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의 부분 가운데 어느 곳이 가장 중요한가? 이 물음에 대해 망설임 없이 대답할 사람은 얼마나 될까. 손. 다리. 또는 머리? 모든 신체기관은 나름대로의 중요한 역할을 하기에 그 중요성을 따지긴 분명히 쉽지 않다. 그렇다면, 신체의 부분 가운데 잃게 된다면 가장 절망적인 부분은 어디일까? 바로 눈이 아닐까? 내일 아침 깨어남과 동시에 내 눈앞의 세상이 희뿌옇게 보인다면 과연 삶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 세상 사람들의 실명 그리고 그 모든 사람들 가운데 유일하게 눈을 잃지 않은 한 여자. 이 영화는 그러한 상황에서 점차 본능에 가깝게 변해가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나만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들의 눈이 멀었다. 그렇다면 생존 이외의 문제들에 대해선 어쩔 수 없이 무감각해질 수 밖에 없게 된다. 내가 옷을 입고 치장을 하는 것들도 혹은 소변과 대변을 가려가며 특정 공간에서만 해결하는 것도 깨끗함과 청결함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이 모든 것은 결국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라는 것과 넓게는 사회적 관습과 결부되어 있는 것들이니까. 하지만 세상 모든 사람들이 실명한 그 세계에서는 이러한 모든 관습도 구차해지고 무색해지고 오히려 거추장스러워진다. 즉, 필요없어진다. 사람들은 본능에 가까워지고 눈 뜬 한 사람의 눈으로도 보기 잔혹할 정도의 짐승과 같은 면모까지 유감없이 드러내게 된다. 그러나 '총'이라는 무력은 실명한 이들에게도 두려운 것이다. 이는 짐승도 죽고 싶지는 않을 것이라는 논리와 동일하다. 누구든 자신이 죽음의 순간에 가깝다는 이른바 "생존본능"의 앞에선 나약해질 수밖에 없으니까. 무력을 행사하는 이들은 무력으로 사람들을 진압함과 동시에 배급되는 식료에 대해 모든 권리를 갖고자 하고 그들이 원하는 값비싼 금붙이 등을 요구한다. 세상에 휘몰아치는 실명 바이러스 때문이 아니라 태어난 그 순간부터 시각장애인이었던 한 남자의 유입은 그들의 무자비한 집권에 활력을 불어 넣는다. 보이지 않는 자로서의 평생을 살아온 그와 보이지 않는 자들 가운데 유일하게 보이는 그녀 사이에서 팽팽하게 감도는 긴장감은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사람들을 붙잡는다. 값비싼 금붙이 이상으로도 채울 수 없는 본능 그리고 그들은 여자를 원한다고 외친다. 식료품을 얻기 위해선 여자를 바쳐라. 사람의 가장 동물적이고도 드러내고 싶지 않는 본능 바로 성적인 본능... 그들은 자신들의 무력으로 그러한 부분까지 소유하려 한다. 이 장면에서 대부분의 관객들은 혀를 내두르다 못해 눈을 질끔 감아 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인간이 지닌 그 모습은 피하고 싶은 진실이면서 잔혹한 진실이기도 하기에 보이지 않는 그들에겐 차라리 아무렇지 않을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눈살을 찌푸릴 일 따위도 없는 것을 알기에. 도덕이 아니라, 생존과 지금 당장의 급한 욕구를 충족하는 게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이 본래 인간들의 평범한 모습이라곤 누구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에 가장 괴롭고 힘든 것은 이 모든 상황을 볼 수 있는 그녀이며 관객들이다. 그녀는 무력으로 사람들을 진압하는 그들에 대해 저항하고 사람들을 이끌고 도시로 나간다. 그리고 자신의 집으로 사람들을 인도하고 진정하게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하려 한다. 눈이 보인다면. 그리고 그 시선으로 사람답게 살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얼마나 값진 것인지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보이는 것을 당연히 여겼는지 참으로 어쩌면 너무나 식상하게 보이며 아는 진실에 대해 그래도 스릴있는 상황의 설정을 통해 깊이 들여다 볼 수 있게 했던 영화였다. 원작은 읽어보진 못했지만 그 내용을 궁금해지게 한. 또한 영화표가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던.
눈먼 자들의 도시
신체의 부분 가운데 어느 곳이 가장 중요한가?
이 물음에 대해 망설임 없이 대답할 사람은 얼마나 될까.
손. 다리. 또는 머리?
모든 신체기관은 나름대로의 중요한 역할을 하기에
그 중요성을 따지긴 분명히 쉽지 않다.
그렇다면,
신체의 부분 가운데 잃게 된다면 가장 절망적인 부분은 어디일까?
바로
눈이 아닐까?
내일 아침 깨어남과 동시에 내 눈앞의 세상이 희뿌옇게 보인다면
과연 삶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
세상 사람들의 실명
그리고 그 모든 사람들 가운데 유일하게 눈을 잃지 않은 한 여자.
이 영화는 그러한 상황에서
점차 본능에 가깝게 변해가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나만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들의 눈이 멀었다.
그렇다면 생존 이외의 문제들에 대해선
어쩔 수 없이 무감각해질 수 밖에 없게 된다.
내가 옷을 입고 치장을 하는 것들도
혹은 소변과 대변을 가려가며 특정 공간에서만 해결하는 것도
깨끗함과 청결함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이 모든 것은 결국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라는 것과
넓게는
사회적 관습과 결부되어 있는 것들이니까.
하지만
세상 모든 사람들이 실명한 그 세계에서는
이러한 모든 관습도
구차해지고 무색해지고 오히려 거추장스러워진다.
즉, 필요없어진다.
사람들은 본능에 가까워지고
눈 뜬 한 사람의 눈으로도 보기 잔혹할 정도의
짐승과 같은 면모까지 유감없이 드러내게 된다.
그러나
'총'이라는 무력은
실명한 이들에게도 두려운 것이다.
이는 짐승도 죽고 싶지는 않을 것이라는 논리와 동일하다.
누구든 자신이 죽음의 순간에 가깝다는
이른바 "생존본능"의 앞에선 나약해질 수밖에 없으니까.
무력을 행사하는 이들은
무력으로 사람들을 진압함과 동시에
배급되는 식료에 대해 모든 권리를 갖고자 하고
그들이 원하는 값비싼 금붙이 등을 요구한다.
세상에 휘몰아치는 실명 바이러스 때문이 아니라
태어난 그 순간부터 시각장애인이었던 한 남자의 유입은
그들의 무자비한 집권에 활력을 불어 넣는다.
보이지 않는 자로서의 평생을 살아온 그와
보이지 않는 자들 가운데 유일하게 보이는 그녀 사이에서
팽팽하게 감도는 긴장감은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사람들을 붙잡는다.
값비싼 금붙이 이상으로도 채울 수 없는 본능
그리고 그들은
여자를 원한다고 외친다.
식료품을 얻기 위해선 여자를 바쳐라.
사람의 가장 동물적이고도 드러내고 싶지 않는 본능
바로 성적인 본능...
그들은 자신들의 무력으로 그러한 부분까지 소유하려 한다.
이 장면에서
대부분의 관객들은 혀를 내두르다 못해
눈을 질끔 감아 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인간이 지닌 그 모습은 피하고 싶은 진실이면서
잔혹한 진실이기도 하기에
보이지 않는 그들에겐 차라리 아무렇지 않을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눈살을 찌푸릴 일 따위도 없는 것을 알기에.
도덕이 아니라,
생존과 지금 당장의 급한 욕구를 충족하는 게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이 본래 인간들의 평범한 모습이라곤
누구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에 가장 괴롭고 힘든 것은
이 모든 상황을 볼 수 있는 그녀이며 관객들이다.
그녀는 무력으로 사람들을 진압하는 그들에 대해 저항하고
사람들을 이끌고 도시로 나간다.
그리고 자신의 집으로 사람들을 인도하고
진정하게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하려 한다.
눈이 보인다면.
그리고 그 시선으로
사람답게 살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얼마나 값진 것인지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보이는 것을 당연히 여겼는지
참으로 어쩌면 너무나 식상하게 보이며 아는 진실에 대해
그래도 스릴있는 상황의 설정을 통해
깊이 들여다 볼 수 있게 했던 영화였다.
원작은 읽어보진 못했지만 그 내용을 궁금해지게 한.
또한
영화표가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