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

최영호2009.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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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 성 페테르 대성당)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


8년 전 2000. 11. 7. 실시된 미국 대통령선거


개표 결과 엘 고어는 총 투표수에서도 조지 부시를 앞섰고, 실제로 당선을 결정짓는 선거인단수에서도 267 대 246으로 앞서고 있었다.


당선에는 270명의 선거인단 확보가 필요한데 마지막으로 개표가 진행되던 플로리다의 선거인단은 25명으로 플로리다 주의 개표가 승패를 좌우하게 되었다.


플로리다 주는 최초 개표결과는 부시가 고어를 2,909,135표 대 2,907,351표, 즉 1,784표 차로 앞선 것으로 나타났지만, 표차가 0.5% 이내이면 기계로 재검표를 해야 한다는 주 선거법에 따라 재검표한 결과 표차는 327표로 줄었다.


엘 고어는 다시 수작업 재검표를 청구하였지만, 주 선거법 상 재검표는 7일내에 마쳐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것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주법원이 한차례 연장해 준 시한이 끝나도 재검표가 마무리되지 않자 주 국무장관은 537표차로 부시의 승리를 선언하였다. 그럼에도 주대법원이 고어의 이의를 수용하여 주 전체에 걸쳐 전면적인 재검표를 실시할 것을 명령하면서 대선 결과는 다시 미궁에 빠지게 되었다.


이번에는 부시가 연방대법원에 상고하였다. 주법원이 개표시한을 임의로 연장할 수 없으며, 각 개표소마다 수작업 개표에 관한 통일적인 판정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수작업 개표를 전면 실시할 경우 개인의 투표결과가 불평등하게 처리되는 위헌적 상황이 발생하므로 수작업 개표는 중지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연방대법원은 2000년 11월 11일 구술변론을 마치고 곧바로 16시간 후에 플로리다 주법원의 개표시한 연장조치가 위법이며, 전면적 재검표는 평등의 원칙에 반한다는 판결을 선고하였다.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36일 만에 연방대법원이 부시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음을 선언하는 순간이었다.


연방대법원 판결이 선고되자 정치인들은 물론 저명한 법학자들마저도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을 극명하게 드러내며 대법원 판결에 대하여 험담에 가까운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빌 클린턴 대통령도 그의 자서전에서 이 판결은 노예제의 폐지를 부인했던 Dred Scott 판결과 더불어 역사상 가장 부끄러운 대법원 판결로 남을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진정 우리가 주목할 것은 국민들과 고어의 태도였다. 많은 법학자와 정치인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정작 다수의 국민들은 고어가 연방대법원 판결을 존중하여야 한다고 믿었다.


고어는 곧바로 “국민의 단합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기 위하여 저는 패배를 인정합니다. 저는 지금부터 부시대통령을 존경하고 지원할 것입니다. 저를 지지했던 분들도 새 대통령을 인정하고 지지해 줄 것을 부탁드립니다”라는 아름다운 연설을 통해 깨끗하게 판결에 승복하였다.


어디에서도 대법원 판결의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불복종 운동이나 집단적 실력행사는 찾아 볼 수 없었다. 만약 당시 고어가 대법원 판결에 깨끗이 승복하지 않았다면 노벨상 수상의 기회도, 올해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오바마 지지연설을 할 때 쏟아졌던 커다란 박수소리도 기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만약에 우리나라에서 이와 같은 상황이 생겼다면 어떤 일이 발생했을지는 각자의 상상에 맡기고 싶다.


미국인들의 법원 판결에 대한 지대한 관심은 판결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비판으로 이어진다.


주요판결이 선고되면 신문은 몇 면의 지면을 할애하여 판결 결과를 설명하고, 대선주자를 포함한 많은 정치인들도 판결에 대한 자신의 메시지를 발표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극렬한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판결의 비판에 관한한 미국인들은 충분한 표현의 자유를 누리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판결과 법원의 권위에 대한 존중은 절대적이며 그 효력을 무시하는 실력행사로 결코 나아가지 않는다. 대신 현재의 소수의견을 미래의 다수의견으로 만들기 위한 여론형성 작업과 더불어 의회를 통한 입법적 해결에 착수한다는 점을 주목하여야 한다.


얼마전 스티븐 브라이어 연방대법관은 미국의 경제위기에 대한 원인을 논하던 자리에서 예기치 못했던 해법을 제시하여 눈길을 끌었다.


그는 1954년 연방대법원이 브라운 판결(Brown v. Board of Education)을 통해 인종간 분리교육(separate but equal)이 위헌임을 선언하였음에도 수년간 일부 주정부가 이 판결을 무시한 채 흑백 분리교육을 존속시키며 연방정부와 대립했던 사례를 회고하였다.


마침내 1957년 아칸소주 리틀록에서 흑인 학생 9명이 자신들이 배정받은 백인학교에 최초로 등교를 시도하자 이를 가로막으려는 다수의 폭도들에 의해 학생들의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고민 끝에 국가의 법질서를 회복시키고 법원의 판결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원칙을 천명하기 위해 리틀록 고등학교에 연방군 공수부대를 투입하는 결단을 내렸다. 9명의 학생들은 연방군의 호위를 받으며 안전하고 당당하게 정문을 통과하였고, 국민들은 판결문의 정의가 결국은 실현된다는 것을 똑똑히 지켜볼 수 있었다.


브라이어 대법관은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이런 결단이 있었기에 미국이란 나라가 굳건히 존재할 수 있었음을 회고하면서, 요즘 미국이 겪고 있는 경제 위기의 본질도 결국은 법원칙의 경시와 무뎌진 법집행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날카롭게 지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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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주미 한국대사관 사법협력관으로 파견중인 강한승 부장판사님이 2008. 11. 27.자 법률신문에 기고한 [워싱턴 법조계] “판결은 지켜져야 한다”입니다.


법원의 판결은 왜 존중되어야 하고

왜 지켜져야 할까요?


신문기사나 인터넷에 보도된 내용이나

다른 사람이 쓴 글만을 보고 판단하는 것보다


공격하는 사람과 공격 당하는 사람

양쪽의 진술과 양쪽이 제출하는 증거를 모두 살피고

법률가로서의 전문지식으로 사실인정과 법리해석을 통하여

여론이나 사회 제반에 횡행하는 압력을 물리치고

오로지 법률과 양심에 따라 결정을 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노예제 폐지를 부인했던 Dred Scott 판결과 같이 판결도 사람이 하는 만큼 세월이 지나면 잘못되었다고 비판을 받을 수 있지만, 일단 판결 그 자체에 대하여는 이를 존중하고, 따라야 하지 않을까요?


세상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면서

장차 우리나라에 큰 일이 나겠구나 하는 걱정이 듭니다.


부족한 사람들이 저마다 잘 났다고 살아가는 세상에서

반대자에 대한 관용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반대자에 대하여 너그러워야

주는대로 받는 세상, 지위전환의 가능성이 있는 사회가 이루어집니다.


더러운 국회의원들 꼴보기 싫다고 국회를 없애고 인터넷으로 국회를 운영하고

대통령이 밉다고 대통령도 없애고


강부자와 고소영이 싫다고 내각을 없애버리고 모든 행정행위와 통치행위를 인터넷에서 투표로 정하여 마우스 클릭과 댓글로 처리하고


자신에게 불리하게 한다고 판사에게 석궁을 쏘고, 검사를 흉기로 찔러서 다 없앤 다음, 수사와 판결도 인터넷에서 토론을 하고, 의견을 발표하여 목소리 큰 사람의 결정에 따라 할 수 있을까요?


권력과 돈과 음모로 썩어가는 나라 꼬라지를 보면

한심하고 열받고 다 뒤집어졌으면 좋겠지만


과연 인터넷에서 손끝으로 아니면 소리지르고 욕한다고

세상 모든 일이 해결될 수 있을까요?

이 복잡하고 더럽고 골치아픈 세상이

손가락질과 삿대질만으로 신나는 세상이 될 수 있을까요?


하긴 뭐 고어가 판결에 불복하여 검표를 해서 이겼다면 미국 대통령 중 가장 무시당하는 부시가 대통령이 되지 않았을 수도 있고, 결국 이라크 전쟁이나 경제대란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또다른 예언자가 나타날 수도 있겠네요.....


우리나라가 자기 맡은 일을 천직으로 알고, 혼신을 다하여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존경받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손가락질과 삿대질하는 사람들

너나 잘 하세요.....

(‘09. 1. 17. 최영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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