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기다리며(6)

하만2008.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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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칩니다.'

 

'J씨는 어떤 일을 하시죠? 제가 아는 거라곤 나이 밖에 없어서요.'

 

낯선 사람들끼리 마주 앉아 그렇게 무미건조하게 시간이 흐르는 동안 서로의 겉모습을 알아가고 있었다.

 

누구나 경험해 봤을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의 정적이란 무엇으로 표현할 길이 없다.

 

M은 오늘 낮의 미팅 일을 머릿속으로 그리면서 어떻게하면 좀더 회사를 계획보다 빨리 홍보하며 성장할 수 있을까 생각한다.

 

지금 상황에서 누구를 만난다는 것조차 M은 스스로에 대한 사치라고 생각하기에 지금 앉아있는 자리가 바늘 방석 같았다.

 

잠시동안의 정적을 J가 깊은 산속 어둠을 밝혀 주는 등불의 역할을 하며 말을 건넨다.

 

'제 조카 사진 보실래요?'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는 귀여운 여자 애기의 사진을 보여준다.

 

'아~ 귀엽다' 평상시 보다 높은 톤으로 M은 맞장구를 친다.

 

너무 더운 날의 오후에서 저녁으로 넘어가는 시간이었나? M은 점점 지쳐 가고 있었다.

 

M이 시킨 아이스 티는 얼음조차 유리컵속에서 존재를 잃었고, J의 앞에 놓여 있던 키위쥬스마저도 과거에 과연 존재했었나 하는 의구심마저 들정도로 깨끗이 비워져 있었다.

 

M은 빨리 그 자리를 모면했으면 하는 바램으로 이리저리 눈길을 돌린다. 슬쩍 맞은편 벽앞에 탁자의 무늬만을 관찰하며 몸을 웅크리며 고개숙이고 있던 J의 눈을 바라보았다.

 

J역시 일제시대 때 대한민국의 독립을 갈망해 저자거리에서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던 모든 대한민국 국민처럼 해방을 위해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며 그 자리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대화의 연장선을 이어가고 있었다.

 

M은 갑자기 J에게 더이상 참을 수 없는 마음속의 답답함을 던진다.

 

'결혼하기 싫죠? 억지로 나온거죠? 나도 어른들 때문에 억지로 나온건데..제가 오해했다면 미안합니다.'

 

'그런데 얼굴에 쓰여져 있어서 하는 말이에요.'

 

순간 당황하는 J는 어떤 대답을 전해줘야 할지 몰라 망설이고 있었다.

 

'솔직해 집시다. 괜찮아요..집에는 사람이 좋은데 제 스타일이 아니라고 얘기할께요.'

 

그때서야 J도 닫혀있던 무형의 관습속에서 탈피된 듯 말한다.

 

'사실 결혼 생각은 없는데 아버지가 너무 강하게 나가라고 하셔서 어쩔수 없이 나왔어요. 이런 얘기 했다고 하면 저 혼나요'

 

'그러니깐 그런 얘기 하기 없기에요. 전에도 이런경우가 있었는데 얘기를 안하기로 해 놓고 집에다 그대로 말씀하셔서 많이 혼났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절대로 안합니다. 저도 할 일이 많아서 지금 누굴 만난다는게 너무 부담스럽네요. 학원 일을 완전히 그만 둔 다음, 제가 갖고 있는 명함이 떳떳해 질 때 까지 아무도 만나지 않을 생각이었어요. 그럼 저녁이나 하러 나가죠?'

 

'아~, 괜찮아요.'

 

'제가 안괜찮아요. 전 무지 배가 고프거든요.'

 

'그럼 좋아하는거 드세요'

 

'이럴께 아니라, 맥주나 한잔하죠? 괜찮다면'

 

'네, 조금만 하죠'

 

'맥주는 드실수 있으세요?' '네, 조금 마셔요'

 

'그렇구나. 전 사실 맥주 못마셔요. 괜찮다면 소주나 한잔하죠?'

 

'그럼 소주 한병갖고 나눠 마셔요' '그래요 그럼'

 

'아저씨 소주 한병하고 곱창 주세요'

 

M과 J는 대학로 근처 골목에 자리잡고 있던 곱창집에 마주보고 앉아 술잔을 부딪히며 이제서야 인간미가 있는 얘기를 하고 있다.

 

'우리 술 마시는 건 비밀입니다.?' '그럼요'

 

그렇게 M과 J는 소주잔을 기울이며 조심스럽게 닫아놓았던 자신의 마음을 풀어 놓으며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와 마주대하고 있었다.

 

대화 도중 어느 덧 둘은 말을 스스럼없이 하는 관계가 되었고, 서로의 인생관, 결혼관, 가정사, 일상생활 등의 얘기를 풀어 놓으며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한병만을 나눠 먹자던 소주는 어느덧  탁자위에 5병이 놓여있었고, J의 장난기가 발동했는지 알코올로 인한 취기로 아버지에게 전화를 한다.

 

'예, 저에요. 만났어요. 사람 괜찮던데요?........'우리가 집에다 하기로 한 서로에 대한 이야기들을 확인하듯 먼저 하고 있었다.

 

시간은 어느 새 자정을 가리키고 있었다.

 

곱창집을 나와 도로변에서 함께 택시에 올라탄다. 바래다 주지 않아도 된다는 J의 말을 무시하고 M은 J의 집까지 바래다 주었다.

 

처음의 만남으로 인해 긴장한 상태가 역력히 눈에 보였지만 그래도 에탄올과 물의 합성인 인공적인 알코올 성분을  감당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택시안에서 나눈 대화는 제 3자가 보기엔 아무런 어떤 중요한 얘기가 아니였다. 정말 소소한 얘기들 뿐..

 

오늘 만나 술마신 얘기를 하지말라는 둥, 각자 집에다 약속한 대로 얘기 하자는 둥, 이런 저런 그냥 그런 얘기들 뿐..

 

하지만, M은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뭔가 모를 감동이란 표현까지 인용하기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감동을 받았다.

 

그 이유를 아직도 M은 정확히 말하지 못한다.

 

어느 덧 택시는 J의 집앞에 다다랐고 J와 M은 잘 들어가라는 기본적인 작별인사를 나눈 뒤 M은 거리로 나와 다시 택시를 잡아 탔다.

 

왼손에 들려진 '푹 쉬구, 잘자. 좋은 꿈 꾸고' 아주 가벼운 인사를 다시 남기기 위해 전화를 한 것이다.

 

'멍청한 놈. 왜 전화를 하고 지랄이야?' M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한다.

 

그런 와중에 M은 다시 J에게 문자메세지를 보내고 있었다.

 

'잘자요~오늘 정말 재밌었어요. 죤꿈꾸고 푸욱 자기 ^^'

 

"네! 푹자요~다잊고ㅎㅎ꼰지르면 나쁜사람!!"

 

J의 답장 문자를 받은 후 그제서야 M은 중력에 의한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을 따라 아무런 저항을 하지 못하고 두 눈의 눈꺼플을 중력방향으로 닫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