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데이빗 크로넨 버그 주연: 니콜라이 비고 모르텐슨 안나 나오미 왓츠 키릴 뱅상 카셀 세미온 아민 뮐러 스탈 헬렌 시네아드 쿠색 크리스마스 명절을 기다리는 평온한 마을 어귀의 이발소, 이발사와 손님은 잘 아는 사람인 듯, 이 장소가 아주 익숙한 듯 서로 농을 나누기도 하며, 흥겨운 분위기이다. 빗길을 헤치며 한 소년이 이발소로 뛰어들어오고 소년은 겁에 질린 듯, 신문지 뭉치를 들고서 두려움에 뜰고 있다. "삼촌..이러지 마세요" 두려움이 섞인 애원을 내뱉자, 이발사의 거친 일갈 "이 러시아 놈의 목을 그어버려!!" 그리고 소년은 면도칼로 러시아 손님의 목을 수차례 그어버린다. 겁에 질린 소년의 칼질은 이미 통제를 벗어나있다. 영화 이스턴 프라미스의 첫장면! 평화로운 일상 속으로 들어오는 날카로운 폭력성, 잘려나가는 살점과 쏟아져 내리는 붉은 핏빛들 예상치 않게 찾아 오는 일상의 폭력은, 인과 관계를 제쳐 두고라도 보는 이들에게 심한 불쾌감을 안겨준다. 이제 영화는 어느 소녀의 죽음에서 출발하여, 그 소녀가 낳은 아이에게 연민을 품은 조산사 일상에 들어오는 폭력으로 옮겨간다. 우연히 죽어가는 소녀의 아이를 받게되고, 우연히 소녀의 가방 속에 들어 있던 러시아어로 적혀 있는 일기장을 발견하게 되며, 그 내용을 번역해 가면서 알게되는 사연 속에 폭력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게된다. 그리고 그 폭력 속에 나타난 또다른 진실과 마주서게 된다. 이영화를 올해 걸작으로 꼽는 뭇 평론가들의 평론을 보자면,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작품 세계를 토대로 전작들에게서 보여지는 몸의 변형/몸의 결합/몸의 파괴 등이 일상으로 들어와 설명 보단 침묵을, 해설 보단 시적은유를 사용하여, 대중적 코드와의 아주 유용한 결합으로 만들어진 영화라는 것이다. 그렇담 크로넨버그란 누구이며, 그의 작품세계는 어떠한가?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David Paul Cronenberg) 출생 1943년 3월 15일 출신지 캐나다 직업 영화감독 데뷔 1966년 영화 '트랜스퍼' 수상 2002년 카탈로니안국제영화제 감독상2002년 토론토국제영화제 캐나다장편영화상 대표작 제이슨 X, 스파이더, 플라이, 폭력의 역사, 그들 각자의 영화관이스턴 프라미스 그가 만든 영화를 살펴 보면 인간과 파리의 유기체적인 결합을 그린 플라이 메스미디어의 허상을 기계에 잠식 당하는 인간의 육체로 나타낸 비디오 드롭 충돌과 스피드속에서 절정과 환의를 찾아가는 기계와 육체적 쾌락의 결합을 그린 크레쉬 등이 있다. 주로 극단적인 표현방식으로 인하여 관객층이 양분화 된 감독으로 b급 무비의 형식을 가지고, 육체와 정신, 현대 산업 문명속의 나약한 인간상 이라는 철학적 담론을 나타내려는 거장 중 한명이다. 그런데 이 감독의 시선이 육체의 파고들어감에서 폭력으로 옮겨지더니 영화"폭력의역사"에선 가족 간 폭력의 확대와 재생산을 통해 미국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꺼집어 내더니, 이번 영화를 통하여 일상속 폭력의 진실을 통하여 사회적 폭력의 양면성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시선이동을 통하여 감독이 추구하던 전작들과는 반대로 드라마의 네러티브의 강조와 일상적인 어법으로서의 은유와 시적 리듬을 통하여 힘있게 주제의식을 표현하고있다. 다시 영화 이스턴 프라미스를 보자면, 영화 속 빙점을 찍어 나가는 것은 이야기에 걸려 있는 인물들의 연기이며, 인과 관계를 찾아가는 카메라의 시선이다. 이 영화의 최고의 백미 중 하나는 비고 모리텐슨의 연기인데. 절제 된 차가움를 가지고 이야기를 끌어가는 솜씨가 여간이 아니다. 아시다시피 그는 아라곤이다. 정직하고 의로운 아라곤의 얼굴이 죽은이의 손가락을 소시지 자르듯 잘라 내는 그 냉혈안의 모습으로 바뀌다니..대단하다^^ 그리고 또 하나 이 영화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주제의 함축으로, 영화 속 최고의 장면이라 할만한 목욕탕 결투신(?)을 보면 맨몸으로 부딪히는 폭력의 현장을 아주 끔찍할 정도로 섬뜩하게 그려 내고있다. (직접 보시라..얼마나 섬뜩한지...몸이 오그라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영화는 걸작이 맞다. 이야기 깔끔하게 해결되고, 그 속의 간결하고 힘있는 대사들 하며, 배우들의 엄청난 연기력(영화속 비고외 뱅상카셀, 나오미 와처등의 배우들의 열연도 뺴놓을 수 없다) 그리고 감독의 연출력, 그도 그럴 것이 극단적 사실적 화법으로 유명한 감독인지라 옛 영화들은 그 표현 기법과 철학적 의미들에 눌려져 나레이티브가 약하다는 느낌을 받곤 했는데, 그의 장기와 드라마가 결합하니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영화로 탄생할 수 있었다. 영화가 가진 미덕이란게 감독 예술이란 것이다. 연극의 현장성과는 달라서 감독의 상상력과 세상을 바라보는 철학으로 다양한 장르와 영화적 기법이 탄생되고, 소멸되고, 재생산 된다는 것이다. 이영화를 보면서 가장좋았던 점은 감독의 상상력과 표현 기법들이, 그가 아니면 안 될것 같은 것이다. 이영화야 말로 크로넨버그의 영화라고 할 만한~물론 그의 거칠고 극단적인 표현방식으로 보자면 아주 유하게 변했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가 생각하는 시선의 이동으로 만들어지는 영화적 무게를 따지자면, 표현방식의 강약으로 표현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을 듯 하다. 여튼 영화를 보면서 감독의 사상과 철학을 그리고 그의 궤적들을 들추어 가면서 영화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이 영화가 그만큼의 꺼리를 갖추고 있다는 것일 것이다. 이 어찌 좋지 아니한가? 감독이 영화를 만들어 가는 무게를 찾아 가는 과정을 따라 갈 수 있다는 것이... 각설하고. 이영화 이스턴 프라미스는 분명 데어 윌비 블러드/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잇는 올한해를 마무리 하는 걸작임에 틀림이 없는 작품이다. 한번 봐보자~!!
이스턴 프라미스
감독: 데이빗 크로넨 버그
주연:
니콜라이 비고 모르텐슨 안나 나오미 왓츠 키릴 뱅상 카셀 세미온 아민 뮐러 스탈 헬렌 시네아드 쿠색
크리스마스 명절을 기다리는 평온한 마을 어귀의
이발소, 이발사와 손님은 잘 아는 사람인 듯, 이 장소가 아주 익숙한 듯
서로 농을 나누기도 하며, 흥겨운 분위기이다.
빗길을 헤치며 한 소년이 이발소로 뛰어들어오고
소년은 겁에 질린 듯, 신문지 뭉치를 들고서 두려움에 뜰고 있다.
"삼촌..이러지 마세요" 두려움이 섞인 애원을 내뱉자,
이발사의 거친 일갈 "이 러시아 놈의 목을 그어버려!!"
그리고 소년은 면도칼로 러시아 손님의 목을 수차례 그어버린다.
겁에 질린 소년의 칼질은 이미 통제를 벗어나있다.
영화 이스턴 프라미스의 첫장면! 평화로운 일상 속으로 들어오는
날카로운 폭력성, 잘려나가는 살점과 쏟아져 내리는 붉은 핏빛들
예상치 않게 찾아 오는 일상의 폭력은, 인과 관계를 제쳐 두고라도
보는 이들에게 심한 불쾌감을 안겨준다.
이제 영화는 어느 소녀의 죽음에서 출발하여, 그 소녀가 낳은 아이에게
연민을 품은 조산사 일상에 들어오는 폭력으로 옮겨간다.
우연히 죽어가는 소녀의 아이를 받게되고, 우연히 소녀의 가방 속에 들어 있던
러시아어로 적혀 있는 일기장을 발견하게 되며, 그 내용을 번역해 가면서 알게되는 사연 속에
폭력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게된다.
그리고 그 폭력 속에 나타난 또다른 진실과 마주서게 된다.
이영화를 올해 걸작으로 꼽는 뭇 평론가들의 평론을 보자면,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작품 세계를 토대로 전작들에게서 보여지는 몸의 변형/몸의 결합/몸의 파괴
등이 일상으로 들어와 설명 보단 침묵을, 해설 보단 시적은유를 사용하여, 대중적 코드와의
아주 유용한 결합으로 만들어진 영화라는 것이다.
그렇담 크로넨버그란 누구이며, 그의 작품세계는 어떠한가?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David Paul Cronenberg)출생 1943년 3월 15일
출신지 캐나다
직업 영화감독
데뷔 1966년 영화 '트랜스퍼'
수상 2002년 카탈로니안국제영화제 감독상
2002년 토론토국제영화제 캐나다장편영화상
대표작
제이슨 X, 스파이더, 플라이, 폭력의 역사, 그들 각자의 영화관
이스턴 프라미스
그가 만든 영화를 살펴 보면 인간과 파리의 유기체적인 결합을 그린 플라이
메스미디어의 허상을 기계에 잠식 당하는 인간의 육체로 나타낸 비디오 드롭
충돌과 스피드속에서 절정과 환의를 찾아가는 기계와 육체적 쾌락의 결합을 그린 크레쉬
등이 있다.
주로 극단적인 표현방식으로 인하여 관객층이 양분화 된 감독으로
b급 무비의 형식을 가지고, 육체와 정신, 현대 산업 문명속의 나약한 인간상 이라는 철학적 담론을
나타내려는 거장 중 한명이다.
그런데 이 감독의 시선이 육체의 파고들어감에서 폭력으로 옮겨지더니
영화"폭력의역사"에선 가족 간 폭력의 확대와 재생산을 통해 미국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꺼집어 내더니, 이번 영화를 통하여 일상속 폭력의 진실을 통하여
사회적 폭력의 양면성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시선이동을 통하여 감독이 추구하던 전작들과는 반대로
드라마의 네러티브의 강조와
일상적인 어법으로서의 은유와 시적 리듬을 통하여 힘있게 주제의식을 표현하고있다.
다시 영화 이스턴 프라미스를 보자면, 영화 속 빙점을 찍어 나가는 것은 이야기에 걸려 있는
인물들의 연기이며, 인과 관계를 찾아가는 카메라의 시선이다.
이 영화의 최고의 백미 중 하나는 비고 모리텐슨의 연기인데.
절제 된 차가움를 가지고 이야기를 끌어가는 솜씨가 여간이 아니다.
아시다시피 그는 아라곤이다. 정직하고 의로운 아라곤의 얼굴이
죽은이의 손가락을 소시지 자르듯 잘라 내는 그 냉혈안의 모습으로
바뀌다니..대단하다^^
그리고 또 하나 이 영화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주제의 함축으로, 영화 속 최고의 장면이라
할만한 목욕탕 결투신(?)을 보면 맨몸으로 부딪히는 폭력의 현장을
아주 끔찍할 정도로 섬뜩하게 그려 내고있다.
(직접 보시라..얼마나 섬뜩한지...몸이 오그라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영화는 걸작이 맞다.
이야기 깔끔하게 해결되고, 그 속의 간결하고 힘있는 대사들 하며,
배우들의 엄청난 연기력(영화속 비고외 뱅상카셀, 나오미 와처등의 배우들의 열연도 뺴놓을 수 없다)
그리고 감독의 연출력, 그도 그럴 것이 극단적 사실적 화법으로 유명한 감독인지라
옛 영화들은 그 표현 기법과 철학적 의미들에 눌려져 나레이티브가 약하다는 느낌을 받곤 했는데,
그의 장기와 드라마가 결합하니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영화로 탄생할 수 있었다.
영화가 가진 미덕이란게 감독 예술이란 것이다.
연극의 현장성과는 달라서 감독의 상상력과 세상을 바라보는 철학으로
다양한 장르와 영화적 기법이 탄생되고, 소멸되고, 재생산 된다는 것이다.
이영화를 보면서 가장좋았던 점은
감독의 상상력과 표현 기법들이, 그가 아니면 안 될것 같은 것이다.
이영화야 말로 크로넨버그의 영화라고 할 만한~물론 그의 거칠고 극단적인
표현방식으로 보자면 아주 유하게 변했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가 생각하는 시선의
이동으로 만들어지는 영화적 무게를 따지자면, 표현방식의 강약으로 표현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을 듯 하다.
여튼 영화를 보면서 감독의 사상과 철학을 그리고 그의 궤적들을 들추어 가면서
영화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이 영화가 그만큼의 꺼리를 갖추고 있다는 것일 것이다.
이 어찌 좋지 아니한가? 감독이 영화를 만들어 가는 무게를 찾아 가는 과정을 따라 갈 수 있다는 것이...
각설하고.
이영화 이스턴 프라미스는 분명 데어 윌비 블러드/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잇는
올한해를 마무리 하는 걸작임에 틀림이 없는 작품이다.
한번 봐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