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이라고 하는 사람에게 제일 좋은 방법은 이북에 보내는 것이다.” 김영삼이라고 하는 사람의 말이다. 일요판 인터뷰에서 그는 강조했다. “이북에 가서 살도록 하는 게 최선”이라고.
김대중을 이북에 가서 살도록 하라?
그렇다. 그게 김영삼의 실체다. 한때는 ‘민주인사’로 불렸던 그는 대통령 취임사(1993년)에서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나을 수 없다’고 한 자신의 발언을 실수라고 ‘해명’했다. 김영삼의 흰소리는 예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외환위기에 책임을 지라면 김대중이 최소한 60%는 져야 한다”고 부르댔다. 그가 얼마나 황당한 사람인가를 스스로 폭로한 셈이다.
전직 대통령까지 칼럼에 들먹일 여유는 없다. 아무 권력도 없는 자연인 김영삼에 대해 쓸 만큼 이 나라가 한가하지 않아서다. 문제는 그의 흰소리를 꼭 빼어 닮은 사람이다. 누구일까?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를 보라. 그는 개성공단이 파탄으로 치닫는데도 언죽번죽 말했다. “우리 쪽에도 그 정도 공단은 수백 개가 있다.” 이어 반문했다. “그거 하나가 우리 경제에 무슨 큰 악영향을 미치겠느냐?”
개성공단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다?
그는 민주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3당 대표가 공동으로 대북정책 수정을 요구하자 살천스레 주장했다. “종북주의적 태도”와 그에 대한 맹신을 경계해야 한단다. 잘못된 정책 비판과 종북주의가 대체 무슨 관계란 말인가. 전형적인 ‘국가보안법 발상’이다. 그의 흰소리 뒤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있다. 가 모르쇠하고 있지만, 가 보도한 대통령 발언은 놀랍다. 미국이 북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한 게 ‘북쪽 위협에 굴복한 잘못된 대응’이라는 대통령, 북이 자신을 욕하는 데 왜 가만히 있느냐고 힐난하는 대통령을 보라. 그 아래서 한자리씩 차지한 사람들이 무엇을 하겠는가.
그렇다. 흰소리군 김영삼과 이명박 대통령은 어금버금하다. 책임 전가도 그렇다. 1997년 구제금융 사태를 부른 큰 원인 가운데 하나가 김영삼의 무분별한 ‘금융개방’임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책임의 60%를 당시 야당 대표에게 돌리는 김영삼을 보라.
남북관계 파탄 책임전가와 경제 위기
오늘 남북관계의 파탄이 남북공동선언까지 부정하는 이명박 정권에 있음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대통령과 집권당 대표는, 수구신문들은 남북관계 파탄마저 북의 책임이라고 되술래잡는다. 대북 ‘삐라살포’도 정부가 단속할만한 법적 근거가 없단다. 대체 저들은 국민을 무엇으로 알기에 저런 언구럭을 서슴지 않는 걸까. 공통점은 더 있다. 김영삼은 임기 내내 ‘선진국’을 노래했다. 금융을 개방했다. 그 결과는 구제금융과 대량 실직사태다. 지금도 선진국 타령인 이명박 정권의 ‘금융선진화’ 부르대기는 그 닮은꼴이다.
기어이 마지막까지 닮고 싶은 걸까. 아니다. 그럴 수는 없다. 그가 실패한 대통령이 되는 것은 자유이지만, 그로 빚어지는 국민 대다수의 고통은 결코 그의 자유일수 없기 때문이다.
김영삼과 이명박의 공통점
김영삼이라고 하는 사람의 말이다. 일요판 인터뷰에서 그는 강조했다. “이북에 가서 살도록 하는 게 최선”이라고.
김대중을 이북에 가서 살도록 하라?
그렇다. 그게 김영삼의 실체다. 한때는 ‘민주인사’로 불렸던 그는 대통령 취임사(1993년)에서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나을 수 없다’고 한 자신의 발언을 실수라고 ‘해명’했다.
김영삼의 흰소리는 예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외환위기에 책임을 지라면 김대중이 최소한 60%는 져야 한다”고 부르댔다. 그가 얼마나 황당한 사람인가를 스스로 폭로한 셈이다.
전직 대통령까지 칼럼에 들먹일 여유는 없다. 아무 권력도 없는 자연인 김영삼에 대해 쓸 만큼 이 나라가 한가하지 않아서다.
문제는 그의 흰소리를 꼭 빼어 닮은 사람이다. 누구일까?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를 보라. 그는 개성공단이 파탄으로 치닫는데도 언죽번죽 말했다. “우리 쪽에도 그 정도 공단은 수백 개가 있다.” 이어 반문했다. “그거 하나가 우리 경제에 무슨 큰 악영향을 미치겠느냐?”
개성공단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다?
그는 민주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3당 대표가 공동으로 대북정책 수정을 요구하자 살천스레 주장했다. “종북주의적 태도”와 그에 대한 맹신을 경계해야 한단다. 잘못된 정책 비판과 종북주의가 대체 무슨 관계란 말인가. 전형적인 ‘국가보안법 발상’이다.
그의 흰소리 뒤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있다. 가 모르쇠하고 있지만, 가 보도한 대통령 발언은 놀랍다. 미국이 북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한 게 ‘북쪽 위협에 굴복한 잘못된 대응’이라는 대통령, 북이 자신을 욕하는 데 왜 가만히 있느냐고 힐난하는 대통령을 보라. 그 아래서 한자리씩 차지한 사람들이 무엇을 하겠는가.
그렇다. 흰소리군 김영삼과 이명박 대통령은 어금버금하다. 책임 전가도 그렇다. 1997년 구제금융 사태를 부른 큰 원인 가운데 하나가 김영삼의 무분별한 ‘금융개방’임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책임의 60%를 당시 야당 대표에게 돌리는 김영삼을 보라.
남북관계 파탄 책임전가와 경제 위기
오늘 남북관계의 파탄이 남북공동선언까지 부정하는 이명박 정권에 있음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대통령과 집권당 대표는, 수구신문들은 남북관계 파탄마저 북의 책임이라고 되술래잡는다. 대북 ‘삐라살포’도 정부가 단속할만한 법적 근거가 없단다. 대체 저들은 국민을 무엇으로 알기에 저런 언구럭을 서슴지 않는 걸까.
공통점은 더 있다. 김영삼은 임기 내내 ‘선진국’을 노래했다. 금융을 개방했다. 그 결과는 구제금융과 대량 실직사태다. 지금도 선진국 타령인 이명박 정권의 ‘금융선진화’ 부르대기는 그 닮은꼴이다.
기어이 마지막까지 닮고 싶은 걸까. 아니다. 그럴 수는 없다. 그가 실패한 대통령이 되는 것은 자유이지만, 그로 빚어지는 국민 대다수의 고통은 결코 그의 자유일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