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건평씨의 골프채와 보수언론

이종복2008.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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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gernews.media.daum.net/news/2109710?pos=1&RIGHT_VIEW1=R4  노건평씨의 골프채와 보수언론 노건평씨의 골프채와 보수언론▲ 주간조선에 게재된 노건평씨가 골프연습장(?)을 걷는 장면과 호수변의 골프연습장 이미지 ⓒ주간조선
 조선일보 [weekly chosun]  &#-9;노무현 타운&#-9; 뒤 저수지엔 형 노건평씨 골프연습장&#-9;

 짙푸른 잔디밭에서 한 남자가 골프채를 들고, 유유히 걸어가고 있다. 호수까지 있는 호화골프장에서 그는 물에 뜨는 특수 골프공을 쓰면서 샷을 날린다. 바로 대통령의 형이다. 연못 위에서 못 아래 잔디밭으로 걸음을 옮기자 노건평씨가 스윙하는 모습이 보였다. 노씨의 샷에 골프공이 날아가더니 ‘퐁’ 연못으로 골인했다. 그는 플로터(floater)라는 특수 골프공을 사용한다. 물에 뜨도록 고안된 공으로, 값이 보통 공의 2배쯤 된다고 한다.

 조선일보가 노무현 싫어 하는 거 알지만 이건 좀 심하지 않은가? 그러니 언론축에도 못끼는 찌라시라고 부르는 것이다. 제발 스스로 당신들 얼굴에 마구 똥칠하는 짓거리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라나는 세대가 볼까 내가 다 창피하니 말이다.

 정락인 기자의 취재수첩 &#-9;노대통령의 친형 건평씨 집 실내 풍경&#-9;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촌로는 농사일을 쉴 수가 없다. 한 평당 만 오천 원에서 이만 원 받는 잔디농사까지 짓는다. 그가 거닐던 잔디밭은 골프를 즐기기 위한 연습장이 아니라, 그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농사를 짓는 터전이었다. 그의 손에 들려 있던 골프채는 손자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 골프채였고, 물에 뜨는 골프공은 애들 장난감용으로 만들어진 460원짜리였다. 인터뷰에서 보듯 그의 집은 물이 새고 있다. 저널리즘이 상실된 작금의 현실이 안타깝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알려주는 기자분들을 만나고 싶다. 적어도 정락인 기자처럼 직접보고 느낀것을 알려주는 기사를 만나보고 싶다.

 시사 영남매일 &#-9;봉하마을의 진실 2&#-9; 

 김해의 지역언론인 시사영남매일도 직접 문제가 된 노건평씨의 &#-9;잔디밭&#-9;을 찾았다. 그리고 주간조선의 보도로 소개된 골프채와 460원짜리 물에 뜨는 &#-9;특수 골프공&#-9;을 직접 취재했다. 시사영남매일 이균성 기자의 기사를 일부 인용한다. "손자의 놀이용 플라스틱 골프채가 고가의 수입골프채로 둔갑되고 거기에 딸린 한 개에 460원 하는 골프공이 12,000원짜리로 변신하는가 하면 노 대통령의 형인 노건평씨가 농가수입을 위해 가꾸어 잔디 시설 보수용으로 판매하고 있는 배추밭 딸린 100평 남짓한 잔디 기르는 밭이 개인용 골프장으로 확대, 왜곡되어 보도된 것 등은 언론으로서는 커다란 부끄러움으로, 인척들에게는 가슴 아픈 응어리로 남았다."라고 보도했다. 참으로 이러한 현실이 개탄스러울 뿐이다. 

 블로거들의 글, 
   노건평씨 장난감 골프채로 호화골프를?
  주간조선.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습니다.
  노건평씨 골프연습장의 진실은?

노건평씨의 골프채와 보수언론▲ 노건평씨 손자의 장난감 골프채와 460원짜리 골프공, 배추밭에 딸린 잔디밭 ⓒ영남매일 제공 
 하승진 기자의 글,

 1번의 사실은 주간조선 이범진 기자가 취재한 내용이고, 2번의 사실은 시사저널 김회권 기자가 취재한 내용이다. 자신의 일도 아니건만 억울함에 눈물이 나더라는 어느 누리꾼의 멘트에 나 역시 부끄러웠다. 대학을 입학하면서부터 내 꿈은 신문기자였다. 학보사에 지원서를 내었다가 떨어지는 바람에 그 생활은 하지 못했지만 동경은 여전했다. 졸업 이후에도 언론사가 아닌 증권사로 첫 직장을 시작했지만, 매년 신문사의 신입기자 모집 공고를 볼 때마다 가슴이 뛰었다. 결국, 먼길을 돌아와 지금은 기자 명함을 받았다. 그리고 지금 저 주간조선의 기사와 억울해 하는 독자의 눈물에 참담한 부끄러움을 느낀다. 주간조선의 이범진 기자는 숨어서 사진을 찍었고, 노건평 씨에게 어떤 언급도 없이 숨어서 기사를 썼다. 나도 내 명함을 숨기고 싶다. 주간조선의 기사는 기자로서 배우고 싶을 만큼 모범적이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문장에 구체적인 현장 묘사가 곁들여진다. 불필요한 감정적 언사도 잘 절제되어 있지만, 충분히 가치판단이 가능하도록 사실관계를 적절하게 나열한다. 함께 실린 두 장의 사진은 한가로운 전원 마을에서 여유롭게 노후생활을 그리는 대통령의 형님이라는 이미지가 물씬 풍겨난다. 단 두 가지만 없을 뿐이다. 사실(fact), 그리고 기자로서 최소한 지켜야 할 자존심. 그래서 주간조선의 기사는 기사가 아니라 악랄한 선동 삐라가 되었다. 신문은 삐라문건을 싣는 매체가 아니라는 것쯤은 이미 초등학교 때 배웠다. 독자가 기사를 보고, 억울해 한다. 날조된 보도에 언론의 호칭을 붙여 준다는 것이 억울하고, 최소한의 인간적 도리마저 무시한 언론에 우리의 권력이 조롱당하는 것이 억울하고, 왜곡된 펜으로 한 인간의 삶을 난도질하는 잔인한 행패에 대해 그 책임을 온전히 묻지 못한다는 점에서 억울해 한다. 그의 억울함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참으로 억울하다.


 나는 조중동을 단순히 지지세력이 다르다고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진정으로 조선을 비난하는 이유는 그들의 과거 역사를 차치하고라도 지금 현재에도 언론이라고 볼 수없는 &#-9;짜집기, 침소봉대, 사실왜곡, 막말&#-9;의 수단을 이용해서 자신들의 주장을 옹호하고 상대방을 폄훼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조중동을 문제삼는 것은 조중동이 극단적인 보수성향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언론의 정도를 무시하고 왜곡하기 때문이다.

 혹자는 말한다. &#-9;거짓인지 진실인지는 시각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9;라고. 미안한 말이지만 거짓인지 진실인지는 시각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이런 상대주의는 대단히 위험하다. 물론 인간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오류가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9;모든 것은 보기 나름이다&#-9;, &#-9;조선일보를 옹호하는 입장에선 조선일보의 기사가 진실이다.&#-9;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진실은 개인의 머리나 관념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관념과는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리 10층에서 떨어져도 살수 있다고 생각하더라도 10층에서 떨어지면 죽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어떤 신문을 보라, 말아라 하고 강요할 수 있는 권한은 내게 없다. 민주사회에서 다양성은 존중 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언론의 잘못된 행태에 대해서는 질타하고 그런 행태가 지속적이고 의도된 것이라면 그렇게 할 수 없도록 압력을 가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정치.사회.문화적 다양성을 인정.존중하는 것과 진실에 대한 불가지론은 그 차원이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물론 역사와 정치라는 큰 틀에서 진실이 무엇인지 가려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노건평씨 호화골프처럼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구체적인 사안들에서 그것이 올바른 보도행태였는지 아니면 왜곡과 날조인지를 구별해 내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왜곡/날조는 해석의 차이가 절대 아니다. 그것은 개인 뿐만 아니라 언론으로서는 절대 해서는 안될 일이다. 언론마다 해석의 차이는 있고 주장도 다르겠지만 그 주장을 위해서 진실을 왜곡/날조한다면 그것은 절대 언론이 아니다.

 아마 내 인생에서 조선을 선택하는 경우가 생긴다면 그건 둘중 하나일 것이다. 조선이 벼락이라도 맞아 옳바른 수단과 논리로 자기 주장을 하는 날이 온다던지 아니면 몇십년 후 아니 몇백년 후에 황국신민의 강요가 선이되고 나라팔아먹은놈들의 앞잡이들이 애국지사가되고 독재 고문 학살이 정당화되고 정의가 되는 때, 그 때가 아닐까 싶다. 대학 수업 중 들었던 한 교수님의 말을 마지막으로 글 접고자 한다.

 "언론의 힘은 진실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 진실만큼 강력한 무기는 더 없다. 진실에서 신뢰가 나오고 그 신뢰는 바로 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