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5월, '젝키'의 노란 풍선을 추억하다

심미화2008.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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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듣고 싶은 노래를 다운받을 수 있고, 심지어 카오디오에도 음악 파일이 들어 있는 USB를 꽂을 수 있는 시대입니다. '대중 음악'이라는 장르가 너무 쉽게 소비되고, 너무 쉽게 만들어지고 있는 요즘입니다.

그러나 가끔은 새로 나온 노래를 녹음하기 위해 하루 종일 라디오 앞에서 공테이프를 넣고 초조하게 기다리던 기억, 혹은 어렵게 산 테이프를 친구에게 빌려 줬다가 테이프가 늘어나 우울해 하던 시절이 그립진 않은가요?

<히트 앤드 런>에서는 서랍 구석에 넣어 두었던 먼지 쌓인 카세트 테이프를 꺼냅니다. 이제는 그 테이프를 들을 수 있는 카세트조차 없지만, 추억 속 테이프들을 다시 보며 잠시 옛 추억에 빠져 보는 건 어떨까요?

2000년 5월, '젝키'의 노란 풍선을 추억하다

98년 여름, 건장한 청년 6명이 태안 만리포로 여행을 떠났다. 10대 후반부터 갓 스무 살이 된 파릇한 청년들이었다.

남자 여섯이 모이니 꽤나 우울했다. 뭐라도 해보잔 마음에 서로 별명을 지었다. 남자 6명, 고민할 필요도 없다. 남자 6명의 아이콘은 두 말할 것 없이 '젝스키스'다.

나는 당시 리더 격이라 '은지운'을 맡았다. 키가 큰 친구는 '고지옹'을, 사투리를 쓰는 친구는 '김재덜'을 맡았다. 또한 과묵한 친구는 '이좌진'을 맡았고, '장수월'을 맡은 친구는 경기도 수원에서 온 친구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히트앤드런>의 운영자 '양군'은 5대5 가르마의 더블커트 머리란 이유로 '강성흔'을 맡았다.

서로 역할이 정해지니 여행이 즐거워졌다. 축구를 할 때 팀을 어떻게 나눌 지 고민하지 않아도 됐다. 화이트 키스인 강성흔-고지옹-장수월이 한 팀이 됐고, 블랙 키스인 은지운-이좌진-이재덜이 한 팀이 됐다. 밥 당번도 화이트와 블랙이 번갈아가면서 맡았다.

남자 여섯 명이 모이면 무조건 '젝스키스'라 우겼다. 서로 '은지원을 맡겠다', '강성훈을 맡겠다' 시비도 붙었다. 당시 10대들에겐 HOT가 최고의 아이돌이었을지 모르겠지만, 10대 남학생들, 특히 내 주변 남자 녀석들에게 '젝키'는 HOT를 뛰어넘는 아이돌이었다.

'젝스키스'에겐 '남심(男心)'을 흔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HOT보다 젝키가 좋은 세 가지 이유

1997년 '여섯 개의 수정' 젝스키스'가 혜성같이 데뷔했다. 이미 96년 HOT가 데뷔를 한 상태였다. 당시 "HOT를 '핫'으로 읽으면 구세대, '에이치오티'로 읽으면 신세대"란 말이 전국적으로 퍼질 정도였다. 그만큼 HOT는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DJ 덕'도 이때 즈음해서 'DJ 디오씨'가 되지 않았나 싶다)

HOT가 이미 가요계를 평정한 상태에서 등장한 젝스키스였다. 모두들 그저 'HOT의 아류'로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을 뒤엎고 1집에서만 모두 5곡의 노래를 히트하며 HOT의 인기를 위협하는 존재가 되었다.

지금은 동방신기도 좋아했다가, 슈주도 좋아하곤 하지만, 이땐 달랐다. 'HOT는 끝까지 HOT', '젝키는 끝까지 젝키'였다.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정도라 생각하면 되겠다. 그만큼 젝키는 많은 팬을 거느리게 됐다.

젝스키스에겐 HOT와 다른 뭔가가 있었다. HOT와의 차별화, 이것은 바로 '젝키의 매력'이 된다.


① 무서운 이미지 vs 친근한 이미지

HOT는 무서웠다. '학원 폭력'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담은 노래 <전사의 후예>를 부르는 이들을 보면, 이게 학원 폭력을 막으려는 건지 조장하는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시종일관 인상을 쓰며 겁을 줬다.

"아! 니가니가 뭔데!"하며 마구 때릴 것 같았다. 앨범 겉면에 웅크려 앉아있는 녀석을 보며 'HOT에게 다굴 당한 놈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장우혁, 강타는 얼굴만 봐도 절대 맞고 다닐 사람이 아니다. 이름까지 '강타'다. 물론 <캔디>를 통해 친근하고 귀여운 이미지로 변신했지만, 첫인상이 참 오래가더라.

이에 비해 젝스키스는 처음부터 친근한 이미지로 다가 왔다. 강성훈은 "아리아리요 쓰리쓰리쓰리예~"하며 살짝 쪼갰다. <학원별곡>의 첫머리다. 당시 트렌드에 맞게 사회문제를 들고 나왔다. 그래도 심각하지 않았다.

"만일 영어시험에서 백점 맞는다고 america man과 말이 통하나" 등 재밌는 가사로 꼬집었다. HOT처럼 심각하거나 인상 쓰지도 않았다. 이렇게 젝스키스는 친근한 이미지로 다가왔다.

② 듣기 편한 가사 vs 듣기 불편한 가사

"어제 학교에는 갔다 왔~느아~, 아무 일도 없이 왔~ 느아~"
"넌 말이요 널 말이요 잊어버릴 수 없으리요 왜 살리요!"

노래방에서 <전사의 후예>를 부르면 입에 착착 감기는 게 느껴진다. 그만큼 잘 만든 노래다. 근데 가사가 참 듣기 불편하다. 분명히 맞은 학생이 주인공이 되는 1인칭 주인공 시점의 노래다. 근데, 이게 맞은 녀석의 말투인가. 그리고 마지막이 참 쓸쓸하다

"이제 나는 너로 인해 모든 것을 포기한다! … 이제 내가 나를 벌하겠어 겠어 겠어~"

<오늘도 짜증나는 날이네>도 노래는 좋은데 가사가 좀 그렇다. "시끄러운 차소리가 아침에 날 깨웠지, 라면먹고 잤더니 얼굴이 퉁퉁 부어…" 상상할수록 짜증이 밀려온다.  

"아리아리아리 공부 고개를 오늘도 넘어간다
음악 미술은 저리 미뤄두고
국영수를 우선으로 해야
아리 아리아리 인정받고 일류대학으로 간다"

민요의 요소를 더한 젝키의 <학원별곡>이다. 이 얼마나 경쾌한가. 젝키 노래의 가사는 하나 같이 위트와 재미를 더했다. "기가 막혀 홧김에 군대 갈까 했지만 머리 빡빡 깎기 싫어서 다시 생각 고쳤"단다. 정말 기가 막힌 가사다.

"열받아 너의 집에 전화해봤어 할아버지 다짜고짜 하신 말씀 배신감?
그래서 한가지 더 알게 되었지 너에게 생긴 그 남자성이 배씨라는 걸"

당시 한 물 간 '덩달이 시리즈'를 부활시킨 <배신감>도 듣는 이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짓게 했다. 착착 감기는 가사, 젝키 노래의 강점 중 하나다.

2000년 5월, '젝키'의 노란 풍선을 추억하다 

위가 랩과 안무를 맡았던 블랙 키스, 아래가 보컬을 맡았던 화이트 키스다.

③ 젝키 무대서만 볼 수 있는 '추임새'-'떼창'-'파트 바꿔 부르기'

"나 폼에 살고" 하면 블랙키스가 뛰어오르고 "죽고"하면 화이트키스가 뛰어오른다. 여기서 젝키의 '떼창'이 빛을 발한다.

"아~ 라이즈 업! 두 낫 메스 어라운더 탐이접!~ 후캔 메스 위드 씩스!"로 시작하는 <학원별곡>도 '떼창'의 절정을 보여준다.

젝키가 처음 팬들에게 자신의 이미지를 각인 시켜준 것이 바로 이 '떼창'이다. 여섯 명이 동시에 부르기에 그 파워는 엄청났다. 이런 파워는 무대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그리고 중간 중간 적절하게 터지는 추임새. 영어 랩에 능통한 은지원은 가사집에서 절대 볼 수 없는 영어 랩으로 듣는 이에게 즐거움을 줬다. <폼생폼사>에서도 그랬고, 이후, <기사도>, <무모한 사랑>에서도 적절한 추임새로 노래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파트 바꿔 부르기'도 젝키의 전매특허였다. 특히 2집 <기사도>에서 파트 바꿔 부르기의 진수를 보여줬고, 가끔은 이런 의욕이 경미한 방송사고로 이어지기도 했다.

90년대 말 대부분 대부분 댄스가수들은 '립싱크'를 선호했다. 이후 립싱크는 큰 문제가 되어 방송 중 립싱크를 하면 테이프가 돌아가는 굴욕적인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그러나 젝키의 무대에서 '테이프 돌아가는 모습'은 찾기가 힘들었다. 그야말로 라이브에 능한 가수였기 때문이다.

강성훈을 제외하면 그렇게 가창력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장수원은 저음을 부를 때도 목소리가 떨렸고, 고음부를 주로 맡은 고지용은 '원더걸스'의 예은이 <텔미>에서 "말해 줘여어어~" 부분 부르는 것만큼이나 불안했다. 그래도 끝까지 라이브를 고수했다.

그리고 젝키가 보여주는 라이브는 '그때 그때 달라요'였다. 과연 이번 '인기가요베스트50'에선 뭘 보여줄까? 'TV가요20'에선 무슨 랩을 할까? 하는 행복한 마음으로 젝키를 기다렸다.

항상 기다려지는 젝키의 무대, 젝키가 매력적인 가장 큰 이유였다.

'남심(男心)' 잡은 젝키의 은밀한 매력
2000년 5월, '젝키'의 노란 풍선을 추억하다 

낡은 서랍에서 꺼낸 낡은 젝키 1집 테이프.

97년 IMF 시대가 도래 했다. 직장 잘 다니시던 아버지들이 줄줄이 회사에서 잘리셨다. 학원비는커녕 문제집 살 돈도 달라고 하기 미안한 시기였다. 당시 학생들은 그렇게 IMF의 고충을 함께 겪었다.

"사나이 가는 길에 기죽지 마라 없어도 자존심만 지키며 눈물 따윈 내게 없을 꺼야"

축 처진 국민들에게 젝키는 "기죽지 말라"며 희망을 줬다. 특히 남학생들에게 말이다. 당시 남학생들은 가요 시장에서 철저히 배척됐다. 'R.ef', '클론' 등 잘나가는 가수들이 대부분 남자였고, 활동을 하던 여성 가수는 '쿨'의 유리, '영턱스 클럽'의 임성은, 송진아 정도였다. 여성 그룹 '수'나 '비비'는 학생들이 좋아하기엔 약간 부담됐다. 나중에 국군 장병이 되면 모를까.

HOT의 등장 이후 가요계의 남학생 배재 현상은 더 심해졌다. 그때를 생각하면 '원더걸스'와 '소녀시대'가 활발히 활동하는 지금의 중고등학생들이 매우 부러울 따름이다. 물론 나중에 SES와 핑클이 이런 틈새시장에 진출해 남학생들에게 한 가닥 희망을 줬지만 말이다.

이런 소외된 남학생들이 '젝키'에게 끌리기 시작했다. 젝키에게 끌린 이유는 간단하다. 당시 최고의 인기를 끌었던 농구만화 <슬램덩크>를 생각해보자. 강백호, 서태웅, 윤대협 등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대거 등장했지만 대부분 남학생들이 최고로 삼는 캐릭터는 '불꽃남자' 정대만 이었다.

젝키는 "머리 깎기 싫어서 군대를 안가겠다"고 했다. 또한 "사나이 가는 길에 기죽지 마라"고도 했다. 무대에서 보여주는 강인한 모습, 특히 '떼창'에 남학생들은 매료되기 시작했다.

이재진이 <학원별곡>에서 보여줬던 '백 다운' 댄스도 남학생들을 열광시켰다. 뒷목 잡고 그대로 넘어지는 것이다. 그야말로 센세이션이었다.

그 옛날, 청춘스타 이종원이 리복 CF에서 '의자 밝고 넘어뜨리기'를 선보인 적이 있다. 너도나도 그걸 연습하느라, 집안의 의자가 남아나질 않았다. 물론 다리나 허리를 다치는 건 예삿일이고.

'백 다운' 댄스는 이종원 리복 CF 이후 최고의 퍼포먼스였다. '백 다운' 댄스를 서로 해보려고 연습했다. 물론 뒤에 푹신한 이불은 깔고 말이다.

젝키는 그렇게 '남심(男心)'을 흔들었다. 나도 물론 열심히 하이텔 젝키 팬클럽 '젝키 팡팡(go sg707)'에 들르게 됐다.

2000년 5월, 노란 풍선을 기억한다

젝키 1집이 나온 지 이제 11년이나 됐다. "머리 빡빡 깎기 싫어서" 군대에 안 가려 했던 '카리스마 은각하' 은지원은 머리 빡빡 깎고 '은초딩'이 됐다.

그러나 젝키는 언제나 우리들 마음속에 살아있다. 노래방에 가면 항상 젝키 노래를 부르고, 남자 여섯이 모이면 여전히 "내가 강성훈!" "난 장수원!"하며 '젝키 놀이'를 하고 있다.

2000년 5월의 노란 풍선을 기억한다. 드림콘서트 무대, 젝키의 마지막 무대였다. 팬들은 노란풍선을 흔들며, 마지막 젝키의 무대를 묵묵히 지켜봤다.

4년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던 젝키. 그들에 대한 추억과 그들의 노래가 남아있는 한, 팬들은 마음속에서 여전히 노란 풍선을 흔들고 있을 것이다. 영원히….
2000년 5월, '젝키'의 노란 풍선을 추억하다

2000년 5월, 노란 풍선의 물결. (크레딧: 깜찌기훈 님)

 

출처 :

"내 낡은 서랍 속의 테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