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 있을때 한국인임이 부끄러웠던 적이 있었다. 황구라 사건이 터졌을 때 그랬다. 호주에 있는 지금도 역시 우리의 조국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다시금 아스트랄한 사건을 펼쳐 주신다. 아아, 우리 조국 대한민국. 미네르바 사건은 전초전이었다. 중국인들이 인터넷에 글을 올렸다고 사람을 잡아가는 대한민국이 과연 자유국가냐며 비아냥 거리는 것은 그냥저냥 참을만했다. 이번엔 사람이 죽었다. 용산지역 철거민들을 강제해산하는 과정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재개발을 둘러 싼 철거 문제에는 으레 다툼이 생기기 마련이다. 기존 세입자들은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고 하고, 재개발업자들은 조금이라도 돈을 덜 주려고 한다. 그것은 경제적으로 만고의 진리이며, 자본주의의 기본작동원리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협상이라는 것을 하게 되는 것이고, 그것이 결렬되면 시위로까지 가게 되는 것이다. 시위는 적절치 못한 것이 아니고 헌법으로 명시된 바 시민 개개인의 권리이다. 국가가 보장하는 권리란 말이다. 여기서 철거민들이 말도 안되는 보상금을 제시했을거라는둥, 시위 자체가 그들의 몸값을 올리기 위한 쇼라는 둥의 물타기는 하지 말자. 은평뉴타운 기존 세입자들의 재정착률은 20%를 밑돈다.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과정에도 부당한 보상금 책정은 그 수를 세아리기 힘들다. 이번 용산 4구역 재개발때도 상황은 비슷했을 것이다. 분명 부당한 보상금이 제시됐을 것이다. 용산 철거민들이 바보인가?! 그들도 국가가 추진하는 재개발에 맞서면 필패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제시된 보상금으로는 기존의 생활을 영위하기가 턱없이 부족했기에 바위에 계란을 던지는 절박한 심정으로 시위에 나섰을 것이다. 그들은 못 배우고 못 가진 우리들의 자화상에 다름없다. 그런 그들이 생계의 위협을 받은 것이다. 그래서 힘없는 그들은 시위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그 누가 최초의 방법으로 시위를 택하겠는가. 그들도 누군가의 아버지, 어머니들이다. 그들도 사람을 키워봤고 사람 다치게 하는 일이 무서운 일이라는거 누구보다 잘안다. 여기서 뜬금없겠지만 이런 질문을 하나 던져 본다. 과연 국가의 존재이유는 무엇인가. 사람들이 어느 정도 자신의 자유를 제한 당하고, 자신의 돈으로 세금을 내고, 때로는 완전한 복종을 하면서도 국가의 존재를 인정하는 이유가 뭘까. 그것은 국가가 시민들의 안전을 보장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국가의 가장 큰 의무는 국민들의 안전보장이다. 안전을 보장한다는 것은 국민들이 인신에 위협을 느끼지 않고 생활을 할 수 있게 해준다는 말이다. 인신의 위협은 물리적인 폭력으로부터만 오는 것이 아니다. 재해, 질병, 경제적인 문제, 환경적인 문제 등등이 모두 인신의 위협을 야기시킬 수 있다. 용산 철거민들은 생계의 위협을 느낀 것이다. 어찌될지 모르는 내일의 두려움에 봉착하게 된 것이다. 즉, 그들은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우리들의 국가는 이러한 철거민들에게 도움을 주기는커녕 진압과정에서 사상자를 내었다. 게다가 거기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성숙한 태도를 보이지 못하고 변명을 해댄다. 선진국이란 다수를 위한 합리적이 제도와 더불어, 소수에 대한 정교하고 사려깊은 제도가 양존하는 국가를 말한다. 나는, 내가 나고 자란, 나의 조국 대한민국이 그 어떤 나라보다 찬란하게 빛나는 나라였으면 한다. 그렇기에 나는 우리의 대한민국이 한없이 부끄럽다.
What A Shameful News It Is
캐나다에 있을때 한국인임이 부끄러웠던 적이 있었다.
황구라 사건이 터졌을 때 그랬다.
호주에 있는 지금도 역시 우리의 조국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다시금 아스트랄한 사건을 펼쳐 주신다. 아아, 우리 조국 대한민국.
미네르바 사건은 전초전이었다.
중국인들이 인터넷에 글을 올렸다고 사람을 잡아가는 대한민국이 과연 자유국가냐며 비아냥 거리는 것은 그냥저냥 참을만했다.
이번엔 사람이 죽었다.
용산지역 철거민들을 강제해산하는 과정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재개발을 둘러 싼 철거 문제에는 으레 다툼이 생기기 마련이다.
기존 세입자들은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고 하고, 재개발업자들은 조금이라도 돈을 덜 주려고 한다.
그것은 경제적으로 만고의 진리이며, 자본주의의 기본작동원리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협상이라는 것을 하게 되는 것이고, 그것이 결렬되면 시위로까지 가게 되는 것이다.
시위는 적절치 못한 것이 아니고 헌법으로 명시된 바 시민 개개인의 권리이다. 국가가 보장하는 권리란 말이다.
여기서 철거민들이 말도 안되는 보상금을 제시했을거라는둥, 시위 자체가 그들의 몸값을 올리기 위한 쇼라는 둥의 물타기는 하지 말자.
은평뉴타운 기존 세입자들의 재정착률은 20%를 밑돈다.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과정에도 부당한 보상금 책정은 그 수를 세아리기 힘들다. 이번 용산 4구역 재개발때도 상황은 비슷했을 것이다. 분명 부당한 보상금이 제시됐을 것이다.
용산 철거민들이 바보인가?! 그들도 국가가 추진하는 재개발에 맞서면 필패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제시된 보상금으로는 기존의 생활을 영위하기가 턱없이 부족했기에 바위에 계란을 던지는 절박한 심정으로 시위에 나섰을 것이다. 그들은 못 배우고 못 가진 우리들의 자화상에 다름없다.
그런 그들이 생계의 위협을 받은 것이다. 그래서 힘없는 그들은 시위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그 누가 최초의 방법으로 시위를 택하겠는가. 그들도 누군가의 아버지, 어머니들이다. 그들도 사람을 키워봤고 사람 다치게 하는 일이 무서운 일이라는거 누구보다 잘안다.
여기서 뜬금없겠지만 이런 질문을 하나 던져 본다.
과연 국가의 존재이유는 무엇인가.
사람들이 어느 정도 자신의 자유를 제한 당하고, 자신의 돈으로 세금을 내고, 때로는 완전한 복종을 하면서도 국가의 존재를 인정하는 이유가 뭘까.
그것은 국가가 시민들의 안전을 보장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국가의 가장 큰 의무는 국민들의 안전보장이다.
안전을 보장한다는 것은 국민들이 인신에 위협을 느끼지 않고 생활을 할 수 있게 해준다는 말이다.
인신의 위협은 물리적인 폭력으로부터만 오는 것이 아니다. 재해, 질병, 경제적인 문제, 환경적인 문제 등등이 모두 인신의 위협을 야기시킬 수 있다.
용산 철거민들은 생계의 위협을 느낀 것이다. 어찌될지 모르는 내일의 두려움에 봉착하게 된 것이다. 즉, 그들은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우리들의 국가는 이러한 철거민들에게 도움을 주기는커녕 진압과정에서 사상자를 내었다.
게다가 거기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성숙한 태도를 보이지 못하고 변명을 해댄다.
선진국이란 다수를 위한 합리적이 제도와 더불어, 소수에 대한 정교하고 사려깊은 제도가 양존하는 국가를 말한다.
나는, 내가 나고 자란, 나의 조국 대한민국이 그 어떤 나라보다 찬란하게 빛나는 나라였으면 한다.
그렇기에 나는 우리의 대한민국이 한없이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