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어둠이 갈 길을 잃어 갈팡질팡할 즈음에 시계알람이 울렸다. 물론 기분 좋은 소리였다. 일요일 새벽의 알람만큼 기분 좋은 소리는 없다. 그 소리는 내 감정을 송두리째 빼앗아 갔던 이미 한물간 노래의 첫 멜로디가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올 때만큼이나 짜릿하고 기분 좋은 소리다. 일요일 새벽의 알람소리에 잠에서 깨어 시계를 바라보니 시계 침은 6시 31분을 향해 천천히 일정한 간격을 두고 걷고 있었다. 나도 곧 정신을 차리고 화장실로 발길을 옮겼다.
누구나가 그렇듯이 시작하기만 한다면 그건 정말 멋진 일인 것이다. 일요일 새벽의 알람에 잠을 깨어 하루를 시작한 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렇다는 것은 내가 그녀를 처음 보게 된 일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는 것을 암시한다. 건강에 이상을 느낀 나는 금연과 함께 매주 일요일 새벽에 공원을 달리기로 했다. 처음에는 불편함을 느꼈지만 곧 모든 일은 순조로워졌으며 계획한대로 진행되어져 갔다. 공원을 달리는 일에 익숙해질 즈음에 그녀를 처음 만났다. 물론 그녀의 강아지와 함께 말이다.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땐 이른 새벽시간의 강아지와의 산책이 기묘하게 느껴졌지만, 그 또한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익숙해지고 결국에는 그 모습이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모습이 되어져 있었다. 그녀의 강아지는 항상 그녀를 한참이나 앞질러 가다 그녀가 있는 쪽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뚱거리다 그녀가 걸어오고 있는 것을 확인 한 후에 다시 한참을 가다가를 몇 번이나 반복한다. 하지만 그녀는 오로지 그녀의 시선을 늘 그녀의 발밑의 메마른 흙 위에 가져다 댈 뿐 이였다. 그녀의 강아지는 이러한 그녀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제 혼자 신나 한참을 뛰다 기다리다 뛰다 기다리다를 반복할 뿐이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면 그녀는 외로워 보였고 그녀의 강아지는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워 보였다. 그 모습을 지나쳐 28발자국을 더 달려 뒤 돌아 보면 그녀의 외로움은 한층 더 깊어 보였다. 심지어 그 모습은 지난 계절이 잊혀져 누구도 지난 계절에 대해서 떠들어 대지 않을 때 즈음에는 그녀의 외로움이 더 이상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어져 갔다. 그 둘은 도무지 친밀해 보이지 않았으며 무척이나 어색해 보였다.
그녀와 그녀의 강아지는 그렇게 매주 일요일 새벽이면 서로 어울리지 않는 산책을 했다. 사실 그녀와 그녀의 강아지가 일요일 새벽에만 그 어울리지 않는 산책을 하는지 매일같이 나와서 그 어울리지 않는 산책을 하는지는 일요일 새벽의 달리기를 하는 나로서는 알 수 없다. 다만, 나로서는 그 어울리지 않는 산책을 매일같이 해낼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잠정적으로 정하고선 그 기묘한 산책을 일요일 새벽의 어울리지 않는 산책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사실 어디가서 떠들어 댈 만큼 대단한 일도 아니지만, 그래도 그에 걸맞는 이름하나쯤은 있는 편이 그나마 그 어색한 모양에 위로가 될 수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계절은 다시 바뀌고 지난 계절의 입던 옷들이 전부 그 자취를 감추었을때 그녀와 그녀의 강아지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드디어 그 어색하고 어울리지 않던 일요일 새벽의 어울리지 않는 산책은 그 막을 내렸다. 나는 알 수 없는 시원함을 느꼈지만,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치통처럼 깊은 상실감에 빠졌다. 무척이나 낯설던 일요일 새벽의 어울리지 않는 산책은 내게는 더 이상 그 의미를 잃어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각인되어 버렸던 것이다. 그 낯설던 모습에 길들여졌던 나는 더 이상 그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은 무척이나 사려깊었던 이미 나를 떠나버린 옛 애인을 잃은 것과 같은 깊은 상실감에 빠져 버렸던 것 이다.
나로서는 그녀와 그녀의 강아지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그녀와 그녀의 강아지는 이곳의 산책에 길들여져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만들어 낼 수가 없음에 깊은 상실감에 빠져들어 이곳의 바람이나 햇빛, 공기 따위를 느끼지 못할 먼 곳으로 떠나 그녀와 그녀의 강아지는 새로워진 바람과 햇빛, 공기에 다시금 어색해져 또 다른 어울리지 않는 산책을 시작하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단순히 그 일요일 새벽의 어울리지 않는 산책에 싫증을 느껴 더 이상 그 어울리지 않는 산책을 그만 준 것일 수도 있다. 또, 그녀가 자살해버렸을 수도 있고, 그녀의 강아지가 죽어버렸을 수도 있다. 그녀가 떠났든 싫증이 났든 그녀와 그녀의 강아지가 죽었든 그것은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다. 꽤 오랜 시간동안 일요일 새벽의 어울리지 않는 산책을 훔쳐보면서 그녀와는 단 한 번도 인사를 나눈 적이 없고 그럴 생각도 해보지 않았으며 그녀가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지에 대해서 혹은 그녀의 강아지가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지에 대해선 전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꽤나 기묘했던 일요일 새벽의 어울리지 않는 산책은 아주 가까운 시일에 그런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 조차 더 이상 기억이 나지 않을 것이며, 나는 여전히 금연을 하고 매주 일요일 새벽이면 아주 기분 좋은 알람소리에 잠에서 깨어 공원을 달릴 것이다.
일요일 새벽의 어울리지 않는 산책
새벽의 어둠이 갈 길을 잃어 갈팡질팡할 즈음에 시계알람이 울렸다. 물론 기분 좋은 소리였다. 일요일 새벽의 알람만큼 기분 좋은 소리는 없다. 그 소리는 내 감정을 송두리째 빼앗아 갔던 이미 한물간 노래의 첫 멜로디가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올 때만큼이나 짜릿하고 기분 좋은 소리다. 일요일 새벽의 알람소리에 잠에서 깨어 시계를 바라보니 시계 침은 6시 31분을 향해 천천히 일정한 간격을 두고 걷고 있었다. 나도 곧 정신을 차리고 화장실로 발길을 옮겼다.
누구나가 그렇듯이 시작하기만 한다면 그건 정말 멋진 일인 것이다. 일요일 새벽의 알람에 잠을 깨어 하루를 시작한 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렇다는 것은 내가 그녀를 처음 보게 된 일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는 것을 암시한다. 건강에 이상을 느낀 나는 금연과 함께 매주 일요일 새벽에 공원을 달리기로 했다. 처음에는 불편함을 느꼈지만 곧 모든 일은 순조로워졌으며 계획한대로 진행되어져 갔다. 공원을 달리는 일에 익숙해질 즈음에 그녀를 처음 만났다. 물론 그녀의 강아지와 함께 말이다.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땐 이른 새벽시간의 강아지와의 산책이 기묘하게 느껴졌지만, 그 또한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익숙해지고 결국에는 그 모습이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모습이 되어져 있었다. 그녀의 강아지는 항상 그녀를 한참이나 앞질러 가다 그녀가 있는 쪽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뚱거리다 그녀가 걸어오고 있는 것을 확인 한 후에 다시 한참을 가다가를 몇 번이나 반복한다. 하지만 그녀는 오로지 그녀의 시선을 늘 그녀의 발밑의 메마른 흙 위에 가져다 댈 뿐 이였다. 그녀의 강아지는 이러한 그녀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제 혼자 신나 한참을 뛰다 기다리다 뛰다 기다리다를 반복할 뿐이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면 그녀는 외로워 보였고 그녀의 강아지는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워 보였다. 그 모습을 지나쳐 28발자국을 더 달려 뒤 돌아 보면 그녀의 외로움은 한층 더 깊어 보였다. 심지어 그 모습은 지난 계절이 잊혀져 누구도 지난 계절에 대해서 떠들어 대지 않을 때 즈음에는 그녀의 외로움이 더 이상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어져 갔다. 그 둘은 도무지 친밀해 보이지 않았으며 무척이나 어색해 보였다.
그녀와 그녀의 강아지는 그렇게 매주 일요일 새벽이면 서로 어울리지 않는 산책을 했다. 사실 그녀와 그녀의 강아지가 일요일 새벽에만 그 어울리지 않는 산책을 하는지 매일같이 나와서 그 어울리지 않는 산책을 하는지는 일요일 새벽의 달리기를 하는 나로서는 알 수 없다. 다만, 나로서는 그 어울리지 않는 산책을 매일같이 해낼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잠정적으로 정하고선 그 기묘한 산책을 일요일 새벽의 어울리지 않는 산책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사실 어디가서 떠들어 댈 만큼 대단한 일도 아니지만, 그래도 그에 걸맞는 이름하나쯤은 있는 편이 그나마 그 어색한 모양에 위로가 될 수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계절은 다시 바뀌고 지난 계절의 입던 옷들이 전부 그 자취를 감추었을때 그녀와 그녀의 강아지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드디어 그 어색하고 어울리지 않던 일요일 새벽의 어울리지 않는 산책은 그 막을 내렸다. 나는 알 수 없는 시원함을 느꼈지만,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치통처럼 깊은 상실감에 빠졌다. 무척이나 낯설던 일요일 새벽의 어울리지 않는 산책은 내게는 더 이상 그 의미를 잃어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각인되어 버렸던 것이다. 그 낯설던 모습에 길들여졌던 나는 더 이상 그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은 무척이나 사려깊었던 이미 나를 떠나버린 옛 애인을 잃은 것과 같은 깊은 상실감에 빠져 버렸던 것 이다.
나로서는 그녀와 그녀의 강아지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그녀와 그녀의 강아지는 이곳의 산책에 길들여져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만들어 낼 수가 없음에 깊은 상실감에 빠져들어 이곳의 바람이나 햇빛, 공기 따위를 느끼지 못할 먼 곳으로 떠나 그녀와 그녀의 강아지는 새로워진 바람과 햇빛, 공기에 다시금 어색해져 또 다른 어울리지 않는 산책을 시작하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단순히 그 일요일 새벽의 어울리지 않는 산책에 싫증을 느껴 더 이상 그 어울리지 않는 산책을 그만 준 것일 수도 있다. 또, 그녀가 자살해버렸을 수도 있고, 그녀의 강아지가 죽어버렸을 수도 있다. 그녀가 떠났든 싫증이 났든 그녀와 그녀의 강아지가 죽었든 그것은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다. 꽤 오랜 시간동안 일요일 새벽의 어울리지 않는 산책을 훔쳐보면서 그녀와는 단 한 번도 인사를 나눈 적이 없고 그럴 생각도 해보지 않았으며 그녀가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지에 대해서 혹은 그녀의 강아지가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지에 대해선 전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꽤나 기묘했던 일요일 새벽의 어울리지 않는 산책은 아주 가까운 시일에 그런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 조차 더 이상 기억이 나지 않을 것이며, 나는 여전히 금연을 하고 매주 일요일 새벽이면 아주 기분 좋은 알람소리에 잠에서 깨어 공원을 달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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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ryan mcgin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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