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주간지 [타임]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민주주의를 다룬 표지 기사가 화제다. 한국에 대해 자주 언급했으며, 여야의 국회 몸싸움 장면이나 촛불 시위대와 경찰의 대치 장면 같은 사진까지 실렸다고 한다. 그 내용을 보니 한 수 훈계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어서, 보기가 좀 불편하긴 하다.
먼저 짚어야 할 점은, 이 기사는 아시아판 표지 기사라는 것. 문제의 기사가 실린 2009년 1월12일자 미국판은 미국의 에너지 문제, 유럽판은 가자 지구의 살육전을 표지 기사로 내세웠다. '아시아 민주주의' 기사는 미국판이나 유럽판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두 번째 점은, 이 기사를 전한 한국 매체들에 따르면, 해당 기사가 한국인이 독재를 그리워하는 것처럼 묘사했다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예컨대
타임은 한국에 대해 몽골과 대만, 태국, 필리핀처럼 최근의 민주적 정권교체로 삶이 개선된 것은 없다고 믿는 국민이 그렇지 않다는 국민보다 많다고 지적하면서 과거 독재자에 대한 향수가 확산되고 있는 나라라고 전했다. (한 신문)
라든가,
타임은 또 한국에 대해 몽골과 대만, 태국, 필리핀처럼 최근의 민주적 정권교체로 삶이 개선된 것은 없다고 믿는 국민이 그렇지 않다는 국민보다 더 많다고 지적하면서 과거 독재자에 대한 향수가 확산되고 있는 나라라고 전했다. (다른 신문)
라고 했지만, [타임] 기사에서는 한국을 포함한 이 나라들을 콕 찍어 "과거 독재자에 대한 향수가 확산되는 나라"라고 언급하지는 않았다. 아시아에 대한 일반적인 묘사일 뿐이다. 지금 한국에서 독재자에 대한 향수가 확산되다니, 말도 안 되지 않는가. 독재 하고 싶어 안달하는 사람들 빼고 누가 그런단 말인가. 독재 할까봐 걱정돼 죽겠구만. (여담이지만, 두 신문이 각기 독자적으로 쓴 것처럼 되어 있는 두 기사에서 글자 딱 한 자 차이나는 아름다운 광경을 보시라.)
[타임] 기사는 표지에서 '왜 아시아에서 민주주의가 실패하는가', 안에서는 '왜 아시아에서 민주주의가 수난을 당하고 있나'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기사는, 이미 상당한 정도로 민주화가 진행된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최근 왜 정치적 혼란이 벌어지는를 설명하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혼란을 극복하고 계속 민주화를 공고히 하려면 어떤 일이 필요한지를 제시한다.
기사는 아시아의 민주주의 역사가 짧고 새로운 민주 상황이 국민들의 기대를 충족해주지 못하기 때문에,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 흔들리며 과거의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향수가 등장한다고 분석한다. 또 아시아 정부들이 민주주의 정부의 가장 기본적 책무인 국민의 뜻을 대변하는 일에 실패하고 있다고도 주장한다. 과거에는 먹고 살기 바쁘니까 아무 말 없이 지도자를 따라주었지만, 이제는 잘 먹고 잘 살게 된 마당인데도 책임성, 투명성, 정의 따위가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기사가 제시하는 것은 네 가지다.
1. 거리에 나오지 말고 열심히 선거를 해라. 2. 정치 체제에 견제와 균형 시스템을 만들어라. 3. 언론이나 사법부를 비롯한 사회 장치(institution)를 정상화하라. 4. 사회단체를 비롯한 시민사회 요소를 발전시켜라.
보시면 알겠지만, 한국 상황과 잘 맞지 않는다. 사실 이 기사의 문제는, 아시아의 수많은 나라가 겪고 있는 다양한 정치 상황을 하나로 뭉개 설명하려 했다는 점이다. 말이 아시아이지, 그 안의 구성 국가들은 얼마나 천양지차이며, 비록 비슷한 정치 불안 상황이라고 해도 그 배경이나 과정은 얼마나 차이가 나는가. 이런 개별성을 개무시하고 아시아라는 틀로 한데 묶어버리려다 보니, 한국 같은 나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림에 들어간 셈이 됐다. 기사를 흐르는 톤을 보면, 기사는 주로 태국 사태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듯하며, 기실 태국의 경우에 대한 설명으로나 적합하다.
어쨌든 한국 관련해서 아주 틀린 말은 아닌 부분도 있다. 기사 중에서 한국 관련 부분만 옮겨 보면 아래와 같다. 부분 인용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시고 읽으시기 바란다.
2008년 내내 많은 아시아 국민들은 민주 정치에 대한 신념을 잃어버린 듯 보인다. 태국과 한국에서는 지난 2년 동안 인기 있는 지도자가 선거를 통해 집권했는데도 거리는 시위 군중으로 요동쳤다...
아직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민주 국가가 성장통을 겪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현재의 정치적 불안정이 계속 확산된다면, 아시아 국가들은 민주주의 자체에 대해 염증을 내게 될 수도 있다. 민주주의란 지나치게 산만하고 비효율적이며 부패해 있다는 인식이 퍼지기 때문이다. 각국의 통치 상황을 분석하는 '아시안 바로미터 프로젝트(ABP)'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 몽골, 대만, 태국, 필리핀에서는 최근 이루어진 민주주의적 변화가 삶의 향상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시아는 세계 인구의 5분의 3이 집중되어 있는 곳이다. 그러나 지난 10여 년 동안, 주요 정책을 내놓고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지도자를 뽑은 선거는 단 한 번도 없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그 한 대답은, 아시아인이 자기네 정치 권력자를 보는 시각이 (서구의 그것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데 있다. ABP 조사에 응한 아시아인 다수는 '민주 사상을 지지한다'고 대답했지만, 국가 지도자의 권력을 제한하려는 노력은 유럽인이나 심지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민들보다도 낮았다. 예컨대 한국에서는, 조사 대상자의 3분의 2 가까이가 도덕성 있는 권력자라면 무슨 일이든 해도 괜찮으며, 심지어 법을 위반하는 일도 가능하다고 믿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이) 지도자가 모든 것을 다 안다는 식의 사고방식 때문에, 아시아인은 시민(citizens)이라기보다 백성(subjects)으로 행동하게 된다...
80년대 중반을 시작으로, 필리핀과 한국에서 태국과 대만에 이르기까지 국민이 주도한 민주 혁명이 아시아 대륙을 변모시켰다. 그러나 대규모 시위는 독재자를 타도하기 위한 것이지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도자를 쫓아내기 위해 고안된 것이 아니었다. 오늘날 아시아의 많은 지역에서 무능한 지도자는 선거에서 패배하는 정치 체제가 자리잡고 있으며, 이 때문에 날건달을 권좌에서 쫓아내려는 거리 시위는 대체로 불필요하다. 물론 선거 제도는 완벽하지 않다. 예를 들어 매표 행위 때문에 진통을 겪는 아시아 국가도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공고히 키울 수 있는 것은 민주 선거를 몇 차례 치르는 방법뿐이다...
많은 아시아 국가에서 사법부는 타협의 산물로 간주된다. 파키스탄의 전 법무장관은 사법 체제가 '발목이 잡혀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부자나 힘 있는 사람들은 사법 체제를 피해 가는 방법을 갖고 있는 것으로 인식된다. 서울에 있는 고려대의 최장집 교수는 "사람들은 법이 평등하지 않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라고 말한다...
나는 현재의 우리 나라가 민주 국가로서의 요건을 온전히 갖춘 국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민주주의의 핵심이 되는 기본 요소, 예컨대 매체나 시위를 통한 의사 표현의 자유라든가 국민 여론 수렴이라든가 사법부의 독립 같은 것들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나라를 온전한 민주 국가라고 부르기는 낯간지럽다. 더 나아가, 한국 정치 권력자들의 너절하고 천박해서 위험천만한 권위주의적 행태에다가는 민주의 '민'자를 갖다 붙이기도 창피하다.
국민도 마찬가지다. 형식적인 선거를 한다고 해서 민주주의가 아니다. 민주주의를 누리려는 국민에게는 엄중한 의무가 따른다. 자기의 시민적 권리는 자기가 스스로 지켜야 한다. 민주주의란 이런 의무를 용감하게 수행하려는 국민에게만 열리는 혜택인지도 모른다. 권력자가 범법을 해도 오케이 하는 국민들이, 법치가 핵심 요소 중 하나인 민주주의를 누릴 자격을 가졌다고 할 수 있겠는가. 비록 저 [타임] 기사는 독자 편지를 보내 항의할 만한 기사지만, 그 안에서도 이런 상식을 다시 읽을 수 있다.
타임지 표지 기사의 한국 관련 부분
시사 주간지 [타임]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민주주의를 다룬 표지 기사가 화제다. 한국에 대해 자주 언급했으며, 여야의 국회 몸싸움 장면이나 촛불 시위대와 경찰의 대치 장면 같은 사진까지 실렸다고 한다. 그 내용을 보니 한 수 훈계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어서, 보기가 좀 불편하긴 하다.
먼저 짚어야 할 점은, 이 기사는 아시아판 표지 기사라는 것. 문제의 기사가 실린 2009년 1월12일자 미국판은 미국의 에너지 문제, 유럽판은 가자 지구의 살육전을 표지 기사로 내세웠다. '아시아 민주주의' 기사는 미국판이나 유럽판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두 번째 점은, 이 기사를 전한 한국 매체들에 따르면, 해당 기사가 한국인이 독재를 그리워하는 것처럼 묘사했다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예컨대
타임은 한국에 대해 몽골과 대만, 태국, 필리핀처럼 최근의 민주적 정권교체로 삶이 개선된 것은 없다고 믿는 국민이 그렇지 않다는 국민보다 많다고 지적하면서 과거 독재자에 대한 향수가 확산되고 있는 나라라고 전했다. (한 신문)
라든가,
타임은 또 한국에 대해 몽골과 대만, 태국, 필리핀처럼 최근의 민주적 정권교체로 삶이 개선된 것은 없다고 믿는 국민이 그렇지 않다는 국민보다 더 많다고 지적하면서 과거 독재자에 대한 향수가 확산되고 있는 나라라고 전했다. (다른 신문)
라고 했지만, [타임] 기사에서는 한국을 포함한 이 나라들을 콕 찍어 "과거 독재자에 대한 향수가 확산되는 나라"라고 언급하지는 않았다. 아시아에 대한 일반적인 묘사일 뿐이다. 지금 한국에서 독재자에 대한 향수가 확산되다니, 말도 안 되지 않는가. 독재 하고 싶어 안달하는 사람들 빼고 누가 그런단 말인가. 독재 할까봐 걱정돼 죽겠구만. (여담이지만, 두 신문이 각기 독자적으로 쓴 것처럼 되어 있는 두 기사에서 글자 딱 한 자 차이나는 아름다운 광경을 보시라.)
[타임] 기사는 표지에서 '왜 아시아에서 민주주의가 실패하는가', 안에서는 '왜 아시아에서 민주주의가 수난을 당하고 있나'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기사는, 이미 상당한 정도로 민주화가 진행된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최근 왜 정치적 혼란이 벌어지는를 설명하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혼란을 극복하고 계속 민주화를 공고히 하려면 어떤 일이 필요한지를 제시한다.
기사는 아시아의 민주주의 역사가 짧고 새로운 민주 상황이 국민들의 기대를 충족해주지 못하기 때문에,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 흔들리며 과거의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향수가 등장한다고 분석한다. 또 아시아 정부들이 민주주의 정부의 가장 기본적 책무인 국민의 뜻을 대변하는 일에 실패하고 있다고도 주장한다. 과거에는 먹고 살기 바쁘니까 아무 말 없이 지도자를 따라주었지만, 이제는 잘 먹고 잘 살게 된 마당인데도 책임성, 투명성, 정의 따위가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기사가 제시하는 것은 네 가지다.
1. 거리에 나오지 말고 열심히 선거를 해라.
2. 정치 체제에 견제와 균형 시스템을 만들어라.
3. 언론이나 사법부를 비롯한 사회 장치(institution)를 정상화하라.
4. 사회단체를 비롯한 시민사회 요소를 발전시켜라.
보시면 알겠지만, 한국 상황과 잘 맞지 않는다. 사실 이 기사의 문제는, 아시아의 수많은 나라가 겪고 있는 다양한 정치 상황을 하나로 뭉개 설명하려 했다는 점이다. 말이 아시아이지, 그 안의 구성 국가들은 얼마나 천양지차이며, 비록 비슷한 정치 불안 상황이라고 해도 그 배경이나 과정은 얼마나 차이가 나는가. 이런 개별성을 개무시하고 아시아라는 틀로 한데 묶어버리려다 보니, 한국 같은 나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림에 들어간 셈이 됐다. 기사를 흐르는 톤을 보면, 기사는 주로 태국 사태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듯하며, 기실 태국의 경우에 대한 설명으로나 적합하다.
어쨌든 한국 관련해서 아주 틀린 말은 아닌 부분도 있다. 기사 중에서 한국 관련 부분만 옮겨 보면 아래와 같다. 부분 인용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시고 읽으시기 바란다.
2008년 내내 많은 아시아 국민들은 민주 정치에 대한 신념을 잃어버린 듯 보인다. 태국과 한국에서는 지난 2년 동안 인기 있는 지도자가 선거를 통해 집권했는데도 거리는 시위 군중으로 요동쳤다...
아직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민주 국가가 성장통을 겪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현재의 정치적 불안정이 계속 확산된다면, 아시아 국가들은 민주주의 자체에 대해 염증을 내게 될 수도 있다. 민주주의란 지나치게 산만하고 비효율적이며 부패해 있다는 인식이 퍼지기 때문이다. 각국의 통치 상황을 분석하는 '아시안 바로미터 프로젝트(ABP)'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 몽골, 대만, 태국, 필리핀에서는 최근 이루어진 민주주의적 변화가 삶의 향상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시아는 세계 인구의 5분의 3이 집중되어 있는 곳이다. 그러나 지난 10여 년 동안, 주요 정책을 내놓고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지도자를 뽑은 선거는 단 한 번도 없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그 한 대답은, 아시아인이 자기네 정치 권력자를 보는 시각이 (서구의 그것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데 있다. ABP 조사에 응한 아시아인 다수는 '민주 사상을 지지한다'고 대답했지만, 국가 지도자의 권력을 제한하려는 노력은 유럽인이나 심지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민들보다도 낮았다. 예컨대 한국에서는, 조사 대상자의 3분의 2 가까이가 도덕성 있는 권력자라면 무슨 일이든 해도 괜찮으며, 심지어 법을 위반하는 일도 가능하다고 믿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이) 지도자가 모든 것을 다 안다는 식의 사고방식 때문에, 아시아인은 시민(citizens)이라기보다 백성(subjects)으로 행동하게 된다...
80년대 중반을 시작으로, 필리핀과 한국에서 태국과 대만에 이르기까지 국민이 주도한 민주 혁명이 아시아 대륙을 변모시켰다. 그러나 대규모 시위는 독재자를 타도하기 위한 것이지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도자를 쫓아내기 위해 고안된 것이 아니었다. 오늘날 아시아의 많은 지역에서 무능한 지도자는 선거에서 패배하는 정치 체제가 자리잡고 있으며, 이 때문에 날건달을 권좌에서 쫓아내려는 거리 시위는 대체로 불필요하다. 물론 선거 제도는 완벽하지 않다. 예를 들어 매표 행위 때문에 진통을 겪는 아시아 국가도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공고히 키울 수 있는 것은 민주 선거를 몇 차례 치르는 방법뿐이다...
많은 아시아 국가에서 사법부는 타협의 산물로 간주된다. 파키스탄의 전 법무장관은 사법 체제가 '발목이 잡혀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부자나 힘 있는 사람들은 사법 체제를 피해 가는 방법을 갖고 있는 것으로 인식된다. 서울에 있는 고려대의 최장집 교수는 "사람들은 법이 평등하지 않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라고 말한다...
나는 현재의 우리 나라가 민주 국가로서의 요건을 온전히 갖춘 국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민주주의의 핵심이 되는 기본 요소, 예컨대 매체나 시위를 통한 의사 표현의 자유라든가 국민 여론 수렴이라든가 사법부의 독립 같은 것들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나라를 온전한 민주 국가라고 부르기는 낯간지럽다. 더 나아가, 한국 정치 권력자들의 너절하고 천박해서 위험천만한 권위주의적 행태에다가는 민주의 '민'자를 갖다 붙이기도 창피하다.
국민도 마찬가지다. 형식적인 선거를 한다고 해서 민주주의가 아니다. 민주주의를 누리려는 국민에게는 엄중한 의무가 따른다. 자기의 시민적 권리는 자기가 스스로 지켜야 한다. 민주주의란 이런 의무를 용감하게 수행하려는 국민에게만 열리는 혜택인지도 모른다. 권력자가 범법을 해도 오케이 하는 국민들이, 법치가 핵심 요소 중 하나인 민주주의를 누릴 자격을 가졌다고 할 수 있겠는가. 비록 저 [타임] 기사는 독자 편지를 보내 항의할 만한 기사지만, 그 안에서도 이런 상식을 다시 읽을 수 있다.
[타임] 표지들 사진: [타임] 웹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