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그송 철학의 긍정적 가치

강경국2008.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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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점에서 다윈시대에 대한 베르그송의 관계는 볼테르에 대한 칸트의 관계와 똑같다. 칸트는 베이컨과 데카르트와 같이 시작하여 디드로와 흄의 회의론이 종국에 이른 비종교적인,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무신론적인 주지주의의 큰 물결을 밀어내려고 노력하였다. 그리고 그 노력은 선험적 제문제의 영역에 있어서는 지성은 궁극적인 것이 아니라고 하는 방향을 택했다.

 

그런데 다윈은 무의식적으로, 스펜서는 의식적으로, 볼테르 이상으로 볼테르적인 그의 추종자들이 고래의 신앙에 퍼부었던 공격을 새로이 반복하여 칸트나 쇼펜하우어 이전에 그 기반을 상실하고 있던 기계적 유물론이 현세기 초엽에 그 옛날의 세력을 회복하였던 것이다.    

 

베르그송은 그것을 공격하였다. 그것도 칸트식으로 인식비판이나 물질은 마음을 통해서만 알려진다는 관념론적인 주장에 의해서가 아니라 쇼펜하우어의 규범에 따라 주관적 세계는 물론이요 객관적 세계속에서도 활동원리, 생명의 불가사의와 영묘를 보다 좋게 이해시키는 능동적인 엔텔러키를 구하는 것으로 공격하였다. 아직까지 생기설이 이와같이 힘차게 주장된 일은 없었으며, 이만큼 매력있는 옷을 입혔던 일도 없었다.

 

베르그송은 인간의 가슴속에 영원히 솟아나오는 희망을 변호하였다. 사람들이 철학에 대한 존경을 상실함이 없이 불사와 신성을 믿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하였다.

 

철학의 대한 현대의 공헌 중에서 베르그송의 공헌은 가장 귀중한 것이다. 그는 사물의 우연성은 포착하기 힘들며, 정신에는 물질을 다시 만들어내는 능동성이 있음을 역설하였는데, 우리들은 그러한 주장을 필요로 하였던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세계를 미리 순서가 정해진 쇼라고 간주하고, 거기에서 우리들의 창의란 자기기만이며, 우리들의 노력이란 신들의 짓궂은 장난이라고 생각할 무렵이었던 것이다.

 

베르그송 이후, 우리들은 세계를 우리들 자신의 창조력 무대이며 재료라고 보게 되었다. 베르그송이 나오기 전에는 우리들은 거대한 죽은 기계의 톱니바퀴나 차륜이었지만 지금은 - 만약 우리들이 원한다면- 창조의 드라마 속에서 자기가 자기의 역할을 써넣을 수가 있는 것이다.

 

 

- '철학이야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