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역사의 도시 로마

강영국2008.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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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 로마노(Foro Romano)

 

지금은 흩어진 돌덩이와 기둥 몇 개만 남은 폐허로 보이지만 이곳은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와 같이 고대 로마의 시민 생활 중심지였다. 팔라티노와 깜삐똘리노 언덕 사이의 낮은 지대에 위치해 각 언덕에 모여 살던 사람들의 자연스런 교류장소가 되어 급속히 발전하였다. 기원전 1세기 시저와 아우구스투스가 그 기초를 닦은 후 공화정 시대에 웅장한 공회당과 여러 신전, 원로원, 상점이 들어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또한 주변의 목욕탕, 체육시설, 도서관, 시장등과 함께 로마에서 가장 활발한 지역이었다. 그러나 제정 시대가 되어 공회당의 기능이 쇠퇴하면서 정치활동의 중심이 황제의 궁전이 있는 팔라티노 언덕으로 옮겨져 포로 로마노는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4세기까지 계속 건축이 이어지긴 했으나 로마가 몰락한 이후 일부 건물만 사용되고 나머지는 방치되어 훼손되다가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발굴되기 시작했다. 현재도 계속 발굴과 복원작업이 진행중이라고 한다..

 

난 참고로 여기 있을때 더워 죽는줄 알았다.ㅡㅡ;

빨리 이 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이 들지 않았다...

사우나 하는 기분이었다고 말해야하나...

 

 

 

 

 

 

 

 

 

 

콜로세움(Colosseo)

 

로마의 상징인 거대한 건축물 콜로세움은 서기 72년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짓기 시작해 80년 그의 아들 티투스 황제가 연 4만명의 인원을 투입시켜 완성시킨 원형 경기장 Flavia Amphithetre이다. 원래 이곳은 네로 황제의 궁전 도무스 아우레아에서 내려다 보이는 인공 연못이었는데 그 곳에 흙을 채워 경기장을 건설한 것이다. 2000년 세월동안 지진과 전쟁을 많이 겪었지만 아직도 거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데서 고대 로마의 뛰어난 건축 기술을 짐작해 볼 수가 있다. 이 곳에서는 전쟁 포로중 선발된 글라디에이터Gladiator(검투사)와 맹수가 서로 죽고 죽이는 잔인한 전투경기가 벌어졌고 황제를 비롯한 로마 사람들은 그것을 보며 즐겼다고 한다. 이것은 오늘날의 프로 스포츠와 같이 당시 대단한 인기를 누렸으며 405년 오노리우스 황제에 의해 중단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건설 초기에는 여기에 물을 채워 ' 나우마키아'라는 모의 해전을 공연하기도 했는데 방수작업을 하고 물을 채우고 다시 물을 빼고 건조시키는 과정이 너무 복잡하여 후에 모의 해전 전용 공연장을 다른 곳에 짓게 되었다고 한다.

콜로세움이라는 이름은 라틴어로 Colossus, 즉 '거대하다'는 뜻이며 이 경기장 바로 옆에 콜로세오 Colosseo라고 하는 네로 황제의 거대한 동상이 있었다는 것에 유래한다고 한다. 약 5만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바깥둘레 572m, 높이 57m에 이른다. 외벽은 아치와 기둥으로 되어 있는데 1층부터 도리아식, 이오니아식, 코린트식의 각기 다른양식이 복합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층으로 들어가 보면 복잡하고 작은 방으로 되어 있는데 이곳은 맹수와 검투사를 수용하는 곳이었고 이 위를 나무판자로 덮고 모래르 깔아 넓은 경기장으로 사용하였다. 가장 위층에는 '베라리움'이라는 천막 지붕을 설치하여 관객들을 뜨거운 햇볕으로부터 보호하였다고 한다. 원래는 가장 바깥쪽 벽도 완전한 타원형이었으나 지진에 의해 무너지고 떨어진 석재를 가져다가 교회를 짓는데 사용하기도 하면서 반쪽이 사라졌다. 바닥을 보면 흰색 돌로 가장 바깥쪽 벽의 윤곽을 표시해 주고 있다. 중세때는 요새로 사용되다가 19세기까지 방치되어 있었으나 이후 기독교의 순교 성지로 지정되어 교황의 명에 의해 복원, 보존되고 있다고 한다.

 

 

 

 

 

 

 

캄피돌리오 광장(Piazza del Campidoglio)

 

캄삐똘리노 광장으로 오르는 계단은 '꼬르도나타 Cordonata'라고 불리는 미켈란젤로의 작품이다. 광장 역시 1538년 미켈란젤로가 설계하였으며 이후 1세기만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광장 정면의 건물은 고대 로마의 폐허 위에 12세기경 세워진 세나토리오 궁

Palazzo Senatorio으로써 현재 로마 시장의 집무실과 시의회로 사용되고 있다. 오른쪽은 콘세르 바토리궁

Palazzo dei Conservatori이며 왼쪽은 누오보 궁Palazzo Nuovo인데 양쪽 모두 고대 로마의 유적들은 전시하고 있는 카피톨리노 박물관 Museo Capitolino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지하로 연결되어 있다.깜삐똘리노 광장과 비또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이 있어 예나 지금이나 로마 사람들의 정치적, 정신적 중심지가 되고 있다. 이곳은 로마가 쇠락하면서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폐허가 되었지만 미켈란젤로에 의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광장 중앙에 있는 것은 로마 황제이자 철학자인 아우렐리우스의 기마상으로서 원래 깜삐똘리노 박물관 안에 있었던 것을 옮겨온 것이라고 한다.

세나토리오 궁 오른편 뒤쪽으로 가면 포로 로마노가 한눈에 들어오는 광경이 펼쳐진다. 이 곳으로 가는 길 위에 걸려있는 두 건물을 잇는 다리는 베네치아의 탄식의 다리와 그 모양과 유래가 비슷하다고 한다..

 

 

 

 

 

 

 

나보나 광장(Piazza Navona)

 

이곳은 원래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서기 86년 만든 거대한 전차 경기장이었다. 콜로세움보다 더 크며 5만명을 수용할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 바로크 시대에 와서 뛰어난 건축가들에 의해 둘레의 건물과 가운데 분수가 들어서 긴 타워형의 경기장 형태를 그대로 유지한 채 아름다운 광장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광장의 북쪽에는 경기장의 문이었던 아치가 그대로 남아있다. 광장에는 세개의 분수가 있는데 제일 처음 보이는 것이 넵튠의 분수 Fontana di Nettuno로써 칼데라리 Calderari의 작품이다. 광장 중앙에 있는 것은 1651년 교황 이노센틔 10세의 명에 의해 베르니니가 만든4대 강의 분수 Fontana dei Quattro Fiumi이다. 각 대륙의 4대 강을 의인화한 작품으로 팔을 위로 쳐들고 있는 거이 라플라타 강, 그리고 갠지스강, 다뉴브강, 천으로 머리를 감싸고 있는 것이 나일강을 의미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일강은 그 근원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눈을 가렸다고 한다. 이 분수도 난파선의 분수, 뜨레비 분수와 같은 가장 오래된 수로를 사용한다고 한다. 강의 분수 맞은편에 종탑 두개가 높이 솟은 건물은 성녀 아그네스 성당 Sant' Agnese in Agone으로 그녀는 로마시대 이곳에 있던 경기장에서 알몸으로 많은 사람들 앞에 끌려나와 순교하였는데 그때 그녀의 머리카락이 갑자기 자라나 몸을 덮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1670년 지어졌으며 아름다운 전면은 베르니니의 라이벌이었던 보로미니 Boromini의 작품이다. 광장 남쪽에 있는 모로의 분수 Fontana del Moro 역시 베르니니의 작품이라고 한다.

 

 

 

 

 

 

 

 

 

 

 

 

 

빤떼온(Pantheon)

 

그리스어로 '모든 신들'이라는 뜻을 가진 빤떼온은 기워전 27년 아그리빠가 올림포스의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처음 세웠다. 서기 80년에 큰 불이 나 손상되었지만 125년에 하드리아누스 황제에 의해 재건되어 1900년의 세월이 무색하도록 잘 보존되어 있다. 지붕이 금으로 도금되어 있었지만 교황 우르바노 8세에 의해 없어졌다고 하며 청동으로 된 거대한 정문과 석조 돔은 지금의 모습이 처음 지었던 원형 그대로이다. 이 빤떼온은 단순해 보이지만 미켈란젤로도 격찬한 치밀한 설계로 이루어져 있다. 돔은 건물 전체 높이의 정확히 반을 차지하고 있으며 내부 원의 지름과 천정의 높이는 똑같이 42.3m로 균형을 이룬다. 기둥 없이 두께 6m의 벽체만으로 받쳐져 있고 무게를 줄이기 위해 위로 갈수록 벽의 두께가 얇아지고 있다. 돔 가운데 뚫린 9m의 둥근 창으로만 빛이 들어오며 실내를 은은하게 밝혀 신비한 느낌이 든다. 원래는 건물 내부의 공기흐름으로 인해 이 창으로 비가 들이치지 않았다고 하지만 지금은 비오는 날엔 관광객들이 비맞지 않게 바닥 가운데 부분을 막아놓을 뿐이다. 북쪽으로 향한 그리스식 입구는 4세기경에 증축되었으며 코린트 양식의 기둥으로 되어 있다. 터키 이스탄불의 아야소피아 박물관과 함께 석조 돔으로써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라파엘로가 죽기 전에 빤떼온에 붇히기를 간절히 워하여 그의 유해가 이곳에 안치되어 있고 이탈리아의 국부로 추앙받는 비또리오 에마누엘레 2세, 움베르토 1세 등도 여기에 묻혀있다고 한다.

 

 

 

 

 

 

 

천사의 성(Castel Santa Angelo)

 

원통형으로 생긴 이 건물은 원래 135년 하드리아누스가 황제의 묘로 사용하기 위해 지었다고 한다. 하지만 영묘로는 60년밖에 사용하지 못했다고 한다. 509년 당시 로마를 휩쓴 흑사병의 퇴치를 위한 기원 행진을 하던 중 가장 앞에 서 있던 교황 그레고리오 1세가 이 성 꼭대기에 대천사 미카엘이 나타나 칼을 칼집에 꽂는 환상을 목격하였다고 한다. 그 후 흑사병이 없어져 꼭대기에 대리석으로 천사의 상을 만들고 천사의 성이라 불리게 되었다. 1753년 천사의 상은 청동으로 바뀌었다. 중세때는 요새로 사용되었으며 교황의 피신처가 되기도 하였다. 한때 이곳은 감옥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는데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 중에서 주인공 카바라도시와 토스카가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 3막의 감옥무대가 바로 이곳라고 한다.

 

 

 

성 베드로 대성당(Basilica di San Pietro) & 성 베드로 광장(Piazza San Pietro)

 

기독교를 공인한 로마황제 콘스탄티누스는 326년 예수의 수제자이자 초대 교황이었던 성 베드로가 묻혀있는 이곳에 처음 성당을 세웠다. 그 후 1506년 교황 율리우스 2세때에 이르러 새로운 성당의 건축이 시작되었는데 120년의 세월동안 브라만테, 미켈란젤로 등 당대 최고 건축가들의 손을 거치면서 여러 번 설계가 변경 된 끝에 1626년 지금의 성 베드로 대성당이 완성되었다. 성당 자체는 십자가 모양을 하고 있으며 광장과 합해지면 열쇠모양이 된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베드로에게 부여한 천국문의 열쇠로써 카톨릭의 교권을 나타내고 있다. 이 열쇠 모양은 베드로의 상징이자 교황청의 상징으로 성당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성당을 정면에서 보면 다섯개의 문이 있다. 그 중 가장 오른쪽의 것이 '성스러운 문'으로써 대희년 25년마다 한번씩 열린다고 한다. 2000년 열렸었으므로 이 문은 2025년에야 다시 열릴 것이다.

 

성 베드로 광장은 1655년 베르니니의 설계에 의해 조성되었다. 광장을 둘러싼 회랑은 284개의 거대한 도리아식 워주와 88개의 각주가 있으며 그 위로는 142인의 성인상이 서 있다. 이 성인상들은 모두 서로 다른모습을 하고 있으며 베르니니의 제자들이 조각한 것이라 한다. 로마시대 이곳에는 칼리큘라 황제의 경기장이 있었다. 광장 중앙의 오벨리스크는 칼리큘라가 37년 이집트에서 가져와 자신의 경기장에 세운것이라고 한다. 그 후 이 경기장이 네로 경기장으로 바뀌었고 여기서 성 베드로가 십자가에 거꾸로 못박혀 순교하였다. 그리고 경기장 밖에 묻혀졌는데 성 베드로가 묻힌 그 곳에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처음 세운 성당이 오늘날의 성 베드로 대성당의 기원이 된 것이다. 오벨리스크와 양쪽 분수 사이엔 회랑의 4열 기둥이 모두 하나로 겹쳐 보이는 지점이 바당에 표시되어 있다. 광장은 30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이지만 행사가 열리는 날이면 이 넓은 곳에서 사람들이 꽉 차고 넘치기도 한다. 성 베드로 성당 오른쪽편 회랑 위로 솟은 건물에 교황 성하의 집무실이 있다고 한다.

 

 

 

 

 

 

 

 

 

 

 

 

 

 

 

스페인 광장(Piazza di Spagna)

 

계단 아래쪽 중앙에 있는 바로크 양식의 난파선의 분수 Fontana della Barcaccia는 숱하게 들어왔던 건축가 지안 로렌초 베르니니 G.L.Bernini의 아버지인 삐에뜨로 베르니니 P.Bernini가 제작한 것이다. 떼베레강에 홍수가 났을때 배가 이곳까지 떠내려와 좌초되었던 것에 착안해 물에 가라앉는 배 모양의 분수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곳은 뜨레비 분수와 같은 수로이지만 지대가 높아수압이 낮으므로 약한게 흐르는 물이 난파선이라는 분수의 모양과 잘 어울린다. 분수의 물은 위아래 두 군데로 나뉘어져 위쪽에서 흘러 나오는 물은 사람만이 마실 수 있고 아래쪽에 고인 물은 말이 먹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계단 위쪽의 삼위일체 Trinita dei Monti 성당은 프랑스의 수도회에 의해 세워졌으며 여기로 오르기 위해 프랑스 대사관의 도움을 받아 137개의 계단이 1725년에 만들어졌다. 그러나 광장에 스페인 대사관이 있었기 때문에 이름은 스페인광장과 계단이 되었다. 계단 오른쪽에 있는 분홍색 집은 영국의 시인 키츠가 1812년 죽기 전 몇 달 동안 살았던 곳으로 지금은 키츠와 셸리의 기념관으로 쓰이고 있다고 한다. 이 계단은 로마를 대표하는 볼거리 중 하나이자 젊은이들의 데이트 장소로 사랑받고 있으며 맑은 날 계단에 앉아 햇볓을 쬐기에도 좋은곳이다. 여름 밤에는 이 계단에서 유명 디자이너의 화려환 패션쇼가 열리기도 한다. 또한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햅번이 이곳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내려오는 장면으로 유명해졌다. 그러나 지금은 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아이스크림은 물론 어떤 음식도 계단에 앉아 먹을 수 없도록 통제하며 심지어 주위에 잘라떼리아도 별로 없다.

 

 

 

 

 

 

 

 

 

 

베네치아 광장(Piazza Venezia) & 비또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Vittoriano)

 

로마시내 주요 도로가 만나기 때문에 가장 차가 많고 복잡한 광장중의 하나이다. 이곳은 1870년 이탈리아 통일의 업적을 세운 비또리오 에마누엘레 2세를 기리기 위해 조성된 기념관과 광장이다. 기념관은 1885년부터 25년에 걸쳐 네오 클래식 양식으로 건축되었으며 계단 위 중앙에 그의 기마상이 높게 세워졌다. 정면은 조국의 계단 Altare della Patria이라 불리며 그위 무명용사의 무덤은 언제나 횃불이 켜져 있고 근위병들이 지키고 있다. 계단이 개방되어 있으면 기념관 위로 올라갈 수 있으며 이곳도 상당히 높아 로마 시내가 다 내려다 보인다. 바람이 시원하고 앉을곳이 마련되어 있어 로마 시내를 내려다보며 휴식하기에 좋은 곳이다. 여기서 화단이 조성되어 있는 베네치아 광장을 내려다 보자 광장의 양쪽에 있는 건물은 15세기경 축조되어 베네치아 공화국의 대사관으로 쓰이던 베네치아 궁전으로써 광장 오른쪽 건물의 정문 위에서 베네치아의 상징인 날개 달린 사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2차대전 당시에는 무솔리니의 집무실로 사용되었고 2층 발코니에서 광장의 군중에게 연설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지금은 베네치아궁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뜨레비 분수(Fontana di Trevi)

 

'Trevi'란 삼거리란 뜻으로 이곳으로 세 개의 길이 모이는 데서 유래되었다. 1732년 당시 교황이었던 클레멘스 13세가 주최한 분수 설계 공모전에서 우승한 니콜라 살비 Nichola Salvi 의 작품으로 그의 사후인 1762년 완성되었다. 고대 로마에서는 한때 150만명에 달했던 인구에게 물을 공급하기 위해 14개의 고가 수로를 건설하였다. 이로 인해 물이 풍부해지고 도시 곳곳에 분수가 많이 만들어 지게 되었다. 이후 르네상스 시대가 되어 교황들에 의해 상수도를 전면 수리하게 되고 새로운 수도를 개발하여 물의 공급을 원할히 하였다. 이를 기념하여 새로운 여러 분수를 세우게 되는데 그 중 최고의 작품이 바로 이 뜨레비 분수이다. 이 분수의 물은 아우구스투스 대제의 집정관이었던 아그리빠가 건설한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수로를 그대로 이용해 공급되고 있다고 한다.

뜨레비 분수는 바로크 양식의 아름다움이 절정에 달한 시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현재까지도 로마에서 가장 멋진 분수로 손꼽힌다. 배경은 폴리 궁전의 벽면을 절묘히 이용하여 개선문의 모양을 본떠 만들어 졌으며 건물과 창과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반인반어의 트리톤이 거친 바다와 잔잔한 바다를 상징하는 두 마리 말을 앞세우고 가운데 바다의 신 넵튠이 큰 조개위에 서 있는 아름다운 조각은 브란치의 작품이다. 이 곳은 낙차를 크게 하려고 땅을 깊게 팠기 때문에 물이 힘차게 흐르고 조각작품도 이에 잘 어울리도록 역동적으로 만들어져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