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늦잠 잔 여자 -

주동희2008.11.28
조회55
- 늦잠 잔 여자 -

 

아니,  어떻게 그렇게 귀신처럼 알까요,

 

우리 아빠가 맨 날 엄마한테

 

비상금 숨겨놓은 거 들킬 때마다 귀신같다고 하시더니,

 

여자들은 다 그런가 봐요.

 

아무래도 무슨 초능력 같은 걸 갖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그렇게 안 보고도 다 알죠.

 

 

벌써 12시가 다 되어 가네요.

 

12시 반에 만나서 점심 먹기로 했는데..이 일을 어쩌죠?

 

어제 여자 친구랑 연극보고 들어와서

 

오랜 만에 게임에 심취 하는 바람에 좀 늦게 잤거든요.

 

그래서 사실 좀 전에 눈을 떴는데,

 

일어나보니 무시무시한 그녀의 문자가 떡하니, 도착해 있지 뭡니까..?

 

[ 너 어제 게임하고 늦게 잤지?

 

설마 지금까지 침대 속에 있는 건 아니겠지? ]

 

내 방에 도청장치를 해 뒀거나,

 

아니면 cc tv를 몰래 설치해 두지 않고서야..어떻게 이럴 수가 있죠?

 

 

아..여자 친구한테 전화가 왔어요.

 

순간, 어제 무대에서 춤추다가 넘어진 배우가 생각나네요.

 

위기의 순간에 봉착한 사람의 절박한 얼굴...

 

지금 제 얼굴이 그 얼굴이거든요.

 

뭐라도 둘러대죠..?

 

이제 일어났다고 하면 불 같이 화를 낼 텐데, 차라리 아프다고 할까요..?

 

 

사실 오늘은 나가기도 귀찮고, 이렇게 잠이나 잤으면 좋겠는데..

 

아니, 지금 내가 무슨 건방진 생각을 하고 있는 거죠?

 

그녀랑 데이트 한 번 해 보는 게 소원인 적도 있었는데,

 

불과 1년도 안 된 일인데...

 

그 새 이렇게 군기가 빠졌다니..이건 내 스스로가 용서가 안 됩니다.

 

 

처음에 여자 친구가 얼마나 튕겼는지 몰라요.

 

비오는 날, 같이 한 우산 쓰고 걷자고 했다가 무안당한 생각하면

 

지금도 등줄기에 땀이 고입니다.

 

손잡는 데도 얼마나 시간이오래 걸렸는데요..?

 

걷다가 뒤에서 차가 오길래,

 

같이 피하려고 허리에 손 한 번 감았다가..난리가 났었어요.

 

한 번은요, 영화를 보러 갔다가

 

드라마에서처럼 팝콘 상자 안으로 여자 친구랑 내 손이..

 

동시에 들어간 거예요,

 

그랬더니 엉큼하다는 둥, 늑대라는 둥..별의별 얘기를 다하면서

 

영화보고 나와서 한 시간은 흘겨보더라구요.

 

 

그 수많은 모함과 구박을 인내하고..차지한 여자 친군데,

 

내가 이렇게 쉽게 풀어지면 안 되죠.

 

다시 나사 한 번 나사를 꽉 조이고..처음 그 마음으로 돌아가야겠습니다.

 

그나저나 점심 약속은 어떻하죠..?

 

엄마랑 같이 나갈까요? 그러면 화는 못 낼 거 아니예요?

 

여자친구..화나면 진짜 너무 무섭거든요.

 

 

사랑이...사랑에게 말합니다.

 

그 사랑 오래 갈 거라고,

 

처음을 기억하려 애쓰는 사랑이니 오래 지켜질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