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한 가운데

김신애2009.02.03
조회47

 


니나.


 


  난 이따금 대체 나를 그렇게 쫓은 정체가 무언지 자문해 보곤해. 하지만 알수가 없어. 그런 바로 너 자신이야 하고 말한다면 그건 말 장난일 뿐 완전히 설명이 될 수 없어. 그건 자신이 행복을 원하는데 그것을 스스로 쫓아 버릴 수는 없기 때문이야. 운명이라고 말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것 역시 말을 위한 말이야. 운명을 만드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니까. 그렇다면 왜.......... 이렇게 해서 의문은 쳇바퀴를 돌게 되지.


  신이 날 현명하게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라면 난 행복 속에서도 현명할 수 있는데 왜 굳이 그런 절차가 필요하단 말인가 하는 의문을 지워 버릴 수 없어. 도대체 현명하다는 것이 행복보다 나은 건가 하는...






니나.


  '어째서 인간은 고통을 통해서만 현명해져야 하지? 어째서 고뇌를 통해서만 현명해지도록 만들어져 있는 거지? 아, 언니는 내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할 거야. 사실 그럴지도 모르고.... '


 


화자.


  하지만 네가 행복했다면 글을 쓸 수 있었겠니? 날 보렴. 난 비교적 안락하게 살고 있지만 긍르 쓰진 못해. 물론 신문 기사 정도는 쓸 수 있어. 하지만 그 이상은 안돼. 만약 내가 다른 글을 쓰려고 한다면 그 의도만 두드러질 뿐 아무도 감동받지 않을 거야. 넌 글을 쓸 수 있으니까 그 대가를 현금으로 지불하고 있는 셈이야. 너도 그 점은 인정하지? 넌 많은 대가를 치르는 대신 많이 받고 난 거의 아무것도 치르지 않는 대신 받는 것도 없어.  


 


 


 


 


 


 


 


 


 


  그 당시.. 2007년 가을. 나는 니나를 통해서 적잖은 위로를 받았었다. 머리 속에 언제나 공존하는 고뇌라는 것은 사실은 내게 괴로운 것이었으나, 나는 그것과 동거하는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것은 내 속에 있었으니까. 니나의 평범하지 않은 삶, 아픈 현재, 그리고 평생의 동반자였지만 남편은 아니었던 슈타인 박사. 나는 니나가 아니었지만 니나였다.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는 갔지만 나에게 책을 남기어 주었다고. 3년이 지난 지금 나는 안다. 그는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환상에 불과하다고, 내가 철저히 만들어서 반듯하게 접어놓은 마음의 비계덩이에 불과하다고. 여하튼 나의 욕망은 나를 니나에게 데려다 주었다.


  그 당시 니나는 나에게 구원이었다. 잠도 자지 못하고 나는 니나를 만났다. 사실은 잠을 자지 못해서 니나를 만났다. 언 2년 동안이나 내 고뇌를 다 잡아주던 출구의 빈자리는 너무도 컸다. 마치 영화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박격포를 맞아 몸의 한 구석이 한 순간 사라지고 너덜너덜해진 상태를 연상케 했다. 나는 여권을 꺼내놓고 상상하곤 했다. 어딘가 먼, 그 곳으로 가서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단 하나의 이상을 향해서만 달려가는 상상을 했다. 추운 내 방에서 슬글슬금 추워지기 시작한 날씨가 내 발목의 맨 살을 냉랭하게 만들었지만, 그래도 나는 머리 속에서 니나가 되어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