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Un Secret) / 필립 그렝베르

이창섭2008.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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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전, 이 책의 남아있던 절반을 읽고 나서

시계를 보고 황망히 잠자리에 들었지만 한참 생각에 빠졌다.

도라지끓인 물을 마셨을 때처럼

마실 때는 괜찮다가

마시고 나면 목젖에 칼칼한 기운이 남아

입 안을 저리게 하는 그 무엇을 이 책 또한 주었던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유태인 학살이라는 역사의 큰 줄기를 더듬으면서

그와 결부된 주인공의 가족사는 결코 무겁지 않고 다소 덤덤하게,

그리고 서서히 밝혀지고 재구성된다.

소설을 쓰는데 걸린 시간은 두 달 뿐이었지만

뼈만 추려내는데 일 년이었다는 작가의 말을 깊이 이해한다.

본인의 체험을 바탕에 둔 어두운 이야기를,

기구한 신세 한탄으로 들리지 않게 하기 위해,

작가는 이야기의 살 외에도 때로는 뼈도 깎아내야했을 것이다.

제3자가 쓴 이야기보다 더 간결하고 담백하게 쓰인 이 소설은,

작가의 의도대로 읽는 이로 하여금

이미 많은 유사 체험에 가졌던

연민이나 동정에 섞이지 않게 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사실은 우리 또한 전후 세대니까.(직후 세대는 아니지만)

 

문체, 줄거리, 감수성 등이 완벽하게 조화되었다던

리뷰는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

그리고 다음 책으로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정말 괜찮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