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8년 5월 15일 아침. 후쿠자와 유키치는 그 무렵 교바시의 뎃포즈에 있던 게이오 의숙에서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밖에 소란해 지더니 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달려가는 발소리가 났다.
"전쟁이 시작됐다구. 우에노에서 전쟁이 일어났어. 전쟁이야! 큰일났어!"
그 말을 듣자 학생들은 놀라 얼굴을 마주보았다. 개중에는 당장에라도 뛰어나가려고 엉거주춤 일어나는 사람도 있었다. 우에노에 틀어박혀 있던 쇼기다이가 드디어 관군에게 저항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불안해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유키치는 이렇게 말하고 태연하게 강의를 계속했다.
"학문과 전쟁은 별개의 것이라네."
그러나 어느새 대포 소리와 콩 볶는 듯한 총소리가 천지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젊고 혈기 넘치는 학생들은 전혀 강의에 귀를 기울이지 못했다. 모두들 창밖에 정신이 팔려 안절부절못했다. 그것을 본 유키치는 쓴웃음을 짓고 마지못해 강의를 중단했다.
"그러면 십 분만 휴식한다. 그러나 십 분이 지나면 곧바로 강의를 속행 할 것이니 모두들 강의실로 돌아오도록. 알겠나?"
학생들은 앞을 다투어 강의실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들은 마을 사람들과 섞여 우에노 쪽을 바라보면서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이윽고 10분이 지나자 모두들 아쉬워하며 웅성웅성 강의실로 돌아왔다. 학생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유키치는 조용하게, 그러나 정열이 담긴 말투로 말해다.
"여러분, 에도 전체가 당장에라도 뒤엎어질 듯이 야단법석이 난 지금,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곳은 아마도 이곳 게이오 의숙뿐일 걸세. 여러분은 이것을 그 무엇보다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하네. 장차 새로운 문명을 쌓아 나가야 될 여러분이 같은 동포끼리 맞붙은 사사로운 싸움을 보려고 비록 십 분이라 할지라도 그 중요한 강의 시간을 허비했으니 어찌 각자에게 주어진 사명을 다할 수 있겠는가. 저 나폴레옹이 유럽을 침략했을 당시, 네덜란드도 프랑스군에게 짓밟혀 결국 본국 어디에서도 국기가 게양된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네. 그런데 전 세계에서 단 한 군데만은 네덜란드국기를 계속 게양했다네. 그곳이 바로 나가사키의 데지마 일각이었지. 데지마는 네덜란드의 거류지였는데, 그 대단한 나폴레옹의 힘도 거기까지는 미치지 못했던 것일세. 이렇게 하여 네덜란드는 세계에서 한번도 사라진 적이 없었던 것이네. 여러분은 이 이야기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세상이 아무리 소란한들 우리 게이오 의숙은 단연코 한 나라 문화의 중추인 학문의 명맥이 끊이지 않도록 하는 안목과 기개를 지켜야 하는 걸세. 즉 우리 게이오 의숙이 계속되는 한 우리 민족은 세계의 문명국 속에서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존속한다는 사실을 긍지를 갖고 생각해야 한단 말이네."
말 한 마디 한 마디에까지 열기가 넘치는 유키치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던 학생들은 모두 깊은 감동을 받아 단 10분이라 할지라도 강의 시간을 낭비한 자신들의 경솔한 행동을 크게 부끄러워했다. 갑자기 소동이 일어나면 그 소동이 무엇 때문에 일어났는가도 제대로 생각하지 않고 덩달아 휩쓸리는 심리를 속된 말로 -9;야차마 근성-9;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자신과 관계 없는 일에 주제넘게 나서서 이유도 없이 소란을 피우는 천한 근성을 말한다.
이 이야기의 경우에는 에도 시에서 동란이 벌어졌으니 에도 시민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유키치는 그것을 같은 민족끼리의 -9;사사로운 싸움-9;이라 간주했다. 에도 시민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여기지 않은 것이다. 학생들은 누군가가 -9;큰일났다-9;라고 외치자 -9;큰일-9;이라고 믿고 경솔하게 동요했다. 여차하면 도망치려고 엉거주춤 일어나기까지 한 것이다. 그런 것을 부화뇌동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안목 따위는 전혀 없이 남의 생각에 우르르 따라가는 것을 바로 부화뇌동이라고 한다. 야차마 근성과 부화뇌동은 둘 다 스스로의 머리로 생각하지 않고 군중 심리에 따라가는 것이다. 따라서 야차마 근성과 부화뇌동에 사로잡힌 집단은 대개 지성이 부족하여 규율도 통제도 없는 이른바 오합지졸로 변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에게나 이런 근성이 있다. 그러나 유키치는 그것에 대해 엄격한 선을 긋는다. 옆에서 누가 아무리 떠들어대든 자기의 중심을 지키라는 것이다. 따가 바쿠후 말기의 동란 기였던 만큼 정말로 의연한 자세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런 안목과 기개는 오히려 경솔하고 소견이 얕은 대중들이 우왕좌왕하며 혼란에 빠진 오늘날 가장 필요한 자세인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은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문제이다. 이쪽저쪽의 눈치를 보면서 부화뇌동하는 일없이 -9;나 혼자 이 길을 가는-9;당당한 기개로까지 승화시켜야 한다.
학문과 전쟁
1868년 5월 15일 아침. 후쿠자와 유키치는 그 무렵 교바시의 뎃포즈에 있던 게이오 의숙에서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밖에 소란해 지더니 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달려가는 발소리가 났다.
"전쟁이 시작됐다구. 우에노에서 전쟁이 일어났어. 전쟁이야! 큰일났어!"
그 말을 듣자 학생들은 놀라 얼굴을 마주보았다. 개중에는 당장에라도 뛰어나가려고 엉거주춤 일어나는 사람도 있었다. 우에노에 틀어박혀 있던 쇼기다이가 드디어 관군에게 저항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불안해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유키치는 이렇게 말하고 태연하게 강의를 계속했다.
"학문과 전쟁은 별개의 것이라네."
그러나 어느새 대포 소리와 콩 볶는 듯한 총소리가 천지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젊고 혈기 넘치는 학생들은 전혀 강의에 귀를 기울이지 못했다. 모두들 창밖에 정신이 팔려 안절부절못했다. 그것을 본 유키치는 쓴웃음을 짓고 마지못해 강의를 중단했다.
"그러면 십 분만 휴식한다. 그러나 십 분이 지나면 곧바로 강의를 속행 할 것이니 모두들 강의실로 돌아오도록. 알겠나?"
학생들은 앞을 다투어 강의실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들은 마을 사람들과 섞여 우에노 쪽을 바라보면서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이윽고 10분이 지나자 모두들 아쉬워하며 웅성웅성 강의실로 돌아왔다. 학생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유키치는 조용하게, 그러나 정열이 담긴 말투로 말해다.
"여러분, 에도 전체가 당장에라도 뒤엎어질 듯이 야단법석이 난 지금,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곳은 아마도 이곳 게이오 의숙뿐일 걸세. 여러분은 이것을 그 무엇보다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하네. 장차 새로운 문명을 쌓아 나가야 될 여러분이 같은 동포끼리 맞붙은 사사로운 싸움을 보려고 비록 십 분이라 할지라도 그 중요한 강의 시간을 허비했으니 어찌 각자에게 주어진 사명을 다할 수 있겠는가. 저 나폴레옹이 유럽을 침략했을 당시, 네덜란드도 프랑스군에게 짓밟혀 결국 본국 어디에서도 국기가 게양된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네. 그런데 전 세계에서 단 한 군데만은 네덜란드국기를 계속 게양했다네. 그곳이 바로 나가사키의 데지마 일각이었지. 데지마는 네덜란드의 거류지였는데, 그 대단한 나폴레옹의 힘도 거기까지는 미치지 못했던 것일세. 이렇게 하여 네덜란드는 세계에서 한번도 사라진 적이 없었던 것이네. 여러분은 이 이야기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세상이 아무리 소란한들 우리 게이오 의숙은 단연코 한 나라 문화의 중추인 학문의 명맥이 끊이지 않도록 하는 안목과 기개를 지켜야 하는 걸세. 즉 우리 게이오 의숙이 계속되는 한 우리 민족은 세계의 문명국 속에서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존속한다는 사실을 긍지를 갖고 생각해야 한단 말이네."
말 한 마디 한 마디에까지 열기가 넘치는 유키치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던 학생들은 모두 깊은 감동을 받아 단 10분이라 할지라도 강의 시간을 낭비한 자신들의 경솔한 행동을 크게 부끄러워했다. 갑자기 소동이 일어나면 그 소동이 무엇 때문에 일어났는가도 제대로 생각하지 않고 덩달아 휩쓸리는 심리를 속된 말로 -9;야차마 근성-9;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자신과 관계 없는 일에 주제넘게 나서서 이유도 없이 소란을 피우는 천한 근성을 말한다.
이 이야기의 경우에는 에도 시에서 동란이 벌어졌으니 에도 시민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유키치는 그것을 같은 민족끼리의 -9;사사로운 싸움-9;이라 간주했다. 에도 시민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여기지 않은 것이다. 학생들은 누군가가 -9;큰일났다-9;라고 외치자 -9;큰일-9;이라고 믿고 경솔하게 동요했다. 여차하면 도망치려고 엉거주춤 일어나기까지 한 것이다. 그런 것을 부화뇌동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안목 따위는 전혀 없이 남의 생각에 우르르 따라가는 것을 바로 부화뇌동이라고 한다. 야차마 근성과 부화뇌동은 둘 다 스스로의 머리로 생각하지 않고 군중 심리에 따라가는 것이다. 따라서 야차마 근성과 부화뇌동에 사로잡힌 집단은 대개 지성이 부족하여 규율도 통제도 없는 이른바 오합지졸로 변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에게나 이런 근성이 있다. 그러나 유키치는 그것에 대해 엄격한 선을 긋는다. 옆에서 누가 아무리 떠들어대든 자기의 중심을 지키라는 것이다. 따가 바쿠후 말기의 동란 기였던 만큼 정말로 의연한 자세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런 안목과 기개는 오히려 경솔하고 소견이 얕은 대중들이 우왕좌왕하며 혼란에 빠진 오늘날 가장 필요한 자세인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은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문제이다. 이쪽저쪽의 눈치를 보면서 부화뇌동하는 일없이 -9;나 혼자 이 길을 가는-9;당당한 기개로까지 승화시켜야 한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그런 기개가 너무도 부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