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대학로에서 있었던 반전 시위

전후석2009.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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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대학로에서 있었던 반전 시위

20일이 넘어버린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침략행위를 보며 느끼는 것이 많다.

 

우리 집에는 뉴욕 타임즈에서 나오는 세계판 영문신문(IHT)이 배달된다. 아침마다 신문을 펼쳐들 때면 1면에 폭격으로 인해 파괴된 가자 지구의 건물들과 사랑하는 이의 죽음으로 고통 받는 이들의 모습들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20일째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1면에 전쟁에 대한 뉴스가 전해지고 있다. 자연스럽게 구독자는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고, 그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을 수밖에 없다. 다시 한번 전쟁이 보여주는 참혹함과 무력을 사용한 “평화 이룩하기”의 거짓된 모순과 위선에 치를 떨 수 밖에 없다. 

 

1300명의 가자 지구 주민이 무참히 목숨을 잃었고 5000명이 넘는 부상자가 나왔다. 반면 이스라엘의 사망자 수는 13명이다.  1300명의 희생자 중 어린이와 민간인이 800명 이상이라고 한다.  “정치”앞에 “생명”이 무릎 꿇는 순간이다. 60년 전에 시작된 서로에 대한 경멸과 전쟁이, 처음 싸움을 시작한 그 모두의 아들과 손자에게도 이어진 셈이다. 그 손자 세대들은 아직도 서로를 경멸하고 전쟁을 일으킨다. 웃기지 않은가. 왜 우리가 “일본”을 무작정 싫어하지 않고 동세대와 아래 자손들에게 평화와 사랑과 용서와 긍휼을 가르쳐야 되는지 잘 보여주는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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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반전시위를 나갔다. 계속 이어지는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공격에 얼마 전부터 “왜 우리나라에는 반전시위 소식이나 노력이 보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었다. 약간의 검색을 하니 아니나 다를까, 국제 앰네스티에서 소규모의 시위를 계획하였었고 또 이어지고 있었다.

 

멋진 청년들 열명 정도와 외국인들 서너명 정도가 조촐하게 모여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조용히 동참을 하였다. 평화시위를 하는 “열 다섯”명 사이에 껴서.  “열 다섯명….”

 

대학로 중간에 서서 이스라엘의 비 인륜적인 행위를 규탄하고 중지를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하였는데, 기대했던 대로 사람들은 남의 일처럼 생각하고 지나가기 일쑤였다. 잔인한 무력행위를 중지해달라는 서명하나를 부탁하는데 왜 설득이 필요한 것일까.

 

더 이상 이런 일에 낙담하지 않는다.

 

솔직히 나는 나의 존재로 인해, 혹은 그 청년들의 준비하는 손길과 추운 날씨에 떨며 하나의 서명이라도 더 받아내려는 용기와 열정과 대담함으로 인해 가자 지구의 상황이 조금이라도 더 좋아질 거라고 믿지 않는다. 아니, 믿고 싶지만 아마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나온 이유는 나의 양심이 나가라고 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서 신문을 보며 한탄하는 나의 모습보다, 잠시라도 여기에 나와서 무엇이라도 하는 것이 더 옳은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의 이런 cynical 한 고백에 옆에서 같이 떨며 서툰 한국말로 “서명해주세요” 라고 외치던 금발머리 초록눈 소녀는 이렇게 말해주었다.

 

“얼마나 현실성이 있다고 생각하던 없다고 생각하던, 중요한 것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 것 인것 같다. 얼마나 작던 그 소망, 정말 뜻이 있는 사람 하나 둘이 모였을 때, 그래서 선한 뜻을 위해서 힘을 합치고 다른 이들에게 우리의 마음을 전달하여 동참하게 했을 때 조금이라도 상황이 개선될 수 있다는 소망을 믿기 때문에 그 자리에 설 수 밖에 없다.”

 

그렇다.

 

당신은 무엇인가.

 

그 작은 소망이 없는 것인가

 

아님

 

그 작은 소망을 실천할 용기나 시간이 없는 것 인가.

 

이런 배부른 고민을 할 시에 또 한 명의 세상을 모르는 어린이가 죽어간다.

 

 

ps. 세상은 악하다고 느끼면서 동시에 나는 세상은 희망에 가득차 있다고 생각한다. 그 열 다섯명의 순수하고 바른 영혼들은, 분명 세상을 바꿀 이들이다. 왜 먹거리와 정부규탄에는 100만명의 인파가 쏟아져나와 젊음과 목숨을 바치면서, 외국의 반인륜적인 행위를 규탄하는 평화적인 시위에는 등을 돌리는가. 왜 나라안의 "사상"과 "당론"에는 정의와 자유, 민주와 평화를 외치면서 저 모두를 명백히 부정하는 행위에는 침묵으로 일관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