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다원주의

김현수2009.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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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 다원주의

1. 개념과 등장 원인
'모든 다원주의적 상황의 주요한 특징은, 그것들의 세부적인 역사적 배경이 어떠하든 간에 탈 독점적인 종교적 기업들이 고객 집단의 충성을 이제는 당연한 것으로 생각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제 충성은 자원적인 것이 되었으며, 따라서 정의상 확실한 것이 못 된다. 결과적으로 이전에는 권위있게 부과될 수 있었던 종교적 전통을 이제는 시장에 내놓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더 이상 구매되도록 강요 받지 않는 고객들에게 판매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다원주의적 상황은 무엇보다도 시장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종교 제도가 매매 기관이 되며, 종교적 전통은 소비자 상품이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많은 종교 활동이 시장 경제의 논리에 의해서 지배당하게 된다.'
피터 버거는 위와 같이 현대 사회는 종교도 시장 경영의 원리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종교 다원주의자 존 힉은 세 가지로 다원주의를 정의하였다.
첫째는 존재론적으로 많은 신들이 있다는 가설, 둘째는 한 종교만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반면 다른 종교는 잘못된 우상을 섬긴다는 가설, 셋째는 하나님은 한 신으로, 그가 만물을 창조하였고 만물의 주가 되는데 다른 모든 종교는 궁극적으로 이 한 하나님을 섬긴다는 가설이다. 힉은 이상의 세 가설 가운데 현대는 부득이 세 번째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종교 다원주의의 개념은 현대 사회는 종교와 문화 등 모든 분야가 다원화 사회이므로 모든 종교는 평화적 공존을 해야 하거니와 어느 특정 종교가 배타적 자세에서 절대성을 주장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종교 다원주의의 발생 원인은 무엇일까?
첫째는 서구와 미국 사회에 타종교가 들어가서 부흥함으로 발생한 사회적 변화에서 일어난 것이다.
둘째는 서구의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에 실망을 느끼고 동양 종교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였고, 또한 신학자들 중에서도 동양 종교에서 진리와 가치를 찾으려고 하는 데 기인한다.
셋째는 서구와 제3세계의 반서구 감정이 종교 다원주의를 부채질하고 있다. 특히 서구의 많은 백인 지식인 중에는 서구의 식민주의와 양차 대전에 대한 강한 자책감을 가진 자들이 많이 있는데 이들은 기독교와 서구 문명에 불만을 가지고 동양 종교를 찬양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주장하기를 기독교의 선교는 서구의 우월주의와 패권주의의 상징이므로 더 이상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넷째는 WCC의 종교 대화는 결과적으로 종교 다원주의를 초래하였다.
다섯째는 비서구 세계의 문화적 정체감 회복이 종교 다원주의에 큰 자극적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여섯 번째는 현 시대를 풍미하는 상대주의와 민주화가 종교 다원주의의 직접, 혹은 간접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일반적으로 서구적 민주주의의 가치관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일반적으로 이데올로기와 가치관과 윤리에서 역시 절대를 부정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2. 신학 사상
종교 다원주의자 힉과 니터는 기독교는 배타적 절대주의라는 우월주의에 기초하여 기독교만이 절대적으로 구원이 보장되는 종교라고 생각하였고, 신에 도달하는 길도 하나밖에 없다는 편견에 사로 잡혔다는 것이다. 이들은 기독교를 중심으로 모든 종교가 회전하고 다만 기독교와 다른 종교의 차이는 신과의 거리가 멀리 있는 위성이냐, 혹은 가까이 있는냐의 차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또한 모든 종교는 궁극적으로 한 신에 도달하는 많은 길에 불과하므로 사람은 어떠한 종교를 택하든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힉은 신은 기독교의 성경이 말하는 인격적인 신이 아니라 폴 틸리히가 말하는 궁극적 존재나 진리, 최고의 신적 실재, 초월적 존재, 완전자로 표현하기를 더 좋아한다. 이것은 신은 어느 특정 종교의 신과 동일화 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종교 다원주의는 성경의 그리스도의 절대성을 부정하고, 그리스도는 모든 문화와 종교에 가능하다는 소위 우주적 그리스도, 혹은 로고스를 강조하며, 이것은 본질적으로 그리스도와 예수를 분리하는 것을 전제로 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계시가 최종적인 것이 아니며, 또 더 이상 규범적인 것도 아니라고 본다. 종교 다원주의는 기독교의 본질인 예수 그리스도를 상대화함으로 오직 예수라는 전통적 신앙 고백을 거부한다.
파니카는 힌두교와 기독교는 다 같이 그리스도가 역사하기 때문에 양 종교는 실존적 차원에서 대화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3. 타 종교관
기독교와 타종교와의 관계에 대하여 신학자들이 제안한 가능한 모델은 ⑴ 배타주의, ⑵ 포괄주의, ⑶ 성취설, ⑷ 비연속성이다. ⑴은 복음주의자들이 일반적으로 취하는 자세로서 기독교 이외에 다른 종교로는 구원이 불가능하다는 배타적 구원론이다. ⑵는 바르트를 위시한 신정통주의 신학의 입장으로, 인류는 궁극적으로 구원을 얻지만 그리스도를 통하여서만 실현된다는 것이다. ⑶의 성취설 역시 기독교의 우월성을 바탕으로 하는 종교 신학으로, 기독교가 모든 종교보다 우월하기 때문에 기독교는 타종교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준다는 사상이다. ⑷는 타종교는 결코 신의 계시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종교 다원주의는 이상의 4모델과는 전혀 다른 모델을 제시한다. 그것은 존 힉과 폴 니터가 주장한 다원론이다. 이 다원론을 제창하게 된 원인은 첫째는 정통적 기독교는 서양적이고 공격적이고 우월적인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적 자세를 보여 왔다. 둘째는 이러한 우월주의 때문에 기독교는 지금까지 타종교의 주장들을 주의 깊게 관심을 두지 못하였다. 셋째는 현대의 상대주의 시대에 기독교의 절대적이고 배타적인 교리들은 부적절한 상황이 되어졌다. 넷째로 현대 성경 해석학은 스스로 이러한 절대적 주장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기독교는 비 절대화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종교 다원주의의 견해는 결론적으로 모든 종교는 동등한 입장에 있기 때문에 기독교만이 하나님이 인간을 다룸에 있어서 특권이나 우월성을 더 이상 주장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4. 비판
다원주의는 혼합주의와 이단에 못지 않게 기독교 교회와 선교에 심각한 도전이 되는 신학이다. 타종교는 해방되어야 할 선교의 영역이지만 다원론자들은 애써 이를 외면하고 있다. 복음주의는 문화, 언어, 세계관, 사회 제도, 종교 등에서 다원화의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종교 다원주의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세계 복음주의 협의회는 다원주의의 사회와 문화는 오히려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부합되고, 그리 인하여 특정 문화와 종교를 따르는 자들이 사회적으로 보호를 받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종교 다원주의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단호하게 거부한다.
우리는, 모든 종교는 동등하게 정당하고 동등하게 진리라는 다원주의의 주장에 대하여 다음의 몇 가지 이유로 반대한다.
첫째는 다원주의는 신관이 추상적이어서 영적 능력이 결여되고 성경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다원주의는 성경의 가르침을 신화로 해석함으로 인간 행위의 규범이 되는 것을 거부한다. 다원주의는 성경의 영감과 권위를 문자주의로 무시함으로 우리들의 신앙의 근거가 되는 기초를 제거하게 된다. 둘째는 다원론자들은 특수한 신관을 제시하는데, 이 특수 신관은 기독교나 힌두교로부터 은밀하게 차용한 것이다. 다원론은 예수에 대한 신약과 신앙 고백의 진리들을 단순화 신화화로 해석하여 역사적이고 사실적인 기초가 결여된다. 셋째는 다원주의는 기독교 신앙과 예수 그리스도의 예배를 우상으로 말한다. 넷째는 일부 다원주의는 예수 그리스도와 인격적 하나님의 중심성을 부정할 뿐 아니라 나아가서 모호하고 추상적인 '궁극적 실재'의 중심마저도 부정한다. 이러한 형태의 다원주의는 인간 '구원'을 모든 종교의 핵심과 규범으로 놓고 인간 자신을 모든 의미와 가치의 결정적인 중심으로 만든다. 이러한 다원주의는 자아 중심이고 근본적으로 힌두교나 뉴에이지 철학과 같은 단원론적 종교와 비슷하다. 다섯째는 다원주의도 겸손을 가장하여 기존 종교적 전통에 대하여 무례하며 공격적이어서 역시 교리적 배타주의가 될 수 있다. 여섯째는 다원주의는 목회적으로, 혹은 전도적으로 교회의 성도들을 섬기는데, 또한 모든 인종과 민족과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