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를 본후

최병우2009.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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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베토벤 바이러스(이하 베바)가 빨리 종영되기를 바라는, 대한민국에 몇 안되는 사람들 중 하나였을 것이다. 유독 부족한 참을성 때문에 다음회가 나오는 것을 기다리기 싫어 종영되지 않은 드라마는 시작도 하지않기 때문이다. 18회가 끝났고 사람들은 후애에 젖어있었다. 하지만 나의 베토벤 바이러스는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베토벤 바이러스 vs. 노다메 칸타빌레

 

클래식 드라마 열풍이 불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처음 떠올랐던 생각은 바로 '노다메 칸타빌레'(이하 노다메)였다. 클래식을 다룬 일본 드라마 '노다메'는 한국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끌었기 때문에 '베바'의 제작단계부터 비교를 당할 수 밖에 없었다 (제목 글자 수까지 묘하게  일치한다). 제작진도 이 사실에 많은 부담감을 느꼈다고 실토했다.

 

다행히도 나의 첫 생각과는 달리 '베바'는 '노다메'와의 차별을 두는데 성공했다. 부분적으로는 더 뛰어나기도 했다.

 

 

첫째로 '베바'는 클래식이라는 주제를 한국의 관점으로 해석하는데 성공했다. '노다메'는 원작의 코믹함을 충실하게 반영하는 반면 '베바'는 어려운 한국경제의 현실에 빗대 진정한 꿈과 열정이란 무엇인가?하는 질문을 우리에게 진지하게 던진다.

 

'노다메 칸타빌레'는 제목 그대로 음대에 다니는 학생들의 축제이다. 물론 그들에게도 힘들고 고된 선택의 순간들이 다가온다. 허나 '베바'의 단원들이 직면하는 냉혹한 현실의 벽과는 차원이 틀리다.

 

 

우리나라 가부장제도에 끼여 자신의 꿈을 포기해야만 했던 정희연씨.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져야했던 박혁권씨. 트럼펫 연주자가 꿈이었지만 경제적 여건 때문에 일을 시작했던 카바레 배용기씨. 노년의 현실과 연주자의 이상 사이의 김갑용 선생님. 눈물을 더 흘리더라도 이상을 택한 하이든. 이들은 클래식 연주자들이 아니다. 다만 우리 주위에서 평범하게 하루를 싸워가며 살아가는 우리의 이웃들이다.

 

 

'베바'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평범한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는 대신 평범한 인생들의 오케스트라 단원 이야기를 TV를 보고있는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들려주길 선택했다. 그리고 시청자들은 답변으로 환호와 박수를 보내주었다.

 

 

둘째로 '노다메'는 물론, 한국 드라마 흥행 공식에 늘 포함이 되어있는 애정라인이 '베바'에는 많이 드리워져 있지 않았다. 물론 강마에와 두루미, 그리고 강건우 사이의 삼각구도는 존재한다. 하지만 그러한 구도를 현실적으로 다루고 처리했다는 점에서 난 높은 평가를 주고 싶다.

 

만약 두루미가 드라마 끝까지 두 강건우 사이에서 계속 흔들리거나 마지막에 둘 중 한 사람과 해피엔딩을 맞던가 했다면 '베바'는 그저 그런 또다른 한국 드라마 반열에 진입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강마에. 김명민은 원래 연기파 배우로 잘 알려져 있었지만 '베바'는 그를 위해 준비되어 있던 무대였다. 강마에는 실력이라는 무기를 갖고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인간관계와 현저히 대조되는 언행을 보여주는 케릭터다. 이렇게 고전시대의 베토벤을 현대로 옮겨놓은 듯한 강마에라는 케릭터를 김명민은 완벽한 연기로 재연해낸다. 강마에 신드롬이라는 새로운 현상을 만들어냈듯이 가히 성공적이었다.

 

물론 '노다메'의 주연 치아키 또한 훌륭한 배역이고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준다. 하지만 강마에의 카리스마 앞에선 그러한 치아키마저 평범하게 보일 뿐이다.

 

 

 

한 모금의 아쉬움

 

물론 이런 찬사 뒷부분에는 많은 아쉬움들이 남아있다. 드라마는 길다. 단편물이 16편, 중편물은 24편, 그리고 장편들은 100편씩 하는 것들도 있다. 성공적인 드라마를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큰 딜레마는 스케일과 디테일의 평형점일 것이다. 오히려 영화는 2시간이라는 영상 시간동안 집중을 할 수 있지만 드라마는 그렇지 못하기에 더 어려운듯 하다. 드라마 감독은 더 많은 이야기들을 영상 속에 압축시키고 더 많은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싶겠지만 그럴수록 이미 제시했던 것들에 대한 디테일을 희생시켜야 한다.

 

 

'베바' 또한 이러한 딜레마들이 느껴진다. 이 드라마는 흥미로운 여러 구도를 제시하는 듯 했지만 대부분의 것들을 더 발달시키지 않고 수박 겉 핥기 식으로 흘려 넘긴다. 번뇌이는 천재 지휘자 강건우는 그런 아이템 중 하나이다.

 

-음이 1/8도 차이 나니깐 온도를 1도 낮추면 되는거 아닌가요?

 

-모차르트처럼 해본거냐고 니가?

-해봤는데 잘 안되요. 뒤에 몇 마디는 쓰지도 못했고요..

-몇 번 들었는데?

-한 번.. 모차르트도 그랬다면서요.

 

-뭐하자는 거야! 화음을 말하라니까!

-시! 도! 레! 미b! 파#! 라b!

 

개인적으로 천재 강건우가 지휘자로써 더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마치 만화 '신의 물방울'의 주인공처럼 기술적인 섬세함은 없지만 무한히 끓어 넘치는 재능으로 자신만의 길을 어떻게든 헤쳐나가는 모습을 말이다.

 

 

아니면 강건우를 정명환의 재자로 넣어 훗날 강건우와의 대립을 더 극대화 시켰으면 어떨까?라는 생각도 든다. 만약 두 정상급 지휘자와 그들의 천재 제자의 구도가 원작의 취지와 벗어난다면 드라마 후반에 강건우가 강마에를 점점 닮아가는 모습을 자세히 그렸다면..하는 아쉬움이 여전히 남는다. 이 부분은 1편 반정도 발단이 되는듯 하더니 갑자기 건우는 예전 본연의 모습으로 아무런 설명없이 돌아가 버리고 만다.

 

 

 

늘어난 대본

 

본연으로 돌아간 건우 뿐만이 아니다. 전개에 치우치는 것이 벅차서 그랬는지 작품에 출연하는 수많은 인물들 사이의 관계나 갈등이 갑자기 정리되버리거나 허무하게 끝나는 경우가 후반부로 갈수록 허다한 것 같다. 정희연씨와 가족들과의 관계. 김갑용 선생님과 하이든의 엔딩. 오케스트라 해체의 마지막 장면. 시향과 시장의 대립. 심지어 두루미의 심경변화마저 너무 갑작스럽게 느껴졌다. 사실 드라마의 장점이 점진적으로 일어나는 인물의 심리변화를 보여줄 수 있는 것인데.. 어느새 드라마는 끝나버리고 만다. 안타깝다.

 

 

엔딩 또한 마찬가지다. 거위의 꿈이 마지막 공연이라는 설정은 마음에 들었지만 공연 내용이 오케스트라의 마지막이라는 것보다는 인순이 씨에 초점을 맞춘듯한 느낌을 지워버릴 수가 없다.

 

 

그리고 더한 것은, 여기가 드디어 오케스트라의 힘들고 불확실했던 여정의 끝인줄 알았지만.. 갑작스럽게 합동 공연을 다시 한번 준비한다. 사실 이러한 문제점은 드라마 중반 이후부터 줄기차게 재기되어 왔다. 베토벤 9번(합창)교향곡 공연 이후로 드라마 전반적인 분위기가 쳐지고 늘어진다는 점.

 

이러한 이상한 의문들 때문에 나중에 조사를 하며 알게된 점이지만 원래는 16편으로 계획되었던 대본이 드라마가 예상보다 더 큰 인기를 끌자 중반 이후로부터 임의로 늘려졌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들으니 모든 것들이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다시 한번 '노다메'의 얘기로 돌아가자면 '노다메'의 엔딩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Rising Star의 첫 곡은 무제인 베토벤 7번 교향곡이었고, 마지막 무대에서도 본연의 초심으로 돌아감을 표현하고자 똑같은 곡을 연주한다. 곡이 끝나고 관객들이 "브라보!"와 함께 일제이 일어나 박수를 치고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지나갔던 추억들을 그리며 울고 웃으며 인사를 한다. 그리고 이내 엔딩 크레딧은 공연장을 바탕으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한국 드라마의 현실의 벽

 

왜 우리나라에는 이러한 엔딩이 나올 수 없는 것일까? 문제는 한국 드라마의 제작 현실로 돌아간다. 일본은 여유롭고 안정적인 투자를 바탕으로 드라마를 상영하기 전 최종편까지 찍는다고 한다. 11편으로 계획되어 있다면 11편까지 녹화가 다 된다음 시청자들이 완성물을 보게 되는 샘이다. 그렇기에 줄거리의 페이스가 일정하고 섬세하며 일관성이 있다.

 

 

한편 우리나라는? 제작사는 시청률에 따라 투자금이 회수될 수도 있으므로 최대한 시청률을 계속 높게 유지하는 방향으로 제작을 한다. 한가지 방향으로 제작을 하다가도 다른 요인 때문에 시청률이 높아졌다고 판단되면 새로 방향을 틀어 다시 나가는 식이다.

 

결과는 쪽대본이 난무하고 배우들은 촬영 전날 대본을 받아 밤새 연습하기 일수며 ost 제작진들도 바뀐 시나리오에 맞춰 녹음을 새로 해야하는 현실이다. '베바'같은 음악 드라마의 경우 영상과 음을 싱크로 시켜야하는 추가적 고통이 들어간다.

 

결론적으로 일본 드라마와 같은 사전 제작은 꿈도 꿀 수 없다,

 

이러한 불합리한 작업 환경 속에서 스텝과 배우들은 2달 동안 밤을새서 작품을 만들어 나가야 했고, 그런 고된 행군 속에 이만한 작품이 나왔다는 것이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는 것이다.

 

 

 

꿈과 희망? 클래식의 전파!

 

하지만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나온 작품이기에. 다들 어려운 시기에 나온 작품이기에. 오케스라 단원들의 삶 만큼 고되고 차가운 현실 덕분에 이 작품이 더 마음에 와닿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바'의 작가는 두가지 목표를 갖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하나는 꿈과 희망. 다른 하나는 클래식의 전파.

 

 

꿈과 희망. 이 드라마를 '클래식 드라마'보다 더 잘 수식한 표현인듯 하다. 클래식은 단지 그 꿈과 희망을 전달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물론 나도 두 단어를 이 드라마 덕분에 마음 속에 다시 한 번 새길 수 있었고 무엇이 진정한 꿈과 희망인지 내 자신에게 되물어볼 수 있었다.

 

 

하지만 드라마가 후반부로 갈수록 주인공들이 이야기하는 꿈과 희망은 현실과는 너무나 멀어보이기만 했다. 정희연씨가 가족의 분열을 감수하면서까지 꿈을 그토록 오래 쫓을 필요가 있었을까? 박혁권씨의 가족의 불행은 감수해도 될만한 요인이었을까? 두루미씨와 김갑용씨의 건강도, 하이든의 미래도..

 

결론적으로 성공한 것은 강건우 밖에 없는 듯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1년을 헛되게 보냈거나 그들의 꿈과 희망을 저열하다고 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나도 꿈과 희망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단지 차이점은 얼마만큼 그것을 쫓느냐 하는 문제다.

 

 

모든 것은 때가 있다. 그 때가 지나서 그것을 하려면 감수해야 하는 현실이 너무나 크고 벅차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제 나이가 지난 다음에 자신의 꿈을 쫓으려고 하는 사람들의 노력은 아름답지만 그 정도가 지나치면 더이상 아름답지 못하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정희연씨의 말이 옳다고 생각한다.

 

-나.. 이제 됐어. 내가 그토록 원하던 무대에도 서봤고 솔로도 해봤고.

 

그녀의 짧은 순간이었지만, 정희연씨에게는 그녀를 억누르고 있던 그 고통을 다 잊을만큼 충분한 순간이지 않았을까?

 

 

첫번째 메시지인 꿈과 희망은 한계적이었다. 하지만 아름다운 클래식의 전파.. 성공했다. 서울시의 그 어느 시향 홍보물 보다도. 예고의 그 어떤 뛰어난 선생님 보다도. 대한민국 최고의 클래식 연주자들 보다도.

 

클래식의 클자도 모르는 내가 집에 먼지가 수북히 쌓여있는 필 하모니 CD들을 꺼내 베토벤의 노래가 있나 찾아보는 것도. 교보문고를 서성이며 클래식의 역사에 대한 책을 넘겨보는 것도. 연초에 있었던 서울시향의 표가 2박3일간 매진되었던 것도. 모두 '베바'의 여파다.

 

보편적인 사람들이 모여 오케스트라를 하는 모습을 본 시청자들은 더이상 오케스트라가 강마에의 표현처럼 '귀족음악'이 아닌 누구나 가요처럼 편하게 접할 수 있는 음악이 되버렸다.

 

 

정말.. 베토벤 9번(합창)교향곡에서 합창단이 들어서는 순간에는 어떠한 멋진 대사보다도 희망, 생명, 꿈이 느껴졌고 내 눈에서는 어느새 한방울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꿈과 열정을 전하는 따뜻한 음악. 베토벤 바이러스는 이러한 클래식을 사람들에게 바이러스처럼 퍼뜨린 드라마다.

 

지금 대한민국은 클래식을 더 갈금하고 육성하길 원하는 병에 걸려있다.

 

이러한 음악에 대한 열정과 지원이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기를. 대한민국에서도 계속해서 이런 음악을 들을 수 있기를. 이 병이 오랫동안 치료되지 않고 어렸을적의 흉터처럼 세월이 오래 지나도 계속해서 남아있기를, 난 기원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