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estion for Answer - 해답이라는 별명을 가진 남자 아이버슨의 첫번째 시그네이쳐 Question1.
오승용2008.11.25
조회78
Question for Answer
해답을위한 질문? 보통 질문을위한 답이 있기마련이지만
퀴즈 이야기가 아니다. The Answer라 불리우는 남자 엘런 아이버슨의 첫번째 시그네이쳐 모델 이야기다
먼저 아이버슨이 누구??? 이런 분들을 위해 소개부터 해보자
Full Name : Allen Ezail iverson
birth : 1975. 06.07
A.K.A : The Answer
Team : Detroit Pistons
- 식서스와의 계약: 1996년 3년계약에 1,000만 달러, 1999년 6년계약에 7,100만 달러, 2003년 6년계약에 1억 5백만 달러를 받았다. - 2006년 12월 20일, 덴버 너기츠로 이적 - 2008년 11월 03일, 디트로이트 피스톤즈로 이적 - 리복과의 계약: 1996년 10년계약에 5,000만 달러, 2001년 종신계약으로 1억 달러(추정)를 받았다. - 2001년 8월 3일 9년간의 여자친구였던 Tawanna Turner와 결혼식을 올렸다. - 그녀와의 사이에 두 딸 Tiaura(95년생), Messiah Lauren(2005년생), 두 아들 Deuce(98년생),Isaiah Rahsaan(2003년생)이 있다. - 2008년 10월 7일 그들의 다섯번째 아이로 딸인 Alijha가 태어났다. - 여가시간에 독서와 그림그리기를 즐긴다. - Sports Illustrated를 즐겨 읽는다. - Brandy와 Iiesha라는 여동생들이 있으며, 아이버슨의 셋째아이인 Isaiah가 태어나고 두 달 후에 남동생 Mister Allen(애칭 Trey)가 태어났다. - 장학재단인 크로스오버 재단을 설립한 이후로 98년부터 매년 여름 자선행사를 열고 있다. - 미식축구경기도 좋아한다. - 엔터테인먼트업계는 그에게 관심이 많다? 스파이크 리 감독의 98년작 "He Got Game"의 지저스(레이 알렌 분), 뮤직비디오 브랜디&모니카의 "The Boy is Mine"의 "The Boy"(메키 파이퍼 분), 뮤직비디오 아샨티의 "Happy"에서 아샨티의 남자친구 등이 모두 그가 맡기로 내정되어있던 배역들 - 승용차 Bentley Azure, Mercedes Benz CL600, Range Rover 4.6, Cadillac Escalades, Lexus ES300, Rolls-Royce Phantom, Bentley GT Continental을 소유하고 있다.
대충 봐도 어마어마한 플레이어다 하지만 그는 엘리트도 모범생도 아닌 지긋지긋한 가난에 시달리던 흑인 빈민가의 아이였다.
아이버슨의 어머니는 15살에 미혼모의 몸으로 아이버슨을 낳았으며 하수구는 번번히 넘쳐나 집을 덮쳤고 세금을 내지못해
수도와 전기를 이용하는것 조차도 쉽지않았다. 성장하면서 지병을 가지고 있는 두 동생을 부양해야했던 그의 삶은 고통 그 자체였다.
아이버슨의 유년시절 회상... "집에 돌아오면, 불도 없고, 먹을 것도 없고, 어떨땐 물도 없었어요. 물이 있더라도 뜨거운 물은 없었죠. 바로 밑에 하수구가 터지는 데서 살았어요. 하수구에서 나온 오수로 집바닥이 항상 축축하게 젖어있었죠. 그것 때문에 제 여동생들은 항상 양말을 두껍게 신고 다녔어요. 그 오수로 인한 냄새가 제 여동생을 더 아프게 만들었죠." 많은 NBA선수들이 결손가정 아니면 살기 어려운 동네에서 성장했고 빈민가에서 탈출하겠다는 하나의 희망을 가지고 농구를 시작했다.
그의 삶에 또한번 큰 사건이 생기는데 바로 볼링장에서 있었던 흑인과 백인학생들 사이의 말다툼을 주동했다는 것이었다. 발렌타인데이였던 그날, 아이버슨은 몇몇 친구들과 함께 햄튼에 있는 볼링장을 찾았다. 앨런은 Bethel High School 풋볼팀을 단 두 달도 안돼 주 우승팀으로 만든 팀내 쿼터백인 동시에, 학교농구팀에게 트로피를 거머쥐게한 이미 그 지역의 스포츠 영웅이었다. 아이버슨은 고등학교를 졸업한후, 메릴랜드주에 있는 대학에서 미식축구와 농구를 병행하려고 했었다고한다. 아이버슨과 함께온 그의 무리들로 볼링장이 소란해지자, 몇번 조용히 해줄 것을 부탁받았고, 결국 볼링장내에 있던 또다른 무리들과 싸움이 붙게 되었다. 유일하게 명백한 사실은 그 싸움이 일어난지 얼마 안있어, 흑백인종간의 싸움으로 번졌다는 것이다. 17살의 아이버슨은 성인으로서 재판을 받았고, 옆에 있던 백인소녀에게 의자를 집어던졌다는 것에 5년형을 선고받았다. 결국 버지니아주의 최초의 흑인 주지사인 Doeg Wilder에 의해 그는 복역한지 4개월만에 사면되었다. 그 재판과 평결은 인종정책에 대한 국가적인 토론으로까지 이어졌다. 아이버슨과 그의 지지자들은 계속해서 무죄를 주장했다. 볼링장에 있던 아마추어가 찍은 비디오에도 앨런의 모습은 없었으며 그는 싸움이 시작되자 곧바로 볼링장을 떠났다고 한다. "볼링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저를 알고있는데, 의자를 머리위로 집어던지는 짓따위를 하면서 사람들을 놀래키면 저한테 아무일도 안 일어날까요?" 아이버슨이 묻는다. "그건 미친 짓이에요! 어떤 남자가 여자애 머리를 의자로 치는 행동을 하겠어요? 차라리 남자를 쳤다고 그러는게 낫겠군요." 앨런의 지지자들은 그 싸움 후 단 4명만이 죄를 받은것에 화가 났다. 4명 모두 흑인이었으며 언론의 횡포로 인해 피해자가 된 셈이다. 그들은 한 백인 소년이 아이버슨을 검둥이라고 놀린후에 싸움이 시작됐다고 주장한다.
앨런은 감옥에 간것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사람들이 햄튼에서 저에게 했던 일들을 항상 기억할거에요.그 일은 제가 바로 지금 여기있는 이유중에 하나이기도 해요. 그 일은 절 더 강하게 만들었어요. 그런 사건이 없었다면 제가 그렇게 강해지지 못했을거에요. 감옥에서 있으면서, 전 기도했고, 거기있던 수용자들에서도 많은 걸 배웠어요. 주로 그들이 말하는걸 들었죠. 같이있던 많은 수감자들은 제가 거기 오기전부터 절 알고 있었어요. 처음 왔을 때, 모두 조용하게 주위에 서서 절 바라보고만 있더라구요. 모두들 저만 빤히 쳐다보니까 너무 겁이 났어요. 게다가 그때 전 겨우 18살이었구요. 저보다 나이 많은 수감자들 모두 절 보살펴주겠다고 했어요. 제가 저보다 어린 수감자들 주변에 있을때면, 저에게 "그들과 어울리지 마라, 안좋은 애들이야."이렇게 말했죠. 그 어린 수감자들에게도 역시 저와 어울리지 말도록 당부했어요. 그리고 내가 나가게 될거라고, 내가 뭔가 할 수 있을거라고 항상 말해줬죠. 정신 똑바로 차리려고 노력했어요. 제 할머니께, "만약 하느님이 그들이 저에게 죄를 뒤집어씌웠다는 걸 아신다면, 왜 제게 이런 일들이 일어나게 하시는 걸까요?" 하고 물어봤죠.할머니께서 하신 말씀은 절대 잊지 못할거에요.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거란다." 그이후론 절대 묻지 않았어요." 아이버슨이 The Source Sports지와의 인터뷰에서 교도소에서의 생활에 대해 말했던 내용이다. "나이든 수감자들은 제가 교도소에서 있는걸 원치 않았어요. 제 아버진 감옥에서 15,20년 가까이를 보냈어요. 그래서 제가 감옥에 가기 전부터 아이버슨이란 이름은 이미 유명했죠. 어수선한 세상으로 닿기 위해선 그 교도소생활은 통과의례였는지도 몰라요. 모든게 다 미쳐보였어요. 여기저기서 소리를 질러대고...지긋지긋했어요.정말 모든게 엿 같았어요. 거기 있으면서 제가 너무 미워지더군요. 제가 제 자신을 통제할 수 있다는걸 알았지만, 끊임없이 위험에 처해있다는 건 절대 느낄 수 없었어요."
농구코트에 서다
1993년 봄, 감옥에 있으면서 아이버슨은 그의 미래에 대해 걱정했다. 극단적인 상황에선 빛이 보이겠지만, 아이버슨은 평판이 좋은 학생이 아니었으며, 학교 수업의 진도는 떨어져있었다. 그에 대한 평판이 그를 도와주지 않았다. "하지만 일이 생각보다 잘 풀렸어요. 성공하려면 내가 뭘 해야하는지 생각할 시간을 주었죠." 아이버슨에겐 전년 여름에 그의 이름을 알리게 하는 일이 있었다.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있었던 나이키캠프에 참가해서 Bo Williams팀의 일원으로 MVP트로피를 받았던 것이다. 사실, 나이키는 그가 재판 중에도 그를 유명인사로 대우하면서, 그에게 비행기 티켓을 보냈고, 아이버슨은 재판이 진행중인 동안에도 캠프를 빠지지 않고 참가할 수 있었다. (검사는 배심원들에게 아이버슨과 나이키간의 그 일을 문제삼고 특권을 사용하도록 강요했다.) "아이버슨은 돌풍을 일으켰죠." NBA스타인 Alonzo Mourning 과 JR Reid를 팀에서 코치했던 윌리엄스가 말했다. 앨런에겐 뭔가 준비할 시간도 없이 일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재판기간 내내에도 대학코치들은 여전히 그에게 흥미를 보였다. 앨런의 어머니는 앨런이 힘든 상황에서 도망치게 되면 그를 도와줄 강인한 코치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조지타운대학의 톰슨 코치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곧바로 톰슨 코치를 만나서 그에게 앨런을 보살펴줄 것을 부탁했고, 그는 그것을 수락했다. 그것이 바로 아이버슨이 조지타운대학을 가게한 이유였다.아이버슨은 조지타운대학의 미식축구팀이 농구팀만큼 크지않다는 것을 알고 미식축구팀에도 들으려했으나, 톰슨코치가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농구를 포기하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인생을 계획하는데 있어서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한지 발견해줄 유명한 가톨릭 대학이었던 조지타운 대학으로 간 것이다.톰슨 코치는 아이버슨에게 충고를 아끼지 않고 그에게 신경을 써줬다. 조지타운에서 농구선수로 큰 활약을 한 앨런은 대학 2년을 보내고, NBA드래프트에 참가할만한 적당한 때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아마도 하루빨리 가족들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그랬을 것이다. 아이버슨은 말한다. "제가 제 가족과 친구들이 잘 지내는지 알고 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전 그걸로 충분해요. 제가 알아야하는건 그게 다에요."
리복 역사상 가장 많은 판매고를 올린 농구화
에어조던으로 인한 나이키가 엄청난 성공 이후, 농구화 시장에 있어서 나이키는 타경쟁사들을 크게 앞질러왔다.
하지만 지난 수 년간, 경쟁사 들중 리복은 큰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리복의 상승세는 아이버슨의 효과가 주요했다.
아이버슨은 조지타운 대학시절에는, 팀의 스폰서 나이키사의 에어 조던를 신었었다.
이후 아이버슨은 1996년, 식서스에 의해 전체 1번으로 지명된 후 리복과 10년간 5,000만 달러의 계약을 맺었는데, 그 계약을 연장하면서
평생동안 리복모델로 활약하게 되는 종신계약을 맺은것이다. 리복에서도 아이버슨의 악동같은 독특한 이미지가 충분한 상품성이 있다고
판단해 이처럼 파격적인 계약을 맺은 듯하다.
리복은 퀘스천과 앤써 시리즈 외에도 I3라는 새로운 스타일을 내놓음으로써 다양한 스타일을 제시하고 있다.
리복은 아이버슨 농구화로 큰 성공을 거두었고 "The Questions"는 리복 역사상 가장 많은 판매고를 올린 농구화가 되었다!
Question for Answer - 해답이라는 별명을 가진 남자 아이버슨의 첫번째 시그네이쳐 Question1.
Question for Answer
해답을위한 질문? 보통 질문을위한 답이 있기마련이지만
퀴즈 이야기가 아니다. The Answer라 불리우는 남자 엘런 아이버슨의 첫번째 시그네이쳐 모델 이야기다
먼저 아이버슨이 누구??? 이런 분들을 위해 소개부터 해보자
Full Name : Allen Ezail iverson
birth : 1975. 06.07
A.K.A : The Answer
Team : Detroit Pistons
- 식서스와의 계약: 1996년 3년계약에 1,000만 달러, 1999년 6년계약에 7,100만 달러, 2003년 6년계약에 1억 5백만 달러를 받았다.
- 2006년 12월 20일, 덴버 너기츠로 이적
- 2008년 11월 03일, 디트로이트 피스톤즈로 이적
- 리복과의 계약: 1996년 10년계약에 5,000만 달러, 2001년 종신계약으로 1억 달러(추정)를 받았다.
- 2001년 8월 3일 9년간의 여자친구였던 Tawanna Turner와 결혼식을 올렸다.
- 그녀와의 사이에 두 딸 Tiaura(95년생), Messiah Lauren(2005년생), 두 아들 Deuce(98년생),Isaiah Rahsaan(2003년생)이 있다.
- 2008년 10월 7일 그들의 다섯번째 아이로 딸인 Alijha가 태어났다.
- 여가시간에 독서와 그림그리기를 즐긴다.
- Sports Illustrated를 즐겨 읽는다.
- Brandy와 Iiesha라는 여동생들이 있으며, 아이버슨의 셋째아이인 Isaiah가 태어나고 두 달 후에 남동생 Mister Allen(애칭 Trey)가 태어났다.
- 장학재단인 크로스오버 재단을 설립한 이후로 98년부터 매년 여름 자선행사를 열고 있다.
- 미식축구경기도 좋아한다.
- 엔터테인먼트업계는 그에게 관심이 많다?
스파이크 리 감독의 98년작 "He Got Game"의 지저스(레이 알렌 분), 뮤직비디오 브랜디&모니카의 "The Boy is Mine"의 "The Boy"(메키 파이퍼 분), 뮤직비디오 아샨티의 "Happy"에서 아샨티의 남자친구 등이 모두 그가 맡기로 내정되어있던 배역들
- 승용차 Bentley Azure, Mercedes Benz CL600, Range Rover 4.6, Cadillac Escalades, Lexus ES300, Rolls-Royce Phantom, Bentley GT Continental을 소유하고 있다.
대충 봐도 어마어마한 플레이어다 하지만 그는 엘리트도 모범생도 아닌 지긋지긋한 가난에 시달리던 흑인 빈민가의 아이였다.
아이버슨의 어머니는 15살에 미혼모의 몸으로 아이버슨을 낳았으며 하수구는 번번히 넘쳐나 집을 덮쳤고 세금을 내지못해
수도와 전기를 이용하는것 조차도 쉽지않았다. 성장하면서 지병을 가지고 있는 두 동생을 부양해야했던 그의 삶은 고통 그 자체였다.
아이버슨의 유년시절 회상...
"집에 돌아오면, 불도 없고, 먹을 것도 없고, 어떨땐 물도 없었어요. 물이 있더라도 뜨거운 물은 없었죠. 바로 밑에 하수구가 터지는 데서 살았어요. 하수구에서 나온 오수로 집바닥이 항상 축축하게 젖어있었죠. 그것 때문에 제 여동생들은 항상 양말을 두껍게 신고 다녔어요. 그 오수로 인한 냄새가 제 여동생을 더 아프게 만들었죠." 많은 NBA선수들이 결손가정 아니면 살기 어려운 동네에서 성장했고 빈민가에서 탈출하겠다는 하나의 희망을 가지고 농구를 시작했다.
하지만 아이버슨만큼이나 힘든 선수들은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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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난한 인생의 정점
그의 삶에 또한번 큰 사건이 생기는데 바로 볼링장에서 있었던 흑인과 백인학생들 사이의 말다툼을 주동했다는 것이었다. 발렌타인데이였던 그날, 아이버슨은 몇몇 친구들과 함께 햄튼에 있는 볼링장을 찾았다. 앨런은 Bethel High School 풋볼팀을 단 두 달도 안돼 주 우승팀으로 만든 팀내 쿼터백인 동시에, 학교농구팀에게 트로피를 거머쥐게한 이미 그 지역의 스포츠 영웅이었다. 아이버슨은 고등학교를 졸업한후, 메릴랜드주에 있는 대학에서 미식축구와 농구를 병행하려고 했었다고한다. 아이버슨과 함께온 그의 무리들로 볼링장이 소란해지자, 몇번 조용히 해줄 것을 부탁받았고, 결국 볼링장내에 있던 또다른 무리들과 싸움이 붙게 되었다.
유일하게 명백한 사실은 그 싸움이 일어난지 얼마 안있어, 흑백인종간의 싸움으로 번졌다는 것이다. 17살의 아이버슨은 성인으로서 재판을 받았고, 옆에 있던 백인소녀에게 의자를 집어던졌다는 것에 5년형을 선고받았다. 결국 버지니아주의 최초의 흑인 주지사인 Doeg Wilder에 의해 그는 복역한지 4개월만에 사면되었다. 그 재판과 평결은 인종정책에 대한 국가적인 토론으로까지 이어졌다. 아이버슨과 그의 지지자들은 계속해서 무죄를 주장했다. 볼링장에 있던 아마추어가 찍은 비디오에도 앨런의 모습은 없었으며 그는 싸움이 시작되자 곧바로 볼링장을 떠났다고 한다.
"볼링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저를 알고있는데, 의자를 머리위로 집어던지는 짓따위를 하면서 사람들을 놀래키면 저한테 아무일도 안 일어날까요?" 아이버슨이 묻는다.
"그건 미친 짓이에요! 어떤 남자가 여자애 머리를 의자로 치는 행동을 하겠어요? 차라리 남자를 쳤다고 그러는게 낫겠군요."
앨런의 지지자들은 그 싸움 후 단 4명만이 죄를 받은것에 화가 났다. 4명 모두 흑인이었으며 언론의 횡포로 인해 피해자가 된 셈이다. 그들은 한 백인 소년이 아이버슨을 검둥이라고 놀린후에 싸움이 시작됐다고 주장한다.
앨런은 감옥에 간것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사람들이 햄튼에서 저에게 했던 일들을 항상 기억할거에요.그 일은 제가 바로 지금 여기있는 이유중에 하나이기도 해요. 그 일은 절 더 강하게 만들었어요. 그런 사건이 없었다면 제가 그렇게 강해지지 못했을거에요. 감옥에서 있으면서, 전 기도했고, 거기있던 수용자들에서도 많은 걸 배웠어요. 주로 그들이 말하는걸 들었죠. 같이있던 많은 수감자들은 제가 거기 오기전부터 절 알고 있었어요. 처음 왔을 때, 모두 조용하게 주위에 서서 절 바라보고만 있더라구요. 모두들 저만 빤히 쳐다보니까 너무 겁이 났어요. 게다가 그때 전 겨우 18살이었구요. 저보다 나이 많은 수감자들 모두 절 보살펴주겠다고 했어요. 제가 저보다 어린 수감자들 주변에 있을때면, 저에게 "그들과 어울리지 마라, 안좋은 애들이야."이렇게 말했죠. 그 어린 수감자들에게도 역시 저와 어울리지 말도록 당부했어요. 그리고 내가 나가게 될거라고, 내가 뭔가 할 수 있을거라고 항상 말해줬죠. 정신 똑바로 차리려고 노력했어요. 제 할머니께, "만약 하느님이 그들이 저에게 죄를 뒤집어씌웠다는 걸 아신다면, 왜 제게 이런 일들이 일어나게 하시는 걸까요?" 하고 물어봤죠.할머니께서 하신 말씀은 절대 잊지 못할거에요.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거란다." 그이후론 절대 묻지 않았어요."
아이버슨이 The Source Sports지와의 인터뷰에서 교도소에서의 생활에 대해 말했던 내용이다.
"나이든 수감자들은 제가 교도소에서 있는걸 원치 않았어요. 제 아버진 감옥에서 15,20년 가까이를 보냈어요. 그래서 제가 감옥에 가기 전부터 아이버슨이란 이름은 이미 유명했죠. 어수선한 세상으로 닿기 위해선 그 교도소생활은 통과의례였는지도 몰라요. 모든게 다 미쳐보였어요. 여기저기서 소리를 질러대고...지긋지긋했어요.정말 모든게 엿 같았어요. 거기 있으면서 제가 너무 미워지더군요. 제가 제 자신을 통제할 수 있다는걸 알았지만,
끊임없이 위험에 처해있다는 건 절대 느낄 수 없었어요."
농구코트에 서다
1993년 봄, 감옥에 있으면서 아이버슨은 그의 미래에 대해 걱정했다. 극단적인 상황에선 빛이 보이겠지만, 아이버슨은 평판이 좋은 학생이 아니었으며, 학교 수업의 진도는 떨어져있었다. 그에 대한 평판이 그를 도와주지 않았다.
"하지만 일이 생각보다 잘 풀렸어요. 성공하려면 내가 뭘 해야하는지 생각할 시간을 주었죠."
아이버슨에겐 전년 여름에 그의 이름을 알리게 하는 일이 있었다.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있었던 나이키캠프에 참가해서 Bo Williams팀의 일원으로 MVP트로피를 받았던 것이다. 사실, 나이키는 그가 재판 중에도 그를 유명인사로 대우하면서, 그에게 비행기 티켓을 보냈고, 아이버슨은 재판이 진행중인 동안에도 캠프를 빠지지 않고 참가할 수 있었다. (검사는 배심원들에게 아이버슨과 나이키간의 그 일을 문제삼고 특권을 사용하도록 강요했다.)
"아이버슨은 돌풍을 일으켰죠." NBA스타인 Alonzo Mourning 과 JR Reid를 팀에서 코치했던 윌리엄스가 말했다. 앨런에겐 뭔가 준비할 시간도 없이 일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재판기간 내내에도 대학코치들은 여전히 그에게 흥미를 보였다. 앨런의 어머니는 앨런이 힘든 상황에서 도망치게 되면 그를 도와줄 강인한 코치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조지타운대학의 톰슨 코치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곧바로 톰슨 코치를 만나서 그에게 앨런을 보살펴줄 것을 부탁했고, 그는 그것을 수락했다.
그것이 바로 아이버슨이 조지타운대학을 가게한 이유였다.아이버슨은 조지타운대학의 미식축구팀이 농구팀만큼 크지않다는 것을 알고 미식축구팀에도 들으려했으나, 톰슨코치가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농구를 포기하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인생을 계획하는데 있어서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한지 발견해줄 유명한 가톨릭 대학이었던 조지타운 대학으로 간 것이다.톰슨 코치는 아이버슨에게 충고를 아끼지 않고 그에게 신경을 써줬다.
조지타운에서 농구선수로 큰 활약을 한 앨런은 대학 2년을 보내고, NBA드래프트에 참가할만한 적당한 때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아마도 하루빨리 가족들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그랬을 것이다. 아이버슨은 말한다. "제가 제 가족과 친구들이 잘 지내는지 알고 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전 그걸로 충분해요. 제가 알아야하는건 그게 다에요."
리복 역사상 가장 많은 판매고를 올린 농구화
에어조던으로 인한 나이키가 엄청난 성공 이후, 농구화 시장에 있어서 나이키는 타경쟁사들을 크게 앞질러왔다.
하지만 지난 수 년간, 경쟁사 들중 리복은 큰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리복의 상승세는 아이버슨의 효과가 주요했다.
아이버슨은 조지타운 대학시절에는, 팀의 스폰서 나이키사의 에어 조던를 신었었다.
이후 아이버슨은 1996년, 식서스에 의해 전체 1번으로 지명된 후 리복과 10년간 5,000만 달러의 계약을 맺었는데, 그 계약을 연장하면서
평생동안 리복모델로 활약하게 되는 종신계약을 맺은것이다. 리복에서도 아이버슨의 악동같은 독특한 이미지가 충분한 상품성이 있다고
판단해 이처럼 파격적인 계약을 맺은 듯하다.
리복은 퀘스천과 앤써 시리즈 외에도 I3라는 새로운 스타일을 내놓음으로써 다양한 스타일을 제시하고 있다.
리복은 아이버슨 농구화로 큰 성공을 거두었고 "The Questions"는 리복 역사상 가장 많은 판매고를 올린 농구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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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Questions은 그가 힘들때 마다 함께했다!
아이버슨은 두번의 트레이드를 거칠때마다 첫경기때 The Questions 을 착용하는 모습을 볼수 있다.
그의 취향이어서 일까 힘든시기를 이겨내며 자신에게 부와 명예를 가져다준 첫번째 친구여서일까
어떤 쪽이든 The Questions은 아이버슨에게 있어 큰 의미가 있는 농구화일것이다.
The Answer 의 시작이였으니...
퀘스쳔을 너무도 닮아있는 엔서12번째모델의 모습이 드디어 공개 되었다. 08-09시즌 엔서는 다시한번 주목을 받을수 있을런지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