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많은사람들이 나름데로 논리적인 지적이라 생각하며, 크리스천들도 이 질문앞에 쩔쩔맨다고 생각하는 고등비평가들의 질문이다. 그러나 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신앙을 떠나서라도(믿지않는 자들의 배경적의미로서) 사랑을 진심으로 해보았거나 소망했던 사람이라면 그사람에게 이 답변을 쉽게 해줄수 있을듯 싶다. 완전한 자유의지의 선물이란 어린아이에게 쥐어진 칼자루 처럼 연약한 인간에게는 엄청난 위험과 모험과 유혹이 따르는 독약이라 말하는 이도 있을것이다. 모든것을 미리 알고계시며, 이미 계획하셨던 데로 세상사가 돌아가며 심지어 머리털 하나 빠지는것도 그의 허락없이 안되므로 인간이 죄를지고 허다한 영혼들이 지옥불에 떨어지는 것이 신인 뜻이냐며? 반박하는 그들의 관점에대해 말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신학자들은 학문적인 논쟁으로 대처를 해오고 있었다. 필자는 한가지 비유를 들어보겠다.!! 나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 내가사는 이마을은 남자가 나하나밖에 없다! 그래서 난 사랑하는 여인을 얻을수 있었다. 그러나 난 이 여인을 너무나도 사랑하기때문에 자꾸만 내자신이 작아보인다. 만일 이 마을에 나말고 다른 남자가 있다면 이여자가 그래도 날 좋아했을까? 지금 내가 이 여자에게 있어 사랑의 존제인지 필요의존제인지...즉 필요한 사람이여서 사랑하는것인지....사랑하기에 필요한 사람인지 두고봤을때 난 단지 이여인에게 필요한 사람이기때문에 사랑받는것이다. 난 세상 그무엇과도 비교할수도 없고 설령 비교했을때 그어떤것보다 더 사랑받는 사람이고 싶다! 많은 남자들 가운데서 수많는 유혹이 있는 상황에서 나는 당당히 이 여인에게 선택받는 유일한 사랑이고 싶다. 필요에 의한 소유는 도구적인 소유일뿐이다. 그러나 난 인격적인 소유를 하고싶으며 또한 그 여인에게 있어 인격적 소유물이 되고 싶다. 하나님은 질투의 하나님이시다. 이것은 조물주가 피조물을 사랑해서 그 피조물이 다른것을 사랑할때 갖게되는 유일신의 감정이다! 우릴 무조건적으로 여호와를 높이며 찬양하는 차라리 돌들을취해 찬양받으신다는 말씀 처럼 그렇게 감정도 느낌도 없는 존제가 찬양하는 알람시계로 만드시길 원치 않으셨다! 인격적인 교제로서 감히 피조물이 조물주를 사랑하며, 사랑받는 사랑으로서 연결되는 유기적 으로 소유된 인격적 관계를 선물하신것이다. 선악과 그 유혹을 뿌리치고 선악과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해주시길 바랬던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창조하신 수천수백종의 피조물보다 우리를 선택하시고 사랑하셨다. 그러나 우리는 단하나 선악과 와 하나님중 어떤것이냐? 말하자면 결국 그정도에 불과했던것이다. 하나님께서 무엇이든 소유하고 가져되 되지만, 가져서 안되는것 하나님이 주인되심을 상기시켜줄 나무엿던것이다. 그리고 또 혹자들이 반론하는 만세전에 예비하심을 정리해보겠다. 그렇게 사랑하면 또한 미리 알았다면 그런 인간을 뭣하러 사랑하고 수렁에 빠질때 방관하다 구원계획을 또 무슨소리냐? 태초에 하나님이 말씀하실때는 히브리어러 (바레이쉬트) 라고 나온다. 무시간적 영원이라는 시간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즉 하나님은 시간을 창조하시며, 인간에게 질서와 계획을 가지고 살아갈수 있도록 베푸셨다. 계획하시고 준행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또 선물해주시는것과 같다. 하나님의 형상데로 창조된 우리는 어떤 피조물보다 더 하나님 같았고 그의 모습을 닮게됬던 것이다. 때를따라 시절을 좇아 풍성한 열매를 누리는 기쁨을 인간이 누리며, 또한 그의 열매가 우리가 되며 기쁨의 시간을 누렸다. 인간이 배신할때 하나님게서는 간과 하셨다. 이것은 바로의 마음을 각팍하게 하셨다는 내용과 일칠할수도 있다. 하나님이 그 마음을 굳어지게 하신것이아닌 내버려두신것이다. 역시 하나님은 우리의 인격적 사랑을 받으시기 원하셨다. 그렇지만 인간은 그 인격적인 사랑을 나누기보다 죄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 사실 이 자체만으로 배신인것이다. 죄에 바람나버린 인간 을 하나님께서는 치유하시길 작정하신것이다. 하나님은 죽을수 밖에 없는 인간들....정녕죽었던 인간들 때문에 자신이 죽으신다. 그것이 그리스도 사건이며, 우리를 살리기위해 부활하신다. 하나님은 지금 이시간에도 죽은영혼에게 외치고 부르짖으신다. 그의 전지적이고 신적인 능력으로 모든것을 되돌릴수 도 있다. 그러나 그분은 진정한 사랑을 나누기위해 우리에게 참회라는 시간을 주셨다.! 우리가 이것에 반응할때 회심이 일어나며, 이해하지 못해 믿지못했던, 모든 사건들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해되는 기적을 누릴것이다. 하나님은 방관자가 아니시다. 이시간에도 인간들만 시험과 아픔을 격는것이아닌 그 눈물의 세월 광야의 시간속에 함께 계신 분이다.!! 만일 당신이 그 누구보다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냈고 정말 스스로의 삶을 볼때 도저히 신이 있을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이 격었던 가장 아프고 힘들고 지금까지도 눈물나게 만들며, 상대적으로 누가 들어도 공감할수 있는 아픔이 있다면 3가지 만 말해보라고 하고싶다! 과연 있을지? 하나님은 고난을 숨겨주시는것 아닌 그 고난을 뛰어넘는 강하고 성장되는 당신으로 연단 시키셨다는것을 느낄수 있을것이다.! 고난을 뛰어넘는 능력있는 당신이 언제 닥칠지 모를 고난을 두고 두려워하는 이에비해 얼마나 값진 인생을 살고 있는지 조금이남아 생각한다면, 당신은 하나님을 찬양해야만 할것이다. 당신이 지금까지도 숨쉬고 살아 있다는 것은 아직도 하나님 께 돌아갈 길이 당신앞에 놓였고 그토록 사랑하며 부르시는 하나님의 소리에 반응할 때라는것 하나님은 결코 당신을 버린것이 아닌 지금도 하나님을 외면하고 다른것을 추구하는 당신을 부르치며 촉구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있다는것을 깨닳을 기회임을 명심해야 할 것 이다.
왜 선악과를 만드셨나요?
흔히 많은사람들이 나름데로 논리적인 지적이라 생각하며,
크리스천들도 이 질문앞에 쩔쩔맨다고 생각하는 고등비평가들의 질문이다.
그러나 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신앙을 떠나서라도(믿지않는 자들의 배경적의미로서)
사랑을 진심으로 해보았거나 소망했던 사람이라면 그사람에게 이 답변을 쉽게 해줄수 있을듯 싶다.
완전한 자유의지의 선물이란 어린아이에게 쥐어진 칼자루 처럼 연약한 인간에게는 엄청난
위험과 모험과 유혹이 따르는 독약이라 말하는 이도 있을것이다.
모든것을 미리 알고계시며, 이미 계획하셨던 데로 세상사가 돌아가며 심지어 머리털 하나 빠지는것도
그의 허락없이 안되므로 인간이 죄를지고 허다한 영혼들이 지옥불에 떨어지는 것이 신인 뜻이냐며?
반박하는 그들의 관점에대해 말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신학자들은 학문적인 논쟁으로 대처를 해오고 있었다.
필자는 한가지 비유를 들어보겠다.!!
나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 내가사는 이마을은 남자가 나하나밖에 없다! 그래서 난 사랑하는 여인을
얻을수 있었다. 그러나 난 이 여인을 너무나도 사랑하기때문에 자꾸만 내자신이 작아보인다.
만일 이 마을에 나말고 다른 남자가 있다면 이여자가 그래도 날 좋아했을까? 지금 내가 이 여자에게 있어 사랑의
존제인지 필요의존제인지...즉 필요한 사람이여서 사랑하는것인지....사랑하기에 필요한 사람인지 두고봤을때
난 단지 이여인에게 필요한 사람이기때문에 사랑받는것이다.
난 세상 그무엇과도 비교할수도 없고 설령 비교했을때 그어떤것보다 더 사랑받는 사람이고 싶다!
많은 남자들 가운데서 수많는 유혹이 있는 상황에서 나는 당당히 이 여인에게 선택받는 유일한 사랑이고 싶다.
필요에 의한 소유는 도구적인 소유일뿐이다. 그러나 난 인격적인 소유를 하고싶으며 또한 그 여인에게 있어
인격적 소유물이 되고 싶다.
하나님은 질투의 하나님이시다. 이것은 조물주가 피조물을 사랑해서 그 피조물이 다른것을 사랑할때 갖게되는
유일신의 감정이다! 우릴 무조건적으로 여호와를 높이며 찬양하는 차라리 돌들을취해 찬양받으신다는
말씀 처럼 그렇게 감정도 느낌도 없는 존제가 찬양하는 알람시계로 만드시길 원치 않으셨다!
인격적인 교제로서 감히 피조물이 조물주를 사랑하며, 사랑받는 사랑으로서 연결되는 유기적 으로 소유된 인격적
관계를 선물하신것이다. 선악과 그 유혹을 뿌리치고 선악과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해주시길 바랬던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창조하신 수천수백종의 피조물보다 우리를 선택하시고 사랑하셨다. 그러나 우리는 단하나
선악과 와 하나님중 어떤것이냐? 말하자면 결국 그정도에 불과했던것이다.
하나님께서 무엇이든 소유하고 가져되 되지만, 가져서 안되는것 하나님이 주인되심을 상기시켜줄 나무엿던것이다.
그리고 또 혹자들이 반론하는 만세전에 예비하심을 정리해보겠다.
그렇게 사랑하면 또한 미리 알았다면 그런 인간을 뭣하러 사랑하고 수렁에 빠질때 방관하다 구원계획을 또 무슨소리냐?
태초에 하나님이 말씀하실때는 히브리어러 (바레이쉬트) 라고 나온다. 무시간적 영원이라는 시간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즉 하나님은 시간을 창조하시며, 인간에게 질서와 계획을 가지고 살아갈수 있도록 베푸셨다.
계획하시고 준행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또 선물해주시는것과 같다. 하나님의 형상데로 창조된 우리는 어떤 피조물보다
더 하나님 같았고 그의 모습을 닮게됬던 것이다.
때를따라 시절을 좇아 풍성한 열매를 누리는 기쁨을 인간이 누리며, 또한 그의 열매가 우리가 되며 기쁨의 시간을 누렸다.
인간이 배신할때 하나님게서는 간과 하셨다. 이것은 바로의 마음을 각팍하게 하셨다는 내용과 일칠할수도 있다.
하나님이 그 마음을 굳어지게 하신것이아닌 내버려두신것이다.
역시 하나님은 우리의 인격적 사랑을 받으시기 원하셨다. 그렇지만 인간은 그 인격적인 사랑을 나누기보다 죄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 사실 이 자체만으로 배신인것이다. 죄에 바람나버린 인간 을 하나님께서는 치유하시길 작정하신것이다.
하나님은 죽을수 밖에 없는 인간들....정녕죽었던 인간들 때문에 자신이 죽으신다.
그것이 그리스도 사건이며, 우리를 살리기위해 부활하신다.
하나님은 지금 이시간에도 죽은영혼에게 외치고 부르짖으신다. 그의 전지적이고 신적인 능력으로 모든것을 되돌릴수 도 있다.
그러나 그분은 진정한 사랑을 나누기위해 우리에게 참회라는 시간을 주셨다.!
우리가 이것에 반응할때 회심이 일어나며, 이해하지 못해 믿지못했던,
모든 사건들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해되는 기적을 누릴것이다.
하나님은 방관자가 아니시다. 이시간에도 인간들만 시험과 아픔을 격는것이아닌 그 눈물의 세월 광야의 시간속에
함께 계신 분이다.!!
만일 당신이 그 누구보다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냈고 정말 스스로의 삶을 볼때 도저히 신이 있을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이 격었던 가장 아프고 힘들고 지금까지도 눈물나게 만들며, 상대적으로 누가 들어도 공감할수 있는
아픔이 있다면 3가지 만 말해보라고 하고싶다! 과연 있을지?
하나님은 고난을 숨겨주시는것 아닌 그 고난을 뛰어넘는 강하고 성장되는 당신으로 연단 시키셨다는것을 느낄수 있을것이다.!
고난을 뛰어넘는 능력있는 당신이 언제 닥칠지 모를 고난을 두고 두려워하는 이에비해 얼마나 값진 인생을 살고 있는지
조금이남아 생각한다면, 당신은 하나님을 찬양해야만 할것이다.
당신이 지금까지도 숨쉬고 살아 있다는 것은 아직도 하나님 께 돌아갈 길이 당신앞에 놓였고 그토록 사랑하며 부르시는
하나님의 소리에 반응할 때라는것 하나님은 결코 당신을 버린것이 아닌 지금도 하나님을 외면하고 다른것을 추구하는
당신을 부르치며 촉구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있다는것을 깨닳을 기회임을 명심해야 할 것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