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걸리신 어머니를 위한 선물

김영수2009.01.25
조회589

1

 

요즘 연구실에서 신입생들과 함께 주2회 세미나를 한다. 타대생이고 타과생도 있다 보니, 기본기가 부족할 것이라는 교수님과 선배들의 우려에 시작된 세미나가 교수님 저서, 인간공학, HCI, eye tracking, 통계 및 S/W 를 다루는 것을 목표로 12월 중순 경에 시작되었다. 방학이 끝날 때 쯤이면 서울대생과 싸워도 꿇리지 않도록, 개강이 그리워지도록 하는 것이 교수님과 나의 목표였다. 끝날 때 쯤이면 지식이 참 많이 쌓일 것이다.

 


 

 

하루에도 몇 시간씩 준비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배움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발제 내용을 미리 읽어가는 것, 그리고 짬짬히 있는 숙제와 읽기 과제들은 사람을 거의 미치게 만든다. 아침 10시 출근 밤 10시 퇴근을 원칙으로 지내다보니, 주중에는 사흘 동안은 집에서 이틀은 학교에서 지낸다.

 

 

 

2

 

어머니께서 암으로 입원하신지도 거의 1년이 다 되어간다. 생일 때도 입원해 계셨던 어머니를 위해 아버지께서 뭔가 해주자고 마음을 먹으셨는지, 13일에 연구실에서 밤 새던 나에게 전화를 주셨다. 언제 집에 올 거냐고, 오늘도 학교에서 잘 거냐고...번역할 책이 네 권이나 있고, 읽을 페이지 수 또한 200 페이지 쯤 되기에 달리 선택이 없었다. 아버지께서는 알았다고 하셨지만, 섭섭함이 묻어나옴을 금치 못하셨나보다. 아들도 알았으니...

 

다음 날, 세미나를 하고 와보니 어머니께서는 퇴원해 집에 계셨다. 하지만 집에 어머니만 계신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집 구석이 뭔가 좀 달라졌다 싶었더니, 벽에 이런 것이 붙어 있었다:

 

 


 

관리/계획(경영)을 전공하신 아버지와 미술을 전공한 동생의 합작이 거실 벽에 붙어 있었다. 아버지께서 돌아온 나에게 해주신 한 마디, "네가 집에 없을 때 아빠랑 동생이랑 네 시간 동안 집 치우면서 어머니 맞이할 준비했다. 큰 아들, 너도 뭔가 해야하지 않겠니?"

 

억울했지만 사실이었다. 나는 집에 없었을 뿐이고, 어머니는 하필이면 그날 오셨던 것이고, 아버지와 동생은 나 없는 사이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여 어머니께 사랑을 주고자 하셨던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나에게 만회할 기회를 주시고자 하여 내일 풍선을 사오라고 하셨다. 주변을 꾸미게 말이다. 그것 마저도 안 하면 집에 안 들여보내주겠다고 하셨다.

 

억울했지만

사실이었다.

 

 

3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봤다. 어머니께서 무엇을 원하실지, 이 사건의 본질은 무엇인지, 나는 어머니에게 있어서 어떤 존재인지...

 

답은 의외로 금방 나왔다. 어머니께서는 지금 우리의 사랑이 필요하고, 이 사건의 본질도 어머니를 사랑하는 우리 가족의 마음을 표현하는 데에 있어서 내가 단지 바빴을 (우선순위가 달랐을?) 뿐이고, 나는 어머니에게 있어서 사랑을 받기만 하는 게 아니라 이제는 어머니께서도 의지할 수 있는, 어머니께 사랑을 적극적으로 드려야 하는 큰아들인 것이다.

 

본질이 사랑이라면,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과 목적도 사랑이어야 한다. 아버지와 동생이 고생한 것에 단지 손 하나 얹는 것에 그치기 싫었다. 내 기질과 능력을 살려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살펴 보았고, 그 끝에 색종이 접기를 생각해냈다.

 

참 잘 생각해낸 것 같았다.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서 하트를 접는 것이었다. 안 그래도 붓으로 그리고 가위/칼로 오려낸 하트보다는 손으로 직접 접어서 꾸미는 것이 정성스러울 것 같아서 종이접기를 택했다. 구글에서 "하트 종이접기"로 검색하니까 금방 나왔다.

 


 

그날 밤에 연구실에서 좀 일찍 퇴근해서 (그날은 어차피 휴가였고, 교수님께서 부탁하셔서 일부러 연구실에 나왔던 것임) 코엑스 링코에 들려서 풍선 40개와 함께 항균양면색종이와 학종이를 사왔다. 20가지 색이 총 200매 들어있고, 어머니께서 무지 아프시기에 일부러 좀 비싼 걸로 사오고 싶었다.

 

집에 오자마자 접기 시작했다. 빨간색은 크게 접었고, 접으면서 너무 크면 싱겁기도 하고 흉물스러울 것 같아서 주변에 gradation을 넣고자 하여 핑크색으로 작은 하트를 접으려고 하였다. 학종이로 접어봤는데 너무 작아서 잘 접히지도 않고 색깔도 그다지 이쁘지 않았다. 그래서 분홍색 색종이를 칼로 4등분 해달라고 아버지한테 부탁했고, 그렇게 계속 하트를 접기 시작했다.

 

        



이따금씩 들려오는 어머니의 기침 소리. 이번에 처방 받은 항암치료는 예전 것보다 훨씬 세서 어머니의 식도와 구강 점막을 모조리 다 허물어 버렸다고 한다. 가래, 침, 헛구역질, 통증으로 인한 눈물과 한숨이 나의 하트를 눈물로 적셨다. 하트 하나하나에 기도가 절로 나왔다.

 

색색별로 20개, 그리고 한 색은 4등분 했으니, 빨간색 하트는 총 20개, 분홍색 하트는 총 20x4=80개를 접었다. 처음에는 엄청 속도도 안 붙고 졸렸지만, 어머니께서 아파하시는 소리를 듣고 정신이 번쩍 들면서 가슴에서 느낀 작은 불꽃이 두 눈으로 올라오는 것을, 자주, 느꼈다. 집에 와서 10시부터 새벽 4시까지 접었으니, 꼬박 6시간을 앉아 있었다. 목이 뻐근했지만 100개는 다 만들겠다는 결심으로 참고 다 접었다.

 

 

4

 

아침에도 기도를 드리면서 문득 들은 생각이, 어머니의 삶을 주관하시는 이는 바로 주님이라는 것, 우리의 삶을 인도해주시며 은혜와 자비로 우리를 보살피시며 우리에게 슬픔 대신 희락을 가져오실 분도 바로 주님이라는 고백을 하게 되었다.

 

그렇다, 내가 사실 어머니에게 사랑을 드린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예수님께서 나를 통해 어머니에게 사랑을 베풀어 주시는 것이며, 나는 그냥 통로일 뿐이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하는가? 단지 어머니를 사랑한다는 말만 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주님의 사랑을 나타내야 하지 않겠는가? 마침 주님을 상징하는 것을 찾다가 학종이 케이스에 포함된 별 접는 방법을 통해 "주는 저 산 밑의 백합, 빛나는 새벽별"의 찬양이 생각났다. 그래서 주님을 상징하는 새벽별을 접기로 하였다.

 


 

설명서에는 꼭지점이 다섯 개지만, 성경에서는 7이 완전수이기 때문에 꼭지점을 7개 만들기로 하였다.

 


 

 

천사와 권세의 주인 되시는 주님을 표현하기 위해 천사를 접기로 결정하였다. 역시 구글, 없는 것이 (거의) 없다.

 


 

천사는 흰 옷을 입는 것이 통상의 관념이기 때문에, 그리고 이 설명서에서도 학종이를 쓴듯 했기 때문에 학종이를 사용하였다.

 


 

이 모든 것을 어떻게 배치할까 고민을 한참 했다. 기존에 있던 것들에게 붙이기도 그렇고, 어머니께서 어차피 그쪽 벽은 잘 안 보시기 때문에 아예 천장에 붙이기로 했다. 붙일 개체 수도 많고, 전체적으로 그림을 잡기 위해서 일단 (유일하게 잘 쓸 줄 아는) 파워포인트로 레이아웃을 한 번 그려보았다

 

 

 

 

여기서 이 작업의 이름 (Project Sistine)이 생각난 것이다.

 

5

 

 

아침에 코엑스 링코에 다시 가서 전지를 사왔다. 셀로판 보드나 아크릴판도 있었는데, 크기가 다 안 맞아서 어쩔 수 없이 종이로 된 전지를 샀다.

 

집에 와서 밥 먹자마자 붙였다. 심지어 교회도 안 갔다 (주님, 용서해주세요). 양면 테이프와 스카치 테이프를 써가면서 하나하나 붙일 때 어머니께서 또 기침과 신음을 연달아 내시면서 또 다시 분위기가 어두워지고...그래도 뒤에서 들려 오는 찬송 소리에 힘을 얻고 작업을 계속 하였다.

 

 

어느덧 작업은 완성됐고, 이제 붙일 일만 남았다. 아버지의 도움과 어머니의 의견에 따라 천장에 안 붙이고 베란다 문에 붙이기로 하였다. 어머니께서 어차피 천장을 잘 안 보시고, 붙이기도 어렵거니와, 나중에 뗄 때 벽지도 같이 뜯어낼 것 같아서였다.

 


 

다 끝난 줄 안 순간, 아버지께서 느닷없이 풍선을 불자고 하셨고, 결국 풍선 16개를 더 불고 이제서야 이 글을 쓴다.

 


 

6

 

어머니께서 매우 좋아하셨다. 요즘 안 그래도 성경 말씀에 심취하신 어머니께서 "일곱 천사네?" "여기에 다 담아냈구나" 등의 말씀을 해주셨다. 2박 3일의 피로가 깨끗히 씻기는 느낌이었다.

 

다 붙이고 나서 아버지께서 내게 "수고 했다, 네가 나중에 내가 앉아 있는 여기에 앉을 때 쯤이면 이런 건 아마 기껏 해야 대여섯개 밖에 못 만들게다."라고 말씀해주셨다. 어느 먼 훗날, 아니 매우 가까이 다가오게 될 지도 모를, 그 날에 나도 아버지가 되고 아들/딸들과 함께 이런 사랑을 나눌 수 있을까? 주님만이 아실 일이다.

 

 

 

하나님께 참 감사하다.

일 밖에 모르는 나에게 하트 접는 방법도 가르쳐 주시고,

그동안 연구실에서 숱하게 밤 새던 실력으로 밤새 종이도 접고,

교회에서 찬양팀과 리더/엘더로 훈련해주셔서 찬양을 들으며 기도도 하고 적절히 필요한 말씀도 찾아 사용할 줄 알게 해주시며,

마침 구정 휴가를 주셔서 이런 것도 준비할 수 있게 해주시고,

무엇보다도 나에게도 뜨거운 가슴이 있다고 확인시켜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집에 올 때마다 하나님이 우리 어머니를 사랑하시며, 지금은 우리 가족이 어머니에게 사랑을 드려야 할 때임을 계속 기억할 것이다.

 

구내와 식도가 다 타서 웃기 조차 힘드신 어머니의 작은 미소.

눈물로 가슴에 새겼다.

 

 

 

 

마음이 조금이라도 움직이셨다면...

저희 어머니를 위해 잠시 기도 부탁해도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