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닉네임을 미네르바로 바꾸고 글을 올리고 있다. 이른바 미네르바 데이로 명명된..
정말 누리꾼들의 상상력이란... 상상이상이다.
모두가 미네르바라고 자처하고 글을 올리는데...
그중 주목을 받은 글이 하나 있었다.
읽어보니 정말 진짜 미네르바가 쓴 글처럼 느꼈졌다.
아래는 그 글에 주제였던 '시뮬라크르'라는 용어를 또 다른 미네르바가 해석한 글이다.
그리고 이 글의 댓글 중 눈에 띄는 것이 있었는데.
이 글을 쓴 '미네르바'는 우리가 아는 그 경제대통령 미네르바가 아니고, 또 다른 미네르바인 철학대통령 미네르바였다.
이제 진짜 미네르바 가짜 미네르바의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
진짜 미네르바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미네르바가 있기나 했었는지..
가능하면 쉽게 설명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만, 쉽게 설명할 수록 엄밀성은 떨어진다는 것은 전제해야 합니다.
설명 전에 용어를 좀 사전 설명하자면,
철학에서는 원래 복제라는 표현보다는 재현이라는 표현을 더 잘 쓰지요. 그러나, 각각의 재현은 일회로 끝나고 새로운 재현이 생기기 때문에 복제라는 표현을 씁니다. 재현은 그림같은 것입니다. 실체가 있으면 그것을 그림으로 그리면 그 실체를 대신하는 것이 되지요. 그것을 재현한다고 보면 되구요.
그 다음 기호입니다. 어떤 실체를 대신해서 상징하는 것들이 기호지요. 언어가 대표적인 기호입니다. '개'라는 글자는 실체인 개를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호에는 그림도 있고, 몸짓도 있고 다양히 존재합니다. 다만, 기호의 특징 중 하나는 기호는 단독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서로 관계지어지면서 엮여지면서 하나의 구조를 구성합니다. 기호화한다는 것은 실체 세계와 떨어져서 독립적으로 하나의 구조로서 존재한다는 뜻에서 썼습니다.
다시 시뮬라크르를 보지요.
시뮬라크르 하나만 설명하면 될 것 같습니다. 시뮬라시옹은 그냥 시뮬라크르가 명사라면 그저 그것의 동사형 정도로만 이해하면 될 것 같구요.
시뮬라크르는 복제된 것들을 의미합니다. 복제의 복제라는 말을 쓰는 것은 복제가 그렇게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원본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는 것을 함의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말을 썼구요.
예를 들어 가수의 CD를 봅시다. CD는 모두가 복제품이지요. 어느게 먼저 찍혔다고 나중에 찍힌 것이 앞서 찍힌 것보다 존재적으로 낮은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원본이라는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이러한 것을 시뮬라크르와 같은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어요.
예로 돌아가서 전지현을 생각해봅시다. 우리가 보는 전지현은 모두 재현된 것만을 보고 있습니다. 실체를 본 사람은 아주 드물죠. 그리고, 실체는 사실상 중요하지 않습니다. 재현된 모습들이 실체를 대신해서 세계에 존재하며 세계를 구성하면서 영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최소한 전지현과 관련해서는 우리가 접하는 세계란 실체가 아니라 재현된 것뿐이지요. 복제된 것이지요. 복제된 것은 다시 복제됩니다. 옆 집 순희네 TV에 나온 전지현이나 우리집 TV에 나온 전지현이나 모두 복제된 것이지 실체가 아닙니다. 실제로 전지현이 얼마나 촌스럽게 살고 더럽게 사는지는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어요. 내가 접하는 세계에서는 전혀 그런 실제 전지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내가 접하는 전지현은 섹시한 전지현이지요. 바로 그것이 가상의 전지현이지요. 실제의 전지현은 아닙니다. 그런 것이 전지현은 기호화한 것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시뮬라크르랑 시뮬라시옹이랑 구분하는 건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걸 다른 의미로 구분해서 쓰기위해서 쓴 용어가 아니고, 영어에서 같은 단어도 명사형이 있고, 동사형이 있듯이 그저 그렇게 다른 것일 뿐이니까요. 사실, 시뮬라크르에서 중요한 것은 시뮬라시옹이 어떤 과정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세계를 시뮬라크르라고 말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실체 속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이 세계는 사실상 시뮬라크르이다라는 것이지요.
매트릭스에서 시뮬라크르의 개념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바로 그런 점에서입니다. 우리가 실체라고 착각하고 살고 있지만 사실은 가상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도 거의 비슷합니다.
우리가 세계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 중에 자신이 직접 보고 확인하는 것은 거의 0.0001%도 되지 않습니다. 모두가 미디어를 통해 알 뿐이지요. 티비, 신문, 라디오, 인터넷 등의 미디어를 통해 소식을 접하고, 세상을 알게 되고, 그것이 실체와 같다고 믿고 있을 뿐입니다.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모든 것들은 시뮬라크르입니다. 사실 우리는 시뮬라크르의 세계만을 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구조화된 기호들만을 접하는 셈이지요.
실제로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은 기호들일 뿐 실체가 아닙니다. 이라크전쟁이 어떻게 이루어졌고,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실제 사실이나 실체는 전혀 우리와 관계가 없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라크 전쟁이란 그저 CNN이 보여준 모습이나 미국이 주장하는 주장들입니다. 그것들은 기호화한 것이고 실체를 재현한 것들인데 그러한 기호화와 재현에서 어떤 왜곡이 있었다 하더라도, 세계를 구성하는 것은 실체가 아니라 그러한 재현된 것들입니다. 실제 이라크 전쟁에서 10만명이 죽었다고 하더라도, 1만명만 죽었다고 보도되고, 기록된다면 결국 이라크 전쟁에서는 1만명만 죽은 것입니다. 1만명이 죽은 사실만이 이 세계에서는 존재하게 됩니다. 실체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게 됩니다.
1만명이 죽었다는 기호만이 세계 곳곳으로 복제되겠지요. 1만명이 죽었다는 것 자체가 복제인데, 그것이 계속 복제되면서 원본(10만명이 죽었다는 실체)는 사라지고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됩니다.
평생 매트릭스 속에 살다 죽은 사람에게는 실체 세계가 실체일까요? 아니, 그 사람에게는 매트릭스가 실체와 같은 것입니다. 시뮬라크르 속에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시뮬라크르가 곧 실제와 같은 영향을 미치고, 세계 그 자체가 되는 것입니다.
1월13일 새벽 미네르바 글을 해석한 글.
오늘은 미네르바 day.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닉네임을 미네르바로 바꾸고 글을 올리고 있다. 이른바 미네르바 데이로 명명된..
정말 누리꾼들의 상상력이란... 상상이상이다.
모두가 미네르바라고 자처하고 글을 올리는데...
그중 주목을 받은 글이 하나 있었다.
읽어보니 정말 진짜 미네르바가 쓴 글처럼 느꼈졌다.
아래는 그 글에 주제였던 '시뮬라크르'라는 용어를 또 다른 미네르바가 해석한 글이다.
그리고 이 글의 댓글 중 눈에 띄는 것이 있었는데.
이 글을 쓴 '미네르바'는 우리가 아는 그 경제대통령 미네르바가 아니고, 또 다른 미네르바인 철학대통령 미네르바였다.
이제 진짜 미네르바 가짜 미네르바의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
진짜 미네르바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미네르바가 있기나 했었는지..
가능하면 쉽게 설명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만, 쉽게 설명할 수록 엄밀성은 떨어진다는 것은 전제해야 합니다.
설명 전에 용어를 좀 사전 설명하자면,
철학에서는 원래 복제라는 표현보다는 재현이라는 표현을 더 잘 쓰지요. 그러나, 각각의 재현은 일회로 끝나고 새로운 재현이 생기기 때문에 복제라는 표현을 씁니다. 재현은 그림같은 것입니다. 실체가 있으면 그것을 그림으로 그리면 그 실체를 대신하는 것이 되지요. 그것을 재현한다고 보면 되구요.
그 다음 기호입니다. 어떤 실체를 대신해서 상징하는 것들이 기호지요. 언어가 대표적인 기호입니다. '개'라는 글자는 실체인 개를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호에는 그림도 있고, 몸짓도 있고 다양히 존재합니다. 다만, 기호의 특징 중 하나는 기호는 단독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서로 관계지어지면서 엮여지면서 하나의 구조를 구성합니다. 기호화한다는 것은 실체 세계와 떨어져서 독립적으로 하나의 구조로서 존재한다는 뜻에서 썼습니다.
다시 시뮬라크르를 보지요.
시뮬라크르 하나만 설명하면 될 것 같습니다. 시뮬라시옹은 그냥 시뮬라크르가 명사라면 그저 그것의 동사형 정도로만 이해하면 될 것 같구요.
시뮬라크르는 복제된 것들을 의미합니다. 복제의 복제라는 말을 쓰는 것은 복제가 그렇게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원본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는 것을 함의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말을 썼구요.
예를 들어 가수의 CD를 봅시다. CD는 모두가 복제품이지요. 어느게 먼저 찍혔다고 나중에 찍힌 것이 앞서 찍힌 것보다 존재적으로 낮은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원본이라는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이러한 것을 시뮬라크르와 같은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어요.
예로 돌아가서 전지현을 생각해봅시다. 우리가 보는 전지현은 모두 재현된 것만을 보고 있습니다. 실체를 본 사람은 아주 드물죠. 그리고, 실체는 사실상 중요하지 않습니다. 재현된 모습들이 실체를 대신해서 세계에 존재하며 세계를 구성하면서 영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최소한 전지현과 관련해서는 우리가 접하는 세계란 실체가 아니라 재현된 것뿐이지요. 복제된 것이지요. 복제된 것은 다시 복제됩니다. 옆 집 순희네 TV에 나온 전지현이나 우리집 TV에 나온 전지현이나 모두 복제된 것이지 실체가 아닙니다. 실제로 전지현이 얼마나 촌스럽게 살고 더럽게 사는지는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어요. 내가 접하는 세계에서는 전혀 그런 실제 전지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내가 접하는 전지현은 섹시한 전지현이지요. 바로 그것이 가상의 전지현이지요. 실제의 전지현은 아닙니다. 그런 것이 전지현은 기호화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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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뮬라크르론의 의미를 보충 설명하자면,
앞서 말했듯이 시뮬라크르랑 시뮬라시옹이랑 구분하는 건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걸 다른 의미로 구분해서 쓰기위해서 쓴 용어가 아니고, 영어에서 같은 단어도 명사형이 있고, 동사형이 있듯이 그저 그렇게 다른 것일 뿐이니까요. 사실, 시뮬라크르에서 중요한 것은 시뮬라시옹이 어떤 과정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세계를 시뮬라크르라고 말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실체 속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이 세계는 사실상 시뮬라크르이다라는 것이지요.
매트릭스에서 시뮬라크르의 개념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바로 그런 점에서입니다. 우리가 실체라고 착각하고 살고 있지만 사실은 가상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도 거의 비슷합니다.
우리가 세계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 중에 자신이 직접 보고 확인하는 것은 거의 0.0001%도 되지 않습니다. 모두가 미디어를 통해 알 뿐이지요. 티비, 신문, 라디오, 인터넷 등의 미디어를 통해 소식을 접하고, 세상을 알게 되고, 그것이 실체와 같다고 믿고 있을 뿐입니다.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모든 것들은 시뮬라크르입니다. 사실 우리는 시뮬라크르의 세계만을 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구조화된 기호들만을 접하는 셈이지요.
실제로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은 기호들일 뿐 실체가 아닙니다. 이라크전쟁이 어떻게 이루어졌고,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실제 사실이나 실체는 전혀 우리와 관계가 없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라크 전쟁이란 그저 CNN이 보여준 모습이나 미국이 주장하는 주장들입니다. 그것들은 기호화한 것이고 실체를 재현한 것들인데 그러한 기호화와 재현에서 어떤 왜곡이 있었다 하더라도, 세계를 구성하는 것은 실체가 아니라 그러한 재현된 것들입니다. 실제 이라크 전쟁에서 10만명이 죽었다고 하더라도, 1만명만 죽었다고 보도되고, 기록된다면 결국 이라크 전쟁에서는 1만명만 죽은 것입니다. 1만명이 죽은 사실만이 이 세계에서는 존재하게 됩니다. 실체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게 됩니다.
1만명이 죽었다는 기호만이 세계 곳곳으로 복제되겠지요. 1만명이 죽었다는 것 자체가 복제인데, 그것이 계속 복제되면서 원본(10만명이 죽었다는 실체)는 사라지고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됩니다.
평생 매트릭스 속에 살다 죽은 사람에게는 실체 세계가 실체일까요? 아니, 그 사람에게는 매트릭스가 실체와 같은 것입니다. 시뮬라크르 속에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시뮬라크르가 곧 실제와 같은 영향을 미치고, 세계 그 자체가 되는 것입니다.
- 철학대통령 미네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