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을 상상하면 떠오르는 것은‘이슬람’, ‘전쟁’, ‘지진’… 뿐이다.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 쉽게 감이 잡히지 않는 국가가 바로 파키스탄이다. 하지만 파키스탄을 제2의 고향으로 여기고 그 나라, 그리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포토그래퍼가 있다. 지난 2000년 파키스탄과 처음으로 인연을 맺으면서 인생의 방향을 사진으로 바꾼 유별남(36) 작가는 파키스탄과 중동의 척박하면서도 아름다운 풍광과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촬영하고 있다. 지난 5월 EBS <세계테마기행>의 ‘중동의 붉은 꽃, 요르단’에 출연해 화제를 낳은 유별남 작가의 사진이야기를 취재했다.
유별남 1972년생. 동국대학교 예술대학 졸업. 지난 2000년에 방문한 파키스탄에 반해 파키스탄을 중심으로 중동과 아시아의 사진을 찍고 있다. 2006년 단행본 <신의 뜻으로>를 펴냈으며, 현재 <중동의 붉은 꽃, 요르단> 출간 작업 중이다.
발길을 사로잡은 파키스탄
“지난 2000년 한 달 예정으로 네팔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네팔에서 만난 배낭여행객들을 통해파키스탄에 대해 알게 됐죠. 이슬람 문화가 궁금하기도 하고, 얼마나 좋길래 다녀온 사람들이 다들 파키스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지 직접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여행 중 진로를 바꿔 인도를 거쳐 파키스탄에 가게 됐습니다.” 유별남 작가가 본 파키스탄의 첫 인상은 한 마디로‘뭐, 이런 곳이 다 있나’라는 것이었다. 거칠고 메마른 풍광, 달 표면 같은 지면, 네팔에서 본 것보다 더 웅장하고 거대한 자연,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파키스탄의 모든 것은 그의 몸과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 때문에 총 한 달 예정이었던 여행은 파키스탄에 머물면서 6개월로 늘어났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진은 그저 제가 잘 할 수 있는 것 중 하나일 뿐이었습니다. 물론 사진을 항상 좋아했고 언제나 카메라가 곁에 있긴 했지만 그것이 주는 아니었어요. 하지만 파키스탄에 머물면서 제 이야기를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게‘사진’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사실 유작가는 조각을 전공한 미술학도다. 어린 시절 카메라와 영상을 좋아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사진은 몸에 밴 친구 같은 존재였지만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조각을 중심으로 순수미술을 해왔고, 사진은 그저 하나의 표현수단이었다. 그렇지만 파키스탄에 도착한 후 그의 인생은 180도 바뀌게 됐다. “파키스탄이란 나라에 저도 모르게 끌렸다고나 할까요. 일단 첫 번째는 자연 경치에 끌렸고, 두 번째는 파키스탄이 아프가니스탄과 인접한 국경지대에 위치해 있다는 것에 끌렸습니다. 당시 아프간 국경지대에 갔다 납치당한 일이 있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일 이후로 더욱 파키스탄에 애착을 가지게 됐습니다.”
유작가는 자신의 인생의 전환점이 된 파키스탄 여행담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파키스탄-아프간 국경에서 누군가 제 뒤에서 목에 총을 겨눴습니다. 총구의 느낌이 그대로 전해지는데 정말 간담이 서늘하더군요. 많이 얻어 맞고 가지고 있던 짐을 모두 뺏긴 채 무릎을 꿇렸습니다. 그때 죽어도 여권은 품고 죽어야 나중에 신원확인이라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벨트와 신발 속에 숨겨뒀던 5달러와 10달러 지폐를 꺼내주면서‘이게 내 전 재산이다, 다만, 여권만 돌려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납치범들의 경계의 눈빛이 살짝 풀리는 것을 본 유작가는 그때부터 재치 있는 거짓말을 시작했다. “내가 유니세프에서 온 사진작가라 죽여 봤자 너희에게 도움이 될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러니 카메라 2대 중 1대와 필름은 돌려 달라, 필름은 어차피 아무 필요가 없으니 돌려주고, 큰 카메라는 작동법이 어려워 가지고 가도 쓸모가 없으니 작은 카메라만 가지고 나머지는 달라, 마지막으로 선글라스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니 그것도 돌려주면 안 되겠냐고 말했죠.” 다행히 대화가 잘 통했는지 납치범들은 유작가에게 여권과 카메라 1대, 필름, 선글라스를 돌려주고 살려 보 냈다.
“그렇게 달랑 4개 물품을 돌려받고 당시 묶고 있던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했더니, 2주 전 같은 국경에서 독일인과 일본인이 잡혀 죽었다고 하더라고요. 반면 어떤 영국 사람은 그놈들에게 200달러를 주고 총 쏘는 경험까지 했다며 제게 자랑을 하더군요. 화도 나고 죽을 뻔했다는 생각에 아찔하기도 하면서‘다시는 이곳에 오나 봐라’라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다음날 유작가가 가진 증오의 마음은 애증으로 변했다. 아프간 난민촌에서 만난 어린이들의 모습이 그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천진난만한 얼굴을 한 아이들이 신기한 듯 저에게 달려오더군요. 그곳에 약 200여명의 아이들이 있었는데 그 중 절반인 100여명은 고아였고, 나머지 절반인 50여명은 지뢰 때문에 팔, 다리를 잃은 아이들이었습니다. 아이들을 보자 미움이 가시고‘이 아이들을 위해 뭔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때부터 사진이 제게 더 크게 다가왔어요. 이후 파키스탄에서 마치 운명처럼 사진 인생의 스승이 된 두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때 만난 사람이 일본의 포토 저널리스트 구보다와 프랑스 사진작가인 매튜다. 유작가는 그들과 동행하면서 사진가의 자세와 세상을 보는 눈을 배웠고, 파키스탄에 머물면서 대학에서 전공한 조각보다 혼자 터득한 사진을 더욱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찾은 그곳
금방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유작가의 마음과는 달리 파키스탄에 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2004년 파키스탄에 가기 위한 준비 중 발목이 으스러지는 사고를 당한 것이다. “문화재청에서 의뢰한‘금석문(金石文)’의 데이터베이스화를 위한 사진 작업을 주로 하면서, 전공을 살려 무대 미술을 설치해 주는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무대 설치 작업을 하던 중 높은 곳에서 추락해 발목이 완전히 부서졌고, 1년 동안 깁스붕대를 해야만 했습니다. 활동적인 성격에 체구도 좋았던 제가 움직이지 못하니 우울해지더군요. 그래서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대학원에 진학해 포토저널리즘을 공부했습니다. 순수미술을 했기에 새로운 것을 하고 싶었거든요.”
‘위기는 기회다’는 말처럼 힘들었던 시간들은 유작가에게 사진의 의미를 되새기게 했고, 한 걸음 도약할 수 있는 시간이 됐다. “사고 2년 후인 2006년, 드디어 그렇게 가고 싶던 파키스탄에 다시 가게 됐습니다. 여행작가이신 백경훈씨와 동행해 그 분은 글을, 저는 파키스탄의 모습을 촬영해 책을 펴내자고 의기투합한 것이었죠. 일정은 두 달로 잡았는데 처음 한 달은 아마추어 원정대와 파키스탄의 빙하를 오르는 것이었고, 나머지 한 달은 백작가님과 둘이 파키스탄을 여행하는 것으로 정했습니다.”
유작가는 6년만에 방문한 파키스탄이었지만 너무나 자연스럽고 편안해 자신조차 놀랄 정도였다고 그때를 회상했다. 그런데 2번째 찾은 파키스탄에서도 유작가는 다시 한 번 죽을 고비를 맞게 된다. “자일을 타고 절벽을 올라가는데 200~300m 위에서 낙석이 떨어지는 겁니다. 지그재그로 떨어져서 나름 떨어질 위치를 생각해 요리저리 피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 돌이 제 머리 위로 바로 떨어지는 거예요. 눈 깜짝 할 순간이라 피할 틈도 없이 돌은 가슴에 부딪혔고 그대로 뒤로 쓰러졌습니다.” 그때 유작가를 살린 것은 다름 아닌 카메라였다. 얼마나 충격이 컸던지 렌즈는 마운트 바로 위쪽에서 그대로 잘려나가 나뒹굴고 있었고 배터리와 카드는 다 튀어나가 있었다.
“뒤로 쓰러진 상태에서 정신을 차리고 가장 먼저 한 것이 렌즈를 갈아 끼우고, 배터리와 카드를 다시 장착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셔터를 눌렀는데 작동이 되더군요. 카메라가 작동되는 것을 보고난 후 저도 모르게 통곡을 했습니다. 살아 있는 것이 감사하기도 하면서 겁도 나고 한편으로 서럽고 기쁜 그런 눈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평소 영화 <인디아나 존스>를 좋아하는 유작가는 어디를 가든 <인디아나 존스> 못지않은 경험을 하게 된다며, 별명이‘인디아나 유’라고 밝히며 맑게 웃었다. 여행할 때면 흰 셔츠에 베이지색 바지를 입고, 인디아나 존스처럼 꼭 중절모를 챙겨 쓴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파키스탄과의 재회는 <신의 뜻으로>라는 책으로 출간됐어요. 이 책이 나오고 파키스탄에서 촬영한 사진을 모아 사진전을 하면서 파키스탄 대사관과 인연을 맺게 됐습니다. 아무래도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파키스탄을 알리는‘문화사절단’같은 역할을 저도 모르게 하다 보니 파키스탄 대사관에서 무척 좋아하더라고요. 그 인연으로 지난해 파키스탄에서 열린 엑스포의 초청을 받아 다시 갔는데 그곳에서 우연히 지금의 <세계테마여행> PD를 만났습니다.” 유작가는 파키스탄을 잘 모르는 PD에게 현지인만이 알만한 시장과 뒷골목, 정통 음식 들을 소개하면서 친분을 쌓았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올 봄 <세계테마여행>의 여행지기로서 요르단에 가게 됐다.
“요르단에 같이 가겠냐는 제의를 받았을 때 처음에는 거절했어요. 남아프리카공화국에 가기 위해 모든 준비를 마쳐놓은 상태였거든요. 그런데 남아프리카에 같이 가기로 했던 일행들이 제가 거절했다는 소리를 듣자마자‘무슨 소리냐, 그것이 기회인데 당장 전화를 하라’고 난리였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요르단에 다녀온 후 지난 5월 TV를 통해 방영된‘중동의 붉은 꽃, 요르단’은 호평이 줄을 이었고, EBS 상반기 최우수 프로그램에 선정되기도 했다. 방송이 나간 후 유작가는 많은 팬들이 생겼고, 중동 지역을 더욱 사랑하게 됐다며 그런 기회가 자신에게 온 것에 감사했다.
한 장의 사진을 만드는 것은 한 장의 그림을 그리는 일
“제가 미술에서 사진으로 길을 바꿨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했어요. 순수미술을 하던 사람이 갑자기 사진을 한다고 하니 그럴 만도 하죠. 하지만 저는 비로소 저를 표현하는 수단을 찾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무엇보다 한 장의 사진을 만드는 일은 한 장의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다고 봅니다.” 유작가는 그림이나 사진 모두 비주얼로써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은 같다면서, 그렇기에 자신은 더욱‘사진을 그리기 위해’노력한다며 말을 이었다. “어떤 장소에 가면 온 몸으로 스케치하듯 그곳을 느낍니다. 바람소리, 사람, 냄새, 자연…, 모든 것을 느끼면서 심혈을 기울여 한 장의 그림을 그리듯 사진을 찍습니다.”
전시회를 열면 유작가에게 어떤 카메라를 쓰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그는“톨스토이에게 어떤 연필로 글을 썼냐는 질문을 하실건가요?”라고 되묻는다고 한다. 그림을 그릴 때 붓이 필요하고, 글을 쓸 때 연필이 필요하듯이 사진을 찍을 때 필요한 카메라는 그저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사진은 카메라가 찍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마음으로 찍는 것입니다.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작업을 하는 지가 더 중요한 거죠. 만약 제가 종군기자였다면 특종을 여러 번 했을 거예요. 하지만 전 성격상 기자는 될 수 없을 것 같아요. 폭탄테러나 지진 등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있을 때 저는 그들을 향해 먼저 카메라를 들이대기 전에 손을 뻗어 돕고 있을 테니까요.”
이런 그의 마음은 그가 발표하는 사진에도 잘 드러나 있다. 지진이나 전쟁 등으로 인한 파키스탄의 참혹한 사진들도 많이 찍었지만 유작가가 보여주는 사진에는 파키스탄의 아름다운 자연과 순박한 사람들의 모습뿐이다. “어차피 사진가가 사진을 팔아 돈을 번다면 기왕이면 불쌍하고 아픈 이미지보다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이미지를 팔고 싶습니다. 사진 한 장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어요. 제 사진으로 파키스탄의 이미지가 나쁘게 굳어지는 것은 싫습니다. 그들 나름대로 행복하게 잘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생각해보면 우리는 여러 매체에서 주입된 외국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 백인과 아랍인이 똑같이 길을 걷고 있다면 우리는 그들의 배경이 무엇이고 어떤 사람인지도 모른 채 서양인에게는 쉽게 호감을 가지지만 아랍인에게는 막연한 편견을 가지고 거리를 둔다. 이런 것들 모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지게 된 편견이다.
“이런 편견을 깨고 싶어서 아시아를 중심으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일단 파키스탄에 다시 가 그곳의 작업을 마치고, 그 후에는‘스탄 스토리’를 하고 싶어요. 중동 지역의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같은 나라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는 거죠. 그 후엔‘국경의 사람들’이란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자의가 아닌 지도의 선에 의해 나뉘게 된 사람들의 삶을 조명해보려 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의 아픈 부분을 알게 되고 그렇기에 사진으로나마 도움을 주고 싶다는 유별남 작가, 그는 카메라가 아닌 마음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끈끈한 정을 나누고 마음을 함께 할 사람들이 있기에 자신도 모르게 다시 파키스탄으로 발길을 향한다고 한다. 그의 모습 속에는 보물을 찾아 떠나는‘인디아나 존스’ 보다 더욱 값지고 아름다운 열정이 숨겨져 있었다.
유별남 - 파키스탄을 사랑하는 포토그래퍼
파키스탄을 상상하면 떠오르는 것은‘이슬람’, ‘전쟁’, ‘지진’… 뿐이다.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 쉽게 감이 잡히지 않는 국가가 바로 파키스탄이다. 하지만 파키스탄을 제2의 고향으로 여기고 그 나라, 그리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포토그래퍼가 있다. 지난 2000년 파키스탄과 처음으로 인연을 맺으면서 인생의 방향을 사진으로 바꾼 유별남(36) 작가는 파키스탄과 중동의 척박하면서도 아름다운 풍광과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촬영하고 있다. 지난 5월 EBS <세계테마기행>의 ‘중동의 붉은 꽃, 요르단’에 출연해 화제를 낳은 유별남 작가의 사진이야기를 취재했다.

유별남
1972년생. 동국대학교 예술대학 졸업. 지난 2000년에 방문한 파키스탄에 반해 파키스탄을 중심으로
중동과 아시아의 사진을 찍고 있다. 2006년 단행본 <신의 뜻으로>를 펴냈으며, 현재 <중동의 붉은 꽃,
요르단> 출간 작업 중이다.
발길을 사로잡은 파키스탄
“지난 2000년 한 달 예정으로 네팔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네팔에서 만난 배낭여행객들을 통해파키스탄에 대해 알게 됐죠. 이슬람 문화가 궁금하기도 하고, 얼마나 좋길래 다녀온 사람들이 다들 파키스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지 직접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여행 중 진로를 바꿔 인도를 거쳐 파키스탄에 가게 됐습니다.” 유별남 작가가 본 파키스탄의 첫 인상은 한 마디로‘뭐, 이런 곳이 다 있나’라는 것이었다. 거칠고 메마른 풍광, 달 표면 같은 지면, 네팔에서 본 것보다 더 웅장하고 거대한 자연,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파키스탄의 모든 것은 그의 몸과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 때문에 총 한 달 예정이었던 여행은 파키스탄에 머물면서 6개월로 늘어났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진은 그저 제가 잘 할 수 있는 것 중 하나일 뿐이었습니다. 물론 사진을 항상 좋아했고 언제나 카메라가 곁에 있긴 했지만 그것이 주는 아니었어요. 하지만 파키스탄에 머물면서 제 이야기를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게‘사진’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사실 유작가는 조각을 전공한 미술학도다. 어린 시절 카메라와 영상을 좋아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사진은 몸에 밴 친구 같은 존재였지만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조각을 중심으로 순수미술을 해왔고, 사진은 그저 하나의 표현수단이었다. 그렇지만 파키스탄에 도착한 후 그의 인생은 180도 바뀌게 됐다. “파키스탄이란 나라에 저도 모르게 끌렸다고나 할까요. 일단 첫 번째는 자연 경치에 끌렸고, 두 번째는 파키스탄이 아프가니스탄과 인접한 국경지대에 위치해 있다는 것에 끌렸습니다. 당시 아프간 국경지대에 갔다 납치당한 일이 있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일 이후로 더욱 파키스탄에 애착을 가지게 됐습니다.”
유작가는 자신의 인생의 전환점이 된 파키스탄 여행담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파키스탄-아프간 국경에서 누군가 제 뒤에서 목에 총을 겨눴습니다. 총구의 느낌이 그대로 전해지는데 정말 간담이 서늘하더군요. 많이 얻어 맞고 가지고 있던 짐을 모두 뺏긴 채 무릎을 꿇렸습니다. 그때 죽어도 여권은 품고 죽어야 나중에 신원확인이라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벨트와 신발 속에 숨겨뒀던 5달러와 10달러 지폐를 꺼내주면서‘이게 내 전 재산이다, 다만, 여권만 돌려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납치범들의 경계의 눈빛이 살짝 풀리는 것을 본 유작가는 그때부터 재치 있는 거짓말을 시작했다. “내가 유니세프에서 온 사진작가라 죽여 봤자 너희에게 도움이 될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러니 카메라 2대 중 1대와 필름은 돌려 달라, 필름은 어차피 아무 필요가 없으니 돌려주고, 큰 카메라는 작동법이 어려워 가지고 가도 쓸모가 없으니 작은 카메라만 가지고 나머지는 달라, 마지막으로 선글라스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니 그것도 돌려주면 안 되겠냐고 말했죠.” 다행히 대화가 잘 통했는지 납치범들은 유작가에게 여권과 카메라 1대, 필름, 선글라스를 돌려주고 살려 보
냈다.
“그렇게 달랑 4개 물품을 돌려받고 당시 묶고 있던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했더니, 2주 전 같은 국경에서 독일인과 일본인이 잡혀 죽었다고 하더라고요. 반면 어떤 영국 사람은 그놈들에게 200달러를 주고 총 쏘는 경험까지 했다며 제게 자랑을 하더군요. 화도 나고 죽을 뻔했다는 생각에 아찔하기도 하면서‘다시는 이곳에 오나 봐라’라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다음날 유작가가 가진 증오의 마음은 애증으로 변했다. 아프간 난민촌에서 만난 어린이들의 모습이 그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천진난만한 얼굴을 한 아이들이 신기한 듯 저에게 달려오더군요. 그곳에 약 200여명의 아이들이 있었는데 그 중 절반인 100여명은 고아였고, 나머지 절반인 50여명은 지뢰 때문에 팔, 다리를 잃은 아이들이었습니다. 아이들을 보자 미움이 가시고‘이 아이들을 위해 뭔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때부터 사진이 제게 더 크게 다가왔어요. 이후 파키스탄에서 마치 운명처럼 사진 인생의 스승이 된 두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때 만난 사람이 일본의 포토 저널리스트 구보다와 프랑스 사진작가인 매튜다. 유작가는 그들과 동행하면서 사진가의 자세와 세상을 보는 눈을 배웠고, 파키스탄에 머물면서 대학에서 전공한 조각보다 혼자 터득한 사진을 더욱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찾은 그곳
금방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유작가의 마음과는 달리 파키스탄에 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2004년 파키스탄에 가기 위한 준비 중 발목이 으스러지는 사고를 당한 것이다. “문화재청에서 의뢰한‘금석문(金石文)’의 데이터베이스화를 위한 사진 작업을 주로 하면서, 전공을 살려 무대 미술을 설치해 주는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무대 설치 작업을 하던 중 높은 곳에서 추락해 발목이 완전히 부서졌고, 1년 동안 깁스붕대를 해야만 했습니다. 활동적인 성격에 체구도 좋았던 제가 움직이지 못하니 우울해지더군요. 그래서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대학원에 진학해 포토저널리즘을 공부했습니다. 순수미술을 했기에 새로운 것을 하고 싶었거든요.”
‘위기는 기회다’는 말처럼 힘들었던 시간들은 유작가에게 사진의 의미를 되새기게 했고, 한 걸음 도약할 수 있는 시간이 됐다. “사고 2년 후인 2006년, 드디어 그렇게 가고 싶던 파키스탄에 다시 가게 됐습니다. 여행작가이신 백경훈씨와 동행해 그 분은 글을, 저는 파키스탄의 모습을 촬영해 책을 펴내자고 의기투합한 것이었죠. 일정은 두 달로 잡았는데 처음 한 달은 아마추어 원정대와 파키스탄의 빙하를 오르는 것이었고, 나머지 한 달은 백작가님과 둘이 파키스탄을 여행하는 것으로 정했습니다.”
유작가는 6년만에 방문한 파키스탄이었지만 너무나 자연스럽고 편안해 자신조차 놀랄 정도였다고 그때를 회상했다. 그런데 2번째 찾은 파키스탄에서도 유작가는 다시 한 번 죽을 고비를 맞게 된다. “자일을 타고 절벽을 올라가는데 200~300m 위에서 낙석이 떨어지는 겁니다. 지그재그로 떨어져서 나름 떨어질 위치를 생각해 요리저리 피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 돌이 제 머리 위로 바로 떨어지는 거예요. 눈 깜짝 할 순간이라 피할 틈도 없이 돌은 가슴에 부딪혔고 그대로 뒤로 쓰러졌습니다.” 그때 유작가를 살린 것은 다름 아닌 카메라였다. 얼마나 충격이 컸던지 렌즈는 마운트 바로 위쪽에서 그대로 잘려나가 나뒹굴고 있었고 배터리와 카드는 다 튀어나가 있었다.
“뒤로 쓰러진 상태에서 정신을 차리고 가장 먼저 한 것이 렌즈를 갈아 끼우고, 배터리와 카드를 다시 장착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셔터를 눌렀는데 작동이 되더군요. 카메라가 작동되는 것을 보고난 후 저도 모르게 통곡을 했습니다. 살아 있는 것이 감사하기도 하면서 겁도 나고 한편으로 서럽고 기쁜 그런 눈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평소 영화 <인디아나 존스>를 좋아하는 유작가는 어디를 가든 <인디아나 존스> 못지않은 경험을 하게 된다며, 별명이‘인디아나 유’라고 밝히며 맑게 웃었다. 여행할 때면 흰 셔츠에 베이지색 바지를 입고, 인디아나 존스처럼 꼭 중절모를 챙겨 쓴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파키스탄과의 재회는 <신의 뜻으로>라는 책으로 출간됐어요. 이 책이 나오고 파키스탄에서 촬영한 사진을 모아 사진전을 하면서 파키스탄 대사관과 인연을 맺게 됐습니다. 아무래도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파키스탄을 알리는‘문화사절단’같은 역할을 저도 모르게 하다 보니 파키스탄 대사관에서 무척 좋아하더라고요. 그 인연으로 지난해 파키스탄에서 열린 엑스포의 초청을 받아 다시 갔는데 그곳에서 우연히 지금의 <세계테마여행> PD를 만났습니다.” 유작가는 파키스탄을 잘 모르는 PD에게 현지인만이 알만한 시장과 뒷골목, 정통 음식 들을 소개하면서 친분을 쌓았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올 봄 <세계테마여행>의 여행지기로서 요르단에 가게 됐다.
“요르단에 같이 가겠냐는 제의를 받았을 때 처음에는 거절했어요. 남아프리카공화국에 가기 위해 모든 준비를 마쳐놓은 상태였거든요. 그런데 남아프리카에 같이 가기로 했던 일행들이 제가 거절했다는 소리를 듣자마자‘무슨 소리냐, 그것이 기회인데 당장 전화를 하라’고 난리였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요르단에 다녀온 후 지난 5월 TV를 통해 방영된‘중동의 붉은 꽃, 요르단’은 호평이 줄을 이었고, EBS 상반기 최우수 프로그램에 선정되기도 했다. 방송이 나간 후 유작가는 많은 팬들이 생겼고, 중동 지역을 더욱 사랑하게 됐다며 그런 기회가 자신에게 온 것에 감사했다.
한 장의 사진을 만드는 것은 한 장의 그림을 그리는 일
“제가 미술에서 사진으로 길을 바꿨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했어요. 순수미술을 하던 사람이 갑자기 사진을 한다고 하니 그럴 만도 하죠. 하지만 저는 비로소 저를 표현하는 수단을 찾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무엇보다 한 장의 사진을 만드는 일은 한 장의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다고 봅니다.” 유작가는 그림이나 사진 모두 비주얼로써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은 같다면서, 그렇기에 자신은 더욱‘사진을 그리기 위해’노력한다며 말을 이었다. “어떤 장소에 가면 온 몸으로 스케치하듯 그곳을 느낍니다. 바람소리, 사람, 냄새, 자연…, 모든 것을 느끼면서 심혈을 기울여 한 장의 그림을 그리듯 사진을 찍습니다.”
전시회를 열면 유작가에게 어떤 카메라를 쓰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그는“톨스토이에게 어떤 연필로 글을 썼냐는 질문을 하실건가요?”라고 되묻는다고 한다. 그림을 그릴 때 붓이 필요하고, 글을 쓸 때 연필이 필요하듯이 사진을 찍을 때 필요한 카메라는 그저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사진은 카메라가 찍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마음으로 찍는 것입니다.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작업을 하는 지가 더 중요한 거죠. 만약 제가 종군기자였다면 특종을 여러 번 했을 거예요. 하지만 전 성격상 기자는 될 수 없을 것 같아요. 폭탄테러나 지진 등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있을 때 저는 그들을 향해 먼저 카메라를 들이대기 전에 손을 뻗어 돕고 있을 테니까요.”
이런 그의 마음은 그가 발표하는 사진에도 잘 드러나 있다. 지진이나 전쟁 등으로 인한 파키스탄의 참혹한 사진들도 많이 찍었지만 유작가가 보여주는 사진에는 파키스탄의 아름다운 자연과 순박한 사람들의 모습뿐이다. “어차피 사진가가 사진을 팔아 돈을 번다면 기왕이면 불쌍하고 아픈 이미지보다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이미지를 팔고 싶습니다. 사진 한 장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어요. 제 사진으로 파키스탄의 이미지가 나쁘게 굳어지는 것은 싫습니다. 그들 나름대로 행복하게 잘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생각해보면 우리는 여러 매체에서 주입된 외국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 백인과 아랍인이 똑같이 길을 걷고 있다면 우리는 그들의 배경이 무엇이고 어떤 사람인지도 모른 채 서양인에게는 쉽게 호감을 가지지만 아랍인에게는 막연한 편견을 가지고 거리를 둔다. 이런 것들 모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지게 된 편견이다.
“이런 편견을 깨고 싶어서 아시아를 중심으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일단 파키스탄에 다시 가 그곳의 작업을 마치고, 그 후에는‘스탄 스토리’를 하고 싶어요. 중동 지역의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같은 나라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는 거죠. 그 후엔‘국경의 사람들’이란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자의가 아닌 지도의 선에 의해 나뉘게 된 사람들의 삶을 조명해보려 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의 아픈 부분을 알게 되고 그렇기에 사진으로나마 도움을 주고 싶다는 유별남 작가, 그는 카메라가 아닌 마음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끈끈한 정을 나누고 마음을 함께 할 사람들이 있기에 자신도 모르게 다시 파키스탄으로 발길을 향한다고 한다. 그의 모습 속에는 보물을 찾아 떠나는‘인디아나 존스’ 보다 더욱 값지고 아름다운 열정이 숨겨져 있었다.
출처 : DCM까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