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 철학의 법정에 서다

이훈2009.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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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철학의 법정에 서다 마이클 필립스 지음 | 홍선영 옮김 웅진씽크빅 2008.12.19 펑점 인상깊은 구절 상대적으로 증거의 기반이 취약한 믿음도 있다는 사실을 일단 인정했으니, 상황에 따라서는 아무런 증거 없이 믿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전보다는 덜 충격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믿음이 두 가지 엄격한 조건만 만족한다면 그러한 믿음을 지켜야 할 권리가 있다고 앞서 강조한 바 있다. 두 가지 조건은 첫째, 증거나 논증을 근거로 삼아 결정할 수 없는 문제여야 한다. 둘째, 우리가 믿음으로 받아들인 문제가 다른 사람에게 심각한 위험이나 피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

  다시 데카르트처럼, 그러나 회의주는 그만.

 

 

  17세기 데카르트는 끝없는 회의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스스로 회의주의를 자신의 탐구 방법론으로 끌어들여, 마침내 결코 의심할 수 없는 명제를 찾아낸다. 그것은 너무나도 유명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는 명제다. 제 아무리 의심을 해도 의심을 하고 있는 주체의 존재까지 의심할 수는 없다는 그의 생각은 그후 이성을 판단의 근거로 삼는 주장의 강력한 근거가 되었다. 그러나 그의 놀라운 시도는 실패하고 만다. 그 이유는 생각하는 그 존재가 망상에 빠져 있을 수 있다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이성은 언제나 올바른 판단을 한다는 그의 생각은 잘못되었던 것이다. 결국 20세기초 인류는 지독하게도 잔혹하고 끔찍한 이성을 만나 충격에 빠진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더 이상 이성의 판단을 믿지 못하였다. 새로운 철학이 등장하고 사람들은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고민에 빠졌다. 그러나 오늘날 과학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이성을 근거로 한 과학적 사고가  수많은 회의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일어서고 있다. 과연 이성을 바탕으로 과학적 사고는 회의주의를 극복하고 진리로 우리를 인도할 것인가?

 

  는 이성을 근거로 과학적 사고의 오류를 철저하게 지적한다. 우리가 이성적으로 연구해온 우리의 모든 앎(믿음)의 근거를 모두 부정해버린다. 너무 철저하게 부정해서 회의 블랙홀에 빠져버리는 것 같다. 저자의 철저한 회의주의는 마치 21세기에 부활한 데카르트를 만나는 것 같다. 감각과 기억을 부정하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전문가 집단에 의해 만들어진 지식조차도 부정한다. 여기에는 철학자와 과학자도 포함된다. 저자의 주장대로라면 철학자와 과학자도 결국은 회의적인 질문을 끝까지 견디어낼 수 없다. 그들도 결국은 '그건 원래 그런 것이야'라는 말밖에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간의 생명은 소중하다'는 명제에 대해 그것이 '왜 그런 것인가?'라고 묻는다면 철학자들은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건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한 나머지 우리는 우리의 생명이 왜 소중한지를 증명할 수가 없다. 그냥 당연히 그렇다고 생각할 뿐이다. 어떤 철학자도 이유를 댈 수가 없다. 또 모든 질량을 가진 것들은 인력을 가진다는 만유인력의 법칙도 왜 모든 질량을 가진 것들은 인력을 가지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아니 할 수가 없다. 그냥 그런 것 뿐이다.

 

  이처럼 우리의 앎(믿음)이라는 것은 그 뿌리를 추적하면 결국 아무런 근거가 없는 명제에 도달하게 되고, 그것은 신념에 의해 지지받을 뿐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무엇은 맞고 무엇은 틀리다고 말할 수 있는가?

 

  여기서 끝이라면 이 책 는 가시 투성이 돌과 같은 뿐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이 세상 도저히 믿을 게 하나도 없다라는 푸념이 우리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그저 피만 흘리게 할 뿐이다. 그러나 저자는 여기서 우리에게 살아갈 방법을 하나 일러준다. 그것은 우리가 회의할 만한 근거가 충분히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믿음을 그냥 믿자는 것이다. 또한 그 믿음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이라면 그냥 믿자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조건이 만족된다면 어떤 믿음을 더 이상 회의하지 말자고 저자는 말한다. 왜냐하면 끝없는 회의로는 더 이상 우리가 현실에서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지적으로 게으른 자의 주장일지도 모른다. 진리를 탐구함에 있어 적당한 타협은 있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의 삶은 그렇게 마냥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언제 찾아질지도 모를 진리 때문에 기껏해야 100년 정도 사는 인간 모두가 진리만을 파고 앉아 있을 수는 없다. 현실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고 현실 잘 살기 위해서는 믿음을 근거로 올바른 판단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믿음을 근거로 할 것이냐가 중요하다. 즉 실천적인 강령이 필요하다. 그 강령을 저자는 위와 같이 두 가지로 제시했다.

 

  사실 모든 질량을 가진 것은 인력을 가진다는 주장을 거부할 만한 근거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것을 믿기로 하자. 또 인간의 생명은 소중하다는 주장도 거부할 만한 근거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것을 믿기로 하자. 이 두 가지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믿기로 하자. 이것이 우리에게 현재로서는 진리다. 물론 철학자들이라면 이런 대답에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가 철학자가 될 수는 없다. 회의는 분명 필요하지만 저자의 말대로 우리의 삶도 계속되어야 한다.

 

  이 는 철학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꼭 필요한 책이라고 본다. 철학에서 '회의'는 무척 중요한 생각의 도구지만 동시에 매우 위험한 도구이기도 하다. 이 도구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해서 이 책을 통해 배울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초보 철학자에게는 강력 추천하고픈 책이다. 물론 내 자신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