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표현의 정도

송승회2008.11.27
조회553

 

어제.

우리가 잘 아는 어떤 친구가 '로맨틱하고 포근할 수 있는' 상황을

'존나 따뜻하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미친듯이 웃었는데

오늘 그와 유사한 장면을 실제로 목격해버렸다.

 

온 몸으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서울 중림동 모처.

지하 작업장의 탁한 공기를 견디다 못해 건물 입구로 나왔다.

100원짜리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담배 연기를 솔솔 내뿜고 있을 때,

갓 20대에 진입한 듯한 커플이 내 앞을 지나치려 하고 있었다.

 

이 커플 정말.

 

-_-

 

그 상황을 이야기 하려한다.

 

 

 

고목나무에 붙어있는 매미처럼 남자친구에게 꼬옥 들러붙은 처자가

"오빠 나 얼마나 사랑해?"

라고 물어봤을 때까지는 참으로 순수하고 이뻐보였다.

직접 상대방의 마음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그 마음.

이쯤되면 오크 커플이라고 해도 아름다워 보일 수 있는거다.

 

여기에서 남자친구 대답이 정말 진상이었는데, 그 대답인즉슨.

 

"존나게."

 

...-_-

 

야. 그런 질문에 대답하는데 존나게가 뭐냐. 존나게가.

 

아무튼, 전혀 사랑스럽지 않은 눈길로 여자친구를 내려다보며

대답한 그 남자친구에게 여자친구가 재차 질문을 했다.

답을 못들었는지 아니면 의외였는지.

 

"응? 응~?"

 

그 남자.

어지간하면 닭살스러워도 '하늘만큼 땅만큼'이라고 할 줄 알았다.

 

......

 

"조~온나게."

 

 

 

-_-

 

 

 

여자친구 단단히 삐치시겠군.

하는 짐작을 하기도 전에 여자친구는 그 대답을 듣고...

 

">>ㅑ~~ 졍말? 뎡말?"

 

혀짧은 소리까지 내더라.

 

순간 그 상황이 전혀 웃기지 않았다.

만약에 그 커플과 내가, 이렇게 셋이 무인도에 떨렁 남겨진다면

'존나게'라는 말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거잖아.

의사소통이 안 될 수 있는 위급한 상황인거다.

 

 

 

급하게 지인 둘에게 SOS 문자를 날렸다.

현웅이와 요한이에게

'존나게가무슨뜻인지아냐'고.

물론 나도 알긴 알지만, 이럴때는 확실한 정의가 필요한거다.

 

요한이에게 답장이 왔다.

신세대 국문학의 마에스트로라고 할 수 있는 전문가가 요한이다.

'음..최상급표현인데..unique라고해야하나??최상급표현이야ㅋㅋ'

 

그렇단다.

 

이거 최상급 표현인거다.

 

 

 

내가 언젠가 '주인장 생각' 게시판에 [言]이라는 글을 쓰면서

시간이 흘러서 가까운 미래에, 학생이 선생님께

"담탱! 씨발 졸라 즐!"

이라고 말해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그런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고

언어파괴에 대한 아쉬움의 글을 시니컬하게 쓴 적이 있었다.

오늘 보니까, 그 날이 이미 도래해 있었던 것 같다.

 

아까 그 커플.

만약에 결혼을 하고 예쁜 아기와 함께 살게 됐는데

그 아기가 "엄마 아빠 존나게 사랑해요~"라는 말을 한다면

그 때 기분이 어떨까?

"그래 우리도 너를 존나게 사랑해."

라고 대답할지도 모를 일이긴 하다.

 

아무리 여기에 글을 써봐야 내 넋두리 이상이 되지는 못하지만

그런 넋두리라도 구구절절 쓰면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씨발' 혹은 '존나'... etc 유사언어들.

성적인 쾌락을 대놓고 즐기는 사람이 아니고서

은근히 즐기지만 자신의 성적인 취향을 감추는 사람들이나

정말 그런 걸 꺼려하는 사람 앞에서는 이런말 쓰지 말자꾸나.

친한 사이에서 허물없이 쓸 수 있다고는 하지만

행동을 조심해야 할 동성이나, 특히 이성앞에서 사용하는 저 말은

언어를 가장한 직접적인 성폭력과 전혀 다름없는 말이다.

솔직히. 대충 글씨 모양만 뜯어봐도 저게 어디서 비롯된 단어인지

대부분의 사람들 모두 쉽게 알 수 있지 싶다.

 

 

 

그나저나 뒤늦게 현웅이한테 답장이 왔는데

'아니...뭔가알아냈구나~☆.☆'

 

살면서 제일 큰 문제중의 하나는

'씨발 존나' 이런거 다 때려치우고.

현웅이라는 녀석이 나를 너무 잘 안다는거.

이게 문제다.

 

 

 

아무튼, 글을 정리하면서

그 커플의 애정표현이 어느정도였는지를

다시한번 여러분들께 알릴 수 있는 좋은 장면이 있어서

글로나마 그 순간을 재연해본다.

 

땡그란 눈으로

여자 : "오빠 나 얼마나 사랑해?"

 

무게있는 목소리

남자 : "존나게"

 

못들은 듯

여자 : "응? 응~?"

 

강조하며

남자 : "조~온나게"

 

혀짧은 소리

여자 : ">>ㅑ~~ 졍말? 뎡말?"

 

여우같은 표정으로

여자 : "그럼 찍어봐!"

 

...뭘 찍으라는 걸까...라는 상상을 할 여지도 없이.

 

이 남자.

오른손을 전화기 모양으로 만들더니

혀를 쑤욱 내밀어서 엄지 손가락을 혓바닥에 꾹 눌러 대고

새끼손가락을 이마에 살포시 올려놓더라.

 

 

 

야...

 

그거 아직도 하냐.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