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즈의 양복에 관한 진실

김영준2009.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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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즈의 양복에 관한 진실 대중문화 읽기 (4) 함소정
입력시간 : 2009.01.12 11:11

RIAA(Recording Industry Association of America)의 기록에 따르면 비틀즈는 미국 차트 1위곡이 20여곡, 40위권 내 싱글은 50여곡에 이른다고 합니다. 또한 기네스 북 추정치로 전세계적으로 10억장 이상의 음반을 판매하는 등 상업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 밴드입니다.

상업적 성공은 비틀즈의 반(半)에 불과합니다. 비틀즈가 해산한지 35년째 되던 2005년, 미국의 연예산업잡지 '버라이어티'지는 비틀즈를 20세기의 대표적 우상(icon)으로 꼽았습니다.(Variety Magazine's 100 Icons of the Century) 비틀즈가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것이 1964년 초의 일이니, 지금으로부터 반세기가 다 되가는 옛날 옛적의 이야기입니다. 또한 클래식 음악의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은 비틀즈의 음악을 '슈만의 작품에 필적하는 곡'이라고 극찬했다고 합니다.

물론 이런 칭송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합니다. 비틀즈는 단순히 사업가가 팔기 위해 만들어 놓은 상품으로서의 대중 문화인이 아닌, 그 틀을 탈피해 스스로 '문화'가 되었으며 시대의 조류를 창조해 내었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 오늘날 우리들이 비틀즈를 단순한 '록밴드'가 아닌 시대의 아이콘이며 '60년대 그 자체'로 기억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비틀즈의 전 세계적 성공은 1964년 초 미국에 'I WANT TO HOLD YOUR HAND'가 발매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그런데 이때, 수많은 소녀 팬들을 열광시켰던 비틀즈의 트레이드 마크인 '단정한 양복'과 '더벅머리'는 실은 철저하게 매니저였던 브라이언 엡스타인에 의해서 계산된 것이었다고 합니다.

스타시스템을 통해 '정돈'된 비틀즈, 대중과 만나다

비틀즈의 양복에 관한 진실 ▲ 엡스타인을 만나기 전 비틀즈

60년대 초 미국은 아직 전쟁 뒤 보수의 물결이 잦아들지 않았던 시대였습니다. 따라서 선정적인 몸짓과 성적 매력을 트레이드마크로 하는 엘비스 프레슬리나 당시 인종 차별의 장벽에 시달리던 흑인 음악가들은 젊은 층의 지지를 받고 는 있었지만 전 세대를 포괄하는 인기를 얻기는 어려운 상태였다고 합니다. 보수적인 기성세대들은 이들의 음악을 '외설적'이고 '선정적'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미국의 사춘기 청소년들(베이비붐 세대)는 이러한 부모 세대의 억압적, 보수적인 기질에 반항하며 자신들만의 '새로운 것'을 찾기 시작합니다.

이때 혜성처럼 등장한 그룹이 비틀즈입니다. 당시 뛰어난 음악적 감각을 지녔으나 외관상 (기성세대들의 눈에) 불량스러운 다른 밴드들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던 비틀즈는, 브라이언 엡스타인이라는 뛰어난 사업가적 기질을 지닌 매니저를 만나면서 시대의 아이콘으로 재탄생하게 됩니다. 엡스타인은 가죽 자켓을 입고 거칠게 행동하던 '비트족(beat) 비틀즈'를 보수적인 당시의 시대 상황에 맞게 말끔한 양복을 차려입은 예의바른 청년의 이미지로 '조작'하기 시작합니다.

이리하여 비틀즈는 가죽 자켓을 벗고 '비틀수트'라고 불리는 깔끔한 양복으로 갈아입게 됩니다. 또 뒤로 빗어 넘긴 불량스러운 헤어스타일 대신 귀엽고 단정한 더벅머리로 변신하지요.

브라이언 엡스타인의 전략은 적중했습니다. 비틀즈의 천부적인 음악적 재능과 브라이언 엡스타인이 가진 '포장 기술'의 적절한 융화는 미국 대중들을 열광케 했습니다.

'단정한 로커', '신사'로의 이미지 메이킹

비틀즈의 양복에 관한 진실 ▲ 단정한 이미지로 변신한 비틀즈

그러나 비틀즈가 어른들의 입맛에만 맞는 단정한 신사 이미지 하나만으로 대중음악계에 승부를 걸었다면 그들의 인기는 '비틀매니아'라고 일컬어지는 10대 주도의 비틀즈 광풍 현상에는 미치지 못했을 것입니다.

'가죽 자켓' 시절의 도발적이고 솔직한 가사에 ,소녀들의 성적 판타지를 자극하는 귀여운 미소년의 외양을 갖춘 비틀즈. 비틀즈가 1964년 싱글 'I WANT TO HOLD YOUR HAND'를 가지고 미국으로 상륙했을 때, 십대 청소년들은 물론 어른들도 비틀즈의 단정한 이미지에 반하게 됩니다.

이때 당시 미국의 틴에이저는 모두 베이비붐 세대(1945~61년 출생한 미국인)입니다. 이들은  50년대 보수의 물결에서 점차 벗어나 부모 세대와는 다른 자신들만의 진보적인 가치관을 정립하길 원했습니다. 그렇지만 경제적으로는 아직 부모에게서부터 완전하게 자립할 수 없었던 청소년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반항은 현실과 타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들은 그 해답을 비틀즈에게서 찾습니다. 비틀즈의 외양과 노랫말의 표면적 모습은 어른들이 좋아할만한  '깔끔한 것'이지만 사실 비틀즈는 리버풀 노동자 집안 출신의 하층민들입니다. 그들의 음악 세계에 큰 영향을 준 뮤지션들은 기성세대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던 흑인 뮤지션(척 베리, 초기 모타운 음악가들 등)들과 외설적이라는 지적을 받은 엘비스 프레슬리였지요. 또한 그들은 비트족 시절의 말장난과 위트를 잃지 않고 공개적인 석상에서 양복과는 어울리지 않은 다소 '터프'한 행동과 돌발행동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합니다.

이렇듯 자신의 진정한 '반항'은 잠시 깔끔한 양복으로 가리고 가벼운 사랑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대신하지만, 실은 주체할 수 없는 열정을 가진 세대. 이것이 바로 비틀즈이고 당시의 베이비붐 세대입니다. 이를 잘 간파한 브라이언 엡스타인은 이렇듯 비틀즈를 다소 독특한 그만의 '스타시스템'에 끼워 넣어 당시 수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던 큰 소비자층이었던 베이비붐세대를 '비틀매니아'로 만드는데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이러한 성공을 바탕으로 1965년 앨범 "RUBBER SOUL"부터 비틀즈는 본격적으로 예술과 음악, 그리고 시대를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매니저이자 사업가인 브라이언 엡스타인을 만나 정돈된 형태로 대중에게 선보여져 성공적으로 어필할 수 있었고, 덕분에 쌓은 부와 명성이 그 뒤 비틀즈가 음악 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게 한 큰 자산이 되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대의 다른 음악인들에 비해 비틀즈가 대중문화역사를 거론하는데 있어서 선구자적인 지위를 부여받는 이유는 그들이 '인기 록밴드'에 그치지 않고 기존 대중문화에 대한 통념(패러다임)을 깨는 혁명적인 발상으로 그간 대중문화에 가해졌던 고급 예술인들의 멸시를 전복시키고, 현대 대중음악 장르의 거의 모든 가능성을 제시한 공헌에 있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성공을 위해 행해졌던 비틀즈의 외적 변신에 이은, 예술가로서의 성장과 관련된 내적 변신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