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친밀함이 경외하는 자에게 있음이여 그 언약을 저희에게 보이시리로다 시25:14 에스겔서 1장에서 5장을 읽는 중에 하나님의 마음이 부어져서 견딜수가 없었다.. 에스겔서 초반에 기록된 에스겔이 하나님께 부르심을 입는 부분들을 지극히 우리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상당히 비인격적이고 강압적으로 느껴질수가 있다 그냥 강권적으로 환상을 열어버려 어마어마한 보좌의 영광으로 압도하시곤 에스겔에게 이스라엘을 향한 무자비 해보이는 심판의 말씀을 선포하신다 또 이어서 에스겔에게 덧붙여 말씀하시는 것은 만약 하나님께서 악인이건 죄인이건 에스겔에게 전하라는 말씀들을 에스겔이 가서 전하지 않으면 자기 죄로 죽은 그들의 피값을 에스겔에게 물으시겠다고 하신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축약하자면 "너 이 말씀 쟤네 한테 전달하지 않으면 쟤네는 그냥 그 죄에서 안돌이키고 죽을꺼지만 쟤네 피값은 다 너한테 물을꺼야!!" "다 너 책임이야!!" 라는 협박(?)을 에스겔에게 하신다 에스겔에게 이렇게 외치시는 하나님... 그 마음이 부어졌다... ㅠㅠ 그 무수한 선지자들의 삶을 녹여바치듯, 본 남편인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이스라엘에게 얼마나 눈물의 절규로 피를 토하셨던가.. 그 남편을 떠나 온갖 음행에 빠져 허덕이는 창녀와 다름 없던 이스라엘... 그 거룩한 남편의 외침에 두손으로 귀를 틀어 막고 악다구니를 쓰며 그 선지자들을 짖밟을뿐 아니라 온갖 악행으로 스스로 형벌을 자초해 이제는 이방의 포로로 끌려올수밖에 없었던 이스라엘... 이 이스라엘을 자기 독생자의 생명값을 치루기까지 짝사랑하시는 하나님.. 이 이스라엘이 어떻게든 다시 돌이켜 자기에게로 돌아오기만을 바라시는.. 이스라엘을 향한 짝사랑에 눈이 멀어버리신 하나님... 이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말씀하시는 이것은 협박이 아닌 이스라엘을 향한 끔찍한 사랑의 절규였다.... 이어서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인간적인 눈으로 보기에는 정말 황당하기 짝이 없는 것을 명하신다 진흙벽돌 같은걸 가져다가 그위에 예루살렘을 그리고 이런저런 것들로 그 벽돌을 에워싸고 그 앞에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죄악의 날들의 수를 따라 390일 동안을 왼쪽으로 누워있고 또 그후에는 40일을 오른쪽으로 누워있으라고 하신다 그 누워 있는 시간동안 먹을 것은 밀/보리/콩/팥/조/귀리 등 온갖 잡스러운 것들을 다 모아다가 사람의 배설물로 그 불을 지펴서 그것으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는 것이었다.. (에스겔의 요청으로 소의 배설물로 바꾸긴 하지만...) 이 얼마나 역겨운 짓인가.. 그것도 에스겔에게 삭발을 하고 수염을 다 밀고 그 털을 저울에 달아 놓고 이 모든것을 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는 중에 실제 예루살렘이 군대에게 둘러쌓이는 날이 차면 그 수염/머리칼중 1/3은 진흙벽돌위에서 불사르고 1/3은 벽돌의 사면에서 칼로 내리찍고 1/3은 바람에 날려버리라고 에스겔에게 명하신다 여기서 머리털과 수염은 이스라엘 백성을 의미한다 이게 거룩한 하나님께서 그의 종 선지자에게 명하시는 것이다 인간적인 눈으로 본다면 이 얼마나 비인격적이고 엽기적(?)인 행각인가?? 오늘날 누가 사람들 앞에서 이런 행동을 한다고 생각해보라 우리는 그런 사람을 뭐라하겠는가? 그 당시 이런 행동을 하는 에스겔을 바라보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반응은 상상하지 않아도 뻔하다 하지만 막상 이것을 순종하여 행하는 에스겔의 마음이 느껴졌다... 제사장이었던 에스겔 그 머리털과 수염은 사람의 영광이요 삭발하고 수염을 민다는 것은 다른자의 수치가 아니라 자기의 수치였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에게 이스라엘 백성은 끔찍히 사랑하는 대상일뿐만 아니라 곧 하나님의 영광이었다 이것을 불사르고 칼로 내리치고 바람에 흩는 행동중에 자기 영광을 이렇게 하시는... 자기 스스로 수치를 당하고 계시는.. 에스겔에게 부으셨던 그 하나님의 마음이 부어졌다..... 하지만 만약 이 와중에도 이스라엘 사람중에 하나님에 대한 양심이 밝은 자가 단 한명이라도 있었다면 이러한 에스겔의 모습속에서 주를 떠나 역겨운 죄악들을 먹으며 스스로 형벌을 자초한 자기와 자기 민족의 모습을 발견하고 무릎을 꿇고 마음을 찢고 통곡하며 회개하였을 것이다 에스겔은 우리가 흔히 인격적이라고 하는 틀로 볼때 전혀 말도 안되는 그 명령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더욱 깊이 알게되었다... ㅠㅠ 이어서.. 다른 수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의 삶이 한꺼번에 스쳐갔다... 이삭을 바치려다 독생자를 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된 아브라함.... 자기의 외동딸을 번제로 드리고 이스라엘을 용서키위해 독생자를 줄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된 입다.... 3년간 벌거 벗고 다닌 이사야.... 예레미아, 예수님.. 등등... 수많은 하나님의 사람들... 이들의 삶은 인간적으로는 이해할수없는 순종들의 연속이었다.... 이들의 삶은 한마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었다 (단적인 예로 이삭을 바치려던 아브라함에게 천사가 와서 전했던 말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22:12)'였다) 이 경외함을 근본으로 이들은 날마다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고 날마다 하나님과 더욱 친밀하게 되었다.... 왜냐면 그들이 순종할때 마다 성령을 통해 하나님에 관한 죽은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이 그들에게 부어졌기 때문이다 (행5:32, 롬5:5) 천지를 창조하실뿐 아니라 없는 것도 있게 하시며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전지전능하신 만왕의 왕되시고 만주의 주되시며 만군의 주권자 되시는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들이 그 모든 것을 다해 가장 존귀한 찬양을 영원토록 쉬지않고 드릴지라도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티끌만큼라도 표현할수 없을것이다 말로는 감히 설명조차 할수없는 이 엄위하시고 두려우신 하나님! 이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에 대한 합당한 경외함이 없이는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알수도 하나님과의 참된 친밀함을 온전히 누릴수도 없다 이 모든 것의 근본인 경외함은 순종을 낳고 순종은 거룩과 사랑을 낳고 그 사랑은 친밀함을 낳는다 경외함과 순종과 거룩과 사랑과 친밀함은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하나일수밖에 없는 뗄레야 뗄수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경외함으로 자기의 신을 벗고 주권을 하나님께 넘기지 않으면 순종의 모양은 흉내낼수있어도 순종할수는 없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내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아버지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다른것이 아니다 순종하는 것이다 순종하면 하나님의 마음이 부어진다 그 깊은 하나님의 속내를 알게되면 하나님과 친밀해 질수밖에 없다.. 경외함으로 시작된 이것이 과정과 과정을 거쳐 친밀함이라는 열매를 맺는다 요즘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들에 어린양의 신부인 우리의 근본적 정체성이 다시 부각되는 너무 감사한 시기이다 신부는 당연히 신랑을 경외한다 당연히 신랑에게 순종한다 정조를 지키며 신랑만을 순결히 사랑하는건 당연하다(거룩/사랑) 그래서 당연히 신랑과 친밀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만약 이 기쁜 우리의 정체성이 만약 경외함이 없이 우리의 정체성이 어떤 사람이 생각하는 수준의 '인간적인 친밀함'의 모양만을 추구하는 것으로 전락해 버린다면 그리고 그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린다면... ......... 경외함 없이 어찌 인간적인 친밀함이 아닌 '여호와의 친밀함'이 나올 수 있겠는가? 신랑과 침소는 공유하는데 정조 없이 신랑이 한명이 아닌 여자를 우리는 무엇이라 부르는가? 이것은 분명히 친밀함이 아니라 만홀이 여김이다!! 여호와의 친밀함은 우리 인간수준으로 이해할수있는 그런 친밀함이 아니다 사람 보기에는 정말 가혹해 보일수도 이상해 보일수도 정말 끔찍해 보일수도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에게 어떻게 순종이 옵션이 될수 있는가!? 그리스도인에게 어떻게 거룩함이 옵션이 될수 있는가!? 아니 절대 그럴수없느니라! 그리스도인에게 순종과 거룩은 선택사양이 아닌 당연한 것이다! 이게 우리의 정체성이다! 이제 만약 하나님이 우리에게 저런 선지자들에게 명하셨던 아주 쌈빡한(?) 일들을 명하시면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아!!! 멘!!!! 백번 천번 아멘!! 아멘이지!! 우리쪽에서 대답은 사랑하는 주님께 아멘밖에 없지!! 그저 친밀함으로의 놀라운 초대일 뿐이지!! 우리쪽에서 대답은 사랑하는 주님께 아멘밖에 없지!! 그저 친밀함으로의 놀라운 초대일 뿐이지!! 우리를 위해 아들까지 안아끼신게 픽션소설이 아닌데 하나님이 뭐가 아쉬워서 우리에게 나쁜걸 주시겠어?? 하나님을 날마다 더욱 사랑하는것..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동일한 사랑으로 주님을 사랑하는것... 이것이 지금도 우리가 이땅에서 숨쉬는 유일한 이유가 아닌가? '부자청년'과 틀리게 주님과 친밀하기를 전심으로 소망하는가? 사람의 말에 개의치 아니하고 전심으로 주께 나아갈자 누군가? 여호와의 친밀함은 경외하는 자에게 있다!! 할렐루야!!
경외함
여호와의 친밀함이 경외하는 자에게 있음이여
그 언약을 저희에게 보이시리로다
시25:14
에스겔서 1장에서 5장을 읽는 중에
하나님의 마음이 부어져서 견딜수가 없었다..
에스겔서 초반에 기록된
에스겔이 하나님께 부르심을 입는 부분들을
지극히 우리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상당히 비인격적이고 강압적으로 느껴질수가 있다
그냥 강권적으로 환상을 열어버려
어마어마한 보좌의 영광으로 압도하시곤
에스겔에게
이스라엘을 향한 무자비 해보이는 심판의 말씀을 선포하신다
또 이어서 에스겔에게 덧붙여 말씀하시는 것은
만약 하나님께서 악인이건 죄인이건
에스겔에게 전하라는 말씀들을 에스겔이 가서 전하지 않으면
자기 죄로 죽은 그들의 피값을 에스겔에게 물으시겠다고 하신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축약하자면
"너 이 말씀 쟤네 한테 전달하지 않으면
쟤네는 그냥 그 죄에서 안돌이키고 죽을꺼지만
쟤네 피값은 다 너한테 물을꺼야!!"
"다 너 책임이야!!" 라는 협박(?)을 에스겔에게 하신다
에스겔에게 이렇게 외치시는 하나님...
그 마음이 부어졌다... ㅠㅠ
그 무수한 선지자들의 삶을 녹여바치듯,
본 남편인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이스라엘에게 얼마나 눈물의 절규로 피를 토하셨던가..
그 남편을 떠나 온갖 음행에 빠져 허덕이는
창녀와 다름 없던 이스라엘...
그 거룩한 남편의 외침에 두손으로 귀를 틀어 막고
악다구니를 쓰며 그 선지자들을 짖밟을뿐 아니라
온갖 악행으로 스스로 형벌을 자초해
이제는 이방의 포로로 끌려올수밖에 없었던 이스라엘...
이 이스라엘을
자기 독생자의 생명값을 치루기까지 짝사랑하시는 하나님..
이 이스라엘이 어떻게든 다시 돌이켜 자기에게로
돌아오기만을 바라시는..
이스라엘을 향한 짝사랑에 눈이 멀어버리신 하나님...
이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말씀하시는 이것은
협박이 아닌 이스라엘을 향한 끔찍한 사랑의 절규였다....
이어서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인간적인 눈으로 보기에는
정말 황당하기 짝이 없는 것을 명하신다
진흙벽돌 같은걸 가져다가 그위에 예루살렘을 그리고
이런저런 것들로 그 벽돌을 에워싸고
그 앞에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죄악의 날들의 수를 따라
390일 동안을 왼쪽으로 누워있고
또 그후에는 40일을 오른쪽으로 누워있으라고 하신다
그 누워 있는 시간동안 먹을 것은
밀/보리/콩/팥/조/귀리 등
온갖 잡스러운 것들을 다 모아다가
사람의 배설물로 그 불을 지펴서
그것으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는 것이었다..
(에스겔의 요청으로 소의 배설물로 바꾸긴 하지만...)
이 얼마나 역겨운 짓인가..
그것도 에스겔에게 삭발을 하고 수염을 다 밀고
그 털을 저울에 달아 놓고
이 모든것을 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는 중에
실제 예루살렘이 군대에게 둘러쌓이는 날이 차면
그 수염/머리칼중 1/3은 진흙벽돌위에서 불사르고
1/3은 벽돌의 사면에서 칼로 내리찍고
1/3은 바람에 날려버리라고 에스겔에게 명하신다
여기서 머리털과 수염은 이스라엘 백성을 의미한다
이게 거룩한 하나님께서 그의 종 선지자에게 명하시는 것이다
인간적인 눈으로 본다면
이 얼마나 비인격적이고 엽기적(?)인 행각인가??
오늘날 누가 사람들 앞에서 이런 행동을 한다고 생각해보라
우리는 그런 사람을 뭐라하겠는가?
그 당시 이런 행동을 하는 에스겔을 바라보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반응은 상상하지 않아도 뻔하다
하지만 막상 이것을 순종하여 행하는
에스겔의 마음이 느껴졌다...
제사장이었던 에스겔
그 머리털과 수염은 사람의 영광이요
삭발하고 수염을 민다는 것은
다른자의 수치가 아니라 자기의 수치였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에게 이스라엘 백성은
끔찍히 사랑하는 대상일뿐만 아니라 곧 하나님의 영광이었다
이것을 불사르고 칼로 내리치고 바람에 흩는 행동중에
자기 영광을 이렇게 하시는...
자기 스스로 수치를 당하고 계시는..
에스겔에게 부으셨던 그 하나님의 마음이 부어졌다.....
하지만 만약
이 와중에도 이스라엘 사람중에
하나님에 대한 양심이 밝은 자가 단 한명이라도 있었다면
이러한 에스겔의 모습속에서
주를 떠나 역겨운 죄악들을 먹으며
스스로 형벌을 자초한
자기와 자기 민족의 모습을 발견하고
무릎을 꿇고 마음을 찢고 통곡하며 회개하였을 것이다
에스겔은
우리가 흔히 인격적이라고 하는 틀로 볼때
전혀 말도 안되는 그 명령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더욱 깊이 알게되었다...
ㅠㅠ
이어서..
다른 수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의 삶이 한꺼번에 스쳐갔다...
이삭을 바치려다
독생자를 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된 아브라함....
자기의 외동딸을 번제로 드리고
이스라엘을 용서키위해
독생자를 줄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된 입다....
3년간 벌거 벗고 다닌 이사야....
예레미아, 예수님.. 등등...
수많은 하나님의 사람들...
이들의 삶은
인간적으로는 이해할수없는 순종들의 연속이었다....
이들의 삶은 한마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었다
(단적인 예로
이삭을 바치려던 아브라함에게
천사가 와서 전했던 말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22:12)'였다)
이 경외함을 근본으로
이들은 날마다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고
날마다 하나님과 더욱 친밀하게 되었다....
왜냐면 그들이 순종할때 마다
성령을 통해 하나님에 관한 죽은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이 그들에게 부어졌기 때문이다
(행5:32, 롬5:5)
천지를 창조하실뿐 아니라 없는 것도 있게 하시며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전지전능하신
만왕의 왕되시고
만주의 주되시며
만군의 주권자 되시는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들이 그 모든 것을 다해
가장 존귀한 찬양을 영원토록 쉬지않고 드릴지라도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티끌만큼라도 표현할수 없을것이다
말로는 감히 설명조차 할수없는
이 엄위하시고 두려우신 하나님!
이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에 대한 합당한 경외함이 없이는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알수도
하나님과의 참된 친밀함을 온전히 누릴수도 없다
이 모든 것의 근본인 경외함은
순종을 낳고 순종은 거룩과 사랑을 낳고
그 사랑은 친밀함을 낳는다
경외함과 순종과 거룩과 사랑과 친밀함은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하나일수밖에 없는
뗄레야 뗄수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경외함으로
자기의 신을 벗고 주권을 하나님께 넘기지 않으면
순종의 모양은 흉내낼수있어도
순종할수는 없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내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아버지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다른것이 아니다
순종하는 것이다
순종하면 하나님의 마음이 부어진다
그 깊은 하나님의 속내를 알게되면
하나님과 친밀해 질수밖에 없다..
경외함으로 시작된 이것이
과정과 과정을 거쳐 친밀함이라는 열매를 맺는다
요즘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들에
어린양의 신부인 우리의 근본적 정체성이 다시 부각되는
너무 감사한 시기이다
신부는 당연히 신랑을 경외한다
당연히 신랑에게 순종한다
정조를 지키며 신랑만을 순결히 사랑하는건 당연하다(거룩/사랑)
그래서 당연히 신랑과 친밀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만약 이 기쁜 우리의 정체성이
만약 경외함이 없이 우리의 정체성이
어떤 사람이 생각하는 수준의
'인간적인 친밀함'의 모양만을 추구하는 것으로 전락해 버린다면
그리고 그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린다면...
.........
경외함 없이 어찌 인간적인 친밀함이 아닌
'여호와의 친밀함'이 나올 수 있겠는가?
신랑과 침소는 공유하는데 정조 없이
신랑이 한명이 아닌 여자를 우리는 무엇이라 부르는가?
이것은 분명히 친밀함이 아니라 만홀이 여김이다!!
여호와의 친밀함은
우리 인간수준으로 이해할수있는 그런 친밀함이 아니다
사람 보기에는 정말 가혹해 보일수도
이상해 보일수도 정말 끔찍해 보일수도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에게 어떻게 순종이 옵션이 될수 있는가!?
그리스도인에게 어떻게 거룩함이 옵션이 될수 있는가!?
아니 절대 그럴수없느니라!
그리스도인에게 순종과 거룩은 선택사양이 아닌 당연한 것이다!
이게 우리의 정체성이다!
이제 만약 하나님이 우리에게
저런 선지자들에게 명하셨던
아주 쌈빡한(?) 일들을 명하시면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아!!! 멘!!!!
백번 천번 아멘!!
아멘이지!!
우리쪽에서 대답은 사랑하는 주님께 아멘밖에 없지!!
그저 친밀함으로의 놀라운 초대일 뿐이지!!
우리쪽에서 대답은 사랑하는 주님께 아멘밖에 없지!!
그저 친밀함으로의 놀라운 초대일 뿐이지!!
우리를 위해 아들까지 안아끼신게 픽션소설이 아닌데
하나님이 뭐가 아쉬워서 우리에게 나쁜걸 주시겠어??
하나님을 날마다 더욱 사랑하는것..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동일한 사랑으로 주님을 사랑하는것...
이것이 지금도 우리가 이땅에서 숨쉬는 유일한 이유가 아닌가?
'부자청년'과 틀리게
주님과 친밀하기를 전심으로 소망하는가?
사람의 말에 개의치 아니하고 전심으로 주께 나아갈자 누군가?
여호와의 친밀함은 경외하는 자에게 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