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개.... 飛

고현아2009.01.07
조회126

Fly > 첫 번째.

 

 

 

 

큰일이다.. 심장에... 병이 생겼다.

 

 

 

성실하게.. 이 십 년 가까이.. 그 흔한 지각이나, 결근 한번 없이..

한 회사를 다니고 계시는 우리 아부지.

공부랑은 담 쌓고.. 친구들과 몰려다니기 바쁜 철없는 녀석이지만..

그래도.. 부모님 생각이라면.. 끔찍이도 하는.. 세 살 터울.. 내 동생.

외모도.. 성적도.. 모든 게.. 그냥 딱... 중간.. 정도인..

나 서지운.

그리고.. 그런 우리 가족이.. 세상의 전부인.. 우리 엄마.

 

딱히.. 대단할 것도.. 모자랄 것도 없는.. 평범한 나를 둘러싼 세상 속에서..

지난.. 열 일 곱 해를.. 살아왔다.

 

지금까지의 내 인생은.. 뭐랄까...

평화로운 시골길.. 같다고나 할까?

 

아마도.. 이렇게.. 어른이 되고.. 이렇게 나이를 먹고..

나의 부모님처럼.. 조용하고.. 평범한 일생을 살아갈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헌데..

그런.. 내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어버릴 사건이 생겨버렸다.


그래..

이건.. 평범한 내 일생에.. 핵폭탄이나.. 마찬가지다.

 

아마도 나... 사랑에 빠진 것.. 같다.

 

 

으악............

 

그깟 사랑이.. 뭐 대수냐고?

 

남들 다 하는 거..

 

그래.. 사춘기에.. 첫사랑.. 뭐 이런.. 감상적인 경험.

 

뭐.. 이런 핑크빛 상상을 하는 거라면.. 제발... 집어치워 주기를... 날 개.... 飛

 

열 일 곱 살 씩이나 먹고 나서야..

겨우..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이나, 좋아하는 감독의 새 영화..

뭐 이런 것들에 설레이던 가슴이..

처음으로.. 사람 때문에 설레게 되었는데..

 

그.. 설레임의 대상이.. 문제라.. 이 말이다.

 

초등학교 이후로.. 줄곧.. 시커먼 사내놈들만 우글거리는 남학교만 다니고 있는

내 인생의.. 저주다.. 이건.

 

그래... 군대에서도.. 이런 경우가 흔히들 있다잖어?

너무.. 주변에.. 남자놈들 밖에 없으니까..

그러니까... 내가.. 착각하는 거야... 그런 걸꺼야...

 

으악.......

 

왜 하필......

열 일 곱.. 내 평생에.. 겨우 찾은.. 첫 사랑이..같은 학교 녀석이란 말이냐..

 

내 이상형은.. 한품에 쏙.. 들어오는.. 아담사이즈에.. 예쁜 미소를 머금고..

앵두 같은 입술로.. 내 이름을 불러줄.. 소녀였단 말이돠....

 

처음엔.. 분명..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설마.. 꿈에라도.. 생각한 적 없었다. 내가.. 게이라니... 오마이 갓~

 

그래도.. 명색이.. 고등학생이 되었는데.. 지겨운 공부만 하며..

꽃 같은 청춘을 다 쓸 순 없지 않은가?

나같이 숫기 없고.. 재미없는 인간이.. 어디 가서 여자친구를 만든단 말이냐..

부활동 하나라도 해야.. 다른 여학교랑 join도 하고.. 축제 같은데.. 참여도 하고..

무튼.. 그런 장밋빛 꿈에 부풀어서.. 영화동아리에 들었다.

 

설레는 맘으로.. <fly>라는 글자가.. 어설픈 그라피티로 ... 그려져 있는..

부실의 문을 열었을 때..

내 눈에.. 제일 처음 들어 왔던 게.. 불행히도.. 그 녀석이였다.

 

 

“너도.. 일학년 이냐?

 선배들.. 아직 안 온 거 같던데..

 봐봐.. 저기.. “

 

 

창가에 놓여있는.. 책상위에.. 털썩 올라가 앉아 있던 녀석은..

턱 끝으로.. 칠판을 가리켰다.

내가 제일 먼저 왔다고 생각했는데.. 녀석은 나보다 먼저 와서.. 빈 교실에서

혼자.. 누군가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 팔팔한 신입생들~

   하늘같은 선배님들.. 배 좀 채우고 오마!

   혹시라도 일찍 도착한 개념 찬 녀석들은.. 두 시까지 기다리도록! -

 

 

 

손목시계를.. 확인하니.. 아직.. 한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다.

 

쳇.. 괜히 일찍 왔네..

 

교실 창밖을 내다보니.. 하교하는 시커먼 교복차림의 녀석들이.. 줄지어 교문 밖으로 향하고 있다.

황금 같은 토요일까지.. 학교에서 밥을 먹어야 하다뉘....

그냥.. 입회원서 같은 것만 내고 가면 되는 줄 알았는데..

영.. 성가시게 생겨버렸다.

 

그냥.. 가버릴까 하고.. 잠시 고민에 빠진 내게.. 녀석이 손에 들고 있던 영화잡지를 둘둘 말아..한 손에 쥐더니..

책상에서.. 폴짝 뛰어내려.. 다가온다.

 

 

“ 이왕 이렇게 된 거.. 같이 밥이나 먹자!

  난.. 준이다. 넌? “

 

 

읔.. 준? 준이 뭐냐.. 느끼하게..

녀석의 가슴에.. 새겨져 있는 이름표에.. 멀쩡히.. 이준우 라고

선명하게 박혀 있는데..

태연하게.. 말하는 녀석을 향해..

 

 

“ 준우가 아니구? ”

 

 

하고.. 퉁명스럽게 묻자,

녀석.. 피식 웃더니.. 아무렇지 않게 내 어깨에 팔을 휙 두른다.

 

 

“ 내 맘이지.

  난.. 원래.. 외자 이름을 갖고 싶었거든.. 멋지잖아! 간편하구..

  뭐하러.. 쓸데없이.. 한 자 더 붙여놔가지구...

  무튼.. 넌 내 친구니까.. 준이라고 불러! 알았지?

  가자! 쫄면이나 먹을까? “

 

 

(내가 언제부터.. 니 친구였냐.....

 그리고.. 그 선심쓰는 듯한.. 말투는.. 뭐란 말이더냐..... 날 개.... 飛)

 

 

사실.. 첫 대면부터.. 너무 친한 척 해대는 사람에게.. 난 약간 거부감이 있다.

 

헌데.. 너무 아무렇지 않게.. 내 어깨에 팔을 두르고..

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구 대하듯, 스스럼없이.. 이런 저런 말을 건네며..

매점으로 향하는 이 녀석에겐..

웬일인지.. 이상하게 거부감 같은 건.. 들지 않았다.

 

마치.. 녀석을 만나러.. 그곳의 문을 열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쫄면그릇을 앞에 두고.. 마주 앉은 녀석과 나는..

별 시답잖은 대화를 몇 마디 주고받으며.. 통성명을 했다.

녀석은 나랑 같은 학년이였고.. 우리 옆 반이였고..

나랑 같은 동네.. 옆에 옆에 집에서 살고 있었고..

멋있어 보이고 싶어서.. 영화동아리 말고도.. 특별활동으로  검도를 하고 있었고..

영화 보는 것을 밥 먹기처럼..

매일매일 거르지 않는 것을 나름의 생활 수칙으로 삼고있는..  녀석이였다.

 

 

 

“ 오우~ 지운.

  이름.. 맘에 드는데?

  야.. 지~운... 길게..발음하면.. 주~운.. 이랑 비슷하다..

   (뭐가..비슷하단 말이냐..썰렁하게..)

 

  근데.. 넌 원래 그렇게 말이 없냐? 심심하게.. 스리.. “

 

 

 

그래.. 유감스럽게도.. 난.. 너만큼.. 처음 보는 사람한테..

스스럼없이 막 다가가고 그러질 못하는 인간이다. 어쩔래?

 

그렇게.. 녀석과 난. <Fly>에 들어가기로 맘먹은 첫날부터.. 

얼결에..  친구 먹는 사이가 되었고..

그날 이후로,  시끄러운 걸.. 별로 좋아라 하지 않는 성격 때문에..

방과 후나.. 점심시간이면.. 틈틈이.. 조용한.. 부실을 찾던 나는,

본의 아니게.. 녀석과.. 하루에 꽤 많은 시간을 함께 하게 되었다.

 

나처럼.. 친구들한테 인기 없는.. 스타일도 아니면서..

녀석은.. 언제나, 나보다 먼저.. 부실에 와 있었다.

처음 만났던 날 처럼..

창가에 놓여있는.. 책상위에.. 올라앉은 채로.. 영화잡지를 보다가..

내가 들어가면.. 늘.. 반갑게.. 한 손을 번쩍 들어.. 인사를 건넸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쌓여가던.. 어느 날.. 문득,

녀석이 눈앞에 보이면.. 멀쩡하던  심장이.. 빨라지는 걸.. 느꼈고..

‘ 어라? 이거 뭐지? ’ 하고.. 내 심장의 이상을 감지한 그 순간부터..

내 심장은.. 보란 듯이.. 활개를 쳤다.

 

녀석에게만.. 반응하는.. 성능 좋은 레이다처럼.. 말이다.

 

 

젠장..

 

나란 인간이.. 워낙.. 뭔가에 빠지면.. 적당히가 안되게 생겨먹은 인간이다.

 

중학교땐.. 프라모델이 좋아져서..

온 방안이..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만들어대다가..

말리던 엄마가 몽창 내다버리는 상황에 까지 이르렀고..

그 일로.. 꼬박 삼 일간을 물 한모금 안마시고 단식투쟁하다가..

병원에 실려간적도 있었다.

열 살 땐.. 레고블럭에 꽂혀서.. 밤잠 않자고.. 부모님 눈을 피해..

몇 날 며칠 동안을 블록쌓기에 매진해서..

내 방안 가득.. 스머프 마을을 만들어놓고,

정작 난.. 잘 데가 없어서.. 방구석에서.. 새우잠 자며.. 몇 달을 지냈던 적도 있었다.

 

내가.. 공부에 꽂혔으면.. 분명.. 서울대는 따놓은 건데..말이다. 날 개.... 飛

 

무튼.. 그게.. 프라모델이나.. 블록 같은 건.. 실증 날 때까지..푹 빠져서 하다보면..

결국은.. 흥미를 잃고.. 다른 데로.. 눈이 가던데..

그 녀석한테만은.. 몇 달이 지나도..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녀석은.. 하루에도 몇 번이고.. 눈앞을 알짱대지..

정말 환장할 노릇이였다.

 

 

 

“ 어이~ 친구!

  오늘 저녁에.. 나랑.. 예술영화 한편.. 때리시는 게..어떻겠나?

  오늘은..특별히.. 내가 쏘지!“

 

 

수업 끝나는 종이 땡! 치자마자.. 쪼르르 우리 반으로 달려와..

내 앞에 앉은 녀석이 나를 향해.. 샤방 미소를 날린다.

붉은 저녁 해가.. 교실로 스며드는.. 이 시간에.. 녀석을 보는 건.. 내겐.. 쥐약이다.

햇살이.. 녀석의 옆얼굴을 비치면..

반짝이는 갈색눈동자가.. 사정없이 빛나기 때문이다.

그럴때면.. 아무리 고개를 돌려.. 딴 곳을 바라보고.. 딴 생각을 하려고 해도..

자꾸면.. 그.. 갈색눈동자로.. 눈이 가버리고.. 마음이 가버린다.

 

아.. 이러다.. 난.. 곧.. 말라 죽어버릴 것 같다. 날 개.... 飛

 

 

 

“ 나.. 오늘.. 좀.. 몸이 안좋아.

  일찍 가서 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