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한국영화, 10개의 질문

권민오2009.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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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estion 1_올해 영화 시장 상황은 어땠는가

2008년 한국영화, 10개의 질문


10년 전인 1990년대 말은 IMF로 한국 전체가 꽁꽁 얼어 있던 시기. 하지만 <쉬리>(99) 이후 충무로에 거대 자본이 유입되었고, 멀티플렉스의 급속한 확장으로 영화산업이 급성장했다. IMF로부터 벗어나는 기간은 한국영화의 상승곡선과 그대로 겹치는데, 표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1990년대에 20퍼센트 대에 머물렀던 한국영화 점유율이 2001년엔 40퍼센트 대를, 2004년엔 50퍼센트 대를 2006년엔 60퍼센트 대를 돌파했다.

한국영화 관객수도 2006년에 최고에 달했다. 하지만 2006년에 맞이했던 상종가는 이후 하락세를 위한 서곡이었다. 2007년 한국영화 점유율은 다시 40퍼센트대로 떨어졌고, 2008년은 11월30일 현재 39퍼센트다.

2008년 한국영화 시장 상황을 간단히 줄이면? ‘하락세의 연장’이었다. 특히 심각한 부분은 수익률의 저하다. 그 조짐은 2004년부터 이미 보이기 시작했다. 당시 한국영화는 1/3 정도가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상황이었는데, 어림잡아 2005년엔 1/4로, 2006년엔 1/5로 ‘본전 이상 챙기는 영화’가 줄어들었다. 게다가 제작비는 급상승했는데, 10년 전에 비해 극장 요금은 1~2천 원이 올랐지만 제작비는 두 배로 뛰었다. 그 결과, 올해는 손익분기점을 넘긴 영화가 1/10도 될까 말까다.

세계적 불황인 현재, ‘한국영화의 위기’를 단지 ‘영화계의 문제’로 보기엔 문제가 너무 복잡하다. 아니, 영화계만 놓고 봐도 자본의 불안함과 시스템의 딜레마는 짧은 기간 안에 해결되기 힘든 문제처럼 보인다.




Question 2_늦은 개봉의 이유는 무엇인가

2008년 한국영화, 10개의 질문


2008년은 속된 말로 ‘창고 대방출’의 해였다. 1년 정도 묵히는 건 ‘지각 개봉’ 축에도 들지 못한다. ‘기본 숙성 기간’ 2년. 4년을 기다렸던 <사과>도 있다. 일반적으로 영화 촬영이 끝나면 후반작업을 거쳐 6개월 안에 개봉하지만, 올해는 그 ‘일반적 상황’이 통하지 않았다.

유독 2006년에 촬영했던 영화들이 쏟아졌다. <나의 친구, 그의 아내>부터 <아버지와 마리와 나> <무림 여대생> <도레미파솔라시도> <허밍> <바보>(사진) <서울이 보이냐> <방울토마토> <그녀는 예뻤다> <날나리 종부전> <소년은 울지 않는다>가 모두 ‘2006년산’ 영화들이다. 대체 2006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 모든 영화들의 사연을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한 가지 가설은 가능하다. 충무로의 돈줄은 2005년을 전후로 조금씩 마르기 시작했고, 많은 영화사들은 주식 시장에 눈을 돌렸다. 일반적인 코스는, 기존 코스닥 상장사를 업고 ‘우회 상장’의 길을 택하는 것. 미봉책에 불과했지만, 일시적으로 숨통이 트였고 제작 편수가 증가했다.

하지만 작품의 퀄리티보다 성과 위주의 제작이었고, 공급 과잉 현상이 이어졌으며, 시장에서 밀린 영화들은 때를 기다려야 했다. 여기서 시장 상황은 점점 안 좋아졌고, P&A 비용이 부담스러운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 결과 조금씩 개봉일이 늦춰지는 영화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뒤늦게 개봉한 영화들의 성적은, 썩 좋지 않았다. 전국 관객 100만 명을 넘긴 영화는 한 편도 없었고, <바보>가 97만4,000명으로 그나마 선전했다. 흥행 실패 요인을 본다면, 개봉 적기를 놓친 경우, 틈새시장을 노리다 본의 아니게 할리우드 흥행작과 맞붙었던 경우, 완성도와 작품성이 미흡했던 경우 등이 있다. 물론 늦춰진 시간만큼 트렌드에서 뒤쳐졌다는 이유도 있었다.




Question 3_크로스오버의 성과와 한계는 무엇인가

2008년 한국영화, 10개의 질문


크로스오버의 강풍이 불었던 2008년이었다. 특히 영화와 뮤지컬이 결합된 ‘무비컬’(movical)은 <라디오 스타> <내 마음의 풍금> <파이란> 등의 라인업을 선보이며, 한국 뮤지컬 시장에서 탄탄한 서브장르로 자리 잡았다. 뮤지컬 <미녀는 괴로워> <색즉시공> 등이 2008년 연말을 장식하는 가운데, 기획 단계부터 뮤지컬을 염두에 뒀던 <과속스캔들>이나, 흥행에 성공하면서 제작이 결정된 <아내가 결혼했다> <미인도>도 뮤지컬 버전을 준비 중이다. 한파에 시달리는 충무로에서, ‘돈 되는’ 무비컬은 작지만 짭짤한 수입원이 된 셈이다.

같은 원작에서 탄생한 TV 드라마 <식객> <타짜>(사진)와, TV 드라마 <사랑과 전쟁>의 극장판 <사랑과 전쟁: 열두 번째 남자> 등은 충무로와 여의도의 공생 관계를 보여준다. 곽경택 감독이 직접 연출하는 드라마 <친구, 그 못다한 이야기>나, <무방비도시> <비트> 등의 드라마 계획이 잇달아 발표되었으며, 무산되긴 했지만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을 영화로 만들려는 시도도 있었다.

일각에서는 창작력 고갈에 따른 현상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지만, 아직까진 소규모의 성과를 내고 있는 상황. ‘크로스오버’ 전략이 충무로의 토대를 조금이나마 탄탄히 다지고 있다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을 듯하다.




Question 4_제작비는 과연 흥행과 비례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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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최고의 흥행작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었다. 하지만 제작비가 200억 원에 달하다 보니, 전국 700만 명 가까이 동원하고도 본전을 건지기가 쉽지 않았다. 수익률 면에서 보면, <추격자> <강철중: 공공의 적 1-1>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 훨씬 알차다. 특히 507만 명을 기록한 <추격자>는 제작비의 5배가 넘는 339억 원을 벌면서, 올해 가장 짭짤했던 영화로 꼽히고 있다. 제작비 100억 원에 육박하는 영화 중엔 <신기전>이 본전 이상을 건졌으며, <님은 먼곳에><모던보이>는 쓴맛을 봐야 했다.

한편 <고死: 피의 중간고사><영화는 영화다>(사진)가 거둔 의외의 선전은, 저예산 영화의 가능성을 증명했다. <고사>는 25억 원을 들여 164만 명을 동원했고, 배우들이 직접 투자한 <영화는 영화다>는 6억5,000만 원의 제작비로 132만 명의 관객을 모았다. 이처럼 제작비 100억 원이 넘는 영화들과 저예산 영화들의 희비가 엇갈리다 보니, 제작비와 흥행의 비례 공식이 무너진 것처럼도 보인다.

이것이 올해에 두드러진 현상은 아니다. ‘충무로 보릿고개’가 몇 년째 지속되면서, 블록버스터 제작이 주춤한 반면 저예산 영화의 아이디어가 반짝거린 이유도 있다. 이런 흐름은 당분간 지속될 듯. 한편 충무로 일각에서는 헝그리 정신 못지않게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Question 5_합작 영화는 성과가 있었나

2008년 한국영화, 10개의 질문


2008년 한국영화계에선 다양한 합작 프로젝트가 결실을 거뒀다. 103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한중 합작인 <삼국지: 용의 부활>(이하 <삼국지>)과 160만 명의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인 한중일의 거대 프로젝트 <적벽대전-거대한 전쟁의 시작>(사진, 이하 <적벽>)이 대표적인 케이스.

올해 합작영화의 성과는 적극적인 합작 시스템 구축에 있다. 소규모 투자 차원을 넘어서 제작과 배급, 배우와 스태프 교류 등 직접 참여로 영역을 넓히고 있는 것이다. 보다 적극적인 방식의 합작 프로그램은 2009년 라인업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최근 크랭크업한 영화 <보트>는 한일 양국이 제작비와 배우, 스태프를 절반씩 책임진 작품이며,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동명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하는 <개미>는 한국과 프랑스가 함께 제작비를 부담한다.

이처럼 적극적인 형태의 합작 영화를 통해 한국 배우들의 세계 진출도 활발해질 전망. 장혁이 한국과 미국, 싱가포르 합작 영화 <댄스 오브 드래곤>의 주연으로, 소지섭이 한중 합작 <소피의 복수>에 캐스팅되어 장즈이의 상대역으로 세계무대에 나선다.




Question 6_스릴러 장르는 왜 강세였나

2008년 한국영화, 10개의 질문


2007년 하반기 <세븐데이즈>부터 이어진 스릴러의 강세가 2008년에도 지속됐다. 본격적인 물꼬를 튼 영화는 2월에 개봉한 <추격자>(사진)로 전국 507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이후 <더 게임>(150만) (95만) <눈에는 눈 이에는 이>(200만) 등이 선전하며 관객의 호응을 얻었다.

스릴러 강세의 ‘조짐’은 있었다. 2008년 1월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관객 성향 연구서에 따르면, 2007년 말 전체 관객 중 35.5퍼센트가 “액션 및 스릴러 영화를 좋아한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매년 부동의 1위를 지켰던 코미디와 로맨스 장르의 선호도보다 높았던 것으로, 관객 취향의 변화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 평론가는 이런 스릴러 강세가 불안정한 사회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는데, 한국의 스릴러는 사회에 대한 분노와 연결되는 경우가 많으며, 스릴러의 강세는 대중의 그러한 무의식이 표출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제작비 차원에서 약간은 경제적이라는 점도 스릴러 강세의 한 요인. 한국영화계가 한동안 스릴러 장르에 애정을 바칠 가능성은 높은 편이다.




Question 7_복고주의는 성공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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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고’의 의미를 ‘과거로 돌아간다’는 것으로 넓게 본다면, 2008년은 ‘복고주의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요계엔 과거 히트곡의 리메이크 열풍이 불었고, 방송계 역시 사극이나 1990년대 이전을 다룬 드라마를 잇달아 선보였다. 충무로도 경성을 배경으로 한 <원스어폰어타임> <라듸오 데이즈> <모던보이>(사진) 등을 내세우며 복고 흐름을 이어갔다. 양적으로 본다면 2008년 영화계를 평정했다고 할 수도 있을 복고주의. 하지만 복고 전략이 수익으로 이어졌던 가요계나 방송계에 비해, 충무로의 성과는 그리 좋지 않다.

실질적인 수익을 낸 작품은 <미인도> 한 편.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신기전> <원스어폰어타임> 은 가까스로 손익분기점에 접근했으며, 나머지 작품들은 손해를 봤다. 어느 영화사 관계자는 “영화의 주 소비층인 요즘 1020 세대에게 과거는 ‘낯선 시대’다. 그들은 좀 더 트렌디한 것에 돈을 쓰길 원한다”고 말했다.

<미인도>처럼 대중적 관심사(신윤복)를 반영하거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처럼 뚜렷한 캐릭터가 없으면 복고도 살아남기 힘들다는 뜻이다. ‘셀링 포인트’가 없는 복고주의는 흥행할 수 없다는 것이, 2008년 복고주의가 남긴 당연한 것 같지만 무시하기 쉬운 교훈이다.




Question 8_남자 영화는 왜 트렌드가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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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은 ‘놈들의 습격’이 거셌다. <추격자>가 관객 500만 명을 돌파한 후, 극장가에는 ‘놈’들의 독주가 이어졌다. 8년 만에 귀환한 ‘꼴통 형사’ 강철중, 21세기로 돌아온 변강쇠, 호방한 액션 영웅 다찌마와 리, 양지에 모습을 드러낸 호스트, 착한 놈과 나쁜 놈과 이상한 놈(<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사진), 서로의 삶을 동경한 깡패와 스타, 마성의 게이 그리고 비극적 사랑에 빠진 왕과 무사까지, 실로 다양한 남자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남자 영화’가 극장가에 득세했다. 모든 제작사가 담합이라도 한 것 같은 이러한 ‘쏠림 현상’은 어떤 이유일까?

관계자들은 이 현상에 대해 ‘이유 있는 우연’이라고 답했다. 남자 영화가 몰린 것은 우연이지만, 그 이유는 짐작할 수 있다는 것. 2007년의 주류였던 ‘여자 영화’의 성적이 썩 좋지 못했다는 점, 남자 영화엔 폭력, 음모, 복수 등 극적이고 강렬한 소재가 많다는 점 등이 ‘남성 영화’ 제작을 부추긴 것.

한 관계자는 “특이한 점은 올해 남자 영화들이 그간의 ‘마초 영화’와 달리 다양한 남성상을 보여줬다는 사실이다. 때리고 부수는 ‘단순한 남자 영화’가 없었던 건, 상황이 어렵다 보니 정말 신선한 콘텐츠가 아니면 투자를 안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어려운 환경이 오히려 신선하고 창의적인 영화가 태어나는 긍정적인 요인이 될지, 2009년을 기대해 볼 일이다.




Question 9_신인감독들은 어떤 희망을 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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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한국영화, 10개의 질문


올해 대거 등장한 신인 감독들은, 현재 빙하기를 겪고 있는 충무로에 위안과 가능성을, 관객에겐 신선한 즐거움을 주었다. 선두주자는 <추격자>의 나홍진 감독. 매끈하게 뽑아낸 데뷔작 한 편으로 ‘스타 감독’의 대열에 올랐다. 신인답지 않은 안정적인 연출력으로는 장훈 감독도 빼놓을 수 없다.

10억 원이 안 되는 제작비로 만든 <영화는 영화다>가 약 130만 명의 관객을 모은 것. 신인다운 재기발랄함이 가장 돋보였던 건 <미쓰 홍당무>(사진)의 이경미 감독. 2008년에 만나기 힘들었던 ‘여성 캐릭터 영화’를 선보이며, 단편 시절의 독특한 톤을 뚝심 있게 밀어붙였다. 호러가 드물었던 올해, 뮤직비디오 출신인 창감독은 <고死 : 피의 중간고사> 로 데뷔해 좋은 흥행 성적을 거두었다. 강형철 감독의 <과속스캔들>(사진)은 300만 명을 돌파했다.

늦깎이 신인 감독도 영화계에 풍성함을 더했다. <사과>의 강이관 감독과 <경축! 우리사랑>의 오점균 감독, <흑심모녀>의 조남호 감독은 잔잔한 호평을 받았다. 케이블 드라마 <별순검>의 연출자에서 충무로로 무대를 옮긴 <여기보다 어딘가에>의 이승영 감독, 액션 마당극 <스페어>의 이성한 감독, 스턴트맨 세계를 담은 <우린 액션배우다>의 정병길 감독 등도 주목할 만했다.


<무방비도시>의 이상기 감독과 <달려라 자전거>의 임성운 감독, <걸스카우트>의 김상만 감독, <아름답다>의 전재홍 감독 등도 기억할 만한 이름들.

여성 감독들의 데뷔 러시도 눈에 띤다. 앞서 언급한 이경미 감독 외에, <6년째 연애중>의 박현진 감독, <동거, 동락>의 김태희 감독, <여름, 속삭임>의 김은주 감독, <슬리핑 뷰티>의 이한나 감독이 그 주인공이다.




Question 10_영화진흥위원회는 어디로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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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말에 영화진흥법이 개정되고 영화진흥공사를 대체할 민간 기구가 필요하게 되었다. 영화계 내 보수 세력과 진보 세력 사이에 심각한 갈등이 일어났고, 산고 끝에 1999년 5월28일에 문화관광부는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위원장에 신세길(기업인 출신), 부위원장에 배우 문성근을 임명했다. ‘색깔 논쟁’이 일었고, 문화관광부는 기업인 출신인 박종국 위원장과 조희문 부위원장 체제를 출범시켰다.

하지만 4개월 후 박종국 위원장이 사퇴했고, 프로듀서 출신인 유길촌 위원장이 취임했다. 조희문 부위원장은 불신임에 의해 사퇴하고 그 자리에 이용관 교수가 들어갔다. 한 마디로 초기 영진위는 아수라장이었다.

2008년 영진위는 초기 영진위의 혼란을 연상시킨다. 과거 영진위 위원장이었던 유길촌의 동생인 유인촌 문화관광부 장관은 서울예술대의 강한섭 교수를 위원장으로 임명했고(사진. 문화체육관광부 홈페이지), 강 위원장은 취임 후 영화계의 ‘이슈 메이커’가 되었다. 그는 국회 문화관광위 위원들로부터 뭇매를 맞았고, 저널의 좋은 ‘먹잇감’이 되었으며, 영화계와도 좋지 않은 관계다. 영진위 노조와는 심각한 대립 상태다.

하지만 현재의 문제를 강 위원장 개인으로 수렴하는 건 지나치게 손쉬운 방법처럼 보인다. 2008년 영진위가 겪었던 혼란의 배경엔, 물론 위원장 개인의 돌출 행동과 독단적 사고가 있었다. 하지만 한국 영화산업의 급격한 침체에 따른 위기감과 함께 수많은 갈등 요소가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했다고 보는 것이 정당해 보인다.

관건은 그 해법이며, 지금은 영진위에게 매우 중요한 시기다. 만약 강 위원장과 그 주변의 불협화음이 계속 증폭된다면, 그래서 ‘영진위 무용론’이 대두한다면, 그땐 정말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될지도 모른다.   출처:네이버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