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들어와서 벨트를 푼다. 추운 날 임에도 곤색에 금줄이 그어진 정장스타일의 벨트는 풀자 그것은 굉장히 따뜻하다. 내가 언제나 꽂는 구멍이 있는 곳의 가죽은 세로로 주름이 생겼다. 이 아이를 벨트 정리함에 넣으면서 곧 차워지겠군, 그리고 또 다시 내 몸에서 데워지고는 점점 나다운 벨트가 되어가겠지. 10년이 지나도 이 소가죽 벨트는 변함없는 애정으로 허리에 걸쳐질 것이고 나를 말하는 이미지가 되어갈꺼다.
이 세상에 나와 관련 없는 것을 내가 보고 겪을 수 있는 확률은 0%이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쓰던 물건, 손때묻은 물건이 좋아졌다. 새 물건을 산다는 것은 그야말로 신나는 일이긴 하지만, 몇 년을 함께 나눈 정이 묻은 물건들에 비하면 풋풋한 신참내기에 불과한 것이다.
사람에도 그랬다. 때때묵은 살냄새부터 역사가 깊은 향수의 향까지 모두 맞대고서 수 년을 함께 하여온 그들보다 새 사람, 산뜻한 그 느낌이 좋을 때가 있었다. 그렇지만, 마치 사이즈가 다른 옷을 입듯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시간들이 싫어진 것은 내가 나도 모르게 깊숙이도 이 세상에 정이 들어버렸기 때문일까?
내가 새 것에 정을 쏟을 때에는 그 어느 것도 마음 둘 필요없이 과거를 쉽게 버릴 수가 있었다. 그래서 쉽게 떠날 수 있을 거라 여겼고, 모든 것을 쉽사리 그만둘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건 새로운 걸 쉽게 시작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전혀 전공과 상관없는 일을 시작하면서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만 가지고 시작했고,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무슨 일이든 가진다는 것에 설레였다. 그리고 내가 그 어딘가에서 존재감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에 뿌듯했다. 하지만 내가 느낀 것은 사람이 선택한 자신의 인생 궤도를 이탈하는 것이 마치 원숭이가 고양이 무리에 있는 것과 다를바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더군다나 나는 음악에 있어 이방인이 될 수가 없어 원숭이도 아니고 고양이도 아닌 정신적인 이중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체성에 크나큰 혼돈이 왔다.
그 혼돈이 정리될 무렵에 내가 선택한 단어는 '선택'과 '의지'였다. 인간은 이 두가지 단어를 잃으면 죽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내가 선택한 낯선 자리. 스스로가 선택한 직업과 일을 나와 내 주위 것을 모두 활용하면서도 멋지게 마무리 짓고 싶었고, 내가 선택한 것에 대한 원망을 눈초리를 스스로에게 흘기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왜 그래야만 했을까? 나는 숨쉬는 것조차 힘들만큼 그 자리가 힘들었다. 내 완벽주의 때문일 수도 있고, 또 리드받지 못하는 자리에 놓여져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무것도 모른채 아이디어만 가진 나는 그것을 다듬는 법을 사무실에서 배우질 못했다. 몇 가지의 일이 아니라 거의 모든 일을 스스로 해결해야만 했고, 언제나 나보다 10~30살이나 많은 어른들을 상대해야 했으며 그곳에서 언제나 모른다고 말하기도 어렵고, 안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아는 게 무엇이고 모르는 게 무엇인지도 몰랐다. 24살의 나는 그곳에서 사실은 나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가능하고 내가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선택을 번복하고 손에 든 것을 모두 놓아버렸다. 그러자 의지도 사라졌다. 그리고 내가 등졌다고 생각했던 음악으로 다시 돌아갔다. 어쩌면 아쉽게도 떨어졌던 오디션이 내 정체성에 해비급의 펀치를 날렸는지도 모른다. 그 삶 속에서 내가 범했던 생각의 실수를 발견했다. 다른 일을 하면서도 음악과 손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그 후엔 쉽게 음악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고 여겼던 것. 그 생각.
직업과 사랑의 선택에서 철저하게 실패한 나는 모든 의지를 잃었고, 죽고 다시 살아났다고 생각했다. 7월의 한날, 더위가 내 뺨을 때리던 그 날, 나는 죽었었다. 죽는 것 대신 새로 시작하는 것을 선택했고 거기서 나는 미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내 정신이 미음죽을 먹던 날, 마치 지금까지 나도 모르게 쌓인 납성분이 빠져나가듯이 나는 홀가분해졌다. 그리고 그 날로 나 자체를 잊어버린 무모한 용기는 살해했다.
나는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거칠게 사막과 열대림을 헤메이다 집으로 돌아온 자 처럼, 작고 또렷한 목소리를 동반하여 학교로 돌아왔다. 그리고 내 진짜 자아와 손을 잡았다. 욕심쟁이는 걸음아 날 살려라고 어느새 도망가고 없었다. 세계를 흔들어놓는 것도 내 자리에서 해야하고, 내 자리를 지키는 것도 내 자리에서 해야한다. 모두에게는 자기에게 잘 맞는 자리가 따로 있는 듯하다. 어쩌면 모든 사람이 그 자리를 찾고있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사람은 쉽게 자신을 부인할 수가 없고, 자신의 환경 또한 부인할 수가 없다. 또한 자신의 옛 것을 쉽사리 뿌리칠 수 없고 그 옛 정을 무시할 수 없다. 그것에서 오는 상실감이 크다는 것을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 주위를 둘러보면 가끔은 왜 저렇게 살까 싶은 삶들도 그 삶을 유지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자기부인과 인정, 자기애와 자기연민을 반복하며 한 해, 한 해를 살아갈 수록 내 뒷날의 발걸음이 점점 나를 넘어지지 않도록 길을 헷갈리지 않도록 나를 붙들어주게 되어 성숙이란 것을 선물로 받게 된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스스로에게 박수를 쳐 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 박수에 힘입어 다시 인생이란 춤판에서 신명나게 춤출 수 있도록 스스로를 격려해주어야한다. 사이즈가 잘 맞는 선택을 하고 의지를 가지고 삶을 지속해나가도록 말이다.
따뜻한 벨트. 집에 들어와서 벨트를 푼다. 추운 날 임에
따뜻한 벨트.
집에 들어와서 벨트를 푼다. 추운 날 임에도 곤색에 금줄이 그어진 정장스타일의 벨트는 풀자 그것은 굉장히 따뜻하다. 내가 언제나 꽂는 구멍이 있는 곳의 가죽은 세로로 주름이 생겼다. 이 아이를 벨트 정리함에 넣으면서 곧 차워지겠군, 그리고 또 다시 내 몸에서 데워지고는 점점 나다운 벨트가 되어가겠지. 10년이 지나도 이 소가죽 벨트는 변함없는 애정으로 허리에 걸쳐질 것이고 나를 말하는 이미지가 되어갈꺼다.
이 세상에 나와 관련 없는 것을 내가 보고 겪을 수 있는 확률은 0%이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쓰던 물건, 손때묻은 물건이 좋아졌다. 새 물건을 산다는 것은 그야말로 신나는 일이긴 하지만, 몇 년을 함께 나눈 정이 묻은 물건들에 비하면 풋풋한 신참내기에 불과한 것이다.
사람에도 그랬다. 때때묵은 살냄새부터 역사가 깊은 향수의 향까지 모두 맞대고서 수 년을 함께 하여온 그들보다 새 사람, 산뜻한 그 느낌이 좋을 때가 있었다. 그렇지만, 마치 사이즈가 다른 옷을 입듯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시간들이 싫어진 것은 내가 나도 모르게 깊숙이도 이 세상에 정이 들어버렸기 때문일까?
내가 새 것에 정을 쏟을 때에는 그 어느 것도 마음 둘 필요없이 과거를 쉽게 버릴 수가 있었다. 그래서 쉽게 떠날 수 있을 거라 여겼고, 모든 것을 쉽사리 그만둘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건 새로운 걸 쉽게 시작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전혀 전공과 상관없는 일을 시작하면서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만 가지고 시작했고,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무슨 일이든 가진다는 것에 설레였다. 그리고 내가 그 어딘가에서 존재감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에 뿌듯했다. 하지만 내가 느낀 것은 사람이 선택한 자신의 인생 궤도를 이탈하는 것이 마치 원숭이가 고양이 무리에 있는 것과 다를바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더군다나 나는 음악에 있어 이방인이 될 수가 없어 원숭이도 아니고 고양이도 아닌 정신적인 이중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체성에 크나큰 혼돈이 왔다.
그 혼돈이 정리될 무렵에 내가 선택한 단어는 '선택'과 '의지'였다. 인간은 이 두가지 단어를 잃으면 죽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내가 선택한 낯선 자리. 스스로가 선택한 직업과 일을 나와 내 주위 것을 모두 활용하면서도 멋지게 마무리 짓고 싶었고, 내가 선택한 것에 대한 원망을 눈초리를 스스로에게 흘기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왜 그래야만 했을까? 나는 숨쉬는 것조차 힘들만큼 그 자리가 힘들었다. 내 완벽주의 때문일 수도 있고, 또 리드받지 못하는 자리에 놓여져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무것도 모른채 아이디어만 가진 나는 그것을 다듬는 법을 사무실에서 배우질 못했다. 몇 가지의 일이 아니라 거의 모든 일을 스스로 해결해야만 했고, 언제나 나보다 10~30살이나 많은 어른들을 상대해야 했으며 그곳에서 언제나 모른다고 말하기도 어렵고, 안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아는 게 무엇이고 모르는 게 무엇인지도 몰랐다. 24살의 나는 그곳에서 사실은 나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가능하고 내가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선택을 번복하고 손에 든 것을 모두 놓아버렸다. 그러자 의지도 사라졌다. 그리고 내가 등졌다고 생각했던 음악으로 다시 돌아갔다. 어쩌면 아쉽게도 떨어졌던 오디션이 내 정체성에 해비급의 펀치를 날렸는지도 모른다. 그 삶 속에서 내가 범했던 생각의 실수를 발견했다. 다른 일을 하면서도 음악과 손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그 후엔 쉽게 음악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고 여겼던 것. 그 생각.
직업과 사랑의 선택에서 철저하게 실패한 나는 모든 의지를 잃었고, 죽고 다시 살아났다고 생각했다. 7월의 한날, 더위가 내 뺨을 때리던 그 날, 나는 죽었었다. 죽는 것 대신 새로 시작하는 것을 선택했고 거기서 나는 미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내 정신이 미음죽을 먹던 날, 마치 지금까지 나도 모르게 쌓인 납성분이 빠져나가듯이 나는 홀가분해졌다. 그리고 그 날로 나 자체를 잊어버린 무모한 용기는 살해했다.
나는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거칠게 사막과 열대림을 헤메이다 집으로 돌아온 자 처럼, 작고 또렷한 목소리를 동반하여 학교로 돌아왔다. 그리고 내 진짜 자아와 손을 잡았다. 욕심쟁이는 걸음아 날 살려라고 어느새 도망가고 없었다. 세계를 흔들어놓는 것도 내 자리에서 해야하고, 내 자리를 지키는 것도 내 자리에서 해야한다. 모두에게는 자기에게 잘 맞는 자리가 따로 있는 듯하다. 어쩌면 모든 사람이 그 자리를 찾고있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사람은 쉽게 자신을 부인할 수가 없고, 자신의 환경 또한 부인할 수가 없다. 또한 자신의 옛 것을 쉽사리 뿌리칠 수 없고 그 옛 정을 무시할 수 없다. 그것에서 오는 상실감이 크다는 것을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 주위를 둘러보면 가끔은 왜 저렇게 살까 싶은 삶들도 그 삶을 유지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자기부인과 인정, 자기애와 자기연민을 반복하며 한 해, 한 해를 살아갈 수록 내 뒷날의 발걸음이 점점 나를 넘어지지 않도록 길을 헷갈리지 않도록 나를 붙들어주게 되어 성숙이란 것을 선물로 받게 된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스스로에게 박수를 쳐 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 박수에 힘입어 다시 인생이란 춤판에서 신명나게 춤출 수 있도록 스스로를 격려해주어야한다. 사이즈가 잘 맞는 선택을 하고 의지를 가지고 삶을 지속해나가도록 말이다.