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울고 웃게 만들던 광대인생 40년째. 요즘 그의 사연을 들으면 삶이 곧 슬픔과 해학의‘마당놀이’였다는 생각이 든다. 만나면 언젠가 헤어진다는 말이 노년의 흐느낌 속에 묻어난 인터뷰였다.
당뇨로 15년 동안 투병하던 아내를 지난 10월 저세상으로 떠나보냈다. 11월초에는 병상에 누운 엄마를 대신하던 딸을 눈물로 시집보냈다.
요즘 윤문식은 쓸쓸하다. 그런 그가 다시 광대로 나선다. 11월 20일부터 서울 상암동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리는‘마당놀이 심청’의 심봉사로 출연한다.
흔히 마당놀이는 슬픔과 해학의 무대라 한다. 슬픔은 그렇다 치고 관객을 웃겨야 하는건 괴로운 일 중 하나다. 이번 무대에서 심봉사의 열연이 펼쳐진다면, 인간 윤문식의 희로애락이 녹아났기 때문이다. 마당놀이 무대준비와 연습이 한창인 월드컵 경기장에서 그를 만났다. 기온이 영하권으로 떨어진 그날, 윤문식은 세월의 때가 묻은 바바리코트 깃을 여미며 기자 앞에 섰다.
40을 공자 나이로 하면 불혹이다. 그런데 윤문식은 광대 인생 40년을 여전한 유혹이라고 말한다. 그는“남들은 40년이라지만 내게는 공연 때마다 자식 결혼시키는 것처럼 설렌다”면서“공연마다 변화무쌍해서 겁이 난다. 무대는 언제나 자신과의 싸움이다”라고 했다.
마당놀이 출연은 2800회를 넘어섰다. 사람들은 그를‘마당놀이 인간문화재’라고 칭하는데, 자신은‘극쟁이’, ‘광대’라고 했다. ‘마당놀이 심청’(극단 미추. 손진책 연출)으로 출연 횟수를 늘린다. 윤문식은 내년이면 3000회를 채울 것 같다면서, 거기서 다시 전환점을 찾을 것이라고 했다. 지나온 삶이나, 다가올 삶이나 분명한 그의 역할은‘광대’.
“15년 동안 이별 연습을 한 거요. 그런데 그게 충분하지 않았나 봐요. 지방 공연을 하느라 임종을 지키지 못했는데, 막상 저세상으로 떠났다는 말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더군요. 연기나 삶이나, 완벽함은 없는 거죠. 그러니 그렇게 뭔가에 달려드는 것 아니겠어요.”
윤문식은‘마당놀이 심청’과 묘한 인연이 있다고 말한다. 7년 전 공연 당시 아내의 병상을 지켰고, 지금은 아내가 떠난 뒤라 묘하다는 것이다. 심청의 첫 대본 읽기 연습은 실패했다. 절절한 장면에서 자신의 처지를 떠올리느라 눈물을 참을 수 없어서 비롯된 일이다.
“심청의 젖먹이 엄마를 찾아 나설 때, 심청이 공양미 삼백 석에 팔릴 때 등등 네 번의 절절한 장면이 나오는데, 그때가 힘들어요. 내 눈물이 터지면 공연이 안 되니까,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긴 하는데….”
11월 20일 첫 무대는 아내의 사십구재 날짜와 겹친다. 공연에 앞서 그는 일산 청아공원에 안치된 아내를 찾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혼백이라고 한다. 혼은 떠났고 백(몸)은 남았는데, 몸이라도 깨끗한 곳에서 살게 하고 싶었다”며 공원에 안치한 이유를 설명했다. 아내에게는 “하늘에서 남편 공연 잘 보시오”라는 말을 전하겠다고 했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처는 이 광대 남편의 열렬한 후원자이자 말 그대로 아내였어요. ‘돈 걱정 말고 당신은 예술만 하쇼’라고 해서 예술만 했더니, 나중엔 돈 좀 벌어 오라며 바가지를 긁고.(웃음) 내가 셰익스피어 무대에 광대 역할로 아홉 번 섰는데, 주인공보다는 광대가 적임이란 걸 잘 알았어요. 무대 돌아가는 걸 아는 아내는 평범한 관객은 아니었죠.”
이제 남은 자는 추억과 미련을 가슴에 안고 산다. “아내가 새우 넣은 아욱국을 좋아했어요. 아내가 출근하면 내가 아침 느지막이 일어나 아욱국을 끓이고 도시락을 챙겨 학교에 갔다 줬죠. 아내는 남편이 가져올 도시락을 기다리며 오전을 보냈을 거 아니에요? 돌아보면 그때가 참 행복한 시절이었는데….”(눈물)
부부의 연을 백년해로라 한다.“ 시경”에 나오는 말이다. 언제 죽을지 모르고 고향에 돌아갈 때를 기다리는 전쟁터에 나간 병사의 심정을 그린 시에서 따온 말이다. 그에겐 고향에 돌아가도 기다릴 아내가 없다. 무대 위 병사는 한스럽다고 말한다.
“내가 셈을 해보니 아내와 14만 날 정도 살았는데, 그중에서 오롯이 둘만의 시간을 보낸 게 1000일이 안 돼요. 무대에 나가랴, 자식 챙기랴, 돈 걱정하랴, 부부간의 시간은 없습디다. 이게 얼마나 끔찍한 얘기냔 말예요. 우리는 그렇게 바보처럼 살아가고 있어요.”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 아내는 남편에게 쪽지를 남겼다. “아저씨, 그동안 고생 많이 했어요.”정신이 혼미해 남편을 몰라본 아내가 남긴 쪽지를 떠올리며 그는 흐느꼈다.
“누군지도 모르면서 고마웠나 봐요. 나와 결혼 안 했으면 그런 병에 걸리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윤문식은 남몰래 잘 운다고 했다. 혼자 실컷 울고 나면 그것만큼 속 풀리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한창때는 하루에 소주 열 병을 마셨다. 주당이라서가 아니라, ‘극쟁이’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아서 술이 물처럼 들어가더란 얘기. 요즘은 건강을 생각해 양을 줄였다. 그래도 매일 밤 소주 한 병을 마신 뒤에야 잠이 든다. 아내와 사별한 뒤 스며든 외로움이 한 이유다.
이달 초 그는 딸을 시집보냈다. 윤정씨(29)는 중학교 때부터 엄마 병간호와 살림을 대신하던 기특한 딸. 광대 아빠의 든든한 팬을 자청 했고, 침울한 아빠에겐‘아자!’를 외치던 집안의 활력소였다.
“공양미 삼백 석에 팔린 심청이 인당수로 가는 배를 탈 때가 생각났어요. 결혼이란 게 한편으로 인당수로 가는 것 아니겠어요. 파도를 넘지 못하면 물거품이 되는 거고, 파도를 헤치고 나가면 왕후가 되잖아요. 파도를 잘 헤쳐 나가라, 그렇게 마음으로 빌며 떠나보냈죠.” 보통 집안에 부모의 조사가 있으면 자식의 경사를 미룬다. 딸 역시 쉬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사위가 결혼을 일 년 미루겠다고 했는데, 내가 엄마도 바랄 거라는 말로 강행했어요. 이미 아내가 결혼 날짜를 알고 있었어요. 사위 될 사람이 병원에 왔는데, 아내가 들어오지 말고 병실 문을 반만 열어 놓고 얘기하자고 해요. 아픈 장모의 모습을 사위에게 보여 주고 싶었겠어요? 그래도 사위가 들어오겠다니 병실 불을 끄고 만났어요. 곁에 온 사위 손을 잡고는 미안하다는 말만 계속 하고….”
윤문식은 사위의 마음 씀씀이가 고맙다고 했다. 아빠 심정에 딸 달라는 사위가 도둑놈 같더니만, “신접살림을 병원 근처에 차리고 장모를 돌보겠다”는 그 마음에 닫았던 빗장을 열었다. 결혼 전날, 윤문식은 딸의 손을 잡고 석별의 이야기를 나눴다.
“아빠 생각 너무 많이 하지 마라. 효도할 생각하지 마라. 대신 10일에 하루는 부부 둘만의 시간을 보내라.”백년해로를 못한 아빠의 속내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말이다. 아빠가 결혼을 앞둔 딸에게 한마디 기우의 말을 덧붙였다. “내일(결혼식 당일)은 절대 아빠 얼굴을 쳐다보지 마라. 대신 아빠 쳐다볼 일이 있으면 넥타이를 봐라.”
딸이 아빠 얼굴을 보면 눈물을 쏟고 예쁜 화장이 다 지워질까 봐 건넨 말이라고 했다. 그러나 결혼식에서 딸은 시종 울었고, 아버지는 “왜 우냐, 울지 말라”면서 함께 눈물을 흘렸다. 마음 붙잡는다고 그대로 되는 게 인생사는 아니다. 특히 들고 나는 건 예측하기 어렵다. 광대 윤문식이 그런 인생사를 모를 리 없다. 쓸쓸하다고 모든 쓸쓸함을 내색하지 않는 그는 요즘 집이 암자 같다는 말을 툭 내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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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침침하여 이제 그만 모니터를 꺼불까 허는디
책상머리에 있는 휴대폰이 껌벅껌벅 문자 메시지가 왔다고 알리고 있네...
“아빠, 저녁메뉴 김치떡만두국 어떠셔?”
이 사람이 맨날 아빠여?
아빠가 머시어, 아빠가?
27년이나 가치 사란는디 아적또 아빠여?
그나저나 저 말씨미 도통 먼 말씨민지....
김치떡만두국을 포장하여 사오라는 건지
와서 김치떡만두국을 시켜서 먹자는 건지
모처럼 김치떡만두국을 맹그러 주시거따능 건지....
나도 아내를 위한 광대가 되고싶다.
아내가 나를 보고 웃고 행복해하고 편안해지게 해주고 싶다...
아내를 위해 광대를 오래오래 하다가 아내보다 먼저 하늘에 가서 아내의 자리를 마련해놓고 하늘나라의 길도 훤히 익힌 다음, 아내를 기다리고 싶다....
나도 아내의 광대가 되고싶다
(하와이 오하우 마카푸우 해변)
[나도 아내에게 광대가 되고 싶다]
아래 글은 여성중앙 2009. 1월호에 실린 강승민 기자의 연극배우 윤문식에 대한 글중에서 발췌한 것입니다(http://news.joins.com/article/3431575.html?ctg=1502).
남을 울고 웃게 만들던 광대인생 40년째. 요즘 그의 사연을 들으면 삶이 곧 슬픔과 해학의‘마당놀이’였다는 생각이 든다. 만나면 언젠가 헤어진다는 말이 노년의 흐느낌 속에 묻어난 인터뷰였다.
당뇨로 15년 동안 투병하던 아내를 지난 10월 저세상으로 떠나보냈다. 11월초에는 병상에 누운 엄마를 대신하던 딸을 눈물로 시집보냈다.
요즘 윤문식은 쓸쓸하다. 그런 그가 다시 광대로 나선다. 11월 20일부터 서울 상암동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리는‘마당놀이 심청’의 심봉사로 출연한다.
흔히 마당놀이는 슬픔과 해학의 무대라 한다. 슬픔은 그렇다 치고 관객을 웃겨야 하는건 괴로운 일 중 하나다. 이번 무대에서 심봉사의 열연이 펼쳐진다면, 인간 윤문식의 희로애락이 녹아났기 때문이다. 마당놀이 무대준비와 연습이 한창인 월드컵 경기장에서 그를 만났다. 기온이 영하권으로 떨어진 그날, 윤문식은 세월의 때가 묻은 바바리코트 깃을 여미며 기자 앞에 섰다.
40을 공자 나이로 하면 불혹이다. 그런데 윤문식은 광대 인생 40년을 여전한 유혹이라고 말한다. 그는“남들은 40년이라지만 내게는 공연 때마다 자식 결혼시키는 것처럼 설렌다”면서“공연마다 변화무쌍해서 겁이 난다. 무대는 언제나 자신과의 싸움이다”라고 했다.
마당놀이 출연은 2800회를 넘어섰다. 사람들은 그를‘마당놀이 인간문화재’라고 칭하는데, 자신은‘극쟁이’, ‘광대’라고 했다. ‘마당놀이 심청’(극단 미추. 손진책 연출)으로 출연 횟수를 늘린다. 윤문식은 내년이면 3000회를 채울 것 같다면서, 거기서 다시 전환점을 찾을 것이라고 했다. 지나온 삶이나, 다가올 삶이나 분명한 그의 역할은‘광대’.
“15년 동안 이별 연습을 한 거요. 그런데 그게 충분하지 않았나 봐요. 지방 공연을 하느라 임종을 지키지 못했는데, 막상 저세상으로 떠났다는 말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더군요. 연기나 삶이나, 완벽함은 없는 거죠. 그러니 그렇게 뭔가에 달려드는 것 아니겠어요.”
윤문식은‘마당놀이 심청’과 묘한 인연이 있다고 말한다. 7년 전 공연 당시 아내의 병상을 지켰고, 지금은 아내가 떠난 뒤라 묘하다는 것이다. 심청의 첫 대본 읽기 연습은 실패했다. 절절한 장면에서 자신의 처지를 떠올리느라 눈물을 참을 수 없어서 비롯된 일이다.
“심청의 젖먹이 엄마를 찾아 나설 때, 심청이 공양미 삼백 석에 팔릴 때 등등 네 번의 절절한 장면이 나오는데, 그때가 힘들어요. 내 눈물이 터지면 공연이 안 되니까,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긴 하는데….”
11월 20일 첫 무대는 아내의 사십구재 날짜와 겹친다. 공연에 앞서 그는 일산 청아공원에 안치된 아내를 찾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혼백이라고 한다. 혼은 떠났고 백(몸)은 남았는데, 몸이라도 깨끗한 곳에서 살게 하고 싶었다”며 공원에 안치한 이유를 설명했다. 아내에게는 “하늘에서 남편 공연 잘 보시오”라는 말을 전하겠다고 했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처는 이 광대 남편의 열렬한 후원자이자 말 그대로 아내였어요. ‘돈 걱정 말고 당신은 예술만 하쇼’라고 해서 예술만 했더니, 나중엔 돈 좀 벌어 오라며 바가지를 긁고.(웃음) 내가 셰익스피어 무대에 광대 역할로 아홉 번 섰는데, 주인공보다는 광대가 적임이란 걸 잘 알았어요. 무대 돌아가는 걸 아는 아내는 평범한 관객은 아니었죠.”
이제 남은 자는 추억과 미련을 가슴에 안고 산다. “아내가 새우 넣은 아욱국을 좋아했어요. 아내가 출근하면 내가 아침 느지막이 일어나 아욱국을 끓이고 도시락을 챙겨 학교에 갔다 줬죠. 아내는 남편이 가져올 도시락을 기다리며 오전을 보냈을 거 아니에요? 돌아보면 그때가 참 행복한 시절이었는데….”(눈물)
부부의 연을 백년해로라 한다.“ 시경”에 나오는 말이다. 언제 죽을지 모르고 고향에 돌아갈 때를 기다리는 전쟁터에 나간 병사의 심정을 그린 시에서 따온 말이다. 그에겐 고향에 돌아가도 기다릴 아내가 없다. 무대 위 병사는 한스럽다고 말한다.
“내가 셈을 해보니 아내와 14만 날 정도 살았는데, 그중에서 오롯이 둘만의 시간을 보낸 게 1000일이 안 돼요. 무대에 나가랴, 자식 챙기랴, 돈 걱정하랴, 부부간의 시간은 없습디다. 이게 얼마나 끔찍한 얘기냔 말예요. 우리는 그렇게 바보처럼 살아가고 있어요.”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 아내는 남편에게 쪽지를 남겼다. “아저씨, 그동안 고생 많이 했어요.”정신이 혼미해 남편을 몰라본 아내가 남긴 쪽지를 떠올리며 그는 흐느꼈다.
“누군지도 모르면서 고마웠나 봐요. 나와 결혼 안 했으면 그런 병에 걸리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윤문식은 남몰래 잘 운다고 했다. 혼자 실컷 울고 나면 그것만큼 속 풀리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한창때는 하루에 소주 열 병을 마셨다. 주당이라서가 아니라, ‘극쟁이’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아서 술이 물처럼 들어가더란 얘기. 요즘은 건강을 생각해 양을 줄였다. 그래도 매일 밤 소주 한 병을 마신 뒤에야 잠이 든다. 아내와 사별한 뒤 스며든 외로움이 한 이유다.
이달 초 그는 딸을 시집보냈다. 윤정씨(29)는 중학교 때부터 엄마 병간호와 살림을 대신하던 기특한 딸. 광대 아빠의 든든한 팬을 자청 했고, 침울한 아빠에겐‘아자!’를 외치던 집안의 활력소였다.
“공양미 삼백 석에 팔린 심청이 인당수로 가는 배를 탈 때가 생각났어요. 결혼이란 게 한편으로 인당수로 가는 것 아니겠어요. 파도를 넘지 못하면 물거품이 되는 거고, 파도를 헤치고 나가면 왕후가 되잖아요. 파도를 잘 헤쳐 나가라, 그렇게 마음으로 빌며 떠나보냈죠.” 보통 집안에 부모의 조사가 있으면 자식의 경사를 미룬다. 딸 역시 쉬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사위가 결혼을 일 년 미루겠다고 했는데, 내가 엄마도 바랄 거라는 말로 강행했어요. 이미 아내가 결혼 날짜를 알고 있었어요. 사위 될 사람이 병원에 왔는데, 아내가 들어오지 말고 병실 문을 반만 열어 놓고 얘기하자고 해요. 아픈 장모의 모습을 사위에게 보여 주고 싶었겠어요? 그래도 사위가 들어오겠다니 병실 불을 끄고 만났어요. 곁에 온 사위 손을 잡고는 미안하다는 말만 계속 하고….”
윤문식은 사위의 마음 씀씀이가 고맙다고 했다. 아빠 심정에 딸 달라는 사위가 도둑놈 같더니만, “신접살림을 병원 근처에 차리고 장모를 돌보겠다”는 그 마음에 닫았던 빗장을 열었다. 결혼 전날, 윤문식은 딸의 손을 잡고 석별의 이야기를 나눴다.
“아빠 생각 너무 많이 하지 마라. 효도할 생각하지 마라. 대신 10일에 하루는 부부 둘만의 시간을 보내라.”백년해로를 못한 아빠의 속내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말이다. 아빠가 결혼을 앞둔 딸에게 한마디 기우의 말을 덧붙였다. “내일(결혼식 당일)은 절대 아빠 얼굴을 쳐다보지 마라. 대신 아빠 쳐다볼 일이 있으면 넥타이를 봐라.”
딸이 아빠 얼굴을 보면 눈물을 쏟고 예쁜 화장이 다 지워질까 봐 건넨 말이라고 했다. 그러나 결혼식에서 딸은 시종 울었고, 아버지는 “왜 우냐, 울지 말라”면서 함께 눈물을 흘렸다. 마음 붙잡는다고 그대로 되는 게 인생사는 아니다. 특히 들고 나는 건 예측하기 어렵다. 광대 윤문식이 그런 인생사를 모를 리 없다. 쓸쓸하다고 모든 쓸쓸함을 내색하지 않는 그는 요즘 집이 암자 같다는 말을 툭 내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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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침침하여 이제 그만 모니터를 꺼불까 허는디
책상머리에 있는 휴대폰이 껌벅껌벅 문자 메시지가 왔다고 알리고 있네...
“아빠, 저녁메뉴 김치떡만두국 어떠셔?”
이 사람이 맨날 아빠여?
아빠가 머시어, 아빠가?
27년이나 가치 사란는디 아적또 아빠여?
그나저나 저 말씨미 도통 먼 말씨민지....
김치떡만두국을 포장하여 사오라는 건지
와서 김치떡만두국을 시켜서 먹자는 건지
모처럼 김치떡만두국을 맹그러 주시거따능 건지....
나도 아내를 위한 광대가 되고싶다.
아내가 나를 보고 웃고 행복해하고 편안해지게 해주고 싶다...
아내를 위해 광대를 오래오래 하다가 아내보다 먼저 하늘에 가서 아내의 자리를 마련해놓고 하늘나라의 길도 훤히 익힌 다음, 아내를 기다리고 싶다....
(‘08. 12. 23. 최영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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