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에서 도와달라는 소릴 들었는데 아무도 안 나가서 칼 맞아 죽은 여자 얘기 알거야.. 모두에게는 누군가는 도와줄거라는 믿음이 있었던거지..그러니 귀찮아서 안 나가..
반대로 생각해봐.. 모두에게 누구도 돕지 않는 사회이고, 누구도 신뢰할 수 없는 세상이라는 믿음이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나라도 나가야지 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이런 걸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하더군..
- by M -
"모 언론사에 난 나의 여동생은 도대체 누구인가?"
미네르바로 지목되어 구속수감 중인 박대성씨의 외마디 절규를 읽으며, 식도를 타고 넘어오는 위액이 남긴 씁쓸함과 착잡함에 몸서리를 쳐 본다.
박대성씨(미네르바와 구분하여 이하 P라 칭하겠다.)가 진짜 미네르바이냐 가짜냐 하는 것은 내게 아무런 의미도 없다. 어느 날 그가 진짜가 아니라는 사실이 증명 되더도, 우리가 보고 있는 '미네르바사건'의 ‘책임’은 누군가가 반드시 써야할 가시관. 또는 어쩔 수 없이 짊어져야할 십자가이기 때문이다. P가 스스로 '내가 미네르바다'라고 주장을 하고, 12월 29일의 글이 자신이 쓴 것이라고 주장한 이상. 뒤늦게 진짜 미네르바라는 사람이 나타난다 하더라도 이미 그의 무고함을 주장할 수는 없게 되어버렸다. 그런일은 있어서는 안될 일이기도 하다. 그래봐야 이 정권이 쓰고 있는 '미네르바게이트'라는 추리 소설 속에 '비운의 주인공'을 한 명 더 늘려 놓는 것 이상 의미를 갖지 못 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미네르바 사건을 지켜보며, 이면에 치밀하게 계획된 모종의 '아젠다' 같은 것이 존재할 것이라는 확신을 지우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 주체와 객체가 누구인지, 또 어떤 내용의 '합의'인지 명쾌하게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곱씹어 생각해 보면 지금 누구에 의해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다는 심증 정도는 할 수 있지만, 감히 증명할 방법이 없는 터라 표현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글 하나에 온 세상이 뒤숭숭해 지는 요즘같은 시기엔 ‘개인의 사유’ 조차 감히 글로 쓸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므로 어느 분의 말씀처럼 이제 '미네르바'를 놓아 주어야 할 시점이 온 것 같다.
사건 초기부터 내가 관심을 가졌던 부분은 ‘미네르바’라는 캐릭터가 아니었다. 나는 전문대를 졸업하고 독학으로 경제를 공부하여 ‘미네르바'로 활동하였다는 P의 배경에도 별 관심이 없었다. 그보다는 무죄추정의 원칙이라는 형법의 대원칙을 스스로 무너뜨린 수사기관(검찰)에게 기본권을 무참히 박탈당하고 있는 ‘시민(주권자)의 슬픔’에게 주목하였던 것이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정보를 재단하고 조작하여 ‘없는 죄’를 만들어내는 언론의 행태에 주목하였던 것이다. 또한 그렇게 왜곡된 정보를 어떤 ‘시퀸스’의 형태로 재구성하여 배포함으로서 이 정보를 접하는 국민들의 ‘시선’을 왜곡 시키려 하는 자들이 있는 것도 지켜보았다. 어떤 무리의 사람들이 ‘왜곡된 시퀸스’를 가지고 ‘정치적인 목적’으로 사용하고자 무던히 시도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언론에 의해 재단되고 조작되어져 재생산된 ‘정보공해’ 속에서 ‘P라는 인물이 파멸을 향해 거쳐가는 수순’들은, 기득권과 언론인의 이율배반들을 단적으로 보여주었으며, 성문법체계에서 ‘법 조항’의 객관적 해석이란 것이 ‘구성원들의 보편적가치‘라는 큰 테두리 보다 ’집행자와 권력자의 사유’를 더욱 우선시 하고 있다는 사실도 깨닫게 해주었다.(적어도 우리 나라에서는...)
우리사회의 공직자, 언론사들은 ‘공적인 임무’를 ‘기득권과 면죄부를 가진 것’이라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본래 ‘공’이라는 것은 사회구성원들이 사회적합의를 통해 정책이나 여론에 ‘대표성’을 부여 한 것인데 우리 사회의 ‘공직자’들과 ‘언론’들은 자신들이 제공한 정보에 대한 ‘책임’져야할 ‘의무’는 전혀 알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 한 개인에게는 ‘제공한 정보의 책임’을 무리하게 추궁하며 ‘개인’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정치적, 사회적 문제’들을 모두 떠넘겨 처단하려고만 한다.
P가 제공한 ‘허위사실’로 인해 20억달러의 막대한 재정이 손실되었다고 손가락질 하면서 정작 자신들이 저질러 놓은 ‘잘못된 정책수행’과 ‘정보 왜곡’으로 그 열배에 버금가는 국가 재정이 손실된 것엔 아무런 책임도 느끼지 못 한다. P가 제공한 ‘허위사실’로 인해 극심한 사회혼란이 야기되었다고 손가락질 하면서 정작 자신들이 저지르고 있는 ‘P에 대한 마녀사냥’이 얼마나 큰 죄인지는 깨닫지 못 하고 있다.
몇몇 연예인들이 잇따라 목숨을 끊어 커다란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던 일이 있었다. 그 원인으로서 네티즌들의 ‘악플’과 ‘마녀사냥’이 부각되면서 ‘사이버 모욕죄’라는 법안을 입법시키려던 정당도 있었다. 이들은 ‘국민이 자기 말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강력한 법안을 입법하자’라는 주장을 했고 ‘자성의 목소리’를 주장하던 일부 네티즌들에게 큰 호응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이러한 법안을 상정하려는 자신들은 ‘공적인 직무’에 있으면서 한번도 자신들의 잘못된 말이나 그릇된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았다. ‘사회적 책임’이 무엇인지 도통 모르는 사람들이 ‘사회적 책임’을 골자로 한 법안을 만들어 상정하려 했다는 이야기이다.
사실 미네르바 사건의 본질은 [‘사회적 책임’이 뭔지 도통 모르는 사람들이 ‘사회적 책임’을 운운하고 있다.]라는 부분에서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 P가 증언에서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막대한 피해를 보는 서민’들을 위해 글을 썼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즉, ‘공적인 위치’에 있는 자들이 자신들의 언행을 책임지지 않고 쉽게 내뱉고, 주워담았던 것이 미네르바 사건을 발생시킨 주요인이 되었고, 그로 인해 피해를 보는 서민들을 보호 하려고 ‘방어‘의 일환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2차 원인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의 ’헌신적 행동들‘은 책임의식이라곤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는 또 한 무리의 집단... ’언론‘에 의해 재단되어지고, ’공적인 위치‘에 있는 자들이 짊어 졌어야할 1차 원인의 책임까지 모두 뒤집어 쓴 채로 ’반정권 정치범‘으로 낙인 찍히는 곤욕을 치루게 된 것이다. 왜곡된 ’가짜 진실의 굴레‘를 짊어진 것이다.
이제 민주국가의 국민으로서 P가 누렸어야 했던 ‘인간의 기본권’은 ‘간성혼수 상태’에서 사선을 넘나들고 있다. 어쩌면 이 나라의 가치를 지탱하고 있던 ‘지성’들은 P에게 있어 ‘회복불능의 상태에 시한부 삶을 살고 있는 불구’로 보일런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민주주의 국가로서 이 사회를 존립시켜야할 ‘가치’들이 마치 칼날 같은 절벽의 끝에서 의지 할 곳 없이 아슬아슬하게 걷고 있는 절름발이 신세처럼 위태롭고 처량하기 보일 뿐이다.
역사 속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몇 가지 뚜렷한 진리 중 하나는 ‘공적인 지위에 있는 자들의 도덕적 해이’야말로 그 사회가 망할 가장 강력한 징조라는 것이다. 언제나 자기비판과 성찰이 결여된 자들이 탐욕과 오만으로 권력을 잡으면, 그에 기인해 발생하는 모든 사회적 문제는 ‘구성원’들에게 다시 떠넘겨져 책임을 묻게 되고, 구성원들의 ‘정신개조’를 빌미로 공포정치를 강화 하여 그 사회의 저변에 잠재된 갈등을 심화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결국 그러한 사회는 ‘개혁’이나 ‘부흥’이 아닌 ‘폭력적인 혁명’이나 ‘무기력한 자멸’ 의해 종말을 맞아왔다. 혹시 지금 우리나라의 권력자들이 그러한 파멸의 전주곡을 연주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본다.
미네르바 사건은 우리사회가 가지고 있었던 모든 모순들을 적나라하게 노출시키고 있다. 두 눈을 부릅뜨고 똑바로 들여다보면 우리 권력집단 안에 ‘적지 않은 수’의 위정자들이 위선의 가면을 쓰고 정치적인 ‘쑈’를 하고 있음도 볼 수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이들의 ‘책임불감증’과 ‘도덕성 결여’는 그 어느 때 보다 더욱 강력한 [상식의 저항]을 느끼게 해준다.
나에게 P는 이제 더 이상 ‘미네르바’가 아니다. P는 다만 우리 사회가 숨겨 놓고 부정하였던 ‘모순’들이 겉으로 표출되어 만들어진 ‘상식의 저항’과 ‘지성의 갈등’ 이라는 거대한 회오리속에 하릴없이 휘말렸던 30세의 가엾은 청년일 뿐이다. 그러므로 이제 그 누구라도 마음만 먹으면 미네르바가 될 수 있을 것이고, 그러므로 또 그 누가 제2의 희생양이 되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도 없다.
매일같이 언론에 오르내리는 ‘죄 많은 미네르바’는 이제 더 이상 P의 닉네임도, 억압된 우리들의 다른 이름도 아니다. 바로 허위사실유포의 책임을 추궁하며 손가락질 하는 그 자신들의 이중성이 ‘P라는 희생양’에게 고스란히 투영되어 나타난 것이 ‘미네르바’였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또한 미네르바를 비틀고 왜곡시켰던 언론인들은 ‘미네르바’를 통해 똥 묻은 헌신짝 마냥 내동댕이 쳐버렸던 자신들의 양심을 찾아 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창밖에서 도와달라는 소릴 들었는데 아무도 안 나가서 칼 맞아 죽은
창밖에서 도와달라는 소릴 들었는데 아무도 안 나가서 칼 맞아 죽은 여자 얘기 알거야.. 모두에게는 누군가는 도와줄거라는 믿음이 있었던거지..그러니 귀찮아서 안 나가..
반대로 생각해봐.. 모두에게 누구도 돕지 않는 사회이고, 누구도 신뢰할 수 없는 세상이라는 믿음이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나라도 나가야지 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이런 걸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하더군..
- by M -
"모 언론사에 난 나의 여동생은 도대체 누구인가?"
미네르바로 지목되어 구속수감 중인 박대성씨의 외마디 절규를 읽으며, 식도를 타고 넘어오는 위액이 남긴 씁쓸함과 착잡함에 몸서리를 쳐 본다.
박대성씨(미네르바와 구분하여 이하 P라 칭하겠다.)가 진짜 미네르바이냐 가짜냐 하는 것은 내게 아무런 의미도 없다. 어느 날 그가 진짜가 아니라는 사실이 증명 되더도, 우리가 보고 있는 '미네르바사건'의 ‘책임’은 누군가가 반드시 써야할 가시관. 또는 어쩔 수 없이 짊어져야할 십자가이기 때문이다. P가 스스로 '내가 미네르바다'라고 주장을 하고, 12월 29일의 글이 자신이 쓴 것이라고 주장한 이상. 뒤늦게 진짜 미네르바라는 사람이 나타난다 하더라도 이미 그의 무고함을 주장할 수는 없게 되어버렸다. 그런일은 있어서는 안될 일이기도 하다. 그래봐야 이 정권이 쓰고 있는 '미네르바게이트'라는 추리 소설 속에 '비운의 주인공'을 한 명 더 늘려 놓는 것 이상 의미를 갖지 못 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미네르바 사건을 지켜보며, 이면에 치밀하게 계획된 모종의 '아젠다' 같은 것이 존재할 것이라는 확신을 지우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 주체와 객체가 누구인지, 또 어떤 내용의 '합의'인지 명쾌하게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곱씹어 생각해 보면 지금 누구에 의해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다는 심증 정도는 할 수 있지만, 감히 증명할 방법이 없는 터라 표현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글 하나에 온 세상이 뒤숭숭해 지는 요즘같은 시기엔 ‘개인의 사유’ 조차 감히 글로 쓸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므로 어느 분의 말씀처럼 이제 '미네르바'를 놓아 주어야 할 시점이 온 것 같다.
사건 초기부터 내가 관심을 가졌던 부분은 ‘미네르바’라는 캐릭터가 아니었다. 나는 전문대를 졸업하고 독학으로 경제를 공부하여 ‘미네르바'로 활동하였다는 P의 배경에도 별 관심이 없었다. 그보다는 무죄추정의 원칙이라는 형법의 대원칙을 스스로 무너뜨린 수사기관(검찰)에게 기본권을 무참히 박탈당하고 있는 ‘시민(주권자)의 슬픔’에게 주목하였던 것이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정보를 재단하고 조작하여 ‘없는 죄’를 만들어내는 언론의 행태에 주목하였던 것이다. 또한 그렇게 왜곡된 정보를 어떤 ‘시퀸스’의 형태로 재구성하여 배포함으로서 이 정보를 접하는 국민들의 ‘시선’을 왜곡 시키려 하는 자들이 있는 것도 지켜보았다. 어떤 무리의 사람들이 ‘왜곡된 시퀸스’를 가지고 ‘정치적인 목적’으로 사용하고자 무던히 시도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언론에 의해 재단되고 조작되어져 재생산된 ‘정보공해’ 속에서 ‘P라는 인물이 파멸을 향해 거쳐가는 수순’들은, 기득권과 언론인의 이율배반들을 단적으로 보여주었으며, 성문법체계에서 ‘법 조항’의 객관적 해석이란 것이 ‘구성원들의 보편적가치‘라는 큰 테두리 보다 ’집행자와 권력자의 사유’를 더욱 우선시 하고 있다는 사실도 깨닫게 해주었다.(적어도 우리 나라에서는...)
우리사회의 공직자, 언론사들은 ‘공적인 임무’를 ‘기득권과 면죄부를 가진 것’이라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본래 ‘공’이라는 것은 사회구성원들이 사회적합의를 통해 정책이나 여론에 ‘대표성’을 부여 한 것인데 우리 사회의 ‘공직자’들과 ‘언론’들은 자신들이 제공한 정보에 대한 ‘책임’져야할 ‘의무’는 전혀 알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 한 개인에게는 ‘제공한 정보의 책임’을 무리하게 추궁하며 ‘개인’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정치적, 사회적 문제’들을 모두 떠넘겨 처단하려고만 한다.
P가 제공한 ‘허위사실’로 인해 20억달러의 막대한 재정이 손실되었다고 손가락질 하면서 정작 자신들이 저질러 놓은 ‘잘못된 정책수행’과 ‘정보 왜곡’으로 그 열배에 버금가는 국가 재정이 손실된 것엔 아무런 책임도 느끼지 못 한다. P가 제공한 ‘허위사실’로 인해 극심한 사회혼란이 야기되었다고 손가락질 하면서 정작 자신들이 저지르고 있는 ‘P에 대한 마녀사냥’이 얼마나 큰 죄인지는 깨닫지 못 하고 있다.
몇몇 연예인들이 잇따라 목숨을 끊어 커다란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던 일이 있었다. 그 원인으로서 네티즌들의 ‘악플’과 ‘마녀사냥’이 부각되면서 ‘사이버 모욕죄’라는 법안을 입법시키려던 정당도 있었다. 이들은 ‘국민이 자기 말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강력한 법안을 입법하자’라는 주장을 했고 ‘자성의 목소리’를 주장하던 일부 네티즌들에게 큰 호응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이러한 법안을 상정하려는 자신들은 ‘공적인 직무’에 있으면서 한번도 자신들의 잘못된 말이나 그릇된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았다. ‘사회적 책임’이 무엇인지 도통 모르는 사람들이 ‘사회적 책임’을 골자로 한 법안을 만들어 상정하려 했다는 이야기이다.
사실 미네르바 사건의 본질은 [‘사회적 책임’이 뭔지 도통 모르는 사람들이 ‘사회적 책임’을 운운하고 있다.]라는 부분에서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 P가 증언에서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막대한 피해를 보는 서민’들을 위해 글을 썼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즉, ‘공적인 위치’에 있는 자들이 자신들의 언행을 책임지지 않고 쉽게 내뱉고, 주워담았던 것이 미네르바 사건을 발생시킨 주요인이 되었고, 그로 인해 피해를 보는 서민들을 보호 하려고 ‘방어‘의 일환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2차 원인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의 ’헌신적 행동들‘은 책임의식이라곤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는 또 한 무리의 집단... ’언론‘에 의해 재단되어지고, ’공적인 위치‘에 있는 자들이 짊어 졌어야할 1차 원인의 책임까지 모두 뒤집어 쓴 채로 ’반정권 정치범‘으로 낙인 찍히는 곤욕을 치루게 된 것이다. 왜곡된 ’가짜 진실의 굴레‘를 짊어진 것이다.
이제 민주국가의 국민으로서 P가 누렸어야 했던 ‘인간의 기본권’은 ‘간성혼수 상태’에서 사선을 넘나들고 있다. 어쩌면 이 나라의 가치를 지탱하고 있던 ‘지성’들은 P에게 있어 ‘회복불능의 상태에 시한부 삶을 살고 있는 불구’로 보일런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민주주의 국가로서 이 사회를 존립시켜야할 ‘가치’들이 마치 칼날 같은 절벽의 끝에서 의지 할 곳 없이 아슬아슬하게 걷고 있는 절름발이 신세처럼 위태롭고 처량하기 보일 뿐이다.
역사 속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몇 가지 뚜렷한 진리 중 하나는 ‘공적인 지위에 있는 자들의 도덕적 해이’야말로 그 사회가 망할 가장 강력한 징조라는 것이다. 언제나 자기비판과 성찰이 결여된 자들이 탐욕과 오만으로 권력을 잡으면, 그에 기인해 발생하는 모든 사회적 문제는 ‘구성원’들에게 다시 떠넘겨져 책임을 묻게 되고, 구성원들의 ‘정신개조’를 빌미로 공포정치를 강화 하여 그 사회의 저변에 잠재된 갈등을 심화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결국 그러한 사회는 ‘개혁’이나 ‘부흥’이 아닌 ‘폭력적인 혁명’이나 ‘무기력한 자멸’ 의해 종말을 맞아왔다. 혹시 지금 우리나라의 권력자들이 그러한 파멸의 전주곡을 연주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본다.
미네르바 사건은 우리사회가 가지고 있었던 모든 모순들을 적나라하게 노출시키고 있다. 두 눈을 부릅뜨고 똑바로 들여다보면 우리 권력집단 안에 ‘적지 않은 수’의 위정자들이 위선의 가면을 쓰고 정치적인 ‘쑈’를 하고 있음도 볼 수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이들의 ‘책임불감증’과 ‘도덕성 결여’는 그 어느 때 보다 더욱 강력한 [상식의 저항]을 느끼게 해준다.
나에게 P는 이제 더 이상 ‘미네르바’가 아니다. P는 다만 우리 사회가 숨겨 놓고 부정하였던 ‘모순’들이 겉으로 표출되어 만들어진 ‘상식의 저항’과 ‘지성의 갈등’ 이라는 거대한 회오리속에 하릴없이 휘말렸던 30세의 가엾은 청년일 뿐이다. 그러므로 이제 그 누구라도 마음만 먹으면 미네르바가 될 수 있을 것이고, 그러므로 또 그 누가 제2의 희생양이 되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도 없다.
매일같이 언론에 오르내리는 ‘죄 많은 미네르바’는 이제 더 이상 P의 닉네임도, 억압된 우리들의 다른 이름도 아니다. 바로 허위사실유포의 책임을 추궁하며 손가락질 하는 그 자신들의 이중성이 ‘P라는 희생양’에게 고스란히 투영되어 나타난 것이 ‘미네르바’였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또한 미네르바를 비틀고 왜곡시켰던 언론인들은 ‘미네르바’를 통해 똥 묻은 헌신짝 마냥 내동댕이 쳐버렸던 자신들의 양심을 찾아 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