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映畵] 과속스캔들을 보고

이충현2009.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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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으로 1월 1일이 된 설날 저녁, 너무 오래간만에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전날의 윷놀이에 이어서 설날 떡만두국 같이 먹고 새해인사를 나누고,, 낮에는 공부를 열심히 하고 저녁에 다시 집에 돌아와 식사 후에 또 가족끼리 영화나들이를 떠났는데 이 날 관람한 영화가 바로 [과속스캔들]이었다.

 

사실 이 영화는 2008년이 끝나갈 무렵이던 때 개봉해서 주위에서 괜찮다는 평을 들었던 작품이었다. 특급 주연배우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차태현의 전성시대가 분명 있었지만 지금은 솔직히 아니지 않는가?^^; 하지만 그는 이 영화 이후로 또다른 전성기를 맞이할지도 모르겠다.) 제작비를 엄청나게 많이 쏟아부은 것도 그리 유명세를 타는 감독이 책임을 진 영화도 아닌데 600만을 넘어선 관람숫자는 분명 적지 않은 공감대를 불러 일으켰다는 점에서 어찌보면 '검증된' 영화라고 볼 수 있겠다. 어쨌든 큰 기대를 갖지 않고 관람해서 그런지 무언가 잔잔한 교훈과 즐거움을 안겨준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다.

 

 

영화는 소위 '잘 나가는' 라디어 DJ이자 연예계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구가하는 차태현(남현수 분)의 멋진 일상에 너무나도 어린 모녀가 등장하면서 시작된다.

우리가 잘 알고 환상까지 꿈꾸는 이들이 있을 정도로 살고 싶은 삼성동 팬트하우스에서 멋진 Home Jazz Music과 분위기 있는 식사를 즐기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그의 멋진 Single Life는 황정남(박보영 분, 남현수의 친딸)과 왕석현(황기동 분)이 들이닥치면서 헝클어지기 시작한다. 원래 황정남은 남현수가 진행하는 라디오의 청취율을 끌어올려주는 소리없는 애청자였지만 실제로 Radio DJ의 속도위반으로 인해 세상에 태어난 딸이라면서 그의 삶에는 적지 않은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가뜩이나 'Form'이 무너져 내리면서 하루하루가 머뜩해져 버린 그의 삶속에서 어린 두 모녀는 그들만의 생활방식을 고집하며 어느새인가 현수의 짐이 되고 만다. 하지만 현수는 그런 정남과 기동이를 애써 내치지도 그렇다고 호감을 가진 것도 아닌 이중적인 시선으로 함께 살아가기 시작한다.

노래를 잘 하는 정남이를 자신이 진행하는 Radio 프로그램에 출연시켜 더욱 자신의 Long-Run의 수단으로 삼으려고까지 하지만 정남의 옛 남자친구가 나타나고 충분한 오해를 살 수 있는 사진들로 인해 그렇게 현수와 정남 그리고 기동이는 헤어지고 만다.

 

 

성공가도를 잘 달려나가고 그러한 삶을 계속 추구하고자 하는 현수에게 자신의 친자이자 친손인 정남이와 기동이는 더이상 끌어안기 어려운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만약 나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싶었다. 정말 그렇게 책임감 보다는 나 자신의 성공과 그 성공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좋은 것들을 지속시키기 위해 그러한 자신의 과오에서 비롯된 결과물들을 부정해 버렸을 것인지,, 아니면 영화 후반부에서 Stable하게 등장하는 광고장면과 같이 나의 잘못과 부정을 시인하고 그들에게 용서를 구하면서 새로운 삶을 살아갈지 영화를 보는 내내 가벼운 마음으로 고민해 보았다.

 

영화는 현수의 삶과 마인드를 통해 일반적으로 우리가 선택해 나가고 있는 부분을 정확히 짚어준다. 어쩌면 지금 내게 주어진 과제같은 것이 현수의 삶을 통해 오버랩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나 자신의 결점이나 거짓된 포장 그리고 정말 감추어버리고만 싶은 것들에 대해 초연해질 수 있는지,, 나 스스로 그러한 것들을 드러내고 이해와 용서를 구할 수 있는 용기가 과연 있는지 아니면 영화의 주인공과 같이 처음에는 감추려하고 부정하다 결국 어떤 계기를 통해서 돌이키고 마는지,, 그런 점에서 적지 않은 공감을 갖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현수는 나와 같이 아니면 다수의 많은 관람자들이 고개를 한 번쯤 끄덕끄덕 할 수 밖에 없었던 너무나도 친밀한 생활속의 주인공으로 자리잡은 것 같은 느낌이다.

 

현수를 자연스럽고 말끔하게 연기한 차태현 역시 과거 그가 음반을 내며 참패했던 가수생활의 실패를 리얼리티하게 영화의 감초처럼 소개하면서 특유의 표정연기와 약간 얄미우면서도 밉지 않은 그만의 캐릭터로 잘 소화하는 전형적인 연기를 보여준 것 같다.  

 

이 영화에서 감독이 가장 그려내고 싶었던 역할을 맡은 정남이는 어린 미혼모이자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마음속 꿈을 아름답게 드러낸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미혼모에 대한 편견과 질시가 큰 것이 사실인데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사회적으로 약자일 수 밖에 없는 미혼모들의 대변자를 연기자 박보영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경제성장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복지와 사회안전망이 취약한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미혼모는 첫 째는 경제적으로 둘 째는 사회적으로 마지막으로는 정서적인 면에 이르기까지 적지 않은 고통을 온몸으로 감내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영화속에 등장하는 정남이는 노래를 몹시도 잘 부른다. 그것은 친부인 현수의 음악적 재능을 그대로 타고났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녀가 낳은 기동이도 천재적인 피아노실력을 자랑하고,, 그렇게 음악적 감각이 대를 이어 흐르게 된다는 것을 영화는 결말부분에서 여실히 보여준다. (기동이의 재롱잔치 장면에서,,)

영화 내내 그녀가 부른 노래들이 머릿속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얼마 전에 뉴스에서도 '과속스캔들 OST'를 구입하는 사람들이많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물론 모든 노래를 그녀가 다 부른 것은 아니겠지만) 실제로도 노래를 그렇게 잘 부른다고 하니,, 정말 영화 속에서도 보고 나서도 그 노래를 다시 한 번 들어보았으면 하는 욕구가 끊이질 않았다.

 

 

요즘 개봉한 영화들의 주요 코드는 '19禁 Erotic' 이 아닌가 싶다. 작년의 경우 [미인도]를 시작으로 [쌍화점] 그리고 앞으로 개봉하는 영화들도 줄줄이 에로틱을 강조하느라 가족끼리 또는 여러 세대를 불문하여 함께 볼 수 있는 영화가 별로 많지 않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런 의미에서 이 [가족 스캔들]이라는 영화는 성공할 수 밖에 없는 요소들을 갖추고 있는 것 같았다.

 

영화를 선택할 때 은근 기대하는 그 흔한 남녀의 애정씬도 로맨스도 없지만 (없는 것은 아니지만 농도는 매우 얕은 편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보고 난 이후에 잔잔하게 밀려오는 감동은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간략히 말해보자면 첫 번째는 뭐니뭐니해도 책임감이 아닐까 싶다. 책임감은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특히 나와 같은 남자들이라면 필수이자 최우선적인 덕목으로 지녀야 할 가치가 아닌가 싶었다. 자신이 저지른 일은 자신이 수습하고 책임져야 하는데,, 세상이 그렇지를 못해서 책임감이 있는 것이 때론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은근히 손해보는 것 같은 이중적인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책임감이 생기면 삶이 더 행복해진다는 것을 이 영화는 소극적이지만 은근히 강조하고 있는 것 같다.

 

마지막은 진실이다. 진실을 덮으려고 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아무리 은폐해보려고 이런 저런 머리를 써도 결국 진실의 힘은 그러한 잔재주들을 금방 넘어버린다. 솔직함이 무기이고 진실이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힘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