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00년 전에도 우리 국민은 은행에 저금한 돈보다 빌린 돈이 많았다. 1910년 서울 기온은 지금보다 3도 가까이 낮았다.
17일 통계청은 이런 내용의 1908년부터 1943년까지 광복 이전 통계자료를 공개했다.
1910년 연말 은행의 총 예금잔고은 1689만원, 대출액은 2299만원이었다. 1인당 예금은 1.3원, 대출금은 1.7원으로 저축한 돈보다 빚이 더 많았다. 30여년이 지나 1943년 1인당 예금액은 95.7원, 대출금은 113.7원으로 크게 늘었지만 대출금이 예금을 넘어서는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도시화와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현재 주요 도시의 기온은 100년 전보다 2~3도 가량 높아졌다. 1910년 당시 경성이었던 서울의 평균 기온은 10.5도로 2007년 13.3도보다 2.8도 낮았다. 1910년 대구, 인천 평균 온도는 각각 12.3도, 10.2도로 작년 평균 기온과 비교해 2.7도씩 낮았다. 해안에 접한 부산, 목포의 1910년에서 작년까지 기온 상승폭은 각각 2.2도, 1.9도로 다른 지역에 비해 덜했다.
75년 전 쇠고기와 계란 값은 큰 차이가 없었다. 계란 10개는 35전, 쇠고기 375g은 44전이었다. 지금은 계란 10개는 2000~3000원대인데 반해 한우 기준 쇠고기 375g이 3만원을 넘나들며 10배 가량 격차가 벌어졌다.
1938년 한국 인부 일당은 92전으로 일본인 1원78전의 절반 정도에 불과했다. 일제 강점기 안타까운 현실이 그대로 드러났다. 1932년 우리나라 교역대상국 1위는 일본으로 전체 수출입의 85.7%를 차지했다. 그다음은 만주였고 미국(0.9%), 중국(0.8%) 등 다른 나라와의 무역량은 미미했다.
1911년 우리나라 총 인구(남북 합산)는 지금의 5분의 1 수준인 1406만명에 그쳤다. 1925년 1902만명, 1935년 2189만명, 1943년 2666만명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1920년 당시 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은 경북(대구 포함)이었다. 전체 인구의 12.2%(211만2000명)가 경북에 집중됐다. 다음이 전남(광주, 제주 포함) 195만5000명, 경남(부산 포함) 179만6000명, 경기(서울 포함) 178만6000명 순이었다. 2007년 현재는 경기(22.8%), 서울(20.7%)에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몰려살고있다.
1930년 인구 대부분인 80.5%가 농림목축업을 하고 있었다. 이때 인구 1000명당 출생아 수는 38.6명, 사망자는 19명이었다. 작년 1000명당 출생 10.1명, 사망 5명과 비교해 과거 출생률, 사망률 모두 높았다. 1930년 1000명당 10쌍이 결혼했지만 이혼은 0.5건에 불과했다. 지난해 기준 1000명당 이혼 건수는 2.5명으로 약 80년만에 5배 늘었다.
75년 전엔 호랑이, 표범, 곰, 이리 등 맹수에게 물려 죽거나 다치는 사람도 있었다. 1933년 총 77건에 달했고 1943년에도 37번 사고가 발생했다.
[펌]<100년전 대한민국은>가계는 적자… 계란값이 쇠고기와 비슷
[헤럴드경제]
약 100년 전에도 우리 국민은 은행에 저금한 돈보다 빌린 돈이 많았다. 1910년 서울 기온은 지금보다 3도 가까이 낮았다.
17일 통계청은 이런 내용의 1908년부터 1943년까지 광복 이전 통계자료를 공개했다.
1910년 연말 은행의 총 예금잔고은 1689만원, 대출액은 2299만원이었다. 1인당 예금은 1.3원, 대출금은 1.7원으로 저축한 돈보다 빚이 더 많았다. 30여년이 지나 1943년 1인당 예금액은 95.7원, 대출금은 113.7원으로 크게 늘었지만 대출금이 예금을 넘어서는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도시화와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현재 주요 도시의 기온은 100년 전보다 2~3도 가량 높아졌다. 1910년 당시 경성이었던 서울의 평균 기온은 10.5도로 2007년 13.3도보다 2.8도 낮았다. 1910년 대구, 인천 평균 온도는 각각 12.3도, 10.2도로 작년 평균 기온과 비교해 2.7도씩 낮았다. 해안에 접한 부산, 목포의 1910년에서 작년까지 기온 상승폭은 각각 2.2도, 1.9도로 다른 지역에 비해 덜했다.
75년 전 쇠고기와 계란 값은 큰 차이가 없었다. 계란 10개는 35전, 쇠고기 375g은 44전이었다. 지금은 계란 10개는 2000~3000원대인데 반해 한우 기준 쇠고기 375g이 3만원을 넘나들며 10배 가량 격차가 벌어졌다.
1938년 한국 인부 일당은 92전으로 일본인 1원78전의 절반 정도에 불과했다. 일제 강점기 안타까운 현실이 그대로 드러났다. 1932년 우리나라 교역대상국 1위는 일본으로 전체 수출입의 85.7%를 차지했다. 그다음은 만주였고 미국(0.9%), 중국(0.8%) 등 다른 나라와의 무역량은 미미했다.
1911년 우리나라 총 인구(남북 합산)는 지금의 5분의 1 수준인 1406만명에 그쳤다. 1925년 1902만명, 1935년 2189만명, 1943년 2666만명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1920년 당시 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은 경북(대구 포함)이었다. 전체 인구의 12.2%(211만2000명)가 경북에 집중됐다. 다음이 전남(광주, 제주 포함) 195만5000명, 경남(부산 포함) 179만6000명, 경기(서울 포함) 178만6000명 순이었다. 2007년 현재는 경기(22.8%), 서울(20.7%)에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몰려살고있다.
1930년 인구 대부분인 80.5%가 농림목축업을 하고 있었다. 이때 인구 1000명당 출생아 수는 38.6명, 사망자는 19명이었다. 작년 1000명당 출생 10.1명, 사망 5명과 비교해 과거 출생률, 사망률 모두 높았다. 1930년 1000명당 10쌍이 결혼했지만 이혼은 0.5건에 불과했다. 지난해 기준 1000명당 이혼 건수는 2.5명으로 약 80년만에 5배 늘었다.
75년 전엔 호랑이, 표범, 곰, 이리 등 맹수에게 물려 죽거나 다치는 사람도 있었다. 1933년 총 77건에 달했고 1943년에도 37번 사고가 발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