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나의 도시

허수지2008.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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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나의 도시

달콤한 나의 도시

 

정이현 장편 소설

 

5부 연인들의 비밀

 

 

(생략)

 

ㅡ. 엄마. 난들 왜 모르겠는가. 우리 아버지 같은 사람과 삼십 년 넘도록 같이 살아왔다면 세상의 모든 외간 남자들이 다 멋있어 보일 거라는 사실을. 엄마도 나약한 한 인간일 뿐이니 이해하라는 충고 또한 고맙게 받겠다. 그 엄마가 '나의 엄마'가 아니라 '남의 엄마'라면 나 역시 기꺼이 그렇게 생각해드릴 용의가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우리 엄마의 일이다. 새언니라도 아는 날엔 지독한 집안 망신일 것이며, 아버지가 아는 날에는 상상만으로도 몸서리쳐지는 피의 숙청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내 휴대폰에 고이 저장되어 있는, '김포아줌마'를 가장한 '김포아저씨'의 전화번호. 발신번호를 숨긴 채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다 알고 있습니다. 부끄러운 짓 그만 하세요.' 심장이 벌렁거리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착 가라 앉는다.

ㅡ. 태오. 태오와의 만남은 끊어질 듯 이어지고 있다. 우리 둘 사이에 싸움은 없었다. 그러나 관계의 밑바닥으로부터 미세한 균열이 일어나고 있음을 적어도 나와 태오, 단 둘만은 극도로 예민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둘 사이에 가로놓인 이별의 그 스멀스멀한 예후들에 대해 우리는 애써 모르는 척하고 있을 뿐이다, 나를 대하는 태오의 태도가 어쩐지 예전 같지 않다고 느낄 적마다, 우리 사이가 뒤틀린 책상다리처럼 삐꺼덕거릴 적마다, 이대로 그를 잃을 것 같다는 섬뜩한 확신에 사로잡힌다. 사랑의 한 시절이 이렇게 어이없게 저물어가는 것을 그저 바라만 봐야 하는 심정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나는 여전히 태오를 사랑한다. 그 사람과의 이별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사랑이 아니라면, 사랑이 대체 뭐란 말인가. 우리의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나는 알고 있었다. 우리가 함께하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왜 태오와 평생을 함께할 수 없을 거라 지레짐작해버린 걸까. 왜 우리에게 낙관적 미래가 없을 거라고 지레짐작하며 마음의 간격을 뛰우려 동동거린 걸까.

현재의 사랑과 안정된 미래를 동시에 가질 수 없다면, 타협을 선택하는 건 어떨까. 다리가 길쭉길쭉한 망아지를, 준수한 명마로 만들면 어떨까. 실낱같은 희망의 힘에 간곡하게 의지하여 나는 입술을 앙다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