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사랑에 맞닥뜨린 인간의 내면과 일주일 동안의 사건을 다룬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와 죽음을 다룬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에 이은 '그리고 일곱 번째 날…' 3부작의 완결편이다. 베스코스라는 한 시골마을에 낯선 이방인이 찾아온 후 벌어지는 일주일간의 사투를 그리고 있다. 이방인은 마을 호텔 바(bar)의 여종업원인 미스 프랭에게 막대한 양의 금괴를 보여주며 마을사람들의 목숨을 담보로 한 어둠의 냄새를 풍기는 비밀스러운 제안을 하고, 이후 베스코스 주민들은 선악에 관한 악마의 시험을 당하게 되는데…….
내용:
작은 마을 베스코스!! 배르타는 남편을 여읜 후 15년 동안 자기 집 앞에 앉아 뭔가를 살피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악마를 데리고 지상을 배회하는 한 중년 남자가 베스코스에 접어들었고 하나밖에 없는 호텔로 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 중년 남자는 쉰두 살의 카를로스로 자신이 판 무기에 그의 가족이 테러리스트에 의해 살해되었다. 그래서 카를로스는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 천국인지 지옥인지, 인간이 선한가, 악한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진실 그리고 유혹을 받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싶어 그 시험대를 평화로운 베르스코로 선택했다. 카를로스는 그곳 호텔 종업원 샹탈에게 금괴를 보여주고 제안을 한다. 사랑, 평화 연민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 와서 그곳 주민들이 ‘도둑질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라는 계명을 어기게 할 수 있을지 시험해보자는 계획으로 일주일 안에 마을에 누군가 죽는다면 마을사람들에게 금괴 10개를 줄 것이며 그 말을 전해 준 샹탈에 금괴 1개를 주겠다고 말한다. 샹탈은 갈등 끝에 그 금괴를 훔치러 가나 ‘도둑질하지 말라’계명을 깨뜨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양심 때문이 아니라,. 더럭 겁이 나 금괴를 그대로 두고 내려온다. 결국 그년 마을 사람들에게 카를로스의 제안을 전한다. 샹탈은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고, 그녀는 낳아다는 죄책감으로 어머님 일찍 돌아가시고, 그녀의 할머니가 삯바느질로 샹탈을 키웠다. 샹탈은 이러한 불공평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마을이 사람들이 어떻게 변해가든.... 협조도, 방해도 하고 싶지 않았다. 처음에 마음사람들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조금씩 금괴에 대한 욕심이 생겼고 신부도 이 마을에 부임한 이래로 처음으로 성당에 사람들로 가득 찼고, 악의 모습을 드러내야 사람들이 선의 가치를 이해할 수 있다고, 중죄를 저지르자마자 마을사람들은 곧 회개할 것이고, 성당이 그들의 유일한 안식처가 될 거라고 생각하고, 그 제안에 적극 찬성한다. 신부는 예수님께서 자신은 선하지 않으시고, 오로지 하느님만이 선하신다고 우리가 죄를 지어도 용서해 주실 거라며, 설교함으로써 순식간에 마을사람들은 그 제안에 대한 거리낌이 사라지게 되었고, 애향심으로 고무되었다. 신부와 읍장 그리고 마을사람은 그 희생자로 자기 목숨을 위해 싸울 힘조차 없는 죄 없는 늙은 베르타로 결정하기로 합의한다. 베르타를 희생자로 받치기로 하는 날 마을사람들은 숲 속의 빈터에 도착했고, 그녀를 향해 총을 조준하다. 하지만 그 순간 “잠깐!” 한 여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미스 프랭이었다. 이것은 우릴 영원한 저주와 죽음으로 이끄는 함정이라고, 금은 손아귀에 들어오자마자 손가락 사이로 빠져 달아나버릴 거라고, 금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먹을 수도, 마실 수도, 통용될 수도 없다고 샹턀은 마을사람에게 말한다. 사람들은 두려움과 수치심이 엄습해 오고 죄책감이 들었지만 ‘반대합니다’라고 말할 용기를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샹탈의 말을 듣고 사람들은 조금씩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샹탈은 카롤로스에게 금을 현금으로 환산해 받고 베스코스를 떠난다. ============== 《최후의 만찬》에 얽힌 전설에 따르면 예수와 그를 배신한 유다의 모델은 같은 사람이라고 한다. 선과 악의 얼굴이 똑같다고, 오로지 선과 악은 인간 존재의 길과 마주치는 순간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범죄자 아합과 성인 사뱅은 똑같은 본능을 가지고 있고, 아합은 성인 사뱅이 자기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범죄자로 사는 걸 포기하고, 존경받는 사람으로 변모해 간다. 인간의 마음속에서는 선과 악의 대결이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고, 그 전투는 끝나지 않을 것이며, 오로지 모든 것이 통제와 선택의 문제일 뿐이라는 것을 아합과 사뱅을 통해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선악설이든 선성설이든 성무성악설이든 우리가 선과 악을 알게 되고, 나누기 시작하면서부터 그 둘 사이에서 헤매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아닌지... 선하다고 악하다고 말할 순 없지만, 한쪽이 이길 수도 있겠지만, 그 싸움이 끝나지 않겠지만, 그 사이에서 우린 통제와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어느 쪽이든 우리 스스로 통제하고 선택하면 되는 것이라고... 우리의 본질이 어떤 든 우린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 'Constantine'에서 천사 가브리엘은 사탄을 불러들인다. 사람들에게 공포를 주어 경건하게 만들고자 천사가 사탄의 아들을 부활시키려는 일을 돕는다. 마치 이 책의 신부처럼^^ 천사니 악마니....선하든 악하든 그 어떤 쪽이든 우리 자신의 통제와 선택의 문제이라는 것이 참으로 맘에 든다. 하지만 지금은 난 그 경계를 모르겠다. 그래서 통제와 선택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정말 모르겠다. 한없이 착할 수도 악할 수도 없다는 것을 알지만, 선이든 악이든 내가 통제와 선택할 수 있다는 걸 알겠지만, 때론 그 전투에 휘말리기 싫고 비겁하게 그 중간에서 헤매지 않은 척.... 눈치를 봐 가면서 다수의 쪽으로 몸을 맡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순간에 삶은 우리를 낙관에 봉착시켜 우리의 용기와 변화의 의지를 시험한다. 그럴 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척하거나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핑계를 대며 슬그머니 달아난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어리석은 난 오늘 어떤 핑계로 달아날 것인가? 가끔은 비겁해도 좋으니까 아주 가끔은 용기를 내어 통제하고 선택할 수 있길 바란다.^^ 살 날이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낭비할 시간은 조금도 없었다고 하지 않은가? 어리석은 선택을 할지라도 비겁하게 달아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달리기도 그리 잘 하지도 못하면서..^^ 한참을 헉헉거리더니 갑자기 아무런 일 없듯이 걸어가는 내 모습이 자꾸 떠오르는 이윤?^^
악마와 미스프랭
지은이:파울로 코엘료 역자:이상해 출판사:문학동네
줄거리:사랑에 맞닥뜨린 인간의 내면과 일주일 동안의 사건을 다룬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와 죽음을 다룬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에 이은 '그리고 일곱 번째 날…' 3부작의 완결편이다. 베스코스라는 한 시골마을에 낯선 이방인이 찾아온 후 벌어지는 일주일간의 사투를 그리고 있다. 이방인은 마을 호텔 바(bar)의 여종업원인 미스 프랭에게 막대한 양의 금괴를 보여주며 마을사람들의 목숨을 담보로 한 어둠의 냄새를 풍기는 비밀스러운 제안을 하고, 이후 베스코스 주민들은 선악에 관한 악마의 시험을 당하게 되는데…….
내용:
작은 마을 베스코스!! 배르타는 남편을 여읜 후 15년 동안 자기 집 앞에 앉아 뭔가를 살피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악마를 데리고 지상을 배회하는 한 중년 남자가 베스코스에 접어들었고 하나밖에 없는 호텔로 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 중년 남자는 쉰두 살의 카를로스로 자신이 판 무기에 그의 가족이 테러리스트에 의해 살해되었다. 그래서 카를로스는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 천국인지 지옥인지, 인간이 선한가, 악한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진실 그리고 유혹을 받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싶어 그 시험대를 평화로운 베르스코로 선택했다. 카를로스는 그곳 호텔 종업원 샹탈에게 금괴를 보여주고 제안을 한다. 사랑, 평화 연민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 와서 그곳 주민들이 ‘도둑질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라는 계명을 어기게 할 수 있을지 시험해보자는 계획으로 일주일 안에 마을에 누군가 죽는다면 마을사람들에게 금괴 10개를 줄 것이며 그 말을 전해 준 샹탈에 금괴 1개를 주겠다고 말한다. 샹탈은 갈등 끝에 그 금괴를 훔치러 가나 ‘도둑질하지 말라’계명을 깨뜨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양심 때문이 아니라,. 더럭 겁이 나 금괴를 그대로 두고 내려온다. 결국 그년 마을 사람들에게 카를로스의 제안을 전한다. 샹탈은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고, 그녀는 낳아다는 죄책감으로 어머님 일찍 돌아가시고, 그녀의 할머니가 삯바느질로 샹탈을 키웠다. 샹탈은 이러한 불공평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마을이 사람들이 어떻게 변해가든.... 협조도, 방해도 하고 싶지 않았다. 처음에 마음사람들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조금씩 금괴에 대한 욕심이 생겼고 신부도 이 마을에 부임한 이래로 처음으로 성당에 사람들로 가득 찼고, 악의 모습을 드러내야 사람들이 선의 가치를 이해할 수 있다고, 중죄를 저지르자마자 마을사람들은 곧 회개할 것이고, 성당이 그들의 유일한 안식처가 될 거라고 생각하고, 그 제안에 적극 찬성한다. 신부는 예수님께서 자신은 선하지 않으시고, 오로지 하느님만이 선하신다고 우리가 죄를 지어도 용서해 주실 거라며, 설교함으로써 순식간에 마을사람들은 그 제안에 대한 거리낌이 사라지게 되었고, 애향심으로 고무되었다. 신부와 읍장 그리고 마을사람은 그 희생자로 자기 목숨을 위해 싸울 힘조차 없는 죄 없는 늙은 베르타로 결정하기로 합의한다. 베르타를 희생자로 받치기로 하는 날 마을사람들은 숲 속의 빈터에 도착했고, 그녀를 향해 총을 조준하다. 하지만 그 순간 “잠깐!” 한 여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미스 프랭이었다. 이것은 우릴 영원한 저주와 죽음으로 이끄는 함정이라고, 금은 손아귀에 들어오자마자 손가락 사이로 빠져 달아나버릴 거라고, 금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먹을 수도, 마실 수도, 통용될 수도 없다고 샹턀은 마을사람에게 말한다. 사람들은 두려움과 수치심이 엄습해 오고 죄책감이 들었지만 ‘반대합니다’라고 말할 용기를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샹탈의 말을 듣고 사람들은 조금씩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샹탈은 카롤로스에게 금을 현금으로 환산해 받고 베스코스를 떠난다. ============== 《최후의 만찬》에 얽힌 전설에 따르면 예수와 그를 배신한 유다의 모델은 같은 사람이라고 한다. 선과 악의 얼굴이 똑같다고, 오로지 선과 악은 인간 존재의 길과 마주치는 순간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범죄자 아합과 성인 사뱅은 똑같은 본능을 가지고 있고, 아합은 성인 사뱅이 자기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범죄자로 사는 걸 포기하고, 존경받는 사람으로 변모해 간다. 인간의 마음속에서는 선과 악의 대결이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고, 그 전투는 끝나지 않을 것이며, 오로지 모든 것이 통제와 선택의 문제일 뿐이라는 것을 아합과 사뱅을 통해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선악설이든 선성설이든 성무성악설이든 우리가 선과 악을 알게 되고, 나누기 시작하면서부터 그 둘 사이에서 헤매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아닌지... 선하다고 악하다고 말할 순 없지만, 한쪽이 이길 수도 있겠지만, 그 싸움이 끝나지 않겠지만, 그 사이에서 우린 통제와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어느 쪽이든 우리 스스로 통제하고 선택하면 되는 것이라고... 우리의 본질이 어떤 든 우린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 'Constantine'에서 천사 가브리엘은 사탄을 불러들인다. 사람들에게 공포를 주어 경건하게 만들고자 천사가 사탄의 아들을 부활시키려는 일을 돕는다. 마치 이 책의 신부처럼^^ 천사니 악마니....선하든 악하든 그 어떤 쪽이든 우리 자신의 통제와 선택의 문제이라는 것이 참으로 맘에 든다. 하지만 지금은 난 그 경계를 모르겠다. 그래서 통제와 선택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정말 모르겠다. 한없이 착할 수도 악할 수도 없다는 것을 알지만, 선이든 악이든 내가 통제와 선택할 수 있다는 걸 알겠지만, 때론 그 전투에 휘말리기 싫고 비겁하게 그 중간에서 헤매지 않은 척.... 눈치를 봐 가면서 다수의 쪽으로 몸을 맡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순간에 삶은 우리를 낙관에 봉착시켜 우리의 용기와 변화의 의지를 시험한다. 그럴 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척하거나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핑계를 대며 슬그머니 달아난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어리석은 난 오늘 어떤 핑계로 달아날 것인가? 가끔은 비겁해도 좋으니까 아주 가끔은 용기를 내어 통제하고 선택할 수 있길 바란다.^^ 살 날이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낭비할 시간은 조금도 없었다고 하지 않은가? 어리석은 선택을 할지라도 비겁하게 달아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달리기도 그리 잘 하지도 못하면서..^^ 한참을 헉헉거리더니 갑자기 아무런 일 없듯이 걸어가는 내 모습이 자꾸 떠오르는 이윤?^^
2008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