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광주요가 운영하는 서울의 고급 한식당인 가온이 매달 1억 원씩의 적자를 내고 1년 만에 문을 닫는다는 기사를 읽었다. 기사에 따르면, "구미의 고급 식당 음식값은 1인당 500달러도 하지만, 한식은 100달러가 될 수 없다"는 것이 한국의 실정이고 손님들이 '한식은 싼 음식'이라는 편견의 벽을 넘지 못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즉, 한식의 고급화가 실패로 끝난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였다.
또, 서울의 17개 특급 호텔 중 한식당 갖추고 있는 곳이 4곳에 불과하다는 뉴스도 있었다. 이 기사의 분석에 의하면, 특급호텔 한식당이 문을 닫는 이유로 한식이 «노동집약적»이고, «그릇 숫자 : 반찬의 종류»가 많아 낭비가 많고 식자재 비용이 높아 경영이 어렵고, 한식의 특성상 냉면 전문, 육류 전문 등 전문 조리사를 필요로 하여 «인건비» 비중이 높아 수지 타산이 안 맞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에 갖게 되는 의문은, «고급요리»라 불리는 많은 다른 음식들은 그렇지 않은가? 하는 점이다. «반찬의 종류가 많아서 일하기가 힘들어요!»는 전 세계의 주방에서 일하는 다른 요리사들이 얼마나 치열한 노력을 기울이는지 모르는 무지한 자의 자기 변명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10가지 나물 반찬에 기울인 정성과 노력도 인정해야겠지만, 그 순간, 다른 이들도 ‘접시 위의 한 방울 소스를 위해 뼈를 치고 오븐에 굽고 수분을 더해서 72시간씩 끓이고 채에 걸러 졸이는 말도 안 되는 ‘비효율의 극치’의 과정’을 매일매일 행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접시의 가짓수에 대해서도, 프랑스 요리의 테이스팅 메뉴Menu Degustation 므뉘 데귀스따씨옹 이나, 일본의 카이세키 료리懐石料理 등을 보면, 한정식의 은 그나마 서비스이니 다행인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프랑스 요리의 경우, 한 번에 4~6개씩의 접시와 소스 그릇이 서비스 되고, 매번 은스픈과 식기를 가져가고 내어오며 테이블을 정리하는 이러한 서비스 과정을 가장 간단하게는 3회, 많게는 40회, 50회까지 거치는 경우가 있다.
전문 요리사에 대한 의견도 그렇다. 일반적인 프랑스 식당에서 « 차가운 전체, 뜨거운 전체, 고기파트, 생선파트, 디저트 »등으로 각 전문 영역이 구분되어 있는 것을 볼 때, 오히려 이는 제대로 된 음식을 서비스 하기 위해 지극히 당연한 것이 아닌가 한다. 한식의 서비스가 힘들다고 어리광을 부리기 보다는 대상/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는 더 많은 연구와 고민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프랑스의 경우는 프랑스는 루이 14세 때부터 사치품을 국가 수출 장려품목으로 지정하여 지원해 왔기 때문에 시민 혁명을 거쳐 왕가가 붕괴되는 비운을 겪으면서도 이러한 역사적 을 오늘날에까지 누리고 있다. 즉, 프랑스 제품은 호화롭고 고급스러운 것이라는 등식이 아직도 먹힌다는 것이다. 그와 함께, 프랑스 음식도 made in France가 갖는 priority를 십분 누리고 있다. 예전부터 프랑스에게 있어, 영국은 상놈의 나라였고 그보다 더 천박하고 상스러운 것이 미국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근대사를 주도한 앵글로 색슨에게는 프랑스에 대한 자격지심 있어서 프랑스적인 것은 오리지날의 오리지날이라는 우위를 부여했고, 마찬가지로 프랑스 음식도 화려하고 섬세한 궁정의 음식이자 왕족의 음식으로 대접받아 왔다. 그러면서 영미의 대중들에게 프랑스 음식은 범접하기 힘든 화려한 ‘환상’이 되고 ‘신화’가 된다. 그리하여 세계 최고의 식도락 도시로 리옹Lyon이 거론되고, 트뤼프truffe나 거위지방간foie gras, 샴페인 champagne, 캐비어caviar와 같은 프랑스적 식자재들이 세계 최고의 진미로 대접받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등에 업을 조상의 은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제 우리 스스로 « 신화 myth»를 창조해 내어야 하는 위치에 서 있다.
우리 것은 세계적이다. «공짜로» ?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 »라는 모토는 항상 통하는가.
처음엔 우리 것을 "신기하고 새로운" 것으로 봐 줄 수 있겠지만, 그 다음부터는 끝없는 고민과 상대에 대한 사랑이 담긴 ‘컨텐츠’가 있어야 세계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내 것이 이렇게 좋으니 취하시오!"가 아니라 "무엇을 원하든 당신에 맞추어 주겠소!" 의 마음가짐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모든 상품은 시장의 요구에 부응하고, 적합한 마케팅 기법을 가지고 있어야 상품 더 나아가 명품이 되지, 아니면 단지 하나의 물건에 지나지 않는다.
상대방에 대한 가 없는 독창성은 그저 일시적인 자기 만족에 지나지 않는다. 독창성을 갖기는 쉽다. 하지만 상대방에 대한 배련, 즉 商品性이 결여된 독창성은 컬트의 세계에만 머물러야 한다. 한식 세계화를 이야기 할 때 가슴 아픈 한 가지는, 우리는 에 대한 배려 없이, 근거 없는 자신감에 충만해 있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음식은 항암기능과 항산화 효과로만 팔아먹는 게 아니다. 기능성에 초점을 두고 싶으면 한식보다는 한약을 팔면 된다.
어쩌면 한식 세계화의 길을 일본의 기꼬망 간장soysauce Kikoman 신화와 노부 사시미Sashimi of chef Nobu 이야기를 통해서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기꼬망은 1970년대에 이미 일본 시장의 포화를 느끼고 미국 공장 설립을 위한 사전 조사팀을 미국에 파견했다. 그들은 말 그대로 사전 조사를 했다기 보다는 미국 시장이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거의 가미가재 수준으로 처절하게 미국 시장을 연구했다. 오늘날 우리가 익숙하게 먹는 데리야끼 소스 등의 간장을 이용한 수많은 레서피가 그들에 의해 만들어 졌다. 기꼬망사의 피눈물 섞인 노력과 연구의 덕분에 거대하게 성숙되고 확장된 전세계 간장 시장에서, 마켓 쉐어market share를 늘이기 위해 이런 저런 자기 변명을 늘어 놓는, 가령 ‘원조’를 내세우는 것 따위, 몇몇 회사들의 전략은 유치하고 비겁하게 느껴질 뿐이다.
노부의 또한 그렇다. 날 생선을 먹는 것을 야만스럽게 여기는 미국인 손님을 위해 사시미의 자존심을 버리고 그는 반조리라는 극단적이면서 사시미라는 아이덴티티identity (자아정체성)에 反하는 조치를 취하게 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가 먹는 사람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배려했다는 것이고 그것이 결국 고객을 감동시켜 지금의 세계적인 요리사 노부를 있게 했고, 전세계에서 가장 섬세한 음식으로 니혼료리日本料理를 꼽게 만드는 밑바탕이 되었다. 김치는 이렇게 먹어야 한다를 주입할 것이 아니라, 김치는 이렇게 먹을 수도 있다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얘기다.
한 때 한국 것이라면 드라마니 영화니 노래니 할 것 없이 동남아에다 내 놓기만 하면 문자 그대로 ‘대박’이 나던 시절이 있다. 흔히들 ‘한류열풍’이라던 바로 그것이다. 이제 대한민국 연예계에는 예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규모의 세계적 ‘스타’들이 즐비하지만, 외국에 먹힐만한 좋은 컨텐츠의 부재로 한류는 점점 사향길을 걷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혹자는 한식의 세계화와 관련하여, 스타 쉐프 부재를 이유로 들어, 스타 쉐프 양성이 시급하다고 하지만, 스타 쉐프 이전에 고객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한 노력이 담기고 배려가 느껴지는 컨텐츠가 필요하지 않을까.
의 균형감 있는 고민 - 변화를 두려워 하지 말자 !
이제 « 어떤 한식»으로 세계에 나아가야 하는지 고민해 보아야 할 때이다.
국제적인 한식 이벤트 / 페스티발에서 만나게 되는 대부분의 한국음식들은 궁중요리를 표방하는 고전의 구태의연한 반복일 때가 많다. 마치, 한국의 스타일을 알리고자 하는데, 2008년 현재 서울의 거리에서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 한복만을 가지고 이것이 우리의 스타일 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세계 속의이라는 이름으로 거듭나게 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과거의 것을 재현하거나 다른 것들과 섞는 정도가 아닌, 새로운 시각에 의한 «화학반응»을 거쳐 새로운 정체성을 획득하도록 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그것은 결국 역사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새롭고 다양한 문화를 체험한 오늘날의 요리사들이 전통의 재현과 새로운 문화의 받아들임이라는 고민을 조화롭게 풀어 감으로서 조금씩 해결되지 않을까 한다.
모든 이문화異文化간의 결합이 그러하겠지만 좋은 화학적 결합을 거쳤을 때엔 순수혈통으로서는 꿈도 꾸지 못한 매력을 발산해 내며 화려한 데뷔를 하게 된다. 바로 위에서 언급한 화학반응을 거쳐 획득한 새로운 자아 또는 제 3의 정체성이다. 이 말은 퓨전요리를 하자는 제의가 아니다. 여기서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은 «어떻게» 매력적으로 혹은 성공적으로 결합하여 새로운 ID/자아를 획득하게 하느냐이다.
이 ‘성공적인 폭발’을 위해 필요한 것은, ‘과연 한국적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진정 한국적인가?’에 대한 재고再考이다. 우리가 명백하게도 ‘한국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그 많은 것들의 ‘순수성’이 갖는 불순함을 한 번 의심해 보자. 워밍업이 필요한 것인데, 모든 것이 섞이기 위해서는 부드러워야 한다. 섞인다는 것은 형태가 바뀌어 버릴 수도 있고 심지어 내용까지 바뀔 수 있다. 지금까지의 수많은 안전장치들을 벗어 버리고 외부의 다른 것을 온전히 받아 들일 수 있을 때야 비로소 제 3, 제 4의 새로운 자아의 획득이라는 것이 가능해 지는 것이다.
다른 문화 속에 한국의 식문화가 이식되기 위해선 자기 앉을 자리를 제대로 인식(positionning)하고 변형의 두려움을 떨쳐내고 자신감 있게 몸을 털어 주는 워밍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김치건 간장이건 불고기이건 신선로가 되었건 간에 선수들은 몸을 풀고 워밍업을 할 필요가 있다. 김치는 아무개 살라드가 될 수도 있고, 간장은 간장종지라는 당당한 식탁 위의 위상을 박탈당하고 요리 위의 한 스푼 소스로의 변형됨도 감수해야 할 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워밍업을 통한 새로운 자아의 획득은 korean touch혹은 韓國式이라는 새로운 식문화로 각광받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즉 가장 세계적일 수 있는 이 되기 위해서는 그저 뻣뻣한 으로만 있어선 안 된다.
한국 음식의 세계화를 “한국음식이라는 상품의 고객층을 세계인에 확대 하다”라는 개념으로 받아 들일 때에 오히려 접근이 쉬워지지 않을까. 현대자동차가 미국에 나갈 때, 유럽에 나갈 때, 일본에 나갈 때, 아프리카에 갈 때 다 그 현지 사정에 맞춘 작업을 겪지 않는가. 음식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단적인 예로 프랑스에서의 중국요리와 미국에서의 중국요리, 일본의 중국요리, 한국에서의 중국요리는 모두 중국요리인가 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하고 서로 다르지 않은가. 프랑스의 일본식당의 대부분은, 수많은 중국계 이민자들이 스시sushi(초밥)와 야끼도리yakitori(꼬치구이)만으로 레스토랑 쟈뽀내restaurant japonais란 간판을 걸고 영업을 하고 있고, 한식당의 수익성이 좋다는 이유로 이젠 한식당 시장을 넘보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진정 한국적인 것들의 세계화를 실현하고자 한다면 우리 각자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그대로 역사 위에 있다는 책임감과 숙명을 느끼는 것 만으로도 많은 일을 시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중국계 이민자나 일본을 통한 한식 소개가 한식의 정통성을 흐린다는 생각이 든다면, 한식 전문가 조합을 결성하여 한식의 다양한 조리법과 접시에 담는 법, 상차림에 관한 연구 및 한식의 특성들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를 하여 발표하고 교육할 수 있다. (일본에서 사용한 실제 방법으로, 지금까지도 전세계에 일본 음식의 우수성을 전파하는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산 김의 특성 및 (일반적으로 먹는 방식인) 참기름/소금과 함께 먹을 때 얻을 수 있는 건강상의 시너지 효과 등을 적극적으로 연구, 발표 하고 또 광고, 교육 하는 일들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수많은 일들 중 일부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즉, 한 사람 한 사람의 요식업 종사자들이 보다 깊은 관심과 책임감을 갖고 같은 고민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드는 것이 아닐까 한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덧붙치면, 한식의 세계화를 담당하는 주무부서의 관계자들은, 한식의 세계화와 한식의 고급화라는 엄연히 다른 2가지의 가치를 혼동하지 않았으면 한다. 중국음식은 불도장과 샥스핀 수프로 전세계적인 음식이 된 것이 아니다. 프랑스의 요리를 전세계에 알린 것은 세계 곳곳 여기저기 식당을 오픈하는 스타쉐프가 아닌 감자그라땅이고, 이탈리아를 알기 전에 피자를 먼저 안 사람도 부지기수다. 대중화와 고급화 중 어떤 것의 가치가 더 있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에, 목표가 세계화라면 이 2방법 중 어떤 것을 택할 지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빠리의 요리사의 눈으로 본 한식의 세계화
누구의, 누구에 의한, 누구를 위한 한식의 세계화인가 ?
얼마 전, 광주요가 운영하는 서울의 고급 한식당인 가온이 매달 1억 원씩의 적자를 내고 1년 만에 문을 닫는다는 기사를 읽었다. 기사에 따르면, "구미의 고급 식당 음식값은 1인당 500달러도 하지만, 한식은 100달러가 될 수 없다"는 것이 한국의 실정이고 손님들이 '한식은 싼 음식'이라는 편견의 벽을 넘지 못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즉, 한식의 고급화가 실패로 끝난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였다.
또, 서울의 17개 특급 호텔 중 한식당 갖추고 있는 곳이 4곳에 불과하다는 뉴스도 있었다. 이 기사의 분석에 의하면, 특급호텔 한식당이 문을 닫는 이유로 한식이 «노동집약적»이고, «그릇 숫자 : 반찬의 종류»가 많아 낭비가 많고 식자재 비용이 높아 경영이 어렵고, 한식의 특성상 냉면 전문, 육류 전문 등 전문 조리사를 필요로 하여 «인건비» 비중이 높아 수지 타산이 안 맞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에 갖게 되는 의문은, «고급요리»라 불리는 많은 다른 음식들은 그렇지 않은가? 하는 점이다. «반찬의 종류가 많아서 일하기가 힘들어요!»는 전 세계의 주방에서 일하는 다른 요리사들이 얼마나 치열한 노력을 기울이는지 모르는 무지한 자의 자기 변명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10가지 나물 반찬에 기울인 정성과 노력도 인정해야겠지만, 그 순간, 다른 이들도 ‘접시 위의 한 방울 소스를 위해 뼈를 치고 오븐에 굽고 수분을 더해서 72시간씩 끓이고 채에 걸러 졸이는 말도 안 되는 ‘비효율의 극치’의 과정’을 매일매일 행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접시의 가짓수에 대해서도, 프랑스 요리의 테이스팅 메뉴Menu Degustation 므뉘 데귀스따씨옹 이나, 일본의 카이세키 료리懐石料理 등을 보면, 한정식의 은 그나마 서비스이니 다행인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프랑스 요리의 경우, 한 번에 4~6개씩의 접시와 소스 그릇이 서비스 되고, 매번 은스픈과 식기를 가져가고 내어오며 테이블을 정리하는 이러한 서비스 과정을 가장 간단하게는 3회, 많게는 40회, 50회까지 거치는 경우가 있다.
전문 요리사에 대한 의견도 그렇다. 일반적인 프랑스 식당에서 « 차가운 전체, 뜨거운 전체, 고기파트, 생선파트, 디저트 »등으로 각 전문 영역이 구분되어 있는 것을 볼 때, 오히려 이는 제대로 된 음식을 서비스 하기 위해 지극히 당연한 것이 아닌가 한다. 한식의 서비스가 힘들다고 어리광을 부리기 보다는 대상/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는 더 많은 연구와 고민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프랑스의 경우는 프랑스는 루이 14세 때부터 사치품을 국가 수출 장려품목으로 지정하여 지원해 왔기 때문에 시민 혁명을 거쳐 왕가가 붕괴되는 비운을 겪으면서도 이러한 역사적 을 오늘날에까지 누리고 있다. 즉, 프랑스 제품은 호화롭고 고급스러운 것이라는 등식이 아직도 먹힌다는 것이다. 그와 함께, 프랑스 음식도 made in France가 갖는 priority를 십분 누리고 있다. 예전부터 프랑스에게 있어, 영국은 상놈의 나라였고 그보다 더 천박하고 상스러운 것이 미국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근대사를 주도한 앵글로 색슨에게는 프랑스에 대한 자격지심 있어서 프랑스적인 것은 오리지날의 오리지날이라는 우위를 부여했고, 마찬가지로 프랑스 음식도 화려하고 섬세한 궁정의 음식이자 왕족의 음식으로 대접받아 왔다. 그러면서 영미의 대중들에게 프랑스 음식은 범접하기 힘든 화려한 ‘환상’이 되고 ‘신화’가 된다. 그리하여 세계 최고의 식도락 도시로 리옹Lyon이 거론되고, 트뤼프truffe나 거위지방간foie gras, 샴페인 champagne, 캐비어caviar와 같은 프랑스적 식자재들이 세계 최고의 진미로 대접받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등에 업을 조상의 은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제 우리 스스로 « 신화 myth»를 창조해 내어야 하는 위치에 서 있다.
우리 것은 세계적이다. «공짜로» ?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 »라는 모토는 항상 통하는가.
처음엔 우리 것을 "신기하고 새로운" 것으로 봐 줄 수 있겠지만, 그 다음부터는 끝없는 고민과 상대에 대한 사랑이 담긴 ‘컨텐츠’가 있어야 세계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내 것이 이렇게 좋으니 취하시오!"가 아니라 "무엇을 원하든 당신에 맞추어 주겠소!" 의 마음가짐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모든 상품은 시장의 요구에 부응하고, 적합한 마케팅 기법을 가지고 있어야 상품 더 나아가 명품이 되지, 아니면 단지 하나의 물건에 지나지 않는다.
상대방에 대한 가 없는 독창성은 그저 일시적인 자기 만족에 지나지 않는다. 독창성을 갖기는 쉽다. 하지만 상대방에 대한 배련, 즉 商品性이 결여된 독창성은 컬트의 세계에만 머물러야 한다. 한식 세계화를 이야기 할 때 가슴 아픈 한 가지는, 우리는 에 대한 배려 없이, 근거 없는 자신감에 충만해 있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음식은 항암기능과 항산화 효과로만 팔아먹는 게 아니다. 기능성에 초점을 두고 싶으면 한식보다는 한약을 팔면 된다.
어쩌면 한식 세계화의 길을 일본의 기꼬망 간장soysauce Kikoman 신화와 노부 사시미Sashimi of chef Nobu 이야기를 통해서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기꼬망은 1970년대에 이미 일본 시장의 포화를 느끼고 미국 공장 설립을 위한 사전 조사팀을 미국에 파견했다. 그들은 말 그대로 사전 조사를 했다기 보다는 미국 시장이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거의 가미가재 수준으로 처절하게 미국 시장을 연구했다. 오늘날 우리가 익숙하게 먹는 데리야끼 소스 등의 간장을 이용한 수많은 레서피가 그들에 의해 만들어 졌다. 기꼬망사의 피눈물 섞인 노력과 연구의 덕분에 거대하게 성숙되고 확장된 전세계 간장 시장에서, 마켓 쉐어market share를 늘이기 위해 이런 저런 자기 변명을 늘어 놓는, 가령 ‘원조’를 내세우는 것 따위, 몇몇 회사들의 전략은 유치하고 비겁하게 느껴질 뿐이다.
노부의 또한 그렇다. 날 생선을 먹는 것을 야만스럽게 여기는 미국인 손님을 위해 사시미의 자존심을 버리고 그는 반조리라는 극단적이면서 사시미라는 아이덴티티identity (자아정체성)에 反하는 조치를 취하게 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가 먹는 사람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배려했다는 것이고 그것이 결국 고객을 감동시켜 지금의 세계적인 요리사 노부를 있게 했고, 전세계에서 가장 섬세한 음식으로 니혼료리日本料理를 꼽게 만드는 밑바탕이 되었다. 김치는 이렇게 먹어야 한다를 주입할 것이 아니라, 김치는 이렇게 먹을 수도 있다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얘기다.
한 때 한국 것이라면 드라마니 영화니 노래니 할 것 없이 동남아에다 내 놓기만 하면 문자 그대로 ‘대박’이 나던 시절이 있다. 흔히들 ‘한류열풍’이라던 바로 그것이다. 이제 대한민국 연예계에는 예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규모의 세계적 ‘스타’들이 즐비하지만, 외국에 먹힐만한 좋은 컨텐츠의 부재로 한류는 점점 사향길을 걷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혹자는 한식의 세계화와 관련하여, 스타 쉐프 부재를 이유로 들어, 스타 쉐프 양성이 시급하다고 하지만, 스타 쉐프 이전에 고객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한 노력이 담기고 배려가 느껴지는 컨텐츠가 필요하지 않을까.
의 균형감 있는 고민 - 변화를 두려워 하지 말자 !
이제 « 어떤 한식»으로 세계에 나아가야 하는지 고민해 보아야 할 때이다.
국제적인 한식 이벤트 / 페스티발에서 만나게 되는 대부분의 한국음식들은 궁중요리를 표방하는 고전의 구태의연한 반복일 때가 많다. 마치, 한국의 스타일을 알리고자 하는데, 2008년 현재 서울의 거리에서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 한복만을 가지고 이것이 우리의 스타일 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세계 속의이라는 이름으로 거듭나게 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과거의 것을 재현하거나 다른 것들과 섞는 정도가 아닌, 새로운 시각에 의한 «화학반응»을 거쳐 새로운 정체성을 획득하도록 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그것은 결국 역사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새롭고 다양한 문화를 체험한 오늘날의 요리사들이 전통의 재현과 새로운 문화의 받아들임이라는 고민을 조화롭게 풀어 감으로서 조금씩 해결되지 않을까 한다.
모든 이문화異文化간의 결합이 그러하겠지만 좋은 화학적 결합을 거쳤을 때엔 순수혈통으로서는 꿈도 꾸지 못한 매력을 발산해 내며 화려한 데뷔를 하게 된다. 바로 위에서 언급한 화학반응을 거쳐 획득한 새로운 자아 또는 제 3의 정체성이다. 이 말은 퓨전요리를 하자는 제의가 아니다. 여기서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은 «어떻게» 매력적으로 혹은 성공적으로 결합하여 새로운 ID/자아를 획득하게 하느냐이다.
이 ‘성공적인 폭발’을 위해 필요한 것은, ‘과연 한국적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진정 한국적인가?’에 대한 재고再考이다. 우리가 명백하게도 ‘한국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그 많은 것들의 ‘순수성’이 갖는 불순함을 한 번 의심해 보자. 워밍업이 필요한 것인데, 모든 것이 섞이기 위해서는 부드러워야 한다. 섞인다는 것은 형태가 바뀌어 버릴 수도 있고 심지어 내용까지 바뀔 수 있다. 지금까지의 수많은 안전장치들을 벗어 버리고 외부의 다른 것을 온전히 받아 들일 수 있을 때야 비로소 제 3, 제 4의 새로운 자아의 획득이라는 것이 가능해 지는 것이다.
다른 문화 속에 한국의 식문화가 이식되기 위해선 자기 앉을 자리를 제대로 인식(positionning)하고 변형의 두려움을 떨쳐내고 자신감 있게 몸을 털어 주는 워밍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김치건 간장이건 불고기이건 신선로가 되었건 간에 선수들은 몸을 풀고 워밍업을 할 필요가 있다. 김치는 아무개 살라드가 될 수도 있고, 간장은 간장종지라는 당당한 식탁 위의 위상을 박탈당하고 요리 위의 한 스푼 소스로의 변형됨도 감수해야 할 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워밍업을 통한 새로운 자아의 획득은 korean touch혹은 韓國式이라는 새로운 식문화로 각광받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즉 가장 세계적일 수 있는 이 되기 위해서는 그저 뻣뻣한 으로만 있어선 안 된다.
한국 음식의 세계화를 “한국음식이라는 상품의 고객층을 세계인에 확대 하다”라는 개념으로 받아 들일 때에 오히려 접근이 쉬워지지 않을까. 현대자동차가 미국에 나갈 때, 유럽에 나갈 때, 일본에 나갈 때, 아프리카에 갈 때 다 그 현지 사정에 맞춘 작업을 겪지 않는가. 음식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단적인 예로 프랑스에서의 중국요리와 미국에서의 중국요리, 일본의 중국요리, 한국에서의 중국요리는 모두 중국요리인가 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하고 서로 다르지 않은가. 프랑스의 일본식당의 대부분은, 수많은 중국계 이민자들이 스시sushi(초밥)와 야끼도리yakitori(꼬치구이)만으로 레스토랑 쟈뽀내restaurant japonais란 간판을 걸고 영업을 하고 있고, 한식당의 수익성이 좋다는 이유로 이젠 한식당 시장을 넘보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진정 한국적인 것들의 세계화를 실현하고자 한다면 우리 각자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그대로 역사 위에 있다는 책임감과 숙명을 느끼는 것 만으로도 많은 일을 시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중국계 이민자나 일본을 통한 한식 소개가 한식의 정통성을 흐린다는 생각이 든다면, 한식 전문가 조합을 결성하여 한식의 다양한 조리법과 접시에 담는 법, 상차림에 관한 연구 및 한식의 특성들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를 하여 발표하고 교육할 수 있다. (일본에서 사용한 실제 방법으로, 지금까지도 전세계에 일본 음식의 우수성을 전파하는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산 김의 특성 및 (일반적으로 먹는 방식인) 참기름/소금과 함께 먹을 때 얻을 수 있는 건강상의 시너지 효과 등을 적극적으로 연구, 발표 하고 또 광고, 교육 하는 일들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수많은 일들 중 일부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즉, 한 사람 한 사람의 요식업 종사자들이 보다 깊은 관심과 책임감을 갖고 같은 고민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드는 것이 아닐까 한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덧붙치면, 한식의 세계화를 담당하는 주무부서의 관계자들은, 한식의 세계화와 한식의 고급화라는 엄연히 다른 2가지의 가치를 혼동하지 않았으면 한다. 중국음식은 불도장과 샥스핀 수프로 전세계적인 음식이 된 것이 아니다. 프랑스의 요리를 전세계에 알린 것은 세계 곳곳 여기저기 식당을 오픈하는 스타쉐프가 아닌 감자그라땅이고, 이탈리아를 알기 전에 피자를 먼저 안 사람도 부지기수다. 대중화와 고급화 중 어떤 것의 가치가 더 있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에, 목표가 세계화라면 이 2방법 중 어떤 것을 택할 지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빠리의 요리사 윤화영 & 박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