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래기 / 도종환

미소지안치과2008.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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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래기 / 도종환

저것은 맨 처음 어둔 땅을

뚫고 나온 잎들이다
아직 씨앗인 몸을 푸른 싹으로

바꾼 것도 저들이고
가장 바깥에 서서

흙먼지 폭우를 견디며
몸을 열배 스무배로

키운것도 저들이다
더 깨끗하고 고운 잎을만들고

지키기 위해
가장 오래 세찬 바람 맞으며
하루하루 낡아 간 것도 저들이고
마침내 사람들이

고갱이만을 택하고 난뒤
제일 먼저 버림받은 것도 저들이다
그나마 오래오래

푸르른 날들을 지켜온
저들을 기억하는 손에 의해
거두어져 겨울을 나다가
사람들의 까다로운 입맛도 바닥나고
취향도 곤궁해졌을 때
잠시 옛낫을 기억하게할 짧은 허기를
메꾸기 위해 서리에 젖고
눈 맞아 가며 견디고 있는

마지막 저헌신

우리 주위에 시래기가 되어
생의 겨울을 나고있는 것들은

얼마나 많은가.



수확기가 끝나면 찬서리가 내립니다
거둬들이는 기쁨과

풍년의 넉넉함속에
겨울채비가 분주합니다

잎이 거의 다 떨어진 감나무엔

빨갛게 익은감 홍시가 날아가는

겨울철새를 유혹하는듯
황량함의 계절이네요
콘크리트 담자락에 몇가닥 걸쳐둔
무우 시래기가 눈에 들어옵니다

속이 찬 무우 배추 수확하면
땅속에 묻어두고 겨울내내

먹거리가 되었고
무우 청 잘라 줄줄이

엮어 달아둔 풍경은

오래된 추억속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배고픈 시절의 아껴야하는 습성이

몸에배인우리 세대분들은
무우 시래기 맛을 잊지못하고
몇가닥이라도 말려두어야

요긴하게 쓰일곳이
겨울동안에 있음을 압니다

갖가지 세련된 모습의 음식들이

흔한고넘쳐나는 현실에
시래기 삶아 동그랗게 말아둔

바구니를 보면
군침을 돌게하고 시래기의
구수한 맛을 떠올립니다

그때는 겨울동안 가장 흔하게 

거의매일 먹으며 살았지만

먹기싫다란 생각보다
꼭 먹어야만 했던시절의
주린배 채워주던 일둥공신
고마운 존재가 시래기 였으니까요

앙상한 감나무에 까치가 날고

이가지 저가지 아무렇게나

걸쳐진 시래기 모습이
아름다웠던 기억이 새록합니다
흙담 벼락에 빼곡히 걸어둔 시래기는
봄이오는 길목에서

사라지던 때가 있었지요

파아란 몇가닥의 시래기가
딱딱한 콘크리트 담벼락에

걸쳐진 모습마져
옛 기억속으로 달려가 볼수 있어
그때를 마음속에 재현해 불수있어
포근하고 흐믓한 아침을 맞이합니다

♬사랑노래모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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