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하는 중간.. 잠시 쉬는 시간.... 가슴이 먹먹해지는 시간... 배가 고픈거 같다.. 그러고 보니 먹은게.... 별로 없다. 요즘은 거의 허기가 져서야나 먹을 생각을 하곤 한다.. 그러다보나 자다 말고 일어나 앉아 먹는 날도 허다하다.. 허기진 속에 아무거나 넣고 있다보면 문득 또 뭐하고 있나 싶어 숟가락을 내려놓게 된다. 이 감정들의 정체는 무엇인가... 이건 명백히 슬픔에 속하는 것들이다. 그렇다면 슬픔과 우울은 어떻게 다른 것인가? 내 일상의 소소한 잔물결같은 감정들은 무엇인가.. 우울에 대해서 지금까지 내가 확실히 아는 것은 두가지 뿐이다. 첫번째는 다른 사람이 소유하고 있는 것을 내가 소유하지 못해서 금새 외로워진 결과로서의 감정은 우울이라는 것. 두번째는 인간이 아니라 사물이 나의 기대를 저버릴 때의 감정도 우울이라는 것. 그러니 우울은 차마 다른 인간에게 화낼 일이 못되는 감정인 것 같다. 내 우울 때문에 다른 인간을 할퀴고 싶지 않은 날에는 침대에 누워 이불을 뒤집어쓰거나 아니면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토성편을 펼쳐든다. 토성에서의 계절변화는 지구에서보다 훨씬 느리게 진행된다는 것을 알고 있나? 토성의 생물들은 그 생활양식이 우리와 전혀 다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곳의 겨울은 지루하게 길테니까... 시간이 느리게 간다는 건... 감정의속도도 그만큼 느리다는 거와 상통한다. 시간속에서 어떤 사람은 단순히 그 사람일 뿐이다. 항상 그대로의 사람, 공간속에서,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시간은 많은 여유를 주지 않는다. 시간은 뒤엣 부터 우리를 뚫고 들어오고 좁다란 통로를 통해 우리를 과거에서 미래로 밀어낸다... 그러나 공간은 넓고 가능성.위치.교차로. 통로. 우회로. 유턴. 막다른 골목. 일방통행로 등이 가득하다. 실제로 너무 많은 가능성이 있다. 토성적 기질은 느리고 우유부단한 경향이 있기 때문에 때로는 칼을 들고 자신의 길을 내며 나아가야 한다. 대로는 칼날을 스스로에게 돌려 끝을 내기도.... 한다. 우울한 날의 행동강령은 이렇다. 술을 마시되 독주는 피해야 하고 대화상대는 오랫동안 호감을 유지해온 사이되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을 택해야 한다. 일단 낯선 사람을 만나면 수많은 다른 사람이 될 천부적 자질을 갖고 태어났으니... 오죽 좋은가.. 한껏 웃어제끼기... 오랜만에 만난 상대와 일상을 주고 받는 것.. 나는 그렇고 그런 일상을 살아가야 하는 인간들의 너스레가 솔직히 말해서 눈물나게 좋다. 우울함을 쾌활함로 바꾸려고 사소한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 우울한 날 한잔 걸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하늘의 달을 보게 된다면 나또한 상대와 비슷한 너스레를 중얼거리게 되니 말이다.. 그렇다면 슬픔은 우울과 어떻게 다른가... 슬픔은 삭여지지 않는 성긴 음식을 먹었을 때의 느낌과 비슷하다. 슬픔은 항상 내 속에서 시작되나 끝은 내게서 멈추지 않는다.. 어딘가에 가 닿을 수 있을때까지 슬픔은 사라지지 않는다.. 슬픔은 항상 대상을 동반함으로...우울은 위로할 수 있으나 슬픔은 위로가 통하지 않는다.. 소강상태를 가지는 것 뿐...잠시 잊혀진듯 하다가도 어느 순간.. 물이 차 올라오듯 떠오르는 것... 그것이 슬픔이다. 슬픔의 기미가 느껴지는... 그래서 시간이 덧없는 날.. 쓸쓸함으로 가득찬 내게 적합한 질문은 " 나는 누구인가? 가 아니다. "나는 무엇을 하고 왜 살아왔는가?"도 아니다... '만일 내가 죽으면 나와 함께 무엇이 죽고 세계는 서글프고 부서지기 쉬운 어떤 형상을 잃게 될 것인가?' 이다.. 나에겐? 나의 올나간 스타킹들.. 목동의 거리.. 1년 내내 꼬마전구가 켜져있는 호프집들.. 굽이 닳은 신발들.. 내가 사모은 속옷들... 반쯤 쓴 립스틱과 내이름... 나와 함께 살아주는 가족들과 지인들.. 너... 목동의 스카이 라인... 교보..와 반디앤루니스... 그리곤 아무것도....다시 일해야 할 시간.. 슬픔이건 우울이건... 쓸쓸함이건.... 개의치 않아야 하는 시간..오늘은 너무 길다...
우울과 슬픔의 차이..
일을 하는 중간.. 잠시 쉬는 시간.... 가슴이 먹먹해지는 시간... 배가 고픈거 같다.. 그러고 보니 먹은게.... 별로 없다.
요즘은 거의 허기가 져서야나 먹을 생각을 하곤 한다.. 그러다보나 자다 말고 일어나 앉아 먹는 날도 허다하다..
허기진 속에 아무거나 넣고 있다보면 문득 또 뭐하고 있나 싶어 숟가락을 내려놓게 된다.
이 감정들의 정체는 무엇인가... 이건 명백히 슬픔에 속하는 것들이다. 그렇다면 슬픔과 우울은 어떻게 다른 것인가?
내 일상의 소소한 잔물결같은 감정들은 무엇인가..
우울에 대해서 지금까지 내가 확실히 아는 것은 두가지 뿐이다.
첫번째는 다른 사람이 소유하고 있는 것을 내가 소유하지 못해서 금새 외로워진 결과로서의 감정은 우울이라는 것.
두번째는 인간이 아니라 사물이 나의 기대를 저버릴 때의 감정도 우울이라는 것.
그러니 우울은 차마 다른 인간에게 화낼 일이 못되는 감정인 것 같다.
내 우울 때문에 다른 인간을 할퀴고 싶지 않은 날에는 침대에 누워 이불을 뒤집어쓰거나 아니면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토성편을 펼쳐든다. 토성에서의 계절변화는 지구에서보다 훨씬 느리게 진행된다는 것을 알고 있나?
토성의 생물들은 그 생활양식이 우리와 전혀 다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곳의 겨울은 지루하게 길테니까...
시간이 느리게 간다는 건... 감정의속도도 그만큼 느리다는 거와 상통한다.
시간속에서 어떤 사람은 단순히 그 사람일 뿐이다. 항상 그대로의 사람, 공간속에서,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시간은 많은 여유를 주지 않는다. 시간은 뒤엣 부터 우리를 뚫고 들어오고 좁다란 통로를 통해 우리를 과거에서 미래로 밀어낸다... 그러나 공간은 넓고 가능성.위치.교차로. 통로. 우회로. 유턴. 막다른 골목. 일방통행로 등이 가득하다.
실제로 너무 많은 가능성이 있다. 토성적 기질은 느리고 우유부단한 경향이 있기 때문에 때로는 칼을 들고 자신의 길을 내며 나아가야 한다. 대로는 칼날을 스스로에게 돌려 끝을 내기도.... 한다.
우울한 날의 행동강령은 이렇다.
술을 마시되 독주는 피해야 하고 대화상대는 오랫동안 호감을 유지해온 사이되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을 택해야 한다.
일단 낯선 사람을 만나면 수많은 다른 사람이 될 천부적 자질을 갖고 태어났으니... 오죽 좋은가..
한껏 웃어제끼기... 오랜만에 만난 상대와 일상을 주고 받는 것..
나는 그렇고 그런 일상을 살아가야 하는 인간들의 너스레가 솔직히 말해서 눈물나게 좋다.
우울함을 쾌활함로 바꾸려고 사소한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
우울한 날 한잔 걸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하늘의 달을 보게 된다면 나또한 상대와 비슷한 너스레를 중얼거리게 되니 말이다..
그렇다면 슬픔은 우울과 어떻게 다른가...
슬픔은 삭여지지 않는 성긴 음식을 먹었을 때의 느낌과 비슷하다.
슬픔은 항상 내 속에서 시작되나 끝은 내게서 멈추지 않는다.. 어딘가에 가 닿을 수 있을때까지 슬픔은 사라지지 않는다..
슬픔은 항상 대상을 동반함으로...우울은 위로할 수 있으나 슬픔은 위로가 통하지 않는다..
소강상태를 가지는 것 뿐...잠시 잊혀진듯 하다가도 어느 순간.. 물이 차 올라오듯 떠오르는 것... 그것이 슬픔이다.
슬픔의 기미가 느껴지는... 그래서 시간이 덧없는 날..
쓸쓸함으로 가득찬 내게 적합한 질문은 " 나는 누구인가? 가 아니다.
"나는 무엇을 하고 왜 살아왔는가?"도 아니다...
'만일 내가 죽으면 나와 함께 무엇이 죽고 세계는 서글프고 부서지기 쉬운 어떤 형상을 잃게 될 것인가?' 이다..
나에겐? 나의 올나간 스타킹들.. 목동의 거리.. 1년 내내 꼬마전구가 켜져있는 호프집들.. 굽이 닳은 신발들..
내가 사모은 속옷들... 반쯤 쓴 립스틱과 내이름... 나와 함께 살아주는 가족들과 지인들.. 너... 목동의 스카이 라인...
교보..와 반디앤루니스...
그리곤 아무것도....다시 일해야 할 시간..
슬픔이건 우울이건... 쓸쓸함이건.... 개의치 않아야 하는 시간..오늘은 너무 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