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영국의 세군 데 복제 연구팀은 이종간 복제(interspecies cloning) 허용 신청서를 정부에 제출한 상태다. 영국 정부는 올해 말까지 그 허용 여부를 결정한다고 한다. 미국은 공화당 부시 정권이 들어와 복제 연구에 자금을 막았지만, 실제 이종간 복제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영국 복제 연구팀은 자신의 유전자를 암소 난자에 이식했던 미국의 Jose Cibelli의 시도에 자극받은 것이다. 그는 최근에 원숭이의 체세포와 암소 난자를 이용한 이종간 복제에 실패했다. 그러나 다른 종에 대해서는 몇몇의 이종간 복제를 성공한 사례가 있다.
황우석 사건으로 SCNT, 소위 체세포 핵치환법에 의한 복제는 많이 알려졌다. 이종간 복제는 인간 여성의 난자 대신에 다른 동물의 난자를 사용하는 것이다.
1. 동물 난자에 담긴 핵을 포함한 유전물질을 제거한다.
2. 유전 물질이 제거된 동물 난자에 인간 체세포 핵을 심는다.
3. 그리고 난자가 수정된 것으로 착각하도록 난자를 자극한다.
기존 SCNT 기법과 마찬가지로 3번이 가장 어렵다. 다시 말해, 많은 난자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중에 아주 소수만이 성공작으로 나온다. 사기극으로 밝혀진 황우석 실험이 주목을 받았던 것은 단지 3과 관련해 성공작의 퍼센티지를 끌어 올렸다고 발표되었기 때문이다.
SCNT 기법과 마찬가지로 이종간 복제 기법도 '개체 복제'가 아닌 체세포 복제'다. 1-3을 거쳐 운 좋게 수정란이 된 난자를 자궁에 착상시켜 새끼를 얻을 때만이 개체 복제가 된다. 월머트의 돌리가 개체 복제의 대표적 사례가 된다.
줄기세포는 척수신경으로 발달할 원시선이 생기기 이전의 단계에 있는 수정란에서 채취된다. 줄기세포는 각종 장기나 조직으로 분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그런데 줄기세포 연구를 통해 환자 맞춤형 질병 치료를 강조하는 것은 아마추어적이지 못해 너무나 유치한 발상이다. 사실 그 유치한 발상이 한 때 이 사회에서 먹혔다는 것도 유치하다. 왜냐하면 대부분 난치병은 유전병이기 때문이다. 유전병을 가진 환자의 체세포를 사용해 얻어낸 수정란은 환자의 유전 정보를 갖고 있다. 환자의 유전적 결함은 그 수정란으로 전이된다.
좀 더 세련된 발상은 이렇다.
유전적 질병을 포함한 각종 난치병이 발생하는 기제를 모른다. 인체를 실험 대상으로 삼을 수 없고, 또 유전병은 이미 개체 발생 과정에서 프로그래밍되는 측면도 있다. 그래서 그런 질병을 가진 환자의 체세포를 가지고 얻어낸 줄기세포를 연구함으로써 실제 질병이 발생하는 기제를 알아내야 한다.
일단 질병 및 제약과 관련된 줄기세포 연구의 1차적 목적은 꿈 같은 환자 맞춤형 치료제가 아니라 위의 발상이다. 그런데 이 발상을 연구로 심화하기 위해서는 많은 난자, 심지어 과학자 한 명당 수천 개의 복제된 수정란이 필요한 것이다.
인간 여성의 난자를 사용하는 것은 우선 사회적으로 시끄럽다. 그 여성이 진심으로 기증을 했든, 속아서 기증을 했든, 아니면 돈을 받고 팔았든 간에,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 개인의 동기는 제3자 관점에서 객관화될 수 없을 뿐더러, 인간 생명을 조작해서는 안 된다는 관점과 그렇지 않다는 관점 사이에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늑대, 개, 소, 양은 체세포 복제의 차원을 넘어서 개체복제를 하지만, 주위에서 아무도 뭐라고 그러지 않는다. 단지 인간 난자를 사용했을 때 잡음이 강하다. 그런데, 인간 난자를 사용하는 경우, 기증 여성은 배란 촉진제를 맞아야 하며, 이것의 부작용도 고려되어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일부 과학자들은 이종간 복제에 관심을 돌린 것이다.
이제 인간의 난자가 아니라 동물 난자를 사용하면, 별로 시끄럽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자 여기서 한번 냉철히 따져보자.
동물은 개체복제를 해도 윤리적 논쟁 같은 것은 거시적 차원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동물 난자를 쓰겠다는 것에 대해서도 과거 반대자들이 들고 일어난다면, 이것은 그들의 기회주의적 반대에 불과하다. 왜냐고?
인간 여성 난자를 사용했을 때 그들 다수, 특히 부시의 생명의료윤리 자문을 맡은 자들은 인간의 존엄성보다는 여성의 건강권 혹은 합당한 정보에 근거한 환자와의 동의를 강조했다. 그리고 그들은 동물의 경우 마음대로 실험해도 된다고 했다. 그런데 이종간 복제 기술 사용에 대해서도 반대를 한다. 이제 합당한 논증이 없던지, 원래의 본색을 들어낸다. 그들은 처음부터 인간 생명 조작은 원천적으로 금지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그들의 생각에는 사실 모태 신앙에 근거한 근대 이후 기독교 윤리가 깔려 있는 것이다.
근대 이후 기독교 윤리라고 하는 이유는 이렇다. 근대 이전의 기독교 윤리는 막말로 천당과 현실세계를 구분하고, 기독교적 이념 구현을 목적으로 정치적 탄력성을 보였기 때문이다. 여러 민족과 이질적인 문화를 규합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다. 종교 개혁 이후 경건주의가 기독교를 휩쓸면서 고대나 중세와 달리 강한 '성역' 개념이 생겨난 것이다. 그 성역 중에는 인간 생명을 조작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도 들어가게 된 것이다. 차라리 완고한 성직자처럼 인간 세포도 건드리지 말라는 것이 오히려 솔직한 것이다.
이종간 복제 연구를 반대하기 위한 생물학적 논변은 뭔가? 차라리 모든 동물 실험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이 솔직하다. 이종간 복제 연구에 인간의 체세포가 사용된다는 것을 걸고 넘어가면, 사실 우리는 목욕도 해서는 안 된다. 목욕할 때 수십 개의 체세포가 떨어져 나가 죽는다.
부시의 생명의료윤리 자문위원회 소속원들이 이종간 복제 연구에 반대하기 위한 또 다른 생물학적 논변은 케케묵은 유전자 결정론에 호소하는 것이다. 개체 동일성에 유전적 동일성을 충분조건으로 깔아버리면, SCNT 기법이든 이종간 복제 기법이든 금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의 우끼는 사실이 발견된다, 그 생명의료윤리 자문위원회 소속자들의 과거 논문을 보면 유전자 결정론에 반대하면서 복제 반대의 근거로 발생학을 강조하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국내 생명의료윤리 관계자들 논문에도 그러한 것들이 있는데, 무식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왜냐고?
여기서 유전과 발생의 복잡하고 전문적인 얘기는 접자. 발생학은 후생설을 깔고 있다는 점만 알면 된다. 후생설은 인간의 형태적 원형과 같은 것이 대물림된다는 전생설에 반대하는 것이다. 후생설은 두 전제를 깔고 있다.
1. 수정 과정에는 암컷, 수컷 양자의 기여가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과거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난자는 그냥 부화기 같은 것이 아니라 발생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2. 발생 과정은 단계적이다. 각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 넘어간다. 시공간적으로는 그 두 단계가 연속적인 과정일지라도, 발생과정은 단계적 발달 과정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후생설을 주장했다고 할 때 그는 약한 버젼의 후생설을 주장한 것이다. 그는 1을 부정하고 2만 긍정했기 때문이다. (물론 국내에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전생설을 주장한 것처럼 소개되기도 하는데, 과학사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그는 수정란 초기에는 ‘동물 영혼’이 없다고 했다. 여기서 영혼은 단순히 어떤 정신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동물 생명을 규정해주는 어떤 기능상의 합목적적 능력의 총체와 같은 것이다.
이 말을 하는 이유는 이렇다. 인간 외의 동물 실험이 인정되어야 한다면, 척추 신경계가 형성되기 이전의 수정란을 조작할 수 있는 근거는 오히려 발생학이 뒷받침해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는 발생과정과 시공간적 연속성을 혼돈한 채 복제 반대의 근거로 발생학에 호소를 했기 때문이다. 의심이 나면 국내 논문을 찾아보시라. 복제를 반대하려면, 차라리 유전자 결정론자가 되라고 충고한다. 개체의 정체성이 유전적으로 결정된다면, 그 어떤 형태의 복제도 살인으로 취급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논변이라면 받아들이지는 않아도 합당한 논변의 자질을 갖춘 것이다.
영국의 정책적 입장은 우리나라의 최근 결정과 마찬가지로 복제 연구에 대해 제한적 허용론이다. 영국팀의 이종간 복제 연구 허가 여부는 그네들의 결정 사항이다. 생물학적, 윤리학적 입장뿐만 아니라 사회적 수준도 고려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된다. 영국의 연구팀이 이종간 복제 연구를 신청한 사건은 영국 신문방송에서 크게 회자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어디가 그러한가? 역시 미국이다. 왜 그런가?
대한민국, 미국, 독일 신문들을 번갈아 가면서 보고 비교를 해본다. 황우석 사건이 세계 전역의 메인뉴스를 장식했다고 누군가 여긴다면, 그는 착각에 빠진 자다. 독일에도 사건 초기에는 보도가 되었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미국은 달랐다.
미국에서는 연방법과 국가법의 이원적 구조 속에 복제가 금지되어 있지 않다. 이종간 복제 연구도 그 덕에 미국에서 먼저 시도된 것이다. 부시 정권이 들어서면서 보수 대 진보의 갈등이 깊어졌는데, 그 두 진영의 충돌을 구성하는 한 축은 생명의료윤리 및 생명공학을 둘러싼 것이었다. 부시는 생명공학, 특히 복제 연구에 대한 자금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려고 했다. 그대신 창조과학을 학교 교과 과정에 집어넣으려고 했다가 실패했다. 비단 복제뿐만 아니라 생명공학을 둘러싼 연구 자금줄이 막히면서 많은 미국의 연구팀이 싱가폴로 이동해버렸다.
영국팀이 이종간 복제 연구를 시도해보려고 하니, 이 사건도 보기 좋게 미국에서 회자되고 있는 것이다. 부시의 생명의료윤리 자문을 담당하고 있는 이들은 이번에는 여성 건강권, 복지권 혹은 정보에 근거한 환자와의 동의와 같은 것을 전면에 내세울 수 없게 되었다. 동물 난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이번에는 솔직한 발언을 했는데, 그들의 반대 이유는 '인간의 존엄성'(human dignity)이었다.
"The destruction of such an organism does not change the moral wrongness of the initial action," said Gomez-Lobo, who called the research "a violation of human dignity."(오늘자 샌프란시스코 데일리)
부시의 생명의료윤리 자문위원 Gomez-Lobo 에게 묻고 싶은 것은 단 한가지다.
What is human dignity?
결론도 한 가지다.
그들이 과거에 강조한 합당한 정보에 근거한 환자와의 동의, 여성 건강권 등은 다 '쇼'(show)를 위한 개념적 장치였다. 그들은 애시당초 그들의 기독교적 윤리, 원래 기독교에 든 것이 아닌 서양 역사에서 경건주의로 굳어진 기독교 윤리를 바탕에 깔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생명의료윤리학회 소속 다수도 마찬가지로 본다. 단, 부시의 생명의료윤리 자문을 맡은 이들이 미국의 생명의료윤리를 대표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이종간 복제(interspecies cloning) 논쟁
http://goodking.new21.net/bbs/index.php
착한왕
이종간 복제(interspecies cloning) 논쟁
올해 영국의 세군 데 복제 연구팀은 이종간 복제(interspecies cloning) 허용 신청서를 정부에 제출한 상태다. 영국 정부는 올해 말까지 그 허용 여부를 결정한다고 한다. 미국은 공화당 부시 정권이 들어와 복제 연구에 자금을 막았지만, 실제 이종간 복제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영국 복제 연구팀은 자신의 유전자를 암소 난자에 이식했던 미국의 Jose Cibelli의 시도에 자극받은 것이다. 그는 최근에 원숭이의 체세포와 암소 난자를 이용한 이종간 복제에 실패했다. 그러나 다른 종에 대해서는 몇몇의 이종간 복제를 성공한 사례가 있다.
황우석 사건으로 SCNT, 소위 체세포 핵치환법에 의한 복제는 많이 알려졌다. 이종간 복제는 인간 여성의 난자 대신에 다른 동물의 난자를 사용하는 것이다.
1. 동물 난자에 담긴 핵을 포함한 유전물질을 제거한다.
2. 유전 물질이 제거된 동물 난자에 인간 체세포 핵을 심는다.
3. 그리고 난자가 수정된 것으로 착각하도록 난자를 자극한다.
기존 SCNT 기법과 마찬가지로 3번이 가장 어렵다. 다시 말해, 많은 난자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중에 아주 소수만이 성공작으로 나온다. 사기극으로 밝혀진 황우석 실험이 주목을 받았던 것은 단지 3과 관련해 성공작의 퍼센티지를 끌어 올렸다고 발표되었기 때문이다.
SCNT 기법과 마찬가지로 이종간 복제 기법도 '개체 복제'가 아닌 체세포 복제'다. 1-3을 거쳐 운 좋게 수정란이 된 난자를 자궁에 착상시켜 새끼를 얻을 때만이 개체 복제가 된다. 월머트의 돌리가 개체 복제의 대표적 사례가 된다.
줄기세포는 척수신경으로 발달할 원시선이 생기기 이전의 단계에 있는 수정란에서 채취된다. 줄기세포는 각종 장기나 조직으로 분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그런데 줄기세포 연구를 통해 환자 맞춤형 질병 치료를 강조하는 것은 아마추어적이지 못해 너무나 유치한 발상이다. 사실 그 유치한 발상이 한 때 이 사회에서 먹혔다는 것도 유치하다. 왜냐하면 대부분 난치병은 유전병이기 때문이다. 유전병을 가진 환자의 체세포를 사용해 얻어낸 수정란은 환자의 유전 정보를 갖고 있다. 환자의 유전적 결함은 그 수정란으로 전이된다.
좀 더 세련된 발상은 이렇다.
유전적 질병을 포함한 각종 난치병이 발생하는 기제를 모른다. 인체를 실험 대상으로 삼을 수 없고, 또 유전병은 이미 개체 발생 과정에서 프로그래밍되는 측면도 있다. 그래서 그런 질병을 가진 환자의 체세포를 가지고 얻어낸 줄기세포를 연구함으로써 실제 질병이 발생하는 기제를 알아내야 한다.
일단 질병 및 제약과 관련된 줄기세포 연구의 1차적 목적은 꿈 같은 환자 맞춤형 치료제가 아니라 위의 발상이다. 그런데 이 발상을 연구로 심화하기 위해서는 많은 난자, 심지어 과학자 한 명당 수천 개의 복제된 수정란이 필요한 것이다.
인간 여성의 난자를 사용하는 것은 우선 사회적으로 시끄럽다. 그 여성이 진심으로 기증을 했든, 속아서 기증을 했든, 아니면 돈을 받고 팔았든 간에,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 개인의 동기는 제3자 관점에서 객관화될 수 없을 뿐더러, 인간 생명을 조작해서는 안 된다는 관점과 그렇지 않다는 관점 사이에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늑대, 개, 소, 양은 체세포 복제의 차원을 넘어서 개체복제를 하지만, 주위에서 아무도 뭐라고 그러지 않는다. 단지 인간 난자를 사용했을 때 잡음이 강하다. 그런데, 인간 난자를 사용하는 경우, 기증 여성은 배란 촉진제를 맞아야 하며, 이것의 부작용도 고려되어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일부 과학자들은 이종간 복제에 관심을 돌린 것이다.
이제 인간의 난자가 아니라 동물 난자를 사용하면, 별로 시끄럽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자 여기서 한번 냉철히 따져보자.
동물은 개체복제를 해도 윤리적 논쟁 같은 것은 거시적 차원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동물 난자를 쓰겠다는 것에 대해서도 과거 반대자들이 들고 일어난다면, 이것은 그들의 기회주의적 반대에 불과하다. 왜냐고?
인간 여성 난자를 사용했을 때 그들 다수, 특히 부시의 생명의료윤리 자문을 맡은 자들은 인간의 존엄성보다는 여성의 건강권 혹은 합당한 정보에 근거한 환자와의 동의를 강조했다. 그리고 그들은 동물의 경우 마음대로 실험해도 된다고 했다. 그런데 이종간 복제 기술 사용에 대해서도 반대를 한다. 이제 합당한 논증이 없던지, 원래의 본색을 들어낸다. 그들은 처음부터 인간 생명 조작은 원천적으로 금지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그들의 생각에는 사실 모태 신앙에 근거한 근대 이후 기독교 윤리가 깔려 있는 것이다.
근대 이후 기독교 윤리라고 하는 이유는 이렇다. 근대 이전의 기독교 윤리는 막말로 천당과 현실세계를 구분하고, 기독교적 이념 구현을 목적으로 정치적 탄력성을 보였기 때문이다. 여러 민족과 이질적인 문화를 규합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다. 종교 개혁 이후 경건주의가 기독교를 휩쓸면서 고대나 중세와 달리 강한 '성역' 개념이 생겨난 것이다. 그 성역 중에는 인간 생명을 조작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도 들어가게 된 것이다. 차라리 완고한 성직자처럼 인간 세포도 건드리지 말라는 것이 오히려 솔직한 것이다.
이종간 복제 연구를 반대하기 위한 생물학적 논변은 뭔가? 차라리 모든 동물 실험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이 솔직하다. 이종간 복제 연구에 인간의 체세포가 사용된다는 것을 걸고 넘어가면, 사실 우리는 목욕도 해서는 안 된다. 목욕할 때 수십 개의 체세포가 떨어져 나가 죽는다.
부시의 생명의료윤리 자문위원회 소속원들이 이종간 복제 연구에 반대하기 위한 또 다른 생물학적 논변은 케케묵은 유전자 결정론에 호소하는 것이다. 개체 동일성에 유전적 동일성을 충분조건으로 깔아버리면, SCNT 기법이든 이종간 복제 기법이든 금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의 우끼는 사실이 발견된다, 그 생명의료윤리 자문위원회 소속자들의 과거 논문을 보면 유전자 결정론에 반대하면서 복제 반대의 근거로 발생학을 강조하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국내 생명의료윤리 관계자들 논문에도 그러한 것들이 있는데, 무식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왜냐고?
여기서 유전과 발생의 복잡하고 전문적인 얘기는 접자. 발생학은 후생설을 깔고 있다는 점만 알면 된다. 후생설은 인간의 형태적 원형과 같은 것이 대물림된다는 전생설에 반대하는 것이다. 후생설은 두 전제를 깔고 있다.
1. 수정 과정에는 암컷, 수컷 양자의 기여가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과거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난자는 그냥 부화기 같은 것이 아니라 발생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2. 발생 과정은 단계적이다. 각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 넘어간다. 시공간적으로는 그 두 단계가 연속적인 과정일지라도, 발생과정은 단계적 발달 과정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후생설을 주장했다고 할 때 그는 약한 버젼의 후생설을 주장한 것이다. 그는 1을 부정하고 2만 긍정했기 때문이다. (물론 국내에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전생설을 주장한 것처럼 소개되기도 하는데, 과학사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그는 수정란 초기에는 ‘동물 영혼’이 없다고 했다. 여기서 영혼은 단순히 어떤 정신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동물 생명을 규정해주는 어떤 기능상의 합목적적 능력의 총체와 같은 것이다.
이 말을 하는 이유는 이렇다. 인간 외의 동물 실험이 인정되어야 한다면, 척추 신경계가 형성되기 이전의 수정란을 조작할 수 있는 근거는 오히려 발생학이 뒷받침해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는 발생과정과 시공간적 연속성을 혼돈한 채 복제 반대의 근거로 발생학에 호소를 했기 때문이다. 의심이 나면 국내 논문을 찾아보시라. 복제를 반대하려면, 차라리 유전자 결정론자가 되라고 충고한다. 개체의 정체성이 유전적으로 결정된다면, 그 어떤 형태의 복제도 살인으로 취급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논변이라면 받아들이지는 않아도 합당한 논변의 자질을 갖춘 것이다.
영국의 정책적 입장은 우리나라의 최근 결정과 마찬가지로 복제 연구에 대해 제한적 허용론이다. 영국팀의 이종간 복제 연구 허가 여부는 그네들의 결정 사항이다. 생물학적, 윤리학적 입장뿐만 아니라 사회적 수준도 고려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된다. 영국의 연구팀이 이종간 복제 연구를 신청한 사건은 영국 신문방송에서 크게 회자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어디가 그러한가? 역시 미국이다. 왜 그런가?
대한민국, 미국, 독일 신문들을 번갈아 가면서 보고 비교를 해본다. 황우석 사건이 세계 전역의 메인뉴스를 장식했다고 누군가 여긴다면, 그는 착각에 빠진 자다. 독일에도 사건 초기에는 보도가 되었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미국은 달랐다.
미국에서는 연방법과 국가법의 이원적 구조 속에 복제가 금지되어 있지 않다. 이종간 복제 연구도 그 덕에 미국에서 먼저 시도된 것이다. 부시 정권이 들어서면서 보수 대 진보의 갈등이 깊어졌는데, 그 두 진영의 충돌을 구성하는 한 축은 생명의료윤리 및 생명공학을 둘러싼 것이었다. 부시는 생명공학, 특히 복제 연구에 대한 자금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려고 했다. 그대신 창조과학을 학교 교과 과정에 집어넣으려고 했다가 실패했다. 비단 복제뿐만 아니라 생명공학을 둘러싼 연구 자금줄이 막히면서 많은 미국의 연구팀이 싱가폴로 이동해버렸다.
영국팀이 이종간 복제 연구를 시도해보려고 하니, 이 사건도 보기 좋게 미국에서 회자되고 있는 것이다. 부시의 생명의료윤리 자문을 담당하고 있는 이들은 이번에는 여성 건강권, 복지권 혹은 정보에 근거한 환자와의 동의와 같은 것을 전면에 내세울 수 없게 되었다. 동물 난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이번에는 솔직한 발언을 했는데, 그들의 반대 이유는 '인간의 존엄성'(human dignity)이었다.
"The destruction of such an organism does not change the moral wrongness of the initial action," said Gomez-Lobo, who called the research "a violation of human dignity."(오늘자 샌프란시스코 데일리)
부시의 생명의료윤리 자문위원 Gomez-Lobo 에게 묻고 싶은 것은 단 한가지다.
What is human dignity?
결론도 한 가지다.
그들이 과거에 강조한 합당한 정보에 근거한 환자와의 동의, 여성 건강권 등은 다 '쇼'(show)를 위한 개념적 장치였다. 그들은 애시당초 그들의 기독교적 윤리, 원래 기독교에 든 것이 아닌 서양 역사에서 경건주의로 굳어진 기독교 윤리를 바탕에 깔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생명의료윤리학회 소속 다수도 마찬가지로 본다. 단, 부시의 생명의료윤리 자문을 맡은 이들이 미국의 생명의료윤리를 대표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충고하고 싶은 것도 한가지다.
그 근거가 애매한 인간 존엄성을 강조하지 말고 새로운 논변을 찾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