 바다가 아니고, 이제까지 쳐다보고 있던 나무끝 가지들이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곧 그 나무 숲 속으로 파묻히려 할 때, 파닥파닥 날카로운 소리가 났습니다. 깜짝 놀라 머리를 쳐들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얼굴을 향해 날아온 것이 있었습니다. 커다란 한 마리의 비둘기였습니다. 엘리스의 얼굴을 사정없이 두들기며,
"이 뱀놈아!" 하고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엘리스는 멍해졌습니다. "난, 뱀이 아냐!" "뱀이야, 뱀에 틀림없어."
그 소리는 먼저보다는 약간 침착한 소리였습니다. 이어서 이렇게 지껄였습니다.
"정말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어. 이래저래 해보았지만……" 이렇게 말하면서 비둘기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건 무슨 소리지?" 하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엘리스에게 막무가내로 지껄여댔습니다.
"나무뿌리도 시험해 보았다. 둑도 시험해 보았다. 울타리도 시험해 보았다. 그런데 뱀이란 놈! 저놈에게는 정말 당해내지 못하겠단 말이다." 엘리스로서는 점점 더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비둘기가 할말을 다하기 전에는 무슨 소리를 해도 소용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알을 품고 있는 것만 해도 이만저만이 아닌데, 낮이고 밤이고 뱀을 지키고 있지 않으면 안 되다니. 이 3주일 동안은 눈 한 번 붙이지 못했단 말이다." "정말 가엾게도." 엘리스는 그제야 간신히 까닭을 알 수 있었습니다. 비둘기는 또 지껄이고 있습니다. "숲 속에서 가장 높은 나무를 골라 '여기라면 괜찮겠지'하고 생각할라치면 이번에는 공중에서 구불구불 내려오질 않겠나. 이 고약한 뱀놈!"
"난 뱀이 아니란 말여요. 정말……" "그럼 넌 뭐냐. 우물우물 얼버무릴 작정이냐?" "난 …… 난 계집애여요."
"흥, 난 계집애를 많이 봄 적이 있어. 그런데 너와 같이 그렇게 기다란 모가지를 갖고 있는 애는 하나도 없었어. 아냐, 넌 틀림없이 뱀이야! 이번엔 알 따위를 먹어 본 일이 없다고 말할 참이지?"
"아니, 아니, 알은 먹어요. 하지만 계집애는 뱀에게 지지 않게 알은 먹어요."
"그렇다면 계집애란 뱀의 일종이란 말이지?"
비둘기는 못마땅한 듯이 이렇게 말하고선 자기 둥지로 날아가 버렸습니다.
엘리스는 나무 사이를 파고 들어갔습니다. 나뭇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