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엄마. 난들 왜 모르겠는가. 우리 아버지 같은 사람과 삼십 년 넘도록 같이 살아왔다면 세상의 모든 외간 남자들이 다 멋있어 보일 거라는 사실을. 엄마도 나약한 한 인간일 뿐이니 이해하라는 충고 또한 고맙게 받겠다. 그 엄마가 '나의 엄마'가 아니라 '남의 엄마'라면 나 역시 기꺼이 그렇게 생각해드릴 용의가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우리 엄마의 일이다. 새언니라도 아는 날엔 지독한 집안 망신일 것이며, 아버지가 아는 날에는 상상만으로도 몸서리쳐지는 피의 숙청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내 휴대폰에 고이 저장되어 있는, '김포아줌마'를 가장한 '김포아저씨'의 전화번호. 발신번호를 숨긴 채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다 알고 있습니다. 부끄러운 짓 그만 하세요.' 심장이 벌렁거리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착 가라 앉는다.
ㅡ. 태오. 태오와의 만남은 끊어질 듯 이어지고 있다. 우리 둘 사이에 싸움은 없었다. 그러나 관계의 밑바닥으로부터 미세한 균열이 일어나고 있음을 적어도 나와 태오, 단 둘만은 극도로 예민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둘 사이에 가로놓인 이별의 그 스멀스멀한 예후들에 대해 우리는 애써 모르는 척하고 있을 뿐이다, 나를 대하는 태오의 태도가 어쩐지 예전 같지 않다고 느낄 적마다, 우리 사이가 뒤틀린 책상다리처럼 삐꺼덕거릴 적마다, 이대로 그를 잃을 것 같다는 섬뜩한 확신에 사로잡힌다. 사랑의 한 시절이 이렇게 어이없게 저물어가는 것을 그저 바라만 봐야 하는 심정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나는 여전히 태오를 사랑한다. 그 사람과의 이별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사랑이 아니라면, 사랑이 대체 뭐란 말인가. 우리의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나는 알고 있었다. 우리가 함께하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왜 태오와 평생을 함께할 수 없을 거라 지레짐작해버린 걸까. 왜 우리에게 낙관적 미래가 없을 거라고 지레짐작하며 마음의 간격을 뛰우려 동동거린 걸까.
현재의 사랑과 안정된 미래를 동시에 가질 수 없다면, 타협을 선택하는 건 어떨까. 다리가 길쭉길쭉한 망아지를, 준수한 명마로 만들면 어떨까. 실낱같은 희망의 힘에 간곡하게 의지하여 나는 입술을 앙다물었다.
달콤한 나의 도시
달콤한 나의 도시
정이현 장편 소설
5부 연인들의 비밀
(생략)
ㅡ. 엄마. 난들 왜 모르겠는가. 우리 아버지 같은 사람과 삼십 년 넘도록 같이 살아왔다면 세상의 모든 외간 남자들이 다 멋있어 보일 거라는 사실을. 엄마도 나약한 한 인간일 뿐이니 이해하라는 충고 또한 고맙게 받겠다. 그 엄마가 '나의 엄마'가 아니라 '남의 엄마'라면 나 역시 기꺼이 그렇게 생각해드릴 용의가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우리 엄마의 일이다. 새언니라도 아는 날엔 지독한 집안 망신일 것이며, 아버지가 아는 날에는 상상만으로도 몸서리쳐지는 피의 숙청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내 휴대폰에 고이 저장되어 있는, '김포아줌마'를 가장한 '김포아저씨'의 전화번호. 발신번호를 숨긴 채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다 알고 있습니다. 부끄러운 짓 그만 하세요.' 심장이 벌렁거리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착 가라 앉는다.
ㅡ. 태오. 태오와의 만남은 끊어질 듯 이어지고 있다. 우리 둘 사이에 싸움은 없었다. 그러나 관계의 밑바닥으로부터 미세한 균열이 일어나고 있음을 적어도 나와 태오, 단 둘만은 극도로 예민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둘 사이에 가로놓인 이별의 그 스멀스멀한 예후들에 대해 우리는 애써 모르는 척하고 있을 뿐이다, 나를 대하는 태오의 태도가 어쩐지 예전 같지 않다고 느낄 적마다, 우리 사이가 뒤틀린 책상다리처럼 삐꺼덕거릴 적마다, 이대로 그를 잃을 것 같다는 섬뜩한 확신에 사로잡힌다. 사랑의 한 시절이 이렇게 어이없게 저물어가는 것을 그저 바라만 봐야 하는 심정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나는 여전히 태오를 사랑한다. 그 사람과의 이별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사랑이 아니라면, 사랑이 대체 뭐란 말인가. 우리의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나는 알고 있었다. 우리가 함께하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왜 태오와 평생을 함께할 수 없을 거라 지레짐작해버린 걸까. 왜 우리에게 낙관적 미래가 없을 거라고 지레짐작하며 마음의 간격을 뛰우려 동동거린 걸까.
현재의 사랑과 안정된 미래를 동시에 가질 수 없다면, 타협을 선택하는 건 어떨까. 다리가 길쭉길쭉한 망아지를, 준수한 명마로 만들면 어떨까. 실낱같은 희망의 힘에 간곡하게 의지하여 나는 입술을 앙다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