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안도현의 아름다운 결단! - 안도현

민상기2008.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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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한석규는, 축구로 치면 티에리 앙리나 스티븐 제라드 같은 존재다. 경기가 제대로 풀리지 않을 때, 그러다가 결정적인 찬스가 왔을 때, 단 한 방으로 경기 결과를 뒤집을 수 있는 위력의 스타가 바로 한석규다. 아, 물론 최근작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비롯한 꽤 많은 작품들이 그의 티켓 파워를 의심케 하고 있지만 그 흥행 스코어와 관련없이 영화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말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원신연 감독의 <구타유발자들>에서 한석규는, 앞부분에서 인터컷으로 몇차례 나오긴 하지만, 시종 배경 그림자 노릇을 하다가 영화 끝나기 이십 분 쯤에 등장해서 한 손아귀에 모든 캐릭터를 움켜쥐어 버린다.

시인 안도현의 아름다운 결단! - 안도현

영화 <눈에는 눈 이에는 이>에 출연한 배우 한석규.

그런 큰 배우가 영화 개봉을 앞두고 마케팅 관계자나 연예흥행계 기자들을 위한('팬을 위한'이라고 하지만 실은 이 업계 사람들이 하루 일거리가 되는) 기자 간담회, 제작 발표회, 공개 시사회, 전문가 시사회 그 이후의 파티, 인터뷰, 또 인터뷰 그리고 개봉 당일의 인터뷰 등을 철저하게 외면한다는 점도 이색적이다. 한석규는 '배우는 영화로 말한다'는 그 무슨 단순한 명제 때문이 아니라 도를 넘어선, 과도한 홍보 전략과 기자들 일거리에 배우들이 끌려다니는 풍토를 꺼려할 뿐이다.

이런 태도에 대해 영화사 관계자나 홍보 대행사는 물론이고 업계 기자들이 못마땅해 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더러 기명 칼럼을 통해 한석규의 태도를 비판하는 기자들도 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개봉 때에는 "제품(영화)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 포장(홍보 마케팅)이다. 관객 350만명이 들어야 '본전'을 뽑지만 현재 추이로는 적자가 예상된다. 억대 개런티를 받는 배우가 '나몰라라'하는 식으로 홍보를 외면하면 곤란하다"는 요지의 칼럼을 읽은 적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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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안도현.

틀린 지적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어떤 경향성에 대해서는 반성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언제부터인지 영화 한 편이 제작되고 개봉되는 과정에 관습적인 흐름이 발생했다. 물론 제작진과 배우들은 '영화 제작' 그 자체에 몰입하겠지만 그 전후 과정에서 제작 발표회, 시사회, 개봉 인사 등이 '전문 홍보 대행사'에 의해 연출된다. 그 모든 과정을 '팬들에 대한 인사'가 아니라 '홍보 마케팅'이라고 아예 대놓고 부른다. 공중파, 케이블, DMB, 일간지, 주간지, 인터넷 매체 등 수많은 미디어가 생겨났고 각각의 매체들은 '최신 개봉 영화 소식'이라는 '연예가'를 '중계'하지 않을 리 없으므로 이 배우들이 여기저기 불려 다녀야 함은 물론 그 어떤 자리에서도 작품 내용과 관련된 심도 깊은 대화는 오가지 않는다.

그러니 누군가 한명 쯤 있어 이런 경향성으로부터 멀찍이 벗어나고 싶은(그러니까 거부하고 저항한다는 게 아니라) 솔직한 심경을 피력한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고 또한 권장할 만한 일이다. 물론 홍보 대행사나 제작사에서는 불편하겠지만 흥행 스코어가 온갖 미디어에 얼굴 내밀기와 정말로 직접적인 관련이 있을까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 상황은 연예흥행업계 쪽만 그런 것은 아닌 듯싶다. 어제 이 블로그에서 소설가 황석영의 '청바지와 맨발'이라는 컨셉트에 대해 언급했지만, 요즘은 신작 소설 한편 내면 일정한 수순이 진부하게 흐르는 듯싶다. 우선 기자 간담회가 있고 사인회가 있고 여기저기 강연회와 특강이 있으며 더러 텔레비전에도 출연한다.

시인 안도현의 아름다운 결단! - 안도현

의미있는 '칩거'를 밝힌 시인 안도현.(사진 한겨레).

그런 소식이나 기사를 볼 때마다, 문학 전문 기자들과의 아주 심도 깊은 '간담회' 한번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는 것이다. 더러 얘기를 들으니 '신간' 발간에 맞춰 간담회를 갖다 보니 대부분의 기자들이 해당 소설을 읽지도 않고 참석하는 수가 있다고 한다. 대화는 주로 출판사 관계자들이 준비한 '보도 자료'에 바탕을 둔다.

신인이나 중진이나 일부러 기자들을 초빙한 셈이니 그들의 더러 심드렁한 질문에도 정성껏 답변을 해줘야 한다. 어느 한 신문에서 비중있게 기사가 나가면 다른 지면들은 축소하거나 아예 빼버리기 때문에 골고루 시선을 던져주는 예절도 필요하다. 심도 깊은 간담회는 기대하기 어렵다.

"이번 거는 주로 언제 쓰셨어요?"
"뭐, 대중 없지. 난 말이야 낮밤 안 가려요. 하지만 아무래도 이것저것 잡일도 있고, 집 식구들 다 자고 나야 뭘 해도 하게 되니까. 뭐 좀 쓰려고 하면 밤이 허옇게 새요. 나원 참. 이거, 힘들게 썼어요."

만약 문학 전문 기자들과 해당 작가가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고 그것을 저마다의 시선에서 풍요로운 기사로 제출이 된다면 이 나라의 수많은 문학 독자들, 이른바 '핵심 타켓 층'은 반드시 그런 기사들 서너개를 종합적으로 읽으면서 신간 작품에 대한 감격적인 기대를 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된장찌개에 부침개 집어 먹으면서 얘기를 나눴는지 사소하고 심드렁한 이야기들 뿐이니 '핵심 타켓 층'도 조금 망설이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출판사에서는 사인회, 강연회, 방송 출연 같은 '홍보 스케줄'을 계속 진행해야 하고 여기에 온/오프 라인의 거대한 서점들이 마케팅 계획서를 팩스로 전송해 오는 것이다. 어느 날 어느 시에 '사인회'를 열어보자는 것이다. 지명도가 떨어지는 저자일 경우 출판사 측에서는 서로 '민망'해지지 않기 위하여 '사인 알바생'도 고용한다. 어찌되었든 대형 서점들은 책을 팔게 되는 것이다. 강연회에서도 너무나 예의바른 청중이 조심스럽게 질문을 한다.

"평소 존경해온 선생님을 뵈서 영광입니다. 그동안 꼭 궁금한 게 있었는데요, 실례가 안 된다면, 언제 어느 때에 작품 집필을 하시는지 들려주셨으면 참으로 감사하겠습니다."
"허허 참. 그래요. 아무래도 밤이죠. 다들 잠에 들고나면 세상은 조용해지고 내 마음도 조용해집니다. 그러면 책상에 앉게 되죠."

그러다가 작가는 방송국 분장실 거울 속에서 '이거 해야 젊어 보여요' 하는 메이크업 담당자의 권유를 진지하게 듣고 있는 제 얼굴을 발견하고는 앉아 있던 의자를 거울 속으로 집어던지고 싶은 욕망, 을 간신히 억제한다. 곧 이어지는 방송 녹화에서 진행자는 정갈한 목소리로, 그러나 힐끔힐끔 대본을 보면서, 질문을 한다.

시인 안도현의 아름다운 결단! - 안도현

시인 안도현의 동화 <연어>.

"이번 작품을 보니까,,,,,, 정말 궁금한 게, 우리 같은 사람은 일일이 베껴쓰라 해도 이걸 언제 다하나 싶은데, 선생님. 이번 작품은 어떤 시간에 쓰셨나요? 그게 참 궁금하더라구요."

"에, 또, 마. 밤에 씁니다. 밤에. 낮엔 바빠요 바빠. 예비군 훈련도 갔다 와야 되고."

안도현 시인이 있다. 아름다운 시인이다. '타고 난 시인'이다. 단어를 요령껏 비벼서 가락국수 같은 가느다란 문장 만드는 걸 회피해 온 시인이다. 1961년의 오늘, 12월 15일에 경북 예천에서 태어났고 타고난 문청으로 원광대 국문과와 단국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으며 1981년 대구매일 신춘문예에 시 '낙동강',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서울로 가는 전봉준'이 당선되어 활동을 시작했다.

이 제목을 단 첫 시집 <서울로 가는 전봉준>은 80년대의 가장 단단한 현실 서정시로 평가받았다. 전북 이리중학교 교사로 교원노조 활동에 참여하였다가 해직되었고 또한 5년 만에 복직되었으며 지금은 우석대 문창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문학평론가 남진우는 몇 해 전에 쓴 '신서정과 젊은 시인'에서 시인 안도현을 이렇게 평가한 적 있다.

작은 것들에 대한 시인의 애정은 인간의 의식이나 판단과 무관한 자연 현상에서 애틋하고 정감 어린 사랑의 드라마를 발견해낸다. 철부지 눈발을 위해 모성적인 강물이 가장자리부터 살얼음을 깔기 시작한다는 발상은 얼마나 천진난만하면서도 절실한 바가 있는가. 정작 강물에 닿자마자 형체도 없이 녹아 사라지는 눈발을 안타깝게 여긴 이는 시인 자신이었을 것이다. 무르익은 서정성과 우의성의 적절한 결합을 통해 시인은 자연 만물이 내장하고 있는 생명의 온기를 섬세하게 포착해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그랬던 안도현 시인인데 며칠 전부터 그의 신상에 관한 기사와 소식이 들려오고 오늘의 글을 위하여 시인의 홈페이지를 방문하여 보니 시인은 '2008년의 끄트머리에 서서'라는 글을 띄워 놓았다. 한 해를 보내는 서정의 편지인가 하며 일별해 보니, 단호한 각오를 밝힌 글이어서, 재차 읽어보았다. 위에서 비판적으로 언급한 그런 경향과 일치하는 각오는 아니지만, 부분적으로 그와 같은 정황들이 떠오르는 것이어서, 그 첫머리부터 옮겨본다.

시인 안도현의 아름다운 결단! - 안도현

첫 시집 <서울로 가는 전봉준>.

"최근에 꽤 오랫동안 저는 시인으로 사는 일이 무엇인가를 자주 생각했습니다. 시인으로서 저는 크게 고장이 나서 망가져 있었습니다. 저는 고독한 이방인도 되지 못했고, 영원한 자유인도 되지 못했습니다. 골방에서 자족적인 자폐를 혼자 즐기지도 못했고, 광장에 서서 세상에 분노하면서 크게 외치지도 못했습니다. 음풍농월의 세월도 저를 비껴갔지요. 매일매일 일정표를 자주 들여다보았고, 시도 때도 없이 전화기에 귀를 대야 했고, 원고마감에 쫓겨 허둥댔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존재를 저 스스로 무겁게 떠받들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 틀림없다. 이 글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다. 이 메모는 어느 한 시인의 감정 토로가 아니다. 21세기 문학 현상에서 소중하게 다뤄져야 할 중요한 단서다. 오늘날 우리 문학이, 시인이, 소설가가, 출판사가, 문학 담당 기자가 무슨 일을 해왔는지 거꾸로 성찰하게 만드는 '뜨거운' 글이다. 안도현 시인은 이렇게 쓴다.

"더 이상 불행해지지 않기 위해 다짐합니다. 지금까지 약속한 일정 이외에 2009년부터는 강연, 독자와의 만남, 사인회, 시낭송회, 문학기행과 같은 외부행사에 참여하지 않겠습니다. 신문이나 잡지에 산문을 쓰는 일, 인터뷰를 하는 일, 방송에 출연하는 일을 하지 않겠습니다. 남의 책 뒤표지에 저의 못난 이름을 걸치지 않겠습니다. 이 홈페이지도 내년 봄 산수유 필 때쯤에는 닫겠습니다.(중략) 그 대신에 더 몰두해서 시를 쓰겠습니다. 앞으로는 더 오랜 시간을 빈둥댈 것이며, 더 많은 길을 천천히 배회하겠습니다."

우리 문학계의 진부한 관성에 대해 불편했던 사람으로서, 그 언젠가 몇 해 전에 엇비슷한 일로 이메일을 보냈던 사람으로서, 무엇보다 '서울로 가는 전봉준'을 읽고 또 읽었던 한 명의 독자로서, 나는 지금 시인 안도현의 결단을 무조건 지지하고자 한다. 지금 우리가 이 아름다운 시인의 결단을 진심으로 성원하기 위하여 해야할 첫 번째 일은 아무도 그에게 연락하지 않는 것이다. 전화, 문자, 이메일 따위를 전송해서 '심경을 듣고 싶어서......'라는 진부하고 예의없는 질문을 하지 않는 것이다.

슬쩍 묻어가는 셈치고 한마디 하자면, 나 자신도 지난 가을에 문화단체 <풀로엮은집>의 일을 그만 두었음을 밝히고자 한다. 보다 중요한 다른 이유들이 물론 있지만 솔직히 귀한 시간 일부러 내서 특강을 해준 작가들의 성의에 비하여 그들의 작품을 읽지도 않고 와서는 작품을 낮에 쓰는지 밤에 쓰는지, 원고지에 쓰는지 컴퓨터에 쓰는지 그 무슨 예의도 없고 맥락도 없는 질문이 터지는 상황들에 대하여 진실로 괴로웠던 순간들이 많았다. 내 간청에 의하여 귀한 시간을 냈다가 씁쓸히 돌아갔던 성석제, 천운영, 문태준 등의 아름다운 작가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다.

시인 안도현의 아름다운 결단! - 안도현

아름다운 결단을 내린 시인 안도현.

안도현 시인은 '그동안 좀머씨처럼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라고 말하고 싶을 때도 사실 많았습니다.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썼다. 글쎄, 작가가 작품 쓰는 일 대신에 울타리 바깥의 여러 일들로 경황없이 다닌 것에 대해 조금은 단속하는 마음을 가질 필요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참에 진실로 업계 관계자 모두가 남들 하니 나도 하고 효과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하던 것이니 안할 수 없는 그 무슨 '홍보 마케팅'이라는 거센 흐름(그러나 그 기획 내용은 상당히 진부한)에 대해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안도현 시인은 다른 지면에서 "시인은 우주가 불러주는 감정을 대필하는 사람일 뿐이다. 시에다 쓴 언어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의 것이며 독자의 것이지 시인의 개인 소유물이 아니다. 그러니 마음에 드는 한 편의 시를 완성했거든 그 순간 그 자리에서 그 시를 잊어버려라. 당신은 그 시로부터 미련 없이 떠나라."고 했다.

시인의 고통스런 결단을 지지하며, 또한 앞으로 꽤 오랫동안 잡지사 사진기자들을 위한 포즈가 아니라 진실로 고독하게 벼려내야 할 시간들 앞에서 무거운 고독 속에 휩싸일 시인을 끝끝내 기억하기 위하여, 그의 시 중에 '헛것을 기다리며'의 일부를 옮겨본다. 정말 이제는 싫다는 사람 억지로 불러내서 노래 시키는 그런 흥행문화 좀 없어져야겠다. 더 많은 한석규, 더 많은 안도현이 필요하다. 그들의 연기와 그들의 시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

이제는 나를 사로잡고 있는 것이 그 무엇 무엇이 아니라
그 무엇 무엇도 아닌 헛것이라고, 써야겠다
(중략)

내 문법 공책에 이제는 받아 적어야겠다
그 동안 나는 헛것을 피해 여기까지 왔다
너의 눈을 재 속에 숨은 숯불의 눈으로 보지 못하고,
너의 말을 처마 끝에 달린 풍경의 귀로 듣지 못하고,
너의 허벅지를 억새밭머리 바람의 혀로 핥지 못하였다

그래 여우라면, 사람의 키를 훌쩍 뛰어넘어
혼을 빼고 간을 빼먹는 네가 여우라면 오너라
나는 전등을 들지 않고도 밤길을 걸어
그 허망하다는 시의 나라를 찾아가겠다
너 때문에 뜨거워져 하나도 두렵지 않겠다

서정시의 한 풍경 시인 안도현의 아름다운 결단! - 안도현간절하게 참 철없이 | 안도현 지음 | 창비

시인 안도현의 아홉 번째 시집이다. 향리의 시인답게 이 시집에서도 안도현은 점점 소멸해가는 기억들, 옛 공동체의 원형을 복원하는데 노력한다. 아마도 내 생각에 시인 안도현이 이렇게 '착한' 시를 쓰는 것은 이 시집으로 기점으로 하여 꽤 오랫동안 보지 못할 듯싶다. 이 고요하고 잔잔한 시어들은 어떤 면에서는 시인 안도현에게는 '동어반복'의 위험성에 가장 심각하게 노출된 상황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시선 없이 이 시집만을 들여다보면 누구나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막막한 그리움에 사무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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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의 길, 시인의 길 시인 안도현의 아름다운 결단! - 안도현연어 | 안도현 지음 | 문학동네

금세기에 들어 시인 안도현에 대한 일부의 평가가 '비평을 잃고 대중을 얻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시인에게는 모독이 될 수 있으나, 수많은 독자들이 이 장편 동화를 화장 번지르르한 팬시 상품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한 점 위안이 된다. 내면의 성장통과 애틋한 사랑과 끝 모를 외로움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제 이 책 한권으로 충분하다. 이 나라의 '타고난 시인'들이 자연성의 회복을 통해 인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열망에도 불구하고 그 성찰의 수준과 언어의 지평이 이 책 <연어>에서 반복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치명적인 자해가 된다. 이 점은 당사자인 안도현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정말로 지난 80년대의 그 많은 시인들이 법정 스님이나 이해인 수녀님이 다 쓴 얘기를 반복하지 않았으면 한다. 실은 젊은 고수들도 속속 출몰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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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집배원 안도현의 시 배달 시인 안도현의 아름다운 결단! - 안도현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 안도현 지음 | 창비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하고 있는 일 중에 문학나눔사무국이 주관하는 '문학 집배원 시 배달'이 있다. 일간지 지면에서 볼 수 있는 '해설이 있는 애송시' 같은 코너인데, 이를 '문학 집배원'으로 명명하고 꾸준히 온라인에서 펼쳐냈다는 게 소박한 의미가 있다 그 첫 작업을 도종환 시인이 맡아 하여 <꽃잎의 말로 편지를 쓴다>는 책을 냈고 그 두 번째 역할을 안도현 시인이 맡았다. 2007년 5월부터 2008년 4월까지 안도현 시인이 직접 고르고 정성껏 읽고 그 파르르르 떨리는 마음까지 발송했던 시들을 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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